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Hail Hockney

데이비드 호크니의 주요 전시회가 열리는 올해는 그가 80세 생일을 맞는 해이기도 하다. 세상에서 가장 인기 있으며 현존하는 아티스트인 호크니에 대해 팬들이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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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 할리우드 힐에 있는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데이비드 호크니.

벨라 프로이트(Bella Freud)
데이비드 호크니의 그림에는 비밀스러운 면이 있다. 당신이 그의 수영장 그림을 본다면 세상을 향한 작은 창을 얻었다고 느낄 것이다. 그리고 그 후에도 그 그림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 없을 것이다. 나는 그의 그림이 분위기와 컬러의 원천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가 그렇게 빠르고 즉각적으로 작업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 방식에 깊은 인상을 받는다. 내가 19세쯤에 아버지(루시안 프로이트)의 모델을 하고 있을 때 호크니가 리버사이드 스튜디오에서 전시회를 열었던 걸 기억한다. 나는 그가 다른 종류의 화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아버지와 아주 다른 방식으로 삶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사람 말이다. 호크니가 내 아들 지미를 그리겠다고 했을 때 나는 그 아이가 제대로 된 화가의 모델을 경험하게 되어서 너무 행복했다. 아버지는 6년 전에 돌아가셨다. 그래서 화가의 스튜디오를 다시 방문하는 것 그리고 아버지 루시안과의 추억을 다시 경험하는 것이 내겐 아주 소중했다. 호크니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고 그들이 스스로를 특별하게 느끼게 만드는 재능이 있다. 나는 실제 모델을 하기 위해 그곳에 가진 않았지만 우리는 커다란 케이크와 아주 진한 차를 함께 마셨다. 캘리포니아, 초록이 우거진 산비탈, 그리고 그와 함께 진짜 옛날식 요크셔 차를 마시는 건 아주 멋진 경험이었다.

1978년 글라인드본 오페라 극장에서 공연된 모차르트의  중 ‘빛의 승리’ 장면.

1978년 글라인드본 오페라 극장에서 공연된 모차르트의 <마술피리> 중 ‘빛의 승리’ 장면.

자일스 디컨(Giles Deacon)
나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끈질기게 해나가는 사람을 좋아한다. 패션 용어 중 내가 가장 싫어하는 단어 중 하나는 트렌드다. 동시에 호크니는 늘 새로운 방향으로 자신을 밀어붙인다. 나는 학교에서 미술사를 공부하면서 그가 잉글랜드 북부 출신이라는 사실에 특히 관심이 갔다. 호크니의 근성과 추진력으로 이해되는 부분 중 북부의 실용주의가 분명 있다. 그가 기술을 수용하는 방식은 아주 진취적이다. 그는 팩스 기계, 폴라로이드 카메라, 아이패드 모두를 수용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새로운 기계로 작품을 만들어냈다. 그것은 스튜디오에서 가지고 노는 물건이 아니었다. 우리는 현대적인 소재와 테크닉에 전통적인 제조 방식을 믹스하고 탐구함으로써 우리의 꾸뛰르 의상을 현재에 유효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의 사진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레디시 하우스의 온실 안에서 세실 비튼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그냥 함께 앉아있을 뿐인데 두 사람 모두 환상적으로 보인다. 할 수 있다면 그 방으로 이동하고 싶다.

“나는 ‘Mr. and Mrs. Clark and Percy’를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이 그려진 후에 그것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받아왔다”라고 셀리아 버트웰은 1970~1971년 호크니가 그린 초상화-그녀, 오시 클락 그리고 그들의 개-에 대해 말한다.

“나는 ‘Mr. and Mrs. Clark and Percy’를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이 그려진 후에 그것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받아왔다”라고 셀리아 버트웰은 1970~1971년 호크니가 그린 초상화-그녀, 오시 클락 그리고 그들의 개-에 대해 말한다.

