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랜드

탄식을 웃음으로 승화시킬 속 시원한 풍자 코미디를 바라는 건 지나친 욕심일까. 우리의 정신 건강을 위해 필요한 건 한 스푼의 날 선 재치다.

블루 재킷과 팬츠는 미스지 컬렉션(Miss Gee Collection), 화이트 탱크톱은 카이(Kye), 목걸이와 팔찌는 피 바이 파나쉬(P by Panache), 실버 스틸레토 힐은 스튜어트 와이츠먼(Stuart Weitzman).

블루 재킷과 팬츠는 미스지 컬렉션(Miss Gee Collection), 화이트 탱크톱은 카이(Kye), 목걸이와 팔찌는 피 바이 파나쉬(P by Panache), 실버 스틸레토 힐은 스튜어트 와이츠먼(Stuart Weitzman).

요즘 미국에선 토요일 밤마다 ‘SNL’을 통해 배우 알렉 볼드윈을 볼 수 있다. 영화 홍보용 게스트 출연이 아니라 고정이다. 경선 때부터 도널드 트럼프를 연기했던 그는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에도 풍자를 위해 몸을 던진다. 영화 스케줄로 바쁜 배우인데도 기꺼이 도널드 트럼프를 연기한다. 돈을 많이 받는 것도 아니고 코미디 스타가 되고 싶어서도 아니다. “트럼프는 대통령이 되었고 우리는 이의를 제기할 자유가 있다. 누가 대통령이 되었든 우리(SNL)는 가능한 한 많은 풍자를 했을 것이다”라는 것이 <뉴욕 타임스>에 밝힌 그의 입장이다. 알렉 볼드윈이 연기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국가 안보 보고를 받아야 할 시간에 트위터를 하느라 정신이 없고, 크리스마스에는 러시아에서 온 푸틴 산타를 만나 몰래 카메라가 장착된 인형을 선물로 받는다. 영화배우의 하이 퀄리티 풍자 연기를 보고 있노라면 이게 웬 트럼프 시대의 선물(?)인가 싶다. 한국 버전으로 바꾼다면 나문희나 김해숙급의 배우가 매주 코미디 프로그램에 고정으로 등장해 대통령을 연기하는 상황이랄까.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은 많은 미국 사람들에게 트라우마로 작용했다. 트럼프의 당선에 대해 수많은 분석이 이뤄지고 민주당의 탐욕과 엘리트주의가 비판을 받았지만 결과를 ‘인정’하는 건 쉽지 않았다. 트럼프를 지지하지 않았던 여자들에게 성추행 전과범에 성차별 ‘막말남’인 트럼프의 당선이란 역사의 시간을 20세기 이전으로 되돌리는 것과 같았다. 당선 바로 다음 날부터 여러 초등학교에서 이민자 어린이들을 두고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며 공격한다는 경험담이 SNS로 퍼졌다.

밖에 나가기가 두려웠던 그 밤에 나는 토크쇼 <레이트 쇼 위드 스티븐 콜베어(The Late Show with Stephen Colbert)>를 시청했다. 누구보다도 정치 풍자에 열심인 호스트 스티븐 콜베어 또한 트럼프의 당선을 예측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그 결과를 두려워하지 않으려 했다.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된다는 말을 두 번 하지 않게 해달라. 입안에 토 나오는 걸 참으면서 다시 말해야 한다” “어린아이들이 왜 착한 사람들에게 이런 나쁜 일이 일어나는지 꼬치꼬치 물어본다면 그냥 <겨울왕국>을 틀어줘라. ‘렛 잇 고’ 부르면서 다 잊어버릴 거다.” “캐나다 갈 생각하지 마라. 미국인은 가족이다. 추수감사절에 술 취한 삼촌이 인종차별적 막말을 지껄인다고 옆집으로 옮겨가지 않는다”며 시청자들이 슬픔에서 빠져나와 웃을 수 있도록 도왔다. 정말 신기한 것은 이 재치 있는 독설이 효과가 있었다는 점이다. 한바탕 웃고 나니 다시 삶이 정상 궤도로 돌아왔다. 세상이 멸망이라도 한 듯 한숨만 나오던 시절이 끝나고 비로소 정치 이슈와 거리를 둘 수 있었다. 코미디의 치유 기능은 생각보다 강했다.

