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식탁

쾌락 추구의 최정상에 있는 파인다이닝에 ‘친환경’에 대한 책임이 지워졌다. 먹는 즐거움은 물론 환경도 해치지 않는 파인다이닝은 과연 실현 가능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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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는 인간이 되려면 죽는 수밖에 없다”는 자조적 우스개가 있다. 살기 힘든 현실과 맞물려 꽤 설득력 있게 다가올 때가 있다. 인간이 지구별의 가장 큰 골칫덩어리 같다. <채식의 배신>의 저자 리어 키스는 “지구에 인간이 너무 많다”고 단언한다. 모두를 먹여 살리려니 지구의 환경 등골이 휘어지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대책으로 정관수술을 제안한다.

인간의 모든 움직임이 환경에 영향을 미친다면 맨 꼭대기의 파인다이닝은 어떨까. 쾌락 추구가 본질이니 기본적으로 좋으리라 예상하기가 어렵다. 맛에 신경 쓰느라 환경은 뒷전이었다. 산해진미는 가까운 데서만 나지 않는다. 조공이 괜히 존재했겠는가. 옛날에는 권력이, 요즘은 돈이 식재료나 사람을 움직인다. 도쿄 쓰키지 시장의 해산물이 맨해튼으로 날아들고, 송로버섯 철이면 미식가는 이탈리아 피에몬테로 날아간다. 재배와 사육과 운송과 요리의 전 과정은 화석연료를 태워 이루어지고,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는 오존층을 파괴한다. ‘탄소 발자국(어떤 주체가 얼마나 많은 이산화탄소를 만들어내는지 양으로 표시한 것)’이라 일컫는 개념이다. 탄소 발자국이 클수록 환경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

산해진미의 이합집산인 파인다이닝의 본질이 언제까지나 지속 가능하지 않으리라는 철학이 부상했다. 더 이상 ‘맛있으면 그만’일 수 없다. 파인다이닝도 더 적극적으로 고민하자는 논리다. 몇 년 전, 세계 최고인 토머스 켈러마저 비판을 받았다. 캘리포니아 나파 밸리에서 5,000km 떨어진 메인 주에서 바닷가재를 공수한다. 4,000km 떨어진 피츠버그에서 양을 들여온다. 이런 컨셉이 1999년 획기적인 요리책 <프렌치 런드리>를 낳았다. 셰프와 레스토랑뿐 아니라 생산자를 부각시키는 구성이 참신했다. 하지만 손님의 행복을 우선하는 고전적 철학은 이제 아래 세대 셰프며 저널리스트의 비판 대상이다. 대구며 참치처럼 흔한 어종조차 남획으로 현저하게 감소한 현실에서 무책임하다는 논리다. 환경에 민감한 파인다이닝의 실행은 어떻게 가능할까. 기본 개념은 다품종 다년생 식물과 동물이 공존·공생하는, 작은 독립적 생태계의 구축 및 확장이다. 먹기 위해 무작정 키우지 않는다. 각 농장을 자연의 축소판으로 만들어 모든 동식물이 식재료 이상의 역할을 맡는다. 이를테면 닭이 벌레를 잡아먹고, 분뇨로 거름을 공급한다. 바로 ‘팜 투 테이블(Farm to Table)’의 기본 개념이다. 한마디로 농장에 레스토랑이 딸렸다. 메뉴도 철저하게 자체 확보 가능한 재료 위주로 꾸린다. 지역 및 제철 재료보다 한층 더 강화된 개념이다. 최근 <제3의 식탁>을 국내에 출간한 저자이자 셰프 댄 바버(블루 힐 앳 스톤 반스)가 이끈다. 나파 밸리 등지에서는 레스토랑에서 텃밭을 전문적으로 가꿔 채소의 자체 수급률을 높이는 행보도 유행이다.