재스퍼 콘란(Jasper Conran)
데이비드와 그가 미친 영향에 대해 얘기하는 건 어렵지 않다. 그는 사람들의 삶에 아주 깊숙이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여덟 살 때, 어머니는 나를 그의 스튜디오에 데려갔다. 그는 큰 그림을 작업 중이었다.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이 사람이 위대한 아티스트라는 건 알 수 있었다. 그는 미국 뉴욕에서 나를 그렸다. 그러나 내 코를 제대로 그릴 수 없다며 짜증을 냈다. 그가 당신을 그릴 때의 분위기는 아주 진지하다. 즐겁게 떠들고 노는 분위기가 아니지만 분명 영예로운 일이다. 당신은 그걸 느낄 것이고, 그래서 최선을 다하려고 애쓸 것이다. 그는 내 삶에 계속 등장했다. 한번은 우리가 보트를 타러 가는 길에 내가 직접 차를 몰아 파리에 있는 그를 데려온 적이 있다. 그때 갑자기 길 반대편에서 대형 트럭이 우리를 향해 달려왔다. 나는 거칠게 방향을 바꿨다가 제자리로 돌아왔고 트럭을 피해 미끄러졌다. 그는 나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봤지, 내가 너를 좋아하는 건 바로 이런 점 때문이야. 너는 눈을 사용할 줄 알거든.” 나는 ‘멘붕’이었고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현존하는 아티스트를 죽일 뻔했다. 그러나 그는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호크니의 -애리조나의 풍경을 묘사한 시리즈 중 하나.

호크니의 《9 Canvas Study of the Grand Canyon, 1998년》-애리조나의의 풍경을 묘사한 시리즈 중 하나.

잔드라 로즈(Zandra Rhodes)
데이비드는 왕립예술대학에서 숭배의 대상이었다. 이미 작품을 팔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팝아트와 메달에 전념하기로 결심한 건 그의 ‘A Grand Procession of Dignitaries in the Semi-Egyptian Style’을 봤을 때부터였다. 거기엔 모티브뿐 아니라 회화적인 접근법이 담겨 있었다. 가장 흥미로운 건 그가 생각하는 방식이다. 그는 예나 지금이나 너무나 활기 넘친다. 나는 그가 오랜 세월 계속 작업할 수 있는 비결은 자신이 하는 일을 사랑하고 본인의 작업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와 시간을 보낸다면 당신은 온통 예술 얘기만 할 것이다.

1967년 4월에서 6월 사이에 그려진 작품 'A Bigger Splash'.

1967년 4월에서 6월 사이에 그려진 작품 ‘A Bigger Splash’.

마놀로 블라닉(Manolo Blahnik)
나는 프랜시스 베이컨의 그 모든 잔인하고 아름다운 그림을 보며 성장했다. 호크니는 뭔가 다른 걸 갖고 있었다. 판타지였다. 영국에서 그런 자유와 참신함과 신선함을 본 적이 없었다. 나는 그가 70년대 후반 글라인드본에서 열린 <마술피리> 공연을 위해 디자인한 의상과 무대 세트에 푹 빠졌다. 내가 모차르트를 사랑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의 디자인은 그 이상으로 기발했고 잘 만들어졌다. 그 이미지는 내가 좋아하는 모든 것이었다. 화관을 쓰고 춤추는 소녀, 소년들은 40~50년대 아이들이 기억할 법한 삽화를 연상시키지만 아름답게 연출됐다. <난봉꾼의 행각(The Rake’s Progress)>의 무대 세트(아름다운 신전과 나무에 초록과 빨강을 교차 사용한)도 근사했다. 그는 스트라빈스키 음악의 유려함을 잘 포착했다. 나는 그 세트를 참고해서 십자 무늬의 슈즈를 디자인했고 그의 <마술피리>에 등장한 아름다운 컬러-올리브 그린과 모스 그린, 레티스 그린, 포레스트 그린-를 사용하기도 했다. 사실 늘 아쉬운 게 하나 있다. 호크니는 미스터차우에서 마이클 차우의 스케치북에 나를 그린 적 있다. 나는 친구에게 말했다. “그 종이를 가져다줄 수 있어?” 그러나 그 일은 성사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기 전에 그에게 다시 한 번 나를 그려달라고 부탁하려 한다.

