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소설가의 빛나는 세계

한국문학의 새로운 흐름이 생기고 있다. 2010년 전후로 데뷔하여 30대를 관통하는 여성 작가들 이 독자의 굳건한 지지를 받고 있는 것. ‘내 얘기다’ 싶은 우리 세대의 결핍과 상실을 어루만지는 주역들을 만났다.

물구나무를 서는 에너지_최정화

드레스는 질 샌더(Jil Sander), 슈즈는 헬레나앤크리스티(Helena&Kristie), 반지는 코스(Cos), 귀고리는 빈티지헐리우드(Vintage Hollywood).

드레스는 질 샌더(Jil Sander), 슈즈는 헬레나앤크리스티(Helena&Kristie), 반지는 코스(Cos), 귀고리는 빈티지헐리우드(Vintage Hollywood).

최정화는 장편소설 <없는 사람>에 물구나무 사진을 프로필로 썼다. “제 소설이 명랑하지 않아서 작가 사진 보면서 즐거우시길” 바라서다. <없는 사람>은 문학지 <악스트>에 연재한 ‘도트’를 수정한 소설로, 쌍용자동차 노조원들의 이야기이다. “첫 장편소설로 심리 스릴러를 쓸 줄 알았는데, 그즈음 <이창근의 해고일기>를 읽었어요. 현실과 동떨어진 범죄소설은 쓸 수 없었죠. 문제의식을 잃지 않으면서도 이야기로서 흥미를 탄탄히 갖춘 소설을 쓰고 싶었어요.” <없는 사람>에는 최정화가 전 작품을 통틀어 가장 좋아하는 인물이 있다. 사 측에 맞서 힘든 농성을 이어가는 이자희의 아내 임우경이다. “‘검은 눈두덩이’라는 챕터에 잠깐 나오는 인물이에요. ‘나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너 이해 못하지만 니가 끝까지 싸워서 이 싸움 이기면 그땐 너 이해할게. 그래서 니가 나도 포기하고 애들도 포기했구나. 이렇게 이기려고. 그래서 그랬구나 싶을 거 같애. 근데 너 여기서 그만두면 내가 너무 억울하잖아. 어차피 끝까지 가지도 못하고 그만둘 싸움 때문에 헤어졌다고 생각하면 내가 너무 억울해서. 그러니까 너 그만두지 마. 끝까지 싸워.’ 나 자신을 넘어선 캐릭터였고, 이 대사를 쓰면서 한 단계 성장했어요.” 그녀는 인터뷰나 자료 조사는 따로 하지 않았고, 대부분이 접하는 다큐멘터리와 유튜브 영상 정도만 참고했다. “사람을 만날 때도 직접 묻기보다는 이렇지 않을까, 저렇지 않을까 상상을 해요. 그런 식으로 충분한 시간을 갖고 나서야 그 인물을 쓸 수 있어요. 직접 묻는 것은 타인을 너무 손쉽게 이해하는 방법이죠.” 권여선 작가는 <없는 사람>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개인의 내면에 도사린 불안을 그리는 데 탁월했던 최정화가 이제 사회적 관계에 내재한 불신을 다루는 자리로 옮아갔다.”

