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Sex and Mode

2017.03.16

by VOGUE

    Sex and Mode

    아무리 섹스가 중요하다고 해도, 어쩌면 우리는 ‘섹스 하는 여자’에 대한 환상과 강박을 갖고 있었던 건 아닐까? 미혼과 기혼 에디터가 ‘요즘 섹스’를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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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그만 포기할게

    ‘당당한 섹스’는 타임리스 아이템이지만, 철 지난 유행처럼 지루하게 들린다. 수년간 여기저기서 성적 자기 결정권, 이기적 섹스를 외쳤다. 수동적인 섹스가 아닌 자기의 욕망을 당당하게 얘기하는 주체적인 섹스. <이기적 섹스>의 저자 은하선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1년 사이 5쇄를 찍었다. 1쇄만 나갈 줄 알았는데…”

    매거진 <뉴요커>에는 애인이 아닌 사람과의 성관계를 고백하는 사이트 ‘캐주얼 섹스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뉴욕대 심리학 교수 브란갈로바의 인터뷰가 실렸다. 그녀는 자신의 연구 사례를 모으는 김에 “캐주얼 섹스에 느끼는 수치심을 없애는 것이 프로젝트의 목적”이라고 하였다. 한동안 패션지에는 침대에서 어떻게 당당해질지 무용담에 가까운 ‘How To’ 기사로 넘쳐났다. 이제 편집부에서 그런 식의 기획은 채택하지 않는다. 말했듯이 철 지난 소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섹스는 매력적인 주제여서 수만 가지 연구와 기사가 쏟아진다. 일주일에 네 번 하는 커플이 행복하다, 아니다 한 번이다, 지속적인 섹스는 1년에 2억원 가치의 행복을 준다 등 결과는 뒤죽박죽이고, 사실 더 알고 싶지도 않다. 실험실에서 섹스를 한 커플의 통계가 제대로 집계될 리도 없지 않나.

    한국에 사는 30대 중반인 내 친구들을 표본 집단으로 했을 때 뚜렷한 흐름이 있다. 기혼자는 결혼 기간과 관계없이 섹스리스였다. 신혼 석달 차 친구는 결혼 전까지는 짝짓기 시즌의 동물처럼 살았는데 마법처럼 잠만 잔다고 했다. 최근 1년간 성관계 횟수가 월 1회 이하를 섹스리스라 할 때, 부부의 36%가 섹스리스라 한다. 해외 논문에서 발표된 세계 섹스리스 부부 비율은 20%로, 한국은 일본에 이어 세계 2위였다(2015년 강동우 성의학 연구소가 1,09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 친구가 병원에서 자궁암 검사를 하다 “당분간 성관계는 자제하셔야 합니다. 다행히 미혼이시네요”라는 소리를 들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나의 친구들은 반발했다. “‘다행히 기혼이시네요’가 맞는 말 아니야?”

    그렇다면 30대 중반 미혼인 나의 섹스는? 피트니스에 심취하여 잠시나마 복근이 있던 시절이 있었다. 여성 상위에서 복부가 흔들리지 않는 꿈같은 시절. 그때는 ‘몸매 부심’으로 왕성한 섹스 라이프를 즐겼다. 하지만 침대에서 “내가 피트니스를 좀 하는데”라며 복근이 걸어온 길에 대해 얘기하곤 했다. 관계 중에 “강아지 밥 줘야 한다”며 일어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나와 상대 없이 복근만 섹스하던 시절.

    운동을 쉬면서 체중이 불어나기도 했지만, 점점 귀찮아지면서 섹스를 멀리하게 됐다. 더 이상 시간과 비용을 침대에 쏟고 싶지 않았다. 하면 할수록 피부가 거칠어지는 제모를 해야 하고, 속옷을 신경 써야 하고, 머리도 감아야 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또 감아야 하는데! 남녀가 섹스에 들이는 비용에 관한 기사를 본 적 있다. 와인을 곁들인 멋진 디너와 모텔비로 30여만원을 지불한 남자, 예쁜 속옷, 분홍색 유두를 위한 크림, 퍼스널 트레이너와의 급격한 운동, 향수 등 예상대로 여성도 만만치 않다. ‘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마음에서 자위에 만족하는 친구도 있다.

