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왕국의 OST 유감

요즘 드라마 OST는 드라마가 차린 밥상에 숟가락을 얹었다가 빼길 반복한다. 오늘도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OST가 드라마에서 흘러나온다.

ost

대한민국은 한때 드라마 왕국이었다. 듣는 사람 기분 좋자고 얼기설기 엮은 말이 아니다. 실제로 한국은 인기 드라마로 인해 국민들의 생활 패턴이 달라지거나 특정 대상을 향한 사회적 인식이 바뀌기도 하는 이상하고 신비한 나라였다. 매주 월요일 아침이면 어젯밤 본 드라마 내용으로 거리와 회사, 학교가 들썩였고, 드라마 본방 사수를 위해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을 재촉한 이들로 거리가 한산해지기도 했다. 사랑받는 드라마의 양상도 다양했다. 한 해가 멀다 하고 KBS <첫사랑>이나 MBC <사랑이 뭐길래>처럼 시청률 60%를 훌쩍 넘기는 주말 드라마가 탄생했고, SBS <모래시계>나 MBC <여명의 눈동자> 같은 웬만한 영화 못지않은 영상미와 작품성을 지닌 작품도 다수 탄생했다. 드라마의 인기가 높다는 건 곧 드라마에 삽입된 음악도 인기를 얻는다는 뜻이다. 이 공식은 사람들이 ‘드라마 음악’ 혹은 ‘OST’가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Original Sound Track)의 약자라는 것을 인지하기 시작한 이래 대부분 예측 가능한 범위의 대답을 내놓았다. 한국 드라마 OST의 시초로 불리는 김국환의 ‘타타타’(<사랑이 뭐길래>)가 신호탄이었다. 성장의 양태도 다양했다. ‘질투’ , ‘걸어서 하늘까지’ , ‘마지막 승부’ 같은 곡은 유승범, 장현철, 김민교 같은 무명 가수들을 단숨에 스타의 자리에 올려놓았고, KBS <가을동화> OST는이례적으로 5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기도 했다. <대장금>의 ‘오나라’나 MBC <사랑을 그대 품 안에>의 ‘Nabillera’ 같은 예측 불가능한 인기를 얻은 노래도 종종 탄생했다.

사이좋은 남매처럼 기분 좋은 윈윈 관계를 유지해오던 드라마와 OST의 관계가 미묘하게 틀어지기 시작한 건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TV 드라마의 인기가 예전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해에도 몇 번씩 40~50%의 시청률을 넘나드는 ‘국민 드라마’의 짜릿한 맛을 보던 시절이 지난 세기의 일처럼 여겨지는 데 채 10년이 걸리지 않았다. 제작진이 오매불망 한류만 바라보며 작품의 내실을 기하지 못한 사이, 시청자나 투자자도 서서히 등을 돌렸다.

목적과 방향을 잃고 서서히 침몰하는 배 위에서, 드라마 OST는 절망하는 대신 놀라운 자생력으로 생존을 위한 준비를 부지런히 마치는 길을 택했다. 우선 앨범이 싱글로 쪼개지기 시작했다. 음반을 직접 구매하거나 낯선 목소리를 반기는 이들이 현저히 줄어든 현실 속에서 오로지 작품만 생각하는 OST 제작이란 어불성설에 가까웠다. 음반에서 음원으로, 완성도에서 신속함으로 급속히 자리를 옮겨간 한국의 음악 소비 시장 구조 변화도 크게 한몫했다. 대부분의 드라마 OST는 방영 시기에 맞춰 매주 한 곡씩 공개되는 위클리 싱글 형식을 띠기 시작했고, 드라마가 인기를 얻으면 주연 배우가 참여한 트랙을 들을 수 있는 보너스 스테이지가 상처럼 주어졌다. 잘 만든 주제곡이나 무게 있는 스코어보다는 빠른 치고 빠지기와 흥행을 위한 스타 마케팅이 늘 반걸음 앞섰다.