대부분의 여성은 최정화의 소설집인 <지극히 내성적인>에 더 공감할 것이다. 건강 보조 식품에 이어 요가와 유기농에 빠지고 천연 재료로 직접 만든 선크림을 발라 백탁 현상으로 하얗게 뜬 얼굴로 환경 단체에 참가하는 여자(‘오가닉 코튼 베이브’), 면접을 보러 온 가정부가 자기 자리를 노린다고 생각하는 주부(‘구두’), 남편보다는 해변의 파라솔과 우아한 자기 모습이 중요한 여자(‘팜비치’). 최정화가 그린 여성에게서 나를 발견하고 깜짝 놀라곤 했다. 그 이야기는 황현경 문학평론가가 말했듯이 “읽는 이의 마음을 쥐었다 놓았다 하는 문장들”로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최정화는 심플한 나무 책상에서 클래식 음악을 틀어놓고 매일 원고지 15매를 쓴다. 시간에 상관없이 정해진 분량을 목표로 삼는다. “무언가 쓰고 싶어지면 바로 시작해요. 쓰기에 큰 부담감을 느끼지 않죠. 대개 작가들은 자기 원고에 대한 평가에 상당히 예민한데 저는 엉망인 초고도 스스럼없이 내밀어요. 초고가 하도 엉망이어서 읽고 싶지 않다는 동료도 있어요.” 본래 그녀는 화가가 되고 싶었다.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부모님께 말하지 못했고, 고 3 때 연필과 노트만 있으면 되는 글쓰기를 시작했다. 대학교 때부터 신춘문예에 번번이 떨어졌고, 단편 ‘팜비치’로 창비신인소설상을 수상하기까지 50편 정도 썼다. 조울증 등을 겪으면서 정신분석학을 공부했고, 그것이 최정화 소설 특유의 세밀한 심리묘사를 도왔다. 그녀의 꿈은 타인에게도 삶의 변화를 일으키는 소설을 쓰는 것이다. 인터뷰가 끝나고 그녀는 브라질의 전통 무술인 카포에이라 수업을 들으러 갔다. “다음 주부터는 판데이루(탬버린을 닮은 브라질 타악기) 레슨을 받아요. 그래픽 노블에도 관심 있어서 제 소설의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그렇게 언젠가는 앙굴렘 황금야수 상도 받고 싶어요.” 작가 중에 이렇게 에너제틱한 사람이 있던가. 다음 책의 프로필 사진은 판데이루나 카포에이라 혹은 그림을 그리는 최정화가 등장할 수도 있겠다.

 

분노와 우울의 승화_김금희

보우 장식 톱은 블락스페이스(bla:k), 팬츠는 노앙(Nohant).

보우 장식 톱은 블락스페이스(bla:k), 팬츠는 노앙(Nohant).

“씁니다. 쉽게 빡쳐요.” 김금희 작가의 트위터 인사말이다. 트위터에는 각종 정치, 사회 뉴스, 날것에 가까운 유머가 혼재한다. 모피를 두른 ‘귀부인 가오나시’ 사진은 나도 저장해두었다. “어떤 평론가가 저를 보더니 ‘어머, 되게 밝으시네요?’ 이러는 거예요. 제가 굉장히 다크할 줄 알았대요.” 그녀의 작품을 얘기할 때 죄책감, 부채감, 모욕감, 상실감이 즐겨 등장하기 때문일 거다. 쉽게 ‘빡치는’ 건? “진짜 그래요. 별거 아닌 거에 히히거리다가 쉽게 열 받아요. 분노와 우울을 극복하는 중에 소설이 나오죠. 이야기 속의 인물을 삶의 고통에서 꺼내려고 고민하다 보면, 제 삶의 길을 찾기도 해요.”

김금희는 이렇게 분노를 승화해 만든 소설로 젊은작가상, 신동엽문학상, 최근엔 2017 현대문학상을 수상하였다. 그녀는 위키피디아에서 현대문학상의 역대 수상자를 보고 놀랐다. “제가 좋아했던 작가들이 한 번씩은 그 격려를 받고 지나갔더라고요. 젊은작가상은 젊은 작가들끼리 함께 받는 상인데, 현대문학상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보라’는 느닷없는 질문을 받는 느낌이었어요.” 수상작 ‘체스의 모든 것’은 1999년 함께 대학을 다닌 남녀가 체스에 얽히면서 시작한다. 김금희의 소설에는 대학 시절이 자주 등장한다. 소설집 <너무 한낮의 연애>의 표제작도 그러하다. 회사에서 변방으로 밀려난 필용이 대학생 때 즐겨 가던 종로의 맥도날드에서 피시버거를 주문하다, 그 시절의 양희를 떠올린다.

김금희도 필용과 양희처럼 종로에서 학원을 다니며 피시버거를 사 먹고, 수업 중에 뛰쳐나가 몇 시간씩 돌아다녔다. 마음이 부대껴서. “사회에 발을 막 디뎠을 때, 그 말랑말랑했던 때가 자꾸 생각나요. 지금 겪는 문제도, 다른 길을 갈 수 있는 힘도 결국은 20대에 있지 않을까. 제가 30대라서 그럴 수도 있겠죠. 바보 같은 짓을 참 많이 했던 시절인데 자꾸 거기에 끌려드네요.” 강지희 문학평론가의 말처럼 김금희의 소설은 “분명 과거로 향해있지만, 거기에는 어떤 노스탤지어도 담겨 있지 않으며”, “무기력이나 냉소에 함몰되지도 않는 성숙한 힘”을 갖고 있다. 직접적이거나 무례하지 않다. 그것이 김금희가 가진 두 번째 힘이라고 생각한다.

