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타 감성여행

<보그>에서 종종 솜씨를 선보이는 푸드 스타일리스트 김보선이 여행기를 보내왔다. 일본 아키타 지역의 음식문화와 정감 어린 지역색까지 체험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여행.

아키타는 일본 북동부에 위치한 시골입니다. 현재 일본은 지역 관광을 발전시키기 위해 다양한 컨셉의 관광상품을 준비하고 있는데 그 중 하나이지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이지만 일본 역시 농촌 인구가 점점 줄어 빈집, 빈방이 많다고 하네요. 그래서 이런 농촌 집에서 관광객들이 며칠 머물며 일본의 시골을 체험하게 하는 아이디어를 낸 것이죠. 숙박료도 호텔보다 저렴하고, 주인 아주머니가 아키타에서 재배한 농산물로 차려 주시는 집밥을 먹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이번에 ‘후루사토’라는 집으로 다녀왔습니다.

집 안에 들어가자마자 이런 글귀가 우리를 반깁니다. 글자 가장자리를 컬러풀하게 꾸민 것도 귀여워 저절로 미소가 지어집니다. 방은 이런 느낌인데 우리 일행이 이불을 걷어내는 바람에 어수선하네요. 3월 초의 아키타는 북쪽에 위치에 있기 때문인지 꽤 쌀쌀합니다. 눈도 제법 오고요. 온돌난방이 안 되는 곳이라 춥지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방이 아주 따끈따끈 했습니다. 일본 전통 인형 장식도 눈에 띕니다. 저희 다섯 명은 한 방에서 수학여행 온 듯한 기분을 즐겼습니다.

저녁에 도착한 우리를 위해 주인 할머니는 저녁 식사를 준비해 주십니다. 오늘의 메뉴는 직접 키운 감자와 고기, 양파 당근을 간장으로 조린 니꾸쟈가, 숙주와 두부, 직접 키운 채소가 듬뿍 들어간 미소나베, 훈연무절임인 이부리갓코를 김치와 섞은 것, 채소 샐러드 그리고 흰 쌀밥입니다. 할머니가 특기라고 자랑한 니꾸쟈가는 부드럽게 익은 감자에 양념 간이 쏙 배어있어 빡빡하지도 않고 담백한 맛과 식감이 일품입니다. 미소나베는 채소가 듬뿍 들어가 아주 시원하지요. 이부리갓코의 아삭아삭 씹히는 맛은 더할 나위 없었고요. 아키타는 일본의 대표적인 쌀 생산지로 쌀이 맛있기로 유명한 곳입니다. 윤기가 흐르는 찰진 밥을 먹으면 정말 ‘달다’라는 감탄이 나올 정도로 맛있습니다.

다음 날 아침입니다. 일본의 아침식사는 좀 특별합니다. 어제 저녁의 미소나베는 건더기가 많고 국물이 진했지만, 아침의 미소시루는 국물이 더 많고 훌훌 들이마시기 좋습니다. 이 미소시루에 들어가는 된장은 할머니가 직접 에다마메(청태콩, 이자카야에서 먹는 풋콩)으로 만든 겁니다. 일반 대두로 만든 것보다 몇 배나 더 손이 가지만 특유의 맛과 풍미를 포기할 수 없어서 힘들어도 매번 직접 만드신다 하네요. 정말 다른 미소와는 다르게 고소한 단맛이 일품입니다. 할머니가 직접 담근 우메보시 역시 태어나서 내가 먹은 우메보시 중 가장 맛있었어요. 매실의 맛도 잘 살아 있고, 너무 시지도 않아 딱입니다. 달달한 일본식 달걀말이와 연어구이, 이부리갓코와 샐러드, 소시지를 함께 든든한 아침을 먹었습니다. 시골표 디저트는 얼린 곶감입니다. 미소된장과 이부리갓코가 너무 맛있어서 따로 구입하고 싶다 하니 이렇게 포장까지 해 주십니다. 이 모든 음식들은 직접 재배한 작물로 탄생합니다.

이곳 주방 창으로 보이는 바깥 모습은 그야말로 절경입니다. 넓게 펼쳐진 아키타 논밭에 흰 눈이 쌓여 너무 예뻐요. 설경을 바라보며 아침을 먹는 것도 참 기분 좋은 일입니다. 밥을 먹고 주변 산책을 하기에도 좋습니다. 아쉽지만 이렇게 농가 민숙이 끝납니다. 오후나 저녁에 들러 밥 먹고, 잠 한숨 자고, 일어난 후 아침 먹고 나오는 식이지만 현지 일본인들이 사는 집에서 머물며 그들의 가정식을 나누는 체험 자체가 즐겁습니다.

이제 아키타 내륙종관철도 ‘곳쓰오 다마테바코 열차’를 타러 갑니다. 농가 민숙을 한 센보쿠시의 가쿠노다테역에서 다카노스 역을 잇는 열차인데 열차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아름답다는 소문이 자자합니다. 게다가 단지 예쁜 풍경을 보는 데 그치지 않는, 아키타의 음식을 맛보는 즐거움이 있는 열차여행으로 농가 민숙의 기분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는 코스입니다. 그 날의 메뉴 설명이 있습니다. 엄마손 밥상 열차라니, 귀엽군요. 흔들리는 열차 안에서 여러 분들이 이렇게 조심스럽게 음식을 가져다 주십니다.

열차 안에서 지역 특산물을 먹는 방식의 여행상품은 많지요. 하지만 이번 여행이 더욱 기억에 남는 건 솜씨 좋은 마을 어머님들이 직접 만든 절임, 영양밥, 반찬, 국수, 디저트를 가지고 와서 기차역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승객들에게 전달해주고, 손을 흔들고 헤어지는 식으로 하나의 코스처럼 구성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중 농가 민숙을 겸하는 분도 계시기에, 기차역에서 감격적인 상봉을 하기도 하죠. 매 역에 도착할 무렵이면 소박한 가정식 음식도 음식이지만, 이를 들고 우리를 기다리는 모습에 더 감동하게 됩니다. 열차를 타고 아름다운 경치를 보는 것을 목적이라 생각했지만, 그 아름다운 경치는 덤이 되어버렸습니다.

열차를 타고 가는 내내 절경이 창 밖으로 펼쳐집니다. 봄이나 가을에도 그 나름의 분위기가 날 것 같아 더욱 기대가 되네요. 참고로 ‘곳쓰오 다마테바코 열차’에서 ‘곳쓰오’란 맛있고 훌륭한 음식이라는 뜻의 ‘고치소우(ごちそう)’ 사투리라 합니다. 사람을 만나고, 그들의 정성 어린 음식을 나눠 먹는 감성여행이라니, 힐링여행에 이만한 시간도 없을 것 같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