호크니가 그린 ‘크리스토퍼 이셔우드와 돈 바차디(Christopher Isherwood and Don Bachardy)’, 1968년.

호크니가 그린 ‘크리스토퍼 이셔우드와 돈 바차디(Christopher Isherwood and Don Bachardy)’, 1968년.

셀리아 버트웰(Celia Birtwell)
데이비드는 모든 일에 열정적이다. 그가 뭔가를 시작하면 그건 그가 한 것 중 가장 놀라운 것이 된다. 그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멈춘 적 없다. 그는 이미 20세에 성공했지만 그전까지는 가난했다. 먹을 것을 사기 위해 동료에게 6펜스를 빌려야 했고 그들이 돈을 갚으라고 하지 않길 얼마나 바랐는지 얘기해줬다. 나는 ‘Mr. and Mrs. Clark and Percy’를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특히 그가 오시 클락(셀리아의 남편)의 발을 그리는게 특히 어려웠던 걸 기억한다. 오시의 얼굴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가 그린 오시의 얼굴이 멋지다고 생각한다. 그 드레스를 입었던 기억은 없다. 수가 놓인 파우더 블루의 모로코 젤라바를 입고 포즈를 취했던 기억은 난다. 오시와 내가 케임브리지 가든을 떠나야 했을 때 그리고 재산 압류를 담당하는 집 달리가 왔을 때 그렇지 않았으면 빼앗겼을 옷을 가까스로 챙겼다. 몇 년 후 로프트를 청소할 때까지는 그 드레스가 있는 줄도 몰랐다. 그 옷은 아주 깨끗한 상태로 거기에 있었다. 우리의 우정은 이어졌다 끊어졌다를 반복해왔지만 그는 그 드레스처럼 늘 그곳에 있다. 그의 집은 나의 패브릭(커튼, 소파, 쿠션 등)으로 가득하다. 나는 데이비드가 내 아들의 손을 잡고 걸음마를 가르치던 모습을 기억한다. 지금은 페이스타임으로 대화를 나눈다. 그는 당신을 보며 웃는 걸 좋아한다. 내가 그걸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그는 알고 있다. 그래서 일부러 더 그러는 것 같다. 그는 당신이 매일 웃는다면 영원히 살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의 말을 믿진 않지만 좋은 생각임은 분명하다.

‘Portrait of an Artist(Pool with Two Figures)’- 호크니의 전 연인이었던 피터 슐레진저가 물속에서 수영하는 남자를 지켜보고 있다-는 1972년 작품.

‘Portrait of an Artist(Pool with Two Figures)’-호크니의 전 연인이었던 피터 슐레진저가 물속에서 수영하는 남자를 지켜보고 있다-는 1972년 작품.