첫 번째 힘은 김금희가 그리는 여자들이다. 예를 들면 ‘너무 한낮의 연애’에서 양희 같은. 먹을 수 있는 햄버거가 제한된 가난한 양희. 어느 날 그녀는 햄버거를 씹으면서 필용에게 “나 선배 사랑하는데”라고 쿨하게 말하고, 내일은 사랑하지 않을 수 있다고 한다. 양희에게 집착을 시작한 필용이 “오늘은?”이라고 물으면 “사랑하죠, 오늘도”라고 대답한다. 오늘은 사랑하고, 내일은 어떨지 모름을 받아들이며 온전히 스스로 서는 양희는 아마 독자들이 가장 사랑하는 인물일 것이다. ‘체스의 모든 것’에서 체스의 룰을 자기식대로 해석하며 언제나 당당한 국화도 그렇다.

김금희는 개인적으로 단편 ‘세실리아’의 세실리아를 가장 좋아한다. 정은과 대학 동기들이 질펀한 술자리를 갖던 중 세실리아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별명 ‘엉겅퀸’이 누구에게는 애정 결핍에 시달려 엉기는 여자로, 다른 이에게는 엉덩이 퀸으로 뒤죽박죽 기억되는 친구. 정은이 찾아간 세실리아는 과거의 상처를 망각하는 대신 짊어지며 자기 방식으로 살아남고 있었다. “세실리아의 고통이 제 것이기도 했어요. 저도 친구들과 갑자기 멀어지는 일이 있었죠. 작품을 쓰면서 저와 세실리아의 상처를 극복하는 방법을 찾아 헤맸어요. 상처를 지우거나 사람들과 화해하는 방식이 아니라, 상처를 자양분 삼아 자기가 원하는 예술의 형태로 이뤄내는 걸 선택했어요(극 중 세실리아는 예술가다). 제가 세실리아에 위로받은 것처럼,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에게 힘을 주고 싶어요.”

김금희를 비롯해 2010년 전후로 데뷔한 젊은 소설가들의 작품이 의외로 잘 팔리는 이유도 “젊은 세대의 결핍, 어려움, 고민이 소설이라는 형식에 담겼기 때문일 것”이다. “작년부터 한강 선생님의 영향력도 있지만, 독자들이 신인 작가의 소설집을 찾아주는 이유는 우리 세대가 겪은 문제, 원하는 이야기를 해주기 때문인 거 같아요. 작가보단 독자들이 한국문학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가고 있죠.”

 

박완서를 닮은 따뜻함_최은영

드레스는 유돈초이(Eudon Choi), 귀고리는 코스(Cos).

드레스는 유돈초이(Eudon Choi), 귀고리는 코스(Cos).

처음에 최은영 작가는 인터뷰를 거절했다. “저보다는 다른 작가들에게 기회가 갔으면 좋겠어요.” 그녀가 낸 한 권의 소설집 <쇼코의 미소>는 12쇄를 찍을 만큼 잘 팔린다. “누가 신인 작가의 소설을 살까 했거든요. 그런데 너무 잘되니까 부담스러워요. 저보다 훨씬 잘 쓰시는 분은 운때가 맞지 않아 안 팔리고, 저 같은 사람이 잘되니까요.” 누구의 소설이든 잘 팔리면 좋은 일이다. 최은영은 “머리로는 이해되지만 그래도 제가 너무 과하게 부풀려져요”라고 울먹이며 말했다. 교보문고에서 소설가가 뽑은 2016년 소설 1위가 된 것도 <쇼코의 미소> 판매에 큰 힘이 됐을 거다. 작가가 뽑은 작가라니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글에 자존감이 낮다”는 최은영은 소포모어 징크스를 겪을까봐 걱정했다. “이 책이 나온 지 벌써 반년이니, 얘는 얘대로 살고, 저는 다른 글을 잘 써야 하는데 쉽지 않아요.”