미국 토크쇼는 싸워야 할 대상이 분명해지자 배틀이라도 하듯 풍자에 나서고 있다. 선두에는 매일 트럼프 뉴스를 재치 있게 재해석하는 스티븐 콜베어가 있다. 트위터에 여념 없는 트럼프의 팔로잉 계정까지 다 뒤지며 깨알같이 그를 비판하고 나선다. 한 주의 뉴스를 정리하는 주말 토크쇼 <라스트 위크 투나잇 위드 존 올리버(Last Week Tonight with John Oliver)>의 호스트 존 올리버는 “트럼프 당선에 대한 기분을 설명하자면, 라스베이거스에서 총각 파티를 한 다음 날 사막 한복판에서 깨어났는데 발가벗겨진 채로 죽은 광대랑 선인장에 묶여 있는 것 같다”는 등 비유를 적절히 사용하는 논평으로 인기를 모은다. 현재 가장 핫한 토크쇼 <풀 프론탈(Full Frontal)>의 호스트 사만다 비는 혐오 이슈에 대해 누구보다 거칠고 신랄하게 정치판을 비판하는데 모든 발언을 뒷받침할 뉴스와 자료를 엄청나게 꼼꼼히 준비한다. 직접 트럼프 지지자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는 등 저널리즘을 활용해 풍자에 나서기 때문에 더 생동감이 넘친다.

이쯤에서 한국의 상황을 돌아보자. 비선 실세로서 나라를 위기에 빠뜨린 ‘최순실’이 문화계에 끼친 긍정적 영향이 하나 있다면 바로 소멸해가던 풍자 코미디를 (미약하게나마) 부활시킨 것이다. <SNL 코리아>의 강민교와 <개그콘서트>의 이수지가 최순실을 연상시키는 의상과 분장을 갖추고 나와 예의 없는 캐릭터 재현에 힘썼다. <SNL 코리아>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영화 <겨울왕국>에 대입한 콩트를 선보이기도 했다. 오랫동안 시사 패러디에 매진해온 배칠수와 전영미의 라디오 프로그램 <9595쇼>에선 “큰일 났네”로 시작되는 대통령과 최순실의 가상 통화가 고정 코너가 되었다. 모두 현재 뉴스의 인물들을 우스꽝스럽게 캐릭터화하는 코미디이다. 모사를 잘할수록 웃기지만 비판이 주는 카타르시스는 부족하다. 왜 우리는 풍자의 대상을 향해 대놓고 조롱하거나 비판할 수 없는 걸까?

풍자 코미디는 고도의 코미디 기술로, 솜씨 있는 작가진이 필수다. 어른들만 즐길 수 있는 풍자 코미디를 만들기 위해 방송국에서 인력을 투입할 만큼 매력적인 장르는 아닐지 모른다. 게다가 한국은 미국처럼 풍자 코미디와 뉴스가 공생 관계이며 정치인, 언론인, 코미디언 모두가 수평적으로 일하는 나라가 아니다. 한국에선 정치인, 언론인, 코미디언 중에서 코미디언이 제일 ‘을’이 아닌가. 미국 ‘SNL’에서는 코미디언이 대선 후보를 조롱하는 건 당연하며, 경건한 시상식에서도 호스트를 맡은 코미디언은 명예훼손과 코미디의 경계를 오가는 신랄한 유머로 슈퍼스타를 공격한다. 그것은 그들의 일이고 많이 웃길수록 코미디언은 존경을 받는다. 권위로 억압할 일이 없기에 미국에선 좀더 직접적인 풍자가 가능한 건지 모른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정치인과 부자 기업가들, 그에 조력하는 권위 있는 뉴스 미디어를 뛰어넘어 한국 코미디언들이 정치 뉴스를 가지고 놀 수 있는 날이 올까? 나이를 한 살 더 먹었다고 보너스처럼 권위가 따라오는 유교식 나라에서 권위를 위협하는 풍자 코미디는 무리일까? 세상이 미쳤나, 내가 미쳤나 의문이 들 때 풍자 코미디를 보면 그 답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은 부조리한 현실을 풍자하는 코미디를 보고 웃으며 문제를 제기하는 자신이 혼자가 아니며 정상임을 깨닫는다. 유머는 정신을 건강하게 만들며 사회가 민주적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중 풍자는 대상을 좋아하거나 친근하게 만드는 게 목적이 아니라 잘못된 정보, 어리석음, 권력 남용에 대해 ‘재치 있게’ 경종을 울리는 방식이다. 풍자가 세상을 바꿀 순 없다. 하지만 잘 만든 풍자는 잘못된 것에 대한 영감을 주고 세상을 바꿀 에너지를 재생산하도록 돕는다. 부패의 정치 블랙홀에 빠져 지쳐가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에게 풍자 코미디가 절실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