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의 만찬

직접 혀로 맛보고 뇌로 느끼기 전까지는 무엇도 속단하지 말 것. 셰프들의 창작 요리는 반전 있는 드라마보다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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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찬’이라는 단어는 늘 완벽한 반구 형태의 푸드커버(분명 순은 100%일 것)가 덮인 음식이 줄줄이 서빙되는 장면을 떠오르게 한다. 서버가 푸드커버를 여는 순간, 머릿속에서는 자동으로 효과음이 재생되곤 한다. ‘짜잔!’ 그 효과음을 현실의 테이블에서 처음 경험한 건 몇 년 전 레스토랑 류니끄를 방문했을 때였다. 테이블에 속속 도착하는 접시는 ‘내가 지금 레스토랑에 앉아 있는 게 맞나?’ 두 눈을 비비게 했다. 가령, 아버지의 분재에서 이끼와 흙을 한 삽 떠서 담아온 듯한 음식의 등장. 낙엽인가 싶은데 먹어보면 김 파우더를 묻힌 말린 청겨자잎이요, 장식인 듯싶었으나 솔방울 사이 허니 검이 전분으로 만든 비닐에 싸여 있는 식이다. 청포도알처럼 생겼으나 입에 넣는 순간 터지는 셀러리와 루콜라 주스라니! 청포도알의 정체는 화이트 초콜릿이었다. 반전 있는 요리에 포크질을 할 때마다 서프라이즈 파티장에 있는 것만 같았다.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음식 사진을 인스타에 올리며 ‘#먹을수있는것을골라보시오’라는 태그를 달았다. 이날 이후 음식을 눈에 보이는 대로 판단하지 않게 됐다.

순진무구한 파인다이닝 입문자를 깜짝 놀라게 했던 요리는 그 이후로도 여럿이다. 고등어 맛이 나는 투명한 젤리, 레터링이 곱게 새겨진 초콜릿 모습을 하고 있었던 푸아그라, 양초처럼 태우면 녹는 버터, 된장 맛이 나는 새하얀 아이스크림, 토마토와 바질 향이 나는 하얀 큐브… 코스 중 불쑥불쑥 등장하는 이토록 창의적인 요리는 말줄임표로 이어졌던 식사에 팔딱거리는 물음표와 선명한 느낌표를 남기곤 했다. 서버들의 음식 설명에 예전보다 귀를 기울이게 됐고, 질문이 늘었으며, 함께 간 일행과 음식 이야기를 더 많이 나눴다. 평소 ‘오감으로 느끼는 요리’라는 표현이 굉장히 안일하게 느껴졌는데, 정말 이 요리는 질감, 향, 비주얼이 모두 ‘맛’으로 수렴됐다. 그렇다면 이렇게 감각적인 요리를 도대체 뭐라고 불러야 할까? 기존에 존재하는 카테고리로는 명쾌하게 구분이 가지 않아 ‘한식을 기본으로 해외 요리 기법을 접목한 창작 요리’ ‘이탈리아, 지중해, 분자 요리가 결합한 새로운 방식의 요리’ 같은 알 듯 말 듯한 설명을 동원할 수밖에 없는데,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어디서도 맛보지 못한 음식’이고, 통용되는 표현은 ‘셰프의 창작 요리’다. 새로운 맛의 세계를 펼쳐내기 위한 셰프들의 호기심과 열망이 스스로를 새로운 장르로 만든 것이다.

과학적 원리를 이용해 새로운 요리를 만들어내기도 한다는 이유로 ‘분자 요리’로도 불리지만 이는 수많은 테크닉 중 하나일 뿐이다. 류니끄의 류태환 셰프는 “쓸 수 있는 테크닉은 다 쓰는 것”이라며, 기본적인 맛에 집중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류니끄 입구에는 전국 식재료 지도가 세워져 있는데, ‘온갖 테크닉’은 제철 식재료를 산지에서 맛보는 듯한 현장감을 구현해내기 위해 사용된다. 한식을 기반으로 한 아시안 창작 요리를 추구하는 ‘밍글스’나 현대 서울 음식을 내는 ‘스와니예’ 역시 방문할 때마다 테이블에서 계절감을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데, 셰프들의 ‘창작력’은 이들 음식을 코스모폴리탄적으로 느끼게 하기도 한다. 식재료를 대체하거나 추가하는 방식으로 동서양 음식의 조화를 이뤄보고자 했던 과거 ‘퓨전 음식’과는 상당히 다른 느낌이다.

셰프들의 자유로운 상상력은 식재료의 지역적 제한성을 초월하고 선입견을 거둬주는 역할도 한다. <보그> 창간 20주년을 축하하며 ‘훈제 연어 아이스크림을 곁들인 무조림’을 선보였던 최현석 셰프는 당시 “한국적인 요리를 하고 싶다는 집착 때문에 요리 개발을 ‘심하게’ 하고 있다. 글로벌한 사람들 입맛을 사로잡고 싶은 욕심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익숙한 맛을 그만의 방식으로 새롭게 탄생시켰을 때 오히려 한국의 색깔이 전달되더라는 얘기다. ‘정식당’을 시작으로 ‘모던 한식’이라는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는 레스토랑이 세계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건 셰프들의 창작 요리 덕분이었다. 담음새, 차림새 등의 변화도 주효했지만 장르에 구애받지 않은 조리법의 재해석이 완벽히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냈다.

예상 가능하듯, 창작 요리에는 엄청난 시행착오와 시간, 노력이 들어간다. 메뉴를 개발할 때마다 최소 30~40번씩 해본다는 최현석 셰프는 ‘옆에 과학자가 한 명 있으면 얼마나 쉬울까’ 생각한다며 힘겨운 미소를 지었고, 류태환 셰프는 색깔, 맛, 향 등 다 계산해서 디자인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파스타가 두세 가지 공정으로 끝난다면 적어도 일곱 가지 공정을 거쳐야 한다고 했다. 때로는 레시피 설명도 힘들다. 재료를 준비하는 한 단계가 다른 요리 전체 레시피와 비슷할 때도 있다. 창작 요리를 많이 선보이는 레스토랑일수록 주방은 넓고, 도구는 조리 기구 범주를 넘어선다. 조리 과정도 경험으로 제공하기 위해 ‘오픈 키친’을 운영하는 곳도 여럿이다. 식재료와 조리법의 원리를 정확하게 이해해야만 탄생할 수 있는 음식임에도 불구하고 형태가 바뀌거나 디스플레이가 화려한 경우도 있다 보니 “음식 가지고 장난하지 말라”는 쓴소리를 듣기도 했단다. 그렇다면 영양학적인 변형은? 류태환 셰프는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영양학적으로 접근하면 요리가 제한되므로 그렇게 다가가진 않는다. 어떻게 하면 맛있게 먹을 수 있을까에만 집중한다. 몸에 좋지 않지만 아이스크림을 찾는 것처럼.”

요즘 미식계는 하이 테크놀로지를 적용해 식재료의 맛을 다른 차원의 경지로 끌어올리는 요리법과 조리 자체를 최소화해서 식재료의 맛을 최대한 전달하는 요리법, 두 가지 극과 극의 요리법이 공존하는 중이다. 한쪽에서는 오뜨 꾸뛰르를 디자인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옷감부터 한 올씩 짜고 있는 느낌이다. 하지만 두 트렌드는 서로를 부정하지도, 평행선을 그리지도 않는다. 각자 다른 방법으로 행복한 맛이라는 절대적 가치에 다가가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