<쇼코의 미소>의 성공은 최은영에게 많은 것을 주었다. 한국어 교사를 그만두고 소설에 집중할 수 있게 됐고, 이런저런 두려움에서도 조금은 자유로워졌다. “첫 번째 책을 내기 전까지는 문학지에서 더 이상 원고를 청탁하지 않을까 봐 무서웠어요. 이젠 다음 책을 낼 수 있다는 확신이 들어서 좋아요.” 최은영은 근 2년간 신춘문예 공모에 계속 떨어졌다. 20대 초반이라면 나았겠지만, 경제적으로도 힘들었던 서른 살의 낙방은 좀 달랐다고. “처음엔 ‘언젠가 아프리카에 갈 거야’ 하듯 막연하게 글이 쓰고 싶었어요. 국문과에 진학해 기자건, 작가건 글만 쓰면 좋겠다 싶었죠. 그러다 소설에 빠져들었고 20대 후반에 와서야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해보자 싶어 도전했죠. 하지만 출품하는 소설마다 심사평에도 오르지 못하니 아예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 시절을 대학원에서 편혜영, 강영숙 선배 작가의 수업을 들으며 이겨냈다. 무엇보다 자신의 업이라는 확신으로 버텼다. “글쓰기가 좌절도 주지만 어쨌든 완성해가는 과정에서 내가 인간으로서 노력하고 있다는 충족감을 줘요.” 최은영은 ‘쇼코의 미소’로 2013년 <작가세계> 신인상에 당선되어 등단했고, 제5회 젊은작가상, 제8회 허균문학작가상을 수상했다. 그녀는 이후에도 열심히 문학지 마감에 맞춰, 하루하루를 꼴딱 새우는 엉덩이 힘으로 글을 썼다. 그렇게 ‘쇼코의 미소’를 비롯한 다른 단편을 엮어 소설집 <쇼코의 미소>를 낼 수 있었다.

최은영의 별명은 박완서 작가다. “얼굴이 무척 닮았대요.” 그녀는 정말 박완서 작가처럼 할머니가 되어도 글을 쓰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얼굴뿐 아니라 글에 흐르는 따뜻함도 닮았다. 서영채 문학평론가는 “순하고 맑은 서사의 힘”이라고 표현한다. “사람들이 힘든 세상에서 상처받지 않으려고 냉소적이 되어가고 있어요. 자신을 보호하고, 방어하려고요. 제가 좋아하는 황정은 작가님이 ‘망했다라고 말하는 게 얼마나 쉬운 일인가’라고 한 적 있어요. 되게 와 닿더라고요. 잘못된 부분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는 너무 쉽게 냉소적이지 않았나. 나의 냉소가 정말 상처받은 사람들에게는 폭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최은영은 ‘자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멸시와 혐오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 편에 서고자 한다. 그녀의 소설에도 상처를 함부로 드러내지도 못하는 작은 존재들이 등장한다. “한국 사회가 물질적으론 발달했지만 아직 전근대적인 부분이 많다고 생각해요. 남자와 여자, 나이 많은 사람과 어린 사람, 더 많이 배운 사람과 못 배운 사람을 나눠서 약한 사람을 괴롭히는 구조이고, 다들 허용하고 있죠. 예를 들어 뭔가를 배우려면 모욕 정도는 당해도 되고, 대학만 잘 갈 수 있으면 체벌은 받아도 되는 거죠. 혐오 범죄가 한두 명의 ‘또라이’들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런 사회에서 중립이라는 말은 가해자의 편에 선다는 말과 마찬가지예요. 저는 반대편에 서서 언어로 싸우고 싶어요.” 그녀의 가치관은 확실했다. 남은 과제는 소설로 비약적으로 잘 구현하는 것. 그녀는 현재 산문집과 두 번째 단편집을 준비 중이다. 작가와 동시대, 동 세대인 한국의 30대 여성들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아무래도 제 나이대를 잘 아니까 관심이 많죠. 한편으로는 할머니, 엄마 세대도 되게 궁금해요. 이런 ‘헬조선’에서 어떻게 사셨을까, 얼마나 고생스러우셨을까.”

 

훼손되지 않는 낙관_정세랑

니트 드레스는 코스(Cos), 셔츠는 유니클로(Uniqlo), 슬리퍼는 H&M.