이안 맥켈런(Ian McKellen)
데이비드는 자신의 관점으로 모든 걸 명료하게 본다. 그가 잉글랜드에 사는 걸 좋아하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는 반동성애 법 때문이었다. 그가 캘리포니아로 이주했을 때는 그것이 적용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에 편안함을 느끼는 선구자이자 영웅이었고 그것에 대해 어떤 허튼소리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느긋하고 멀리 볼 줄 안다는 면에서 그의 발꿈치도 쫓아가지 못하는 다른 게이 화가들도 있었다. 하긴 그는 요크셔 사람이니까. 요크셔 사람들은 아주 개방적이고 직설적이며 솔직하다. 그도 그런 사람이다. 스톤월(Stonewall, LGBT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자선단체)을 시작하고 자금을 모아야 했을 때 우리는 그에게 연락을 취했다. 스톤월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그는 반쯤은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만큼 분개하기도 했다. 그는 우리에게 꽃 그림 한 점을 주었다. 매우 소중한 돈이었다. 당시 우리는 한 푼이 아쉬웠기 때문이다. 누군가 그것을 수천 파운드 정도의 싼 가격에 사갔다. 데이비드가 그토록 매력적으로 느껴진 이유는 그림물감이 할 수 있는 것을 탐구하기 위해 새로운 방식을 끊임없이 추구했기 때문이다. 그가 새로 알게 된 아이디어가 늘 존재하고, 이는 보통 전시회와 책으로 결실을 맺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데이비드가 늘 현재에 충실한 사람이며 왕년에 잘나가던 노인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 그의 생각과 그림에는 단조로움이 없고 심지어 몇몇 그림은 엄청나게 과장되어 있기도 하다. 처음 그랜드 캐니언을 보았을 때 나는 그가 그 거대한 캔버스를 그렸을 때와 같은 위치에 서 있었다. 실물을 보고 실망했다고 말하진 않겠다. 그러나 그의 그림은 정말 놀랍다. 그의 친구인 조나단 실버가 요크셔의 솔츠 밀에 호크니 자료관을 열었을 때 데이비드는 팩스를 처음 봤다. 그리곤 어느 날 캘리포니아에서 엄청나게 큰 디자인을 해서 그것을 수많은 A4 용지에 나눴다. 거기엔 숫자가 매겨졌다. 그는 그것을 조나단에게 팩스로 보냈다. 조나단은 몇 초 후에 데이비드가 팩스로 보낸 것을 거둬서 관객들 앞에서 정해진 숫자에 맞춰 하나씩 벽에 붙였다. 1시간 후에 완전한 호크니가 나타났다. 위트 있지만 의도된 연극적인 행사였다.

P73-Y

‘The Student: Homage to Picasso’(1973년 에칭(동판화), 모두 120점이 제작되었다)는 크리스토퍼 베일리가 가장 좋아하는 호크니의 작품 중 하나이다. 이 작품은 “수수하고 존경심이 가득하다”고 버버리의 디자이너는 말한다.

어덤 모랄리오글루(Erdem Moralioglu)
나는 늘 서사와 이야기가 담긴 호크니의 작품에 끌렸다. 무슨 일이 막 일어날 듯한 혹은 막 일어난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그런 작품. 내가 늘 매료된 것은 그렇게 찰나의 순간이다. 그건 내가 나의 작품 속에서 탐색하려고 노력해온 것이기도 하다. ‘예술가의 초상(Portrait of an Artist(Pool with Two Figures))’-물속에서 한 사람이 수영을 하고 있고 그 풀 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피터 슐레진저의 모습이 담긴 그림-을 보라. 그는 실제 같은 캘리포니아의 햇살과 함께 한순간을 포착하고 있다. 그것은 두 사람의 관계와 그 관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묘사하고 있다. 나는 약 10년 전부터 사진을 모으기 시작했다. 몇 년 전에 그의 사진 콜라주 중 하나가 뉴욕 경매장에 등장했다. 요크셔의 파운틴스 애비에 서 있는 이안이라는 소년의 사진이었다. 나는 그 작품에 빠졌고 결국 손에 넣었다. 사진 콜라주는 아주 사적으로 느껴진다. 그가 한 장 한 장 붙이기 때문이다. 가장 멋진 건 사진 맨 밑에 호크니의 발이 보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당신은 그의 관점으로 보게 된다. 나는 그것을 내 매장에 걸어뒀다.

“그 그림을 얼마를 주고 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가스 요금을 내느냐 판화를 사느냐를 두고 고민했던 건 기억한다. 그리고 우린 판화를 선택했다”고 폴 스미스는 1970년 아내와 함께 구입한 ‘Pretty Tulips’(1969년)에 대해 말한다.

“그 그림을 얼마를 주고 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가스 요금을 내느냐 판화를 사느냐를 두고 고민했던 건 기억한다. 그리고 우린 판화를 선택했다”고 폴 스미스는 1970년 아내와 함께 구입한 ‘Pretty Tulips’(1969년)에 대해 말한다.