    나는 다시 섹스를 한다. 닉 혼비는 소설 <하이 피델리티>에서 여자와의 동거를 “낡고 초라한 막스앤스펜서 속옷이 온 집 안 라디에이터 위에 출몰하는 것”이라고 묘사한다. “속옷처럼 내게 참담한 실망을 안겨준 것도 없다. 여자들도 우리와 똑같다. 제일 좋은 속옷은 누군가와 잠자리를 하게 될 때를 대비해 아껴둔다. 그걸 알고 어찌나 충격을 받았는지… 어른이 되어 영원토록 이국적 란제리에 둘러싸여 지내리라 생각했던 소년들의 외설적인 꿈이여… 아멘.” 소년들의 꿈 따위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포기함으로써 섹스의 자유를 얻었다. 제모를 하지 않는다. 100% 코튼 팬티를 입는다(히프라인을 따라 흐물거린다), 배가 출렁거려도 좋다, 예의상 이는 닦지만 머리까지 감진 않는다. 덕분에 사회생활에 쓰고 남은 에너지를 침대에서 쓸 수 있었다. 에너지의 총량은 정해져 있으니까.

    생각해보니 포기했다기보다는 섹스 라이프의 지뢰를 걷어낸 셈이다. 침대에서 속옷(지뢰)보다 ‘우리’가 주인공인 시간. 그의 말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사랑한다, 나랑아.” 성욕은 여기에서 더 강하게 일어났다.

    나를 만져줘

    길티 플레저처럼 나만의 은밀한 취향이 있다. 나는 헤어 디자이너에게 내 머리를 맡기는 순간을 ‘지나치게’ 좋아한다. 변신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 아니라 그냥 누군가가 내 머리카락을 만지는 그 느낌이 좋아서다. 내 머리를 단호하게 손질할 때의 자신감이 좋고, 머리통을 조심스럽게 들었다 놨다 샴푸할 때의 섬세함이 좋으며, 살살 말려줄 때는 잠이 올 지경이다. 이런 내 상태를 알게 된 건 한 대학 선배를 통해서였다. 그는 걸핏하면 내 머리를 쓰다듬곤 했다. 그건 연인이 아니라 오히려 말썽꾸러기 막냇동생을 대하는 느낌이었다. 우리는 지금도 종종 연락을 주고받지만 ‘당신이 내 머리를 만질 때 기분이 좋았다’고 고백하진 못했다. 나는 그와 자는 사이가 아니었다.

    터치에 대한 얘기는 자칫하면 ‘큰일 날 소리’가 된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만진다’의 사회적, 성적 함의는 매우 세다. 그간 좋지 않은 예를 너무 많이 보아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자 아이들은 서너 살 때부터 교육을 받는다. “낯선 사람이 몸을 만지면 ‘싫어요!’라고 외치렴.” 부모들은 걸음마와 함께 아들을 가르친다. “물건이든, 사람이든, 무엇이든 절대 함부로 만져선 안된단다.” 손 달린 동물이 할 수 있는 본능적인 행위는 엄격한 자기 검열이 필요한 위험한 행동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영국 <보그> 1월호의 칼럼 ‘Touch Sensitive’에 등장하는 경험은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나의 하숙집 주인은 영어를 전혀 못했고, 내 아버지의 프랑스어 실력은 초보 수준이었다. 그들은 급속히 친해졌다. 불현듯 내 눈에 들어온 건 아버지가 이해할 수 없는 문장을 더듬거리며 그녀의 팔을 만지는 방식이었다. 나는 그녀가 아버지의 손을 내려다본 다음 그의 미소 짓는 얼굴을 기쁘게 올려다보던 걸 기억한다. 그리고 아버지가 아주 가벼운 터치로 그녀의 신뢰를 얻는 방법을 보았다.” 분명히 말해두겠는데, 이건 아버지가 바람난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이는 생면부지의 남녀가 표현할 수 있는 신뢰조차 에로틱할 수도 있음을 증명한다.

    터치의 양가성은 터치를 갈구하는 성향을 더욱 강렬하게 만든다. 최근 해외의 연구를 보면 서빙하는 동안 ‘가벼운 터치’를 하는 웨이터들이 더 많은 팁을 받는다는 결과도 나와 있다. 어떤 친구는 공항의 보안요원에게 몸수색을 당하는 것이 일종의 ‘미니 마사지’처럼 느껴진다고 은밀하게 고백했다. 수치심에 가까운 이 논란 많은 행위가 누군가에게 쾌락이 될 수 있다는 건 그녀가 사회의식 제로인 인간이어서가 아니라 감각이란 그만큼 내밀하다는 얘기일 것이다.