니트 드레스는 코스(Cos), 셔츠는 유니클로(Uniqlo), 슬리퍼는 H&M.

정세랑만큼 사람 이름을 사랑하는 작가가 있을까. 여섯 권의 장편소설 중 <이만큼 가까이>를 제외하고 제목 혹은 소제목에 사람 이름이 들어가더니 급기야 최근작 <피프티 피플>에서는 50명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한 명씩 이름을 불러주기 때문인지 정세랑의 소설 속 인물들은 실제로 어딘가에 살고 있는 듯 생생하다. 그녀가 빚어낸 캐릭터의 힘이자 소설의 시작점이다. 초능력을 가지고 있다거나 2억 광년의 우주를 횡단해 지구에 왔다고 해도 ‘그렇구나’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진짜 사람 이름을 빌려 써요. 그래야 리얼리티가 생기는 것 같아요. 중요한 인물의 경우는 이름 빌려준 사람의 어떤 면을 조금 넣기도 해요. 평소 사람들 관찰하는 거 좋아하거든요. 전철을 타면 읽고 있는 책이라든가, 통화 내용, 신고 있는 신발 같은 걸 관찰해뒀다가 연결되는 지점끼리 합치곤 해요. ‘이 친구는 이렇게 재미있는 말을 하지’ ‘이 친구는 정말 재미있는 직업을 갖고 있지’ 주변 친구들 얘기도 아껴놨다가 써먹곤 하지요.(웃음)” <피프티 피플>로 50명의 이름을 소진해버린 그녀는 얼마 전 모 대학교 졸업생 동창회 명부를 입수했다. 2010년 장르 문학 계간지 <판타스틱>에 ‘드림, 드림, 드림’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정세랑의 작품을 한두 단어로 요약해 설명하는 일은 쉽지 않다. 장르 문학으로 시작했지만 출판사 편집자로 일한 덕분에 자연스럽게 배어 있는 문학성은 정세랑만의 장르를 만들어냈다. 대중적이지만 문학에서 벗어나지 않고, 이야기를 구성하는 기법은 스릴러나 추리소설에서 차용해오기도 한다. 에피소드 위주의 전개는 몇 달 치 드라마를 한꺼번에 몰아서 보는 듯 느껴지기도 한다. “실제로 <보건교사 안은영>은 드라마 판권이 팔렸어요. 최근에 영상 업계 쪽에서 일하자는 제안을 받기도 하면서 제가 영상에 반쯤 걸친 몸이 아닐까 생각하게 됐어요. 영화나 드라마도 엄청 좋아하니 자연스럽게 시각적인 글을 쓰게 된 것 같아요.”

정세랑은 분명 문학을 종교가 아닌 축소되고 있는 어떤 오락 장르로 보기 시작한 새로운 세대에 속한다. SNS로 도착한 독자들의 요청 사항을 소설에 반영하기도 하는(<보건교사 안은영>의 몇몇 캐릭터는 그렇게 탄생했다) 그녀에게 문학은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견고한 성이 아니다. 내면의 끝없는 성찰에서 소설이 시작되어야 한다고 믿지도 않는다(상상력의 원천을 묻는 질문에 헤헷 웃으며 ‘사람들이 길에 두고 가는 것들’이라는 제목의 사진 폴더를 보여줬다. 일상에서 어긋나는 지점이다). 장르를 편식하지 않은 장르 작가는 자유자재로 몸집을 변형시켜도 본질이 훼손되지
않는 유연한 텍스트를 세상에 내놓았다.

이 모든 새로움에 앞서 우리가 정세랑의 소설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이유는 종국에 보이고야 마는 어떤 희망 같은 것에 있다. <재인, 재욱, 재훈> <보건교사 안은영> <피프티 피플>은 판타지, 추리, SF, 순수문학을 넘나들지만 크레인 사고, 왕따 문제, 싱크홀, 가습기 사고, 이별 살인 등 동시대성을 띤 갈등의 소재가 등장한다. 어딘가 부족하지만 어딘가 매력을 가진 인물들은 사건 사고를 겪으며 문제를 해결해가고 그 과정 속에는 무심한 듯 따뜻한 유머와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긍정의 기운이 있다. 그래서 정세랑의 소설을 읽을 때면 탄산수를 마신 듯 까슬까슬하게 기분이 좋아진다. “쉬운 낙관 말고 어려운 낙관에 대해서 쓰고 싶어요. 모두 힘든 요즘, ‘다 잘될 거야’라고 말하는 건 무책임합니다. 좌절하고 절망하는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되게 친절하고, 멋있었어요. 여러 사람을 이롭게 하는 지점을 발견해나가는, 어렵게 발견하는 낙관이 제가 소설에서 쓰고 싶은 주제예요.” 정세랑은 가벼움에는 가벼움의 미학이 있고, 가벼운 글을 용기 있게 쓰는 사람만의 무거움도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글을 읽고 사람들이 정말 소리 내어 웃길 바란다.