린디, 레이디 더퍼린(Lindy, Lady Dufferin)
세상을 떠난 나의 남편(더퍼린과 에이바의 후작인 셰리든)은 호크니의 첫 후원자 중 한 사람이었다. 나는 1962년에 데이비드를 만났다. 그는 막 왕립예술대학을 졸업한 상태였고 아주 흥미진진한 괴짜였다. 모든 규칙에 저항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작품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졸업 논문 쓰기를 거부했다. 그는 나를 가르치길 좋아한다. 그래서 가끔 그에게 수업을 받는다. 그에게 종이 한 장을 주면 그는 몇 분 안에 당신 앞에 있는 유리컵을 그리거나 그곳에 놓여 있는 펜을 주면 자신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그 종이 위에 펜을 놓을 것이다. 나는 그것이 그의 모든 작업의 뿌리라고 생각한다. 그는 내 초상화를 몇 점 그렸다. 실제로 그가 당신을 그린다면 그는 심각할 정도로 집중할 것이다. 모든 것이 그 안에 있다. 그의 마음, 그의 손 그리고 엄청난 집중력. 그는 담배를 상당히 많이 피우기 때문에 각오해야 한다. 당신은 숨을 쉬기 위해 잠깐 자리를 뜨지만 그런 스타와 함께 있기 때문에 괜찮은 척할지도 모른다. 우리 집에는 ‘A Bigger Splash’가 오랫동안 걸려 있었다. 나는 우리가 그 그림의 첫 주인이었다고 생각한다. 데이비드는 세상을 보는 방식을 바꾸어놓았다. 그때까지 첨벙하는 물보라는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지나가는 것이었다. 수영장과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첨벙하는 물이 아니라 우리에게 관심을 가졌다. 데이비드는 늘 그렇듯 유머러스한 방식으로 철학을 펼쳤다. 모든 것은 덧없이 지나간다는 걸 말이다. 나는 브리들링턴에 그와 머물곤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가 아주 맹렬하고 격하게 작업한다는 걸 알게 됐다. 대작(2012년 왕립 아카데미에서 열린 <A Bigger Picture> 전시회에 걸린 작품)을 작업하고 있을 때 그는 날이 아직 어두운데도 차를 마시도록 모든 사람을 깨웠다. 태양은 당신을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게 그의 삶의 방식이다.

'Ossie Wearing a Fairisle Sweater’(1970) 데이비드 호크니의 뮤즈였던 셀리아 버트웰의 남편 오시 클락 또한 호크니에게 종종 피사체가 되었다.

‘Ossie Wearing a Fairisle Sweater’(1970) 데이비드 호크니의 뮤즈였던 셀리아 버트웰의 남편 오시 클락 또한 호크니에게 종종 피사체가 되었다.

크리스토퍼 베일리(Christopher Bailey)
내가 자란 곳에서 모퉁이를 돌면 데이비드 호크니의 상설 전시관이 있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내 어린 시절의 배경 중 일부였다. 그는 내가 예술, 디자인, 미학의 진가를 알아보기 시작했을 때부터 나에게 영감을 주었다. 우리 둘 다 북부의 뿌리와 요크셔의 아름다운 풍경과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기 때문에 나는 자연스럽게 그에게 친밀감을 느끼고 있다. ‘The Student: Homage to Picasso’는 가장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다. 존경심이 가득 담긴 이 수수한 작품은 한 아티스트에 대한 그의 깊은 존중을 담고 있다. 아무나 흉내 낼 수 없는 개성 있는 스타일, 위트, 지성은 내가 늘 참고하는 부분이다. 무엇보다 호크니의 작품에서 가장 끌리는 점은 모든 터치에 스며든 듯한 생명력과 에너지다. 그의 인물화, 풍경화, 자화상은 모두 각각의 특징이 살아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스타일은 그의 성격을 완벽하게 반영한다. 컬러풀하고, 절충적이고, 약간 미완성이고, 확실히 영국적이다. 자신감 넘치고, 무심하고, 장난스럽게 컬러를 믹스하고 조합하는 그런 방식은 놀라울 정도로 신선하고 고무적이다.

