당신의 안전 비용

호신용품을 쇼핑하고, 주짓수를 배우려고 시간과 돈을 들인다. 사회는 내 몸은 내가 지키라고 압박한다. 좀비 세상에 홀로 남은 여전사의 처지와 비슷하다.

체인이 달린 체크 패턴 원피스는 베트멍 (Vetements at 10 Corso Como), 스파이크 장식 반지, 활모양 은색 반지, 호랑이 장식 너클링은 구찌 (Gucci), 미니 박스 백은 샤넬(Chan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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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검 형사 조정실입니다.” 검찰청으로 출두하라는 문자가 왔다. 지난해 11월, 경찰서에 접수된 사건이 이제 검찰에 넘어간 듯싶다. 밤에 귀가하던 중 택시 기사와 시비가 붙었고, 그에게 포박 당해 끌려갔다. 나는 포박을 풀기 위해 기사의 손가락을 물었고, 경찰에 신고했다. 내 인생 세 번째 경찰서행이었다. 처음 두 번 모두 귀갓길에 당한 성추행이었는데, 내가 도망가는 범인을 잡아 경찰서로 넘겼다. 한 명은 회사원, 한 명은 전과 5범이었다. 이번에는 손가락 상해에 대한 진단서 때문에 쌍방 과실로 검찰까지 넘어간 것이다. 합의를 위해 택시 기사와 재회했는데, 나란히 앉아 조사 받고 한밤에 경찰서를 같이 나서야 했다. 잊고 있던 두려움이 살아났다. 그동안 ‘나쁜 놈’을 잡아넣은 건 운이었고 언제든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생각. 택시 기사의 차가 시야에서 없어질 때까지 경찰서에 숨었다. 집에 들어가기 전 주위를 둘러보았다. 혹시나 그가 따라오지 않았을까.

호신용품을 쇼핑하기 시작했다. 10년 전 후추 스프레이를 구입하고선 처음이다. 그동안 안일하게 살았다며 눈물을 찔끔거렸다. 세상에, ‘호신계’는 엄청나게 성장해 있었다. 포털 사이트에 ‘여성 의류’를 검색하면 나올 법한 양이었다. 사이트를 닫고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무슨 호신용품을 사야 할지 모르겠어. 그전까지 커터 칼이라도 갖고 다닐까 봐.” 친구는 한밤에 산책할 때 정말로 과도를 갖고 다닌다고 했다. “내가 찌를 수 있는 시간이라도 있음 다행이지, 뭐.” 친구는 씁쓸하게 말하며 “호신용 경보기를 울리고 도망가는 게 상책”이라고 했다. 사이트에서 검색하니 수많은 경보기가 뜬다. 가장 많이 팔린 3만원짜리 경보기를 클릭한다. 핀을 뽑으면 비행기 이착륙 소음인 120데시벨보다 큰 130데시벨의 소리가 나는 제품으로 ‘귀에서 피가 날 정도’라는 설명이다. 옆에 ‘액세서리로도 이용 가능’이라고 적혀 있다. 곰돌이 모양의 경보기를 액세서리로 쓸 리도 없지만 이게 적절한 설명인가. 다른 호신용품도 비슷하다. ‘편리하고 간편한’ ‘독일제’ ‘앙증맞은’ 같은 설명 문구는 식기세척기나 패션 아이템 쇼핑과 다를 바 없다. 업체에선 우리가 호신용품 쇼핑에 더 빠져들도록 화려한 컬러와 쉴 새 없이 깜빡이는 화면을 사용한다. <가디언>의 칼럼니스트 로라 베이츠도 공감했다. 어느 날 그녀는 ‘안전하게 야외에서 조깅할 수 있게 돕는’ 칼날이 달린 반지를 본다. 핑크색이며, 역시나 간편하고 예쁘다는 설명이다. 스위치를 누르면 전류가 흐르는 강간 방지 속옷, 환각제에 반응하는 매니큐어 등 신상품도 있다. 로라 베이츠는 “자신의 안전을 위해 어서 지갑을 열고, 돈을 쓰라”는 메시지가 넘쳐난다고 했다.

