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Rules of Fragrance

이미지를 그릴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허하라’던 향수의 세계. 하지만 그 안에도 주류의 ‘맥’은 존재한다. 향의 춘추전국 속 〈보그〉가 가려낸 트렌드 8.

170204_Perfum_10248

Rule 1: Genderless

이른바 ‘감 좀 있다’는 조향사들은 최근 자신의 작업에서 성에 대한 선입견 자체를 배제한다. ‘남녀 누구나’라는 유니섹스도 구시대적이니 이젠 ‘젠더리스’라 부르라는 얘기다. 캘빈 클라인이 작년 공개한 cK2 광고 비주얼을 떠올려보라. 성별에 상관없이 사랑과 우정을 공유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에너지가 느껴지지 않나? 관계의 다양성을 주제로 하는 ‘젠더프리’ 향수에 걸맞은 라이언 맥긴리의 역작이었다. 사실 이런 트렌드는 니치 브랜드에서 더 두드러진다. 조 말론 런던, 바이레도, 르 라보 등의 카운터에서 “여성용인가요?”라고 질문하는 건 시대착오다. 마음에 들면 그냥 지갑을 여시길. 남자, 여자 말고 그냥 인간으로서 당신이 끌리는 대로 따르는 게 가장 트렌디하니까.

Rule 2: Designer Fragrances Done Right

어딘가에서 맡아본 향, 너무 익숙해서 조금은 지겹게 느껴지는 패키지… 한동안 디자이너 브랜드의 향수는 ‘상상력 부족’, ‘기성복에 장식된 미투 액세서리’라 불리며 평가절하되곤 했다(트렌디하지 못한 남자 친구의 출장 선물 같은 느낌이 아닌가). 하지만 이제 선입견을 털어버려도 좋다. 최근 선보인 패션 향수는 런웨이 ‘작품’만큼 숙고 끝에 완성된 것이니까. 알렉산더 맥퀸을 예로 들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사라 버튼의 지휘 아래 첫선을 보인 향수는 재스민 삼박, 튜버로즈, 일랑일랑 같은  까다로운 향을 아주 영리하게 조합했다. 구찌 ‘뱀부’, YSL ‘몽 파리’, 알라이아 ‘블랑쉬’도 한 끗이 다르다. 조금 어렵다고 느껴지는 향조를 대담하게 조합해 이름값을 제대로 해내기 시작한 것이다.

Rule 3: Niche of Niche

향수 애호가의 남다른 취향, 혹은 누구도 자신과 같은 향을 풍기지 못할 거라는 사실에 만족감을 느끼는 향수 반체제주의자들의 선택. 한때 니치 향수는 ‘취향의 특권’처럼 느껴졌다. 물론 니치 향수의 본질 자체는 변함없다. 여전히 그들은 최고급 재료를 사용하고, 제한된 양만 만들며, 모험적 향을 조합하는 도전을 계속하고 있다. 달라진 게 있다면 특권의 폭이 넓어졌다는 사실. 메종 프란시스 커정, 아틀리에 코롱, 오데조 등 최근 장인 정신을 담은 향수 브랜드의 러시가 이어지며 당신의 취향을 저격하는 ‘바로 그 향수’를 만날 확률이 훨씬 높아졌다. 누구나 특별해질 권리가 있기에, 작지만 특별한 니치 시장의 다양화는 두 팔 벌려 환영할 만한 일.

Rule 4: New Roses

‘향수와 장미’란 패션과 칼 라거펠트의 크리에이티브 같은 관계가 아닐까? 본질은 그대로이되, 변화는 계속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저는 늘 장미 향을 좋아했어요. 제가 뿌린 첫 향수도 로즈 워터였죠.” 미국 <보그>의 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그레이스 코딩턴의 장미 사랑은 유명하다. 그녀의 첫 향수, ‘그레이스 바이 그레이스 코딩턴’ 역시 그 중심에 장미가 있다. 대신 뉘앙스가 좀 다르다. 피치 블로섬과 화이트 머스크 노트를 이용해 장미를 훨씬 동시대적 느낌으로 변주했다. 장미의 클래식, 랑콤 ‘트레조’ 역시 ‘라 뉘 트레조’로 변신하며 더 가볍고 상쾌해졌다.