    <뉴욕 타임스>는 최근 신종 직업에 대한 기사를 실었다. 브리아나 퀴자다는 낮에는 어퍼 이스트 사이드의 채식 레스토랑에서 매니저로 일하고, 밤에는 전문 ‘커들러(Cuddler)’로 일한다. ‘꼭 안아주는 사람’을 의미하는 커들러는 ‘프리허그’의 본격화된 형태다. 80달러를 내면 유니언 스퀘어 근처, 그녀의 공간에서 만날 수 있다. 그 방법은 손을 잡아주는 것에서부터 눈을 마주 보거나 자기 무릎에 머리를 눕히는 것까지 다양하다. 효과가 있다면 뭐든 한다. 다만 그 전에 고객들은 어떤 종류의 성적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적힌 서류에 반드시 서명해야 한다.

    소싯적의 내가 가장 좋아한 순간은 남편이 드라이어로 내 젖은 머리를 말려줄 때였다. 잠이 안 올 때 남편의 겨드랑이에 머리를 묻고 머리카락을 그에게 맡겼다. 섹스로 연결되는 전희의 일부일 때도 있었고, 담담한 애정 표시로 끝날 때도 있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나는 터치를 경험하는 순간, 남편의 의지나 욕구와는 상관없이 섹스만큼 충만한 기분에 섹스 따위는 잊어버릴 때가 더 많았다. 프로이트는 전희는 성교 자체를 배제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경험이라고 했는데, 내게는 터치가 전희나 섹스를 대체할 수 있는 행위였다. 결혼 10년째인 우리는 조금 변했다. 섹스는 할지언정 머리를 말려주지는 않는다.

    자유분방한 섹스 라이프를 즐기며 사는 한 후배는 내 얼굴이 까칠할 때면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다. “선배, 요즘 섹스 안 하고 살지?”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부부 중 절반은 섹스리스라니, 설사 그렇다 해도 이상할 게 없겠다. 내 대답은 이렇다. “터치가 좋아. 연애를 하고 싶어.” 사실 남편의 심혈관과 전립선 건강을 위해서라도 섹스는 꼭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연애나 신혼 때와는 같은 종류의 섹스를 할 수도 없고, 원하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섹스가 결혼 생활에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지 지루한 이론을 늘어놓는 기사는 섹스에 대한 다른 취향과 믿음을 가진 이들에게 죄책감이나 피해 의식만 안길 뿐이다.

    영화 <넘버 3>에서 랭보라는 시인은 동네 아줌마들을 홀리고 다닌다. 섹스를 잘해서가 아니라 시를 잘 썼기 때문이다. 낯선 이의 손끝만 닿아도 소스라치게 놀라며 수줍어 어쩔 줄 모르는 아줌마들은 주책맞은 캐릭터로 자주 희화화되곤 했다. 20대 땐 나도 비웃었다. 섹스 라이프도 나이와 함께 변화한다는 것을, 섹스에 대한 생각도, 철학도, 쾌감의 지점도, 정도도, 방식도 달라지지만 이것이 ‘기능 저하’가 아니라 새로운 차원의 쾌감임을, 그땐 몰랐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탈적인 존재들입니다. 그런데도 ‘정상적인’ 관계에 과도하고 왜곡된 이상향을 설정하고 그에 집착합니다.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섹스의 ‘이상함’에 대해 순순히 받아들이자는 것입니다. 유머 감각과 용기를 가지고서 말입니다. 그런 시도는 솔직함과 공감대 형성으로 시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알랭 드 보통은 <인생학교>에서 섹스 라이프에 정답이 없음을 강조했다.

    며칠 전, 남편과 다투었다. ‘정 선생’이라 불릴 만큼 점잖은 남편은 내 무심함에 불만을 늘어놓았다. “내가 많은 걸 바라나? 등 한 번 쓸어주면 될 일이잖아.” 내가 에스테틱과 헤어 숍에서 ‘터치’를 구입하는 동안, 정작 이 남자를 덜 만졌구나 싶었다. 그것이 진짜 다독여달라는 것인지, 그 이상인지 아직도 판단이 안 선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나는 그의 등을 쓸어주고, 그는 나의 머리를 말려주는 거라는 것 정도는 안다. 샤르도네 와인은 있어도 좋고, 없어도 그만이다.

    에디터
    김나랑('이제 그만 포기할게'), 윤혜정('나를 만져줘')
    포토그래퍼
    PAOLO RAE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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