‘A Lawn Being Sprinkled’ (1967)

‘A Lawn Being Sprinkled’ (1967)

폴 스미스(Paul Smith)
내 아내는 왕립예술대학에 다녔다. 그래서 호크니가 졸업할 때 사각모와 가운 대신 골드 라메 재킷을 입고 머리를 금발로 염색해서 사람들을 화나게 했던 걸 기억한다. 우리가 처음 구입한 그의 작품은 ‘Pretty Tulips’라는 판화였다. 랄리크 꽃병에 담긴 편안하게 늘어진 여러 송이의 튤립. 얼마를 주고 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가스 요금을 내느냐 판화를 사느냐를 두고 고민했던 건 기억한다. V&A 뮤지엄에는 남색 핀스트라이프가 들어간 구식 비즈니스맨의 패브릭으로 만들어진 나의 수트가 전시되어있다. 그러나 아주 헐렁한 스타일로 만들어졌고 화이트 즈크화와 화이트 티셔츠와 매치됐다. 우리가 레퍼런스로 사용한 건 호크니의 불손함이었다. 이상한 색깔을 조합하는 그의 방식 말이다. 시내에서 우연히 그를 마주쳤던 기억이 난다. 그는 흥미로운 블루 컬러의 핀스트라이프 수트를 입고 있었고 거기에 청록색 셔츠와 에메랄드 그린 타이를 하고 있었다. 서로 싸우는, 아주 거침없어 보이는 색깔이었다.

‘Hollywood Hills House’ (1980)

‘Hollywood Hills House’ (1980)

피터 블레이크(Peter Blake)
나에겐 두 가지 좌우명이 있다. 하나는 “잘사는 것이 최고의 복수다”이다. 그것은 힘든 시간을 보내며 견뎌온 것과 관계가 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항상 아방가르드를 앞서라”다. 물론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를 실천한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데이비드일 것이다. 그는 늘 그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앞선다. 무엇이 발명되든 먼저 수용하고 정복한다. 최초의 컴퓨터 중 하나인 퀀텔(Quantel)이 세상에 나왔을 때 우리 둘 다 그걸로 테스트를 했다. 나는 사진을 자르고 붙이는 일에 매달렸다. 그리고 사실 훨씬 최근까지는 새로운 기술을 탐색하지 않았다. 그러나 데이비드는 계속 앞으로 나아갔으며, 지금은 아이패드로 작업을 한다. 하지만 나는 그의 초기 드로잉을 사랑한다. 나는 데이비드가 즉석에서 최고의 드로잉을 할 수 있다고 늘 말한다. 그는 자기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을 가볍게 선으로 그려낸다. 그는 여전히 소중한 친구다. 캘리포니아에 있는 그의 비치 하우스에 머물 때 내 딸은 아마 여덟 살이었을 것이다. 그는 우리와 함께 멋진 음악 여행을 했다. 특정 시간에 출발해서 때에 맞춰 음악을 틀었다. 예를 들어 고속도로를 탈 때는 엘가를, 언덕을 오를 때는 바그너를, 그리고 해가 질 때는 아주 감상적인 음악을 트는 식이었다. 내 딸은 그때의 기억을 영원히 잊지 않았다.

빅 리브스(Vic Reeves)
호크니는 늘 사람들의 기대에서 벗어난다. 초창기에 그는 요크셔를 진한 회색으로 그렸다. 다른 사람들의 기호에 맞춘 아이러니한 이미지였다. 그러나 나중에 그는 생기 넘치는 개로비 힐을 그렸다. 그 그림에는 캘리포니아에 있을 법하지만 사실은 요크셔에 있는 멋지고 구불구불한 길이 묘사되어 있다. 그의 구성은 절묘하다. 거의 종교만큼 웅장하다. 당신은 자신이 가진 것,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을 이용해야 한다. 내가 미술대학에 다닐 때 그는 포토 몽타주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큐비즘의 완전한 재해석 같았다. 그는 아이패드를 구입했고 그것은 그의 작업 수단이 되었다. 당신이 늘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놓는다면 어디에 있든 유행에 뒤지지 않을 것이다.

 

※〈데이비드 호크니〉전은 런던에서 2월 9일부터 5월 29일까지 진행된다. Tate.org.u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