Rule 5: Sex Sells

1990년대 캘빈 클라인 향수의 도발적인 광고를 기억하나? 케이트 모스의 나신 너머로 ‘집착’이라는 향수명이 새겨져 있던, ‘신박’한 비주얼 말이다. 향기와 관능은 수세기 동안 떼려야 뗄 수 없는 협력 관계를 유지해왔고, 향수 브랜드는 최음 효과가 있는 향조를 믹스해 성적 암시가 담긴 이름으로 포장하는 데 선수가 됐다. 최근 선보인 메이크업 아티스트 샬롯 틸버리의 향수도 그렇다. 그녀는 자신의 첫 향수, 센‘ 트 오브 어 드라마’를 “플뢰로틱(Fleurotic)”이라고 표현한다. 여성미 넘치는 플로럴에 깊이 있는 시프레를 더해 에로틱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으니 이보다 적절한 묘사가 있겠나? 이센트릭 몰리큘스는 좀더 노골적이다. 페로몬과 동일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향기 없는 아로마 분자, ‘아이소 E 슈퍼’를 부쩍 많이 사용하고 있으니까.

Rule 6: French Ways

프랑스 여자들의 뷰티 습관은 파면 팔수록 재미있다. 그중 하나가 향수를 사용하는 법. 그들은 아끼는 향수를 방금 감은 촉촉한 머리에 뿌린다. 이렇게 하면 하루 종일 머리카락이 움직일 때마다 향수의 잔향을 흩뿌릴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헤어 전용 향수를 쓰면 가장 좋다. “요즘 사람들은 향수 뿌리는 것으로 일종의 실험을 하는 것 같아요. 굉장히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죠.” 컬트 향수 브랜드 바이레도의 설립자, 벤 고햄의 추천은 목련의 잔향이 아련하게 감도는 ‘모하비 고스트 헤어 퍼퓸’.

Rule 7: It Can be Addictive

향수에 온통 마음을 빼앗기고 그것에 취해 마음이 동하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런 쾌락주의 향수의 계보를 거슬러 오르면 70년대 말 출시됐던 YSL ‘오피엄’이 있다. ‘마약’이란 이름 때문에 출시와 동시에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지만 ‘오피엄’은 아직까지도 많은 여성들에게 끊어낼 수 없는 금단 증상을 선물하고 있다. 쾌락주의 향수의 양대 산맥은 2002년 출시된 디올 ‘어딕트’. 새로운 중독을 원한다면 에디션 드 퍼퓸 프레데릭 말 ‘꼴론 앙델레빌’를 추천한다. ‘사라지지 않는다’는 이름에 걸맞은 최면에 걸리게 될 것이다.

Rule 8: Non Perfumer’s Perfumery

향수를 만든다는 건 일종의 예술 행위로, 조향 대가들을 만나보면 모두 자신이 집착에 가까운 예술혼을 불태우고 있다고 고백한다. 이런 장인의 세계에 정식 조향 교육을 받지 않은 이단아들이 불쑥 등장해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건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그 대표적인 브랜드가 바로 알타이아! 한 부부가 이탈리아의 휴양 도시, 포시타노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것으로, 기자인 남편과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인 아내가 자기 가족의 역사와 여행을 향으로 담아냈다. 바이레도의 설립자 벤 고햄도 그냥 향수가 좋아 업계에 뛰어든 케이스. 스웨덴의 조향 대가 피에르 울프와의 우연한 조우가 그의 향 사랑에 불을 지폈고 청출어람, 지금은 오히려 울프가 고햄의 독특한 미니멀 미학에 열렬한 지지를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