“할머니 소설가가 되고 싶어요. 끝까지 살아남는 작가가 드물어요. 현역에서 작품을 계속 생산하기가 쉽지 않거든요. ‘저 사람은 아직도 우리 얘기를 해줘’라는 말을 듣고 싶어요. 미야베 미유키 같은. 하하.” 정세랑의 요즘 관심사는 하와이다. 어떻게 하면 은퇴 후 하와이에서 살 수 있을까 골몰 중이다. 언젠가 그녀가 내놓을 소설에서는 레인보우 셰이브 아이스 맛이 날 것이다.

 

정교한 불편함_박민정

벨벳 재킷과 팬츠는 딘트(Dint), 귀고리는 빈티지헐리우드(Vintage Hollywood).

벨벳 재킷과 팬츠는 딘트(Dint), 귀고리는 빈티지헐리우드(Vintage Hollywood).

소설집 <유령이 신체를 얻을 때>의 표지는 흰색이지만 그걸 벗겨내면 만화경처럼 요지경인 속내를 드러낸다. 겉과 속의 간극이 커서 책이 품고 있는 비밀을 알게 된 것만 같다. 박민정의 소설은 꼭 책을 닮았다. ‘굿바이 플리즈 리턴’ ‘옛날 옛적 미국에서’ ‘기념일들’ 등 가볍게 손을 뻗어 읽고 싶은 제목을 달고 있고 있지만 끝없이 침잠하는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자신의 아이를 위해 다른 아이를 납치하는 엄마, 교수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다가 보이스 피싱으로 협박하는 학생, 아이를 유산시키기 위해 동생을 보내는 형… 특별한 악인의 등장 없이 인물들은 오늘의 비극을 맞이한다. 1985년생 작가는 청년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인물로 부모, 교수 등 주변 연장자를 내세우고 이는 때로는 불편한 감정을 일으킨다. 불편함의 이유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선택이 아니라 주어지는 환경에서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현상을 꿰뚫고 있는 작품들을 두고 ‘사회 비판적인 소설’이라는 평가가 따라왔지만 작가가 의도한 장치는 아니었다.

박민정이 처음 소설을 쓰기 시작한 건 열일곱 살 때부터다. 백일장에 나간다고 하면 학교 수업을 빠져도 된다기에 계속 문예부에 몸담았단다. “소설에 관심이 많았는데 덕후 취급할까 봐 일반인 코스프레를 했죠.(웃음) 백일장에 나가면 전국에서 아이들이 모였어요. 그 친구들이랑 한국에서는 왜 노벨 문학상이 안 나오는 거야 한탄하면서 술 마시고 그랬어요.(웃음) 문학은 저에게 재미있는 일탈이었어요.” 스물다섯에 ‘생시몽 백작의 사생활’로 등단했고 소설가로서 삶을 놓은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20대 여성 작가라는 소수자적 위치는 작품에도 영향을 미쳤다. 여성의 목소리를 지우거나 피해자와 가해자 구도가 명확한 이야기에서 일부러 가해자 입장을 선택하기도 했다. 글에서 작가의 성별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 시절을 통과하는 과정에 있었기 때문이다.