팜 투 테이블 수준의 움직임만으로 파인다이닝과 환경의 관계를 대폭 개선할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음식물 쓰레기는 또 다른 문제다. 먹고 남긴 쓰레기만 생각하기 쉽지만 전부가 아니다. 못생기고 상품 가치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버려지는 작물만 엄청난 수준이다. 세계 총생산량의 3분의 1에 이른다. 그래서 댄 바버는 2015년 3월, 버려질 운명의 식재료만 쓰는 팝업 레스토랑 ‘웨이스티드(wastED)’를 3주 동안 운영했다. 쇠기름 초가 식탁을 밝힌다. 주스를 뽑아내고 남은 채소 찌꺼기로 빚은 패티에 비트즙으로 쇠고기처럼 붉게 물들여 묵은 빵에 끼워낸다. 늙은 젖소 고기에 멍든 감자를 으깨어 곁들이고, 버리는 자투리 파스타가 식탁에 버젓이 오른다.

파인다이닝의 궁극적인 존재 의의는 철학에 기반한 요리사의 문제 해결 능력 및 창의력 맛보기다. 따라서 이러한 시도는 시대정신과 맞아떨어지지만 모두가 성공적일 수는 없다. 아니, 창의력이 실패를 막아준다는 표현이 더 적확하겠다. <뉴욕 타임스>의 음식 평론가 피트 웰스의 입을 빌리자면 묵은 빵은 거칠고, 홍어 날갯살은 발라 먹기 어려우며, 악명 높은 ‘고과당 콘시럽’ 옥수수를 먹고 자란 소의 자투리 고기는 맛도 없을뿐더러 행사의 취지에도 들어맞지 않는다. 하지만 전체를 보면 행사는 성공적이었고 댄 바버와 웨이스티드는 2월 24일부터 4월 2일까지 런던에 진출한다.

한국의 사정은 어떤가. 환경친화의 기본적 움직임을 찾아보기는 어렵지 않다. 제철 및 지역 재료의 활용 말이다. 고향의 텃밭 채소를 쓴다거나, 제철 재료를 계약 재배로 확보해 식탁에 올린다. 전국 택배 일일 생활권의 이점을 최대한 활용한다. 가장 주목하는 셰프는 김태윤(7pm, 주반)이다. 개념과 원리를 이해해 펼치는 한국의 제철 재료와 지중해 이탈리아의 중간 지점에서 만난 요리 세계가 흥미롭다. 봄 두릅의 허리에 프로슈토를 살짝 둘렀을 뿐인데 봄의 쌉쌀함과 향긋함이 짭짤하면서 단 지방 위로 넘실거린다. 현재 7pm은 문을 닫았지만 주반에서 같은 개념의 아시아풍 요리를 즐길 수 있다.

그럼 더 적극적인, 웨이스티드 같은 시도는? 당장 거기까지 굳이 갈 필요가 있을까. 제약이나 컨셉에 지나치게 얽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왜 그럴까. 일단 한국에선 아직도 맛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지 않다. 과학에 입각한 조리의 원리를 비롯, 서양 요리의 지식과 정보가 널리 유통되지 않았다. 말하자면 기본이 부족한 상태다. 이른바 ‘배가 부르고 난 뒤’ 돌아보는 차원에서 각광받는 환경 고민 등을 지나치게 앞세우면 부담만 커진다. 일단 기본에 충실했으면 좋겠다.

또 저변이 넓다고 보기 어렵다. 식재료 말이다. 양식은 여전히 운신의 폭이 좁다. 바탕 재료인 버터만 놓고 봐도 쓸 만한 국산이 없다. 맛만 없으면 괜찮은데 싸지도 않다. 이런 현실에 얽매이면 기본인 완성도조차 확보하지 못할 우려가 있다. 또 모든 수입 재료의 탄소 발자국이 무조건 크지 않다. 원산지에서 신경 써 사육해 대량을 들여오면 먹는 즐거움을 해치지 않을 만큼 작아질 수 있다. 하필 양의 해에 본격적으로 마트 등에서 일상의 고기로 대중화된 양고기가 좋은 예다. 비록 영국의 연구 결과지만 자국의 양고기에 비해 호주나 뉴질랜드산의 탄소 발자국이 작다고 한다. 아직은 조금 덜 얽매여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