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istic Detox

외식이 곧 일상이 된 요즘 천연 향수 제작자 홍윤경은 5년째 외식을 멀리하는 삶을 살고 있다. 흐트러진 몸과 마음의 균형을 자연주의 식습관으로 바로잡은 그녀의 브라보 디톡스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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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 난 미술사를 전공하고 세계적 수준의 갤러리에서 미술 시장을 움직이는 사람들과 함께 일했다. 누구보다 밝고 부지런했으며 병원 신세 한번 지지 않았을 만큼 건강했다. 더 바랄 것 없이 완벽하던 삶은 아버지의 사업 실패를 기점으로 도미노처럼 무너졌다. 가정환경이 어려워지면서 업무적 스트레스는 더해졌고 어느 날 온몸에 마비가 와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하루 아침에 180도로 바뀌어버린 처지를 받아들이지도, 건강을 회복할 여유도 없이 다급하게 시작한 가족 사업이 게스트하우스 ‘수토메’. 하지만 심신이 온전치 않은 상태에서 사람을 대하는 일은 녹록지 않았다. 현실은 집을 빼앗기고 쫓겨나 제대로 쉴 곳이 없지만 업무적으로 편안함을 제공해야 하는 사업의 특수성 때문이기도 했고, 구구절절 사연을 늘어놓지 않는 성격 탓이기도 했다. 보이는 모습과 현실 사이의 간극이 큰 삶은 나를 결국 숨 쉬는 것조차 하고 싶지 않은 상태로까지 내몰았다. 그렇게 벼랑 끝에 간신히 매달린 상태였을 무렵 가장 먼저 나의 손을 잡아 끌어 올려준 사람은 조용히 낙향하신 아버지였다. 아버진 한동안 아무 생각 말고 가만히 쉬라며 나를 평화로운 시골 마을로 인도했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5년 전 한여름의 일이다.

녹음이 우거진 논밭으로 나가면 생명력 넘치는 풀벌레와 새들의 노랫소리, 그리고 바람결에 은근한 춤을 추는 나뭇잎 소리로 가득한 숲이 오직 나를 품어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았다. 작은 텃밭을 거닐며 매 끼니 준비에 필요한 만큼의 채소를 따와 차린 밥상은 특별한 양념 없이도 향기로웠고 그 치유의 기운은 새로운 삶을 꾸려가는 데에 가장 강력한 토양이 되어주었다. 그날 이후로 아버지가 키워 보내주신 곡식과 채소 본연의 향취를 살려 요리하는 일상이 내게는 영감이자 절대적인 안식이 되었다. 식습관에 따른 몸의 변화는 놀라웠다. 신선한 제철 음식을 섭취하면서 뿌옇던 눈이 맑아지며 두통이 사라졌고, 하루 종일 집에 머물러도 전혀 갑갑하지 않았다. 식습관이 달라지자 삶을 마주하는 시선 또한 달라졌다. 두 번째 변화는 정리 정돈이다. 화려하던 시절의 유물인 고가의 수트와 하이힐을 미련 없이 처분하고 여행 가방 두어 개로 충분할 만큼 살림을 간소화했다. 세 번째 변화는 생활 속 운동이다. 침실에서 작업 공간으로 가던 몇 걸음 남짓의 동선을 ‘출근길’이라 부르며 매일 아침 단정한 차림으로 걸었고, 크고 작은 집안일에 ‘마음을 씻는 의식’과 같은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연회비만 수백만 원에 달하는 고급 헬스클럽 대신 생활 속에서 몸을 필요 이상으로 편하게 하는 많은 장치를 멀리했고, 걸을 수 있는 거리 안에서 생활의 모든 것을 해결하며 틈나는 대로 걸었다. 마지막 변화는 화장품이다. 허황된 광고로 소비자를 현혹하는 독소 가득한 화장품 대신 유기농 오일과 플로럴 워터, 글리세린처럼 피부 손질에 반드시 필요한 원료만으로 화장대를 채웠다.

인간의 존엄은 일상에서 크고 작은 행복을 찾고 이를 주체적으로 지킬 수 있을 때 가장 빛난다. 물론 이 최소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선 연습이 필요하다. 오늘부터 내 것이 아닌 것들을 욕망하는 마음에 과감히 작별을 고하고 손발을 더 수고롭게 하며 내 손으로 직접 요리해 먹는 즐거움을 일상에 들여보자. 이런 크고 작은 습관이 쌓이다 보면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찌뿌드드한 몸이 깃털처럼 가벼워지고 더부룩한 속이 편안해지는 기적을 경험할 수 있다.

Healing Recipe

BREAKFAST

매일 아침 독소를 제거하고 몸을 따뜻하게 하는 기운을 가진 식재료로 요리한다.

강황을 곁들인 진저 밀크와 계절 과일
고트 밀크나 아몬드 밀크에 생강을 썰어 넣거나 가루를 넣어 데운다(가루를 사용했을 때 생강 특유의 향기는 덜하지만 몸에 훨씬 잘 흡수된다). 기호에 맞게 메이플 시럽을 넣고 강황 가루를 적당량 풀어 저어준 뒤 계절 과일과 곁들여 먹는다.

다시마 현미밥과 된장국
밤새 불려놓은 현미에 다시마를 넣어 밥을 짓는다. 쑥갓 등 각종 채소, 버섯, 양파, 두부를 넣고 된장국을 끓이면 간단한 밥상 차림 완료. 마실 물은 생수 대신 구수한 옥수수수염차 추천.

 

LUNCH

점심 요리에 손이 가장 많이 가는 편. 패턴은 단순하지만 무엇을 먹을지 가장 많이 고민한다.

계절 채소와 견과류를 얹은 유기농 파스타
파스타 면을 삶아 저민 마늘과 함께 올리브유로 볶은 후 미리 손질해둔 채소와 견과류를 넣어 버무린다. 기호에 따라 통후추나 치즈 등을 곁들인다.

두부구이와 그린 스무디
두부를 썰어 기름을 두른 후 오븐이나 팬에 구워 소금과 후추, 사과식초를 약간 곁들여 스무디와 함께 먹는다. 코코넛 워터 1.5컵, 바나나 한 개, 시금치 혹은 케일 한 줌, 사과 하나를 갈아 마시는 것을 가장 좋아하는데 네롤리 워터 한 컵에 사과 하나를 갈아 마시는 레시피도 강력 추천.

 

DINNER

저녁은 아침처럼 최대한 간단히. 가끔 와인이나 사케 반 잔을 곁들이기도 한다.

계절 과일 구이와 고구마 한 개
다진 견과류와 말린 과일에 시나몬 파우더를 가볍게 뿌려 메이플 시럽에 버무려 소스를 만든다. 계절 과일을 잘라 프라이팬에 가볍게 익힌 뒤 소스를 얹어 찐 고구마와 함께 먹는다.

단호박죽과 건포도 잣 시금치 무침
찐 단호박에 물을 붓고 찹쌀가루를 풀어 끓인 후 핸드 블렌더로 갈아 소금으로 간을 한다. 시금치를 끓는 물에 가볍게 데친 후 물기를 빼고 바닷소금으로 가볍게 간을 한 뒤 올리브유에 버무린다. 드레싱으로 건포도와 잣을 뿌려 먹는데 화이트 와인과 굉장히 잘 어울리는 식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