박민정은 올해 두 권의 책을 세상에 내놓을 예정이다. 단편 ‘행복의 과학’이 문지문학상대상으로 선정되었고, 두 번째 소설집을 준비하고 있다. ‘행복의 과학’은 출생의 비밀을 가지고 있는 출판 편집자가 ‘행복의 과학교’라는 일본 신흥 종교의 책을 편집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행복의 과학교는 실제로 존재하는 종교이고 박민정은 <소년탐정 김전일>의 작가가 신도임을 알게 되면서 소설을 구상하게 됐다. 일베를 보면서 역사 공부를 한다는 고등학생들로부터 충격을 받은 경험도 한몫했다. 작품에는 왜곡된 역사 인식, 소수자에 대한 혐오, 탈민족주의 등이 읽힌다. 연재도 시작했다. 문학 실험 공간 ‘문학3’에 매주 ‘행복의 과학’ 프리퀄이자 외전 격인 ‘A코에게 보낸 유서’를 올린다. 뒷이야기가 궁금하다는 피드백을 듣고 자신의 소설을 인용하는 방식으로 실험을 시작했다. “순수문학 문예지에서 첫 시도일 거예요. 청탁이나 연재는 전부 혹은 절반 정도 써놓은 상태에서 시작하거든요. 저는 매주 백지에서 시작해요. 부담스럽지만 재미있어요.”

순수문학 안에서도 비주류라고 작가는 웃었지만 정교하게 짜인 불편한 장치는 낯선 세계로의 여행에 효과적이다. 삶에는 오한이 들 정도로 불편한 순간이 존재한다. 소설 외에 박민정의 관심사는 역사다. “‘역덕’이에요. 하지만 순서대로 공부하진 않아요. 꽂히는 부분만 서핑하듯 파편적으로 공부해요.” 고등학교에서 오랫동안 창작 수업도 해오고 있다는 그녀는 예술가로서 자아보다는 사회인의 자아가 조금 더 강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시민의 자아를 가지고 살면서 조금 더 날카로운 시선을 갖고 과연 예술이 무엇인지 외부자의 시선으로 좀더 고민할 수 있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투덜거림의 혁명_이수진

트렌치 코트는 라코스테 컬렉션(Lacoste Collection), 셔츠는 유돈초이(Eudon Choi), 팬츠와 슬리퍼는 코스(Cos).

트렌치 코트는 라코스테 컬렉션(Lacoste Collection), 셔츠는 유돈초이(Eudon Choi), 팬츠와 슬리퍼는 코스(Cos).

소설 <취향입니다 존중해주시죠>가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 트렌드에 편승한 책이 아닐까 의심했다. 표지에 올라가 있는 새침한 고양이 사진이 의심을 키웠다. 남다른 취향을 과시하는 그저 그런 소설일 것으로 생각하며 심드렁하게 펼쳐 본 책은 오히려 그 반대였다. 고양이는 취향이 다른 사람들을 배타적으로 소외시키는 ‘세련된’ 사람들의 상징이었고, 이수진은 취향이란 그럴듯한 이름 아래 누구나 폭력의 가해자가 될 수 있음을 말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누구도 ‘사실 나는 평범한데 세련된 취향을 가진 사람이 부러워서 안달복달하며 따라 해봤지만 실패했다’는 얘기를 드러내놓고 한 적이 없었다. 이는 몸무게나 과거 사진보다도 감추고 싶은 내밀한 창피함의 영역이고, 이를 이야기로 풀어낸 작가는 더욱 희귀했다. 사소해 보이지만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심각한 문제. 전형적인 오욕 칠정과 다른 영역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건 젊은 소설가의 몫이라는 점에서 그녀는 충분히 새로웠다. 스물셋에 등단한 젊은 소설가가 낄낄거리고 찌푸리기도 하고 눈물도 흘리며 창조해낸 세계는 우리 세계에 접점을 남겼다. 원색 같은 캐릭터, 랩처럼 리듬감 있게 읽히는 익살맞은 문장, 결말을 향해 제대로 달려가는 패기를 확인한 문학계는 이 입심 좋은 신인류에게 중앙장편문학상을 안겼다.

지난 9월 출판된 <머리 위를 조심해>는 그간 발표한 여덟 편의 단편을 모은 소설집이다. 등단작 ‘원초적 취미’부터 최근작 ‘대단히 멋진 꿈’까지 7년에 걸쳐 발표한 작품이 담겼는데, <취향입니다 존중해주시죠>보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짓이긴 듯 무겁다. 공통점이라면 정서적 소외자들이 등장한다는 점. 아이를 잃고 별거 중인 여자, 실직 당한 불면증 환자 등 우리 사회에서 ‘안정적’ 범주에 들지 못한 인물들로 가득하다. “저는 항상 제가 비주류라고 느껴요. 여고를 나왔는데 키가 크다 보니 항상 눈에 띄었고(그녀의 키는 179cm다) 보통 여자애들 집단에 속하지 못했죠. <무등일보>로 등단을 해서인지 문단에도 속하지 못한 느낌을 받아요. 이방인, 경계인 같은 느낌을 받는 사람들에 대해 쓰고 싶어요. 소재로서뿐만 아니라 그들이 왜 그런 행동을 하게 됐는지에 대해서요. 정신과 의사인 언니의 영향도받은 것 같아요.”