오늘날 한국을 사는 현대 여성들은 자신의 안전 정도는 스스로 책임지라고 압박 받는다. 한 여성 사이트에 ‘호신용품이 필요하냐’는 질문에 이런 댓글이 있다. “사회를 믿지 마세요. 국가 재난만 봐도 알잖아요. 스스로 움직인 사람만 살았어요.” 공감 댓글에는 각종 호신용품에 대한 품평이 이어졌다. 전기 충격기나 가스총은 20만원이면 구입하지만 경찰서에 소지 허가를 받아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경보기나 삼단봉 등이 인기였다. 나도 이들을 장바구니에 넣고 맹렬히 검색을 이어갔다. 최근 전기 충격기 겸용 휴대전화 케이스가 출시됐는데, 내 지문으로만 작동돼 오발 염려가 없고 작동 위치가 경찰서로 전송된다. 가격은 15만원. “어머, 이건 사야 해!” 장바구니에 넣었다. 모든 호신용품의 메인 카피는 거짓말처럼 똑같다. “내 안전은 내가 지킨다(그러니 어서 돈을 쓰세요).”

<미녀, 야수에 맞서다>의 저자이자 변호사인 엘렌 스노틀랜드의 TED 강연을 봤다. 고분고분한 ‘잠자는 미녀’가 되지 말고 자기방어를 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한때 그녀도 버킷 리스트에 브라질리언 왁싱 받기가 자기방어 수업 듣기보다 우선이었지만 강도를 만나면서 변했다. TED가 준 18분 내에 그녀는 자기방어의 핵심으로 “안 돼”라는 표현을 강조했다. 엘렌이 “저리 가”라고 소리 지르니 괴한 대역이 당황하며 사라지는 상황극을 보였다. 나도 자기방어 수업을 검색해본다.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여성주의 자기방어 훈련’이 있다. ‘싸우는 여자가 이긴다’는 슬로건 아래에는 자신을 보는 부정적인 시선 반대로 쏘아내기, 대련을 통해 반격 연습하기 등이 있다. 뭔가 코끼리 다리를 만지는 기분이지만, 참여자들은 용기를 얻었다는 평이다. 이 수업은 무료인 반면 언제 또 열릴지 모르며, 열린다 해도 집과 거리가 너무 멀었다. 호신술 학원을 검색했다. 요즘 인기 있는 주짓수의 강습비는 내가 다니는 요가 학원과 비슷하다. 강습비 문제가 아니라 퇴근 후 요가를 끝내고 주짓수를 가야 하나? 그럼 내 여가 시간은? ‘안전’이란 기본권을 위해 왜 나의 체력과 시간과 기회비용을 지불하고 있는 거지? 택시 사건은 내 삶의 패턴을 바꾸었다. 사건이 일어난 순간만이 아니라, 일상의 행동과 마음 상태, 시간 운용, 가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아마 평생을 따라다닐 것이다. 통계를 들 필요도 없지만,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의 2016년 조사에서 2030 1인 가구 여성들은 삶의 어려움을 묻는 질문에 경제적 불안감(26.6%)과 함께 ‘위급 시 대처의 어려움(26.3%)’ ‘성폭력 범죄 등 안전에 대한 불안감(19.5%)’을 꼽았다. 하지만 사회는 안전을 위한 책임이나 비용은 개인에게 전가한다. 물론 기관에서 내놓는 대책은 있다. 내가 사는 송파구가 ‘여성 안전 확대 정책’을 마련한다는 기사를 보았다. 모든 공중화장실에 비상벨을 설치하고, 여성안심택배보관함을 확충하고 자기방어 호신술 아카데미도 열고, 귀갓길 환경을 개선한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기관이 본래 해야 하는 최소한의 책임을 행할 뿐이며, 여성이 안전할 근본적인 해결책도 되지 않는다. 지난 2년 전 프랑스에서는 ‘여성세’ 논란이 뜨거웠다. 같은 제품임에도 여성용이 남성용보다 더 비싸다는 것. 우린 여전히 또 다른 ‘여성세’를 내며 안전을 사고 있다.

호신용품이 도착하기 전까지 송파구가 확충할 거라는 ‘안심 귀가 스카우트’를 이용할 생각이다. 예약하면 스카우트 대원 두 분이 함께 귀가해주는 서비스다. 고마운 분들이지만, 내 안전을 위해 귀갓길에도 원치 않는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