2016년은 이러한 OST 시장의 변화가 한 치의 오차 없이 투명하게 반영된 한 해였다. 전체적인 지표는 훌륭했다. 수치상으로만 보자면 지난 몇 년 가운데 드라마 OST 매출이 가장 높은 해였기 때문이다.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너의 모든 순간’ , <괜찮아, 사랑이야>의 ‘너를 사랑해’는 물론 영화 <겨울왕국>의 ‘Let It Go’와 <Begin Again>의 ‘Lost Stars’가 동시에 히트를 기록했던 2014년과 비교해봐도 8% 이상 높은 점유율을 기록했다. 문제는 ‘쏠림 현상’이었다. 범인은 지난해 봄 음원 차트를 강타하다 못해 뿌리째 뒤흔들었던 드라마 <태양의 후예>였다. 40%에 달하는 기록적인 시청률을 기록한 이 드라마의 OST는 연간 OST 매출의 58%를 차지했다. OST 차트 상위 10위권의 7곡이 <태양의 후예> 몫이었다.

다소 충격적이기까지 한 이러한 수치는 역대급 인기를 끈 드라마의 선전 외에도 ‘드라마 OST 올스타’라 불러도 좋을 화려한 라인업이 낳은 예견된 결과였다. 윤미래, 거미, 린, 케이윌, 다비치, 첸 등 수년간 인기 드라마 OST에서 결코 빠지지 않았던 이름들이 빼곡히 나열된 리스트를 보고 있노라면 익숙함과 동시에 알 수 없는 갑갑함이 밀려온다. 2016년을 마무리하는 화제작으로 뜨거운 반응을 불러온 tvN <도깨비> OST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에일리, 소유, 크러쉬, 어반자카파 등 속칭 ‘음원 강자’라 불리는 이들과의 전략적 콜라보로 시청률은 물론 음원 성적까지 두 마리 토끼를 무난하게 잡고 있는 실정이다. 주연 배우 박보검이 직접 부른 주제곡으로 쏠쏠한 재미를 본 KBS <구르미 그린 달빛>이나 추억 전시로 삼세판을 내리 이긴 tvN ‘응답하라’ 시리즈 역시 스타 마케팅으로 보장된 성공을 거둔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명확한 의도와 냉철한 목표 설정 그리고 과감한 실행. 이 견고한 삼각편대가 일견 얄밉다가도 다른 노선을 시도했다 장렬히 패배한 이들의 이름을 보고 있노라면 팔자 좋게 눈만 흘기기도 어렵다. 혁오, 서사무엘, 빈지노 등 넥스트 빅 씽의 새 노래를 믹스테이프 형태로 담아내며 의욕적인 모습을 보인 tvN <안투라지>와 티어라이너, 바닐라 어쿠스틱, 센티멘탈 시너리 등 매끈한 인디 가요 만들기에 재능을 가진 이들의 목소리를 모았던 tvN <치즈 인 더 트랩> OST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특히 산만한 배경음악 때문에 극에 집중이 어렵다는 비난이 쏟아졌던 <안투라지>의 경우, 다른 의미로 ‘힘준’ OST와 기대에 미치지 못한 작품 완성도가 만들어낸 씁쓸한 콜라보레이션의 정점이었다. 요컨대 작금의 OST 시장은 음악만 잘 만들어 성공할 수 있는 시장이 아니다. 지금 시대가 원하는 좋은 OST란 치밀한 음원 시장 분석 아래 엄선된 목소리가 반복적이되 드라마를 보는 데 방해되지는 않을 정도로만 흘러나와야 하는 것을 기본 원칙으로 한다. 동시에 이들은 자신의 존재가 아이돌이 아닌 가수에게는 최악의 불황을 타개해나갈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며, 동시에 문화 소비의 동력과 생활의 여유를 잃어버린 현대인에게 마지막 남은 부담 없는 대중 유희라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오래된 드라마 왕국의 기묘하고도 신비한 OST는 오늘도 그렇게 고되고 힘겨운 걸음을 옮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