그녀의 단편은 인물을 데리고 극단까지 끝까지 몰고 간다. 나이 들고 뚱뚱한 여자라든가, 똥이 마려울 때 ‘변의’라든가 묘사가 징글징글할 정도로 적나라하다. 너무 생생해서 때로는 온몸이 찡그려질 정도다. “고등학교 때까지 그림을 그린 경험이 영향을 준 것 같아요. 상황을 서술하고 묘사를 덧붙이는 게 아니라 그림을 그리듯 묘사를 하게 되거든요. 지금도 그림은 계속 그리고 있습니다. 단편 ‘벽장’에 실린 그림도 제가 그렸어요.” 이수진이 슬쩍 보여준 휴대폰 속 유화 그림에도, ‘벽장’의 일러스트에도 미화는 없었다. 쉽게 드러내기 힘든 인간의 욕구가 불쑥불쑥 엿보일 뿐이었다.

페이지 넘기기가 고통스럽다, 책을 읽고 게워냈다 등과 같은 리뷰에도 태연하다. “소설가로서는 꿈만 같은 이야기예요. 텍스트로 일상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오. 소설을 통해 한 사람이 가진 세계에 균열이 생기는 느낌이 들었으면 좋겠어요. 뭔가 퍽 하고 맞은 듯한 느낌 있잖아요. 폭력적이고 자기 파괴적인 글을 좋아하기도 하고요.” 자극적인 소재를 일부러 사용하는 건 아니다. 메시지 전달을 위해 자기 분열적인 얘길 하다 보니 결과로 자학, 살인, 자살이 일어나는 것일 뿐. 현실이더라도 이토록 부정적인 이야기를 굳이 마주해야 할까. “외면한다고 없어지는 게 아니거든요. 다들 잘 감추고 살지만 이런 상황을 포착하는 데 흥미를 느껴요. 전자 발찌를 차는 사람과 위아래 층에 산다고 상상해본 작품이 ‘전발씨’예요. 사소한 오해로 파국으로 향하는 상황을 그려보고 싶었죠. 사람들 사이의 문제는 오해와 망상에서 시작되잖아요.”

심연을 건드리는 일은 쉽지 않다. 소설을 마칠 때마다 이수진은 앓아눕는다고 했다. “독자들이 카타르시스를 느낄 것이라고 생각하며 쏟아내지만 결국 비주류와 세상에 대한 분노는 폭동이 일어나지 않는 한 항상 그 자리에 있다고 생각해요. 이야기 안에서 인물을 몰아붙이고 나면 굉장히 아파요. 애정이 있으니까요.”

지금까지 이수진의 소설에는 여성 화자가 없었다. 무성이나 남성 화자들이 여성을 깔보고 성적 대상으로 보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이수진 스스로 여성에 대한 인정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최근 그녀는 문단 내 성폭력 문제에 관심을 가지며 이런 여자도, 저런 여자도 여자임을 인정하게 되었고, 최근 두편의 소설에 내리 여자 주인공을 등장시켰다. “기점에 온 것 같아요. 이제 여자들에게 약간 소속감도 느끼고. 굉장히 행복합니다.”

소설 쓰는 시간 외에는 반려견과 놀거나 유화를 그리거나 휴대폰 게임을 한다는 이수진은 글 쓰는 걸 업으로 하는 사람이라는 담백한 직업관을 가지고 있다. “예전에는 전집을 갖는 작가가 되고 싶었는데 요즘은 연표를 적을 수 있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언제 태어났고 언제 죽었다는 얘기는 죽을 때까지 썼다는 말이잖아요. 꾸준히 쓰고 싶어요. 그러려면 일단 빨리 ‘투잡’을 뛰어야겠네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