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가가 그리는 여성 서사

알콩달콩한 ‘생활 웹툰’이 아니다. 한국에 사는 여성이라면 공감하는 이야기 혹은 불편한 이야기를 그려냈다. 문학작품이라 불러도 좋다. 가벼움 속에 서사를 품은 여성 만화가 4인.

 

‘나쁜’ 이야기_앙꼬

지난 1월, 세계적인 앙굴렘국제만화축제에서 가 한국 만화 최초로 ‘새로운 발견상’을 수상했다. 열여섯 살 소녀가 비행을 일삼는 ‘나쁜 친구’를 만나는,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다. 2003년 웹툰 로 데뷔해   등을 펴냈다.

지난 1월, 세계적인 앙굴렘국제만화축제에서 <나쁜 친구>가 한국 만화 최초로 ‘새로운 발견상’을 수상했다. 열여섯 살 소녀가 비행을 일삼는 ‘나쁜 친구’를 만나는,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다. 2003년 웹툰 <앙꼬의 그림일기>로 데뷔해 <열아홉> <삼십 살> 등을 펴냈다.

한국 만화의 다양성을 위해 꼭 필요한 작가다. 당신은 누구인가?
‘만화 같은 거’ 그리는 사람.내가 만화가인지 잘 모르겠다. 다른 만화가를 만나면 정말 만화가 같기 때문이다. 작업 방식이나 생활이 그들과 다르다. 가끔 내가 다른 직업을 가진 거 같다. 그게 뭔지 모르겠지만.

이번 앙굴렘국제만화축제 수상이 만화계에 어떤 영향을 주길 바라나?
“이런 만화도 있다”는 걸 대중에게 알리면 좋겠다. 상을 받기 전에 내 만화를 읽은 분을 만나면 어쩌다 그랬을까 궁금했다. 나도 만화를 본격적으로 그린 뒤에야 이런 작품을 추구하는 작가가 많음을 알게 됐다.

수상작인 <나쁜 친구>는 자전적인 경향이 있다.
10대 시절을 서른이 되어 다시 살아보는 작업이었다. 이제야 당시의 상황이 보였다. 사실 무언가를 담아내겠단 생각은 만화를 마치고 들었다. 일단은 재미있어서 시작했다. 재미란 언제나 즐거움만 뜻하진 않지만.

추구하는 작품 세계는?
삶의 단면이 작업이 되어 나오길 바란다. 현실은 어떤 영화나 희극보다 말이 안 될 때가 많다. 하나의 사건에도 다른 의미가 엉망진창으로 얽혀 있다. 그걸 고스란히 담아내고 싶다.

독자들이 당신의 작품에서 무엇을 얻길 바라는가?
남에게 뭔가를 알려줄 만한 사람이 못된다.

특히 아끼는 작품이나 캐릭터는?
단편집 <열아홉>에서 ‘개와 나’. 개밥 주러 가는 일상의 하루를 의미 없이 10페이지 내외로 그렸다. 그 작품을 기로로 내 멋대로 하는 작업에 대한 의식이 생겼다. ‘의미 없는 만화지만 그렇게 해도 된다’는 용기를 얻었다. 비록 그 만화는 만화 잡지에서 잘렸지만.

한국, 서울, 여성이란 지역, 성별의 특성이 작품에 끼치는 영향은?
나는 여성이고, 한국에 살고 서울은 아니지만 비슷한 데에 있다. 영향을 받기보다 그 속에서 태어났다. 외계인 이야기를 그린다고 해도 이것이 스며들 거다. 작은 의지, 감각조차 고유한 내 것은 없다. 모두 환경에서 비롯됐고, 거기에서 이야기가 나오기에 의미 있다. 그렇다고 따로 의식해서 특성을 담을 필요는 없다.

그림일기인 <삼십 살>를 보면 작업에 스트레스가 많아 보이는데?
<삼십 살>은 원래 책으로 내려고 하지 않았다. 매일 스케치북에 일기를 그리니까. 편집자와 미팅하다 우연히 스케치북을 보여주면서 출판하게 됐다. 그런 식이다. 의도하지 않는다. 만화 외에 이런저런 것도 하고 있다. 노래, 회화, 아무거나 만들기라든지. 그중 돈이 되고 사람들이 그나마 봐주는 게 만화다. 만화가로서 어찌 살아야 하는지 모른다. 안갯속에서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르는 기분으로 산다. 언제나 불안하고 불안정하지만 그게 내 작업을 만들기에 이대로 살아가련다.

요즘 관심사는?
사회생활과 인간의 행동 양식. 사람들의 사회생활 속에는 보이지 않지만 명확하면서도 오묘한 세계가 있음을 이제야 알았다. 그걸 관찰하는 재미로 산다.

직업병이 있다면?
사람의 관상, 성격, 옷차림의 관계를 수집한다. 다들 그러는 줄 알았는데 그렇게까진 안 하더라. 주변인의 삶도 수집하는데 그것도 남들은 안 한다더라.

작가의 필요조건은?
아마 작가들은 알고 있지 않을까. 자기도 모르는 아주 깊은 곳에서부터.

만화 소비 방식이 웹툰에만 집중되는 경향은 어떠한가?
예전엔 잡지, 지금은 웹툰으로 발표 형식만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덕분에 만화에 관심도 높아지고, 이런 이상한 만화도 만화로 봐줘서 좋다.

아끼며 소장하는 만화책은?
아트 슈피겔만의 <쥐>. 만화를 그리기 시작할 무렵에 접하고는 ‘세계에는 엄청난 작업이 많겠구나’ 싶었다. 갈수록 훌륭한 책임을 느낀다.

유행하는 것 중 좋아하는 것과 질색하는 것은?
유행을 모른다. TV도 없고, 친구들의 관심사에는 한마디도 끼어들 수가 없다. 친구들이 냉장고와 세탁 건조기가 유행이라는데 아직 필요 없다.

 

시대와의 호흡_김성희

30대 한국 비혼 여성의 삶을 그린  이후 용산 참사와 철거민 문제, 장애 아동 통합 교육 등을 다루며 사회문제에 발언해왔다. 에서는 마흔을 맞은 기간제 교사 이영진과 사회의 경계에 선 사람들이 등장한다.

30대 한국 비혼 여성의 삶을 그린 <몹쓸 년> 이후 용산 참사와 철거민 문제, 장애 아동 통합 교육 등을 다루며 사회문제에 발언해왔다. <오후 네 시의 생활력>에서는 마흔을 맞은 기간제 교사 이영진과 사회의 경계에 선 사람들이 등장한다.

시대와 같이 아파하는 작가다. 당신은 누구인가?
사람으로 잘 살아내려고 애썼던 사람.

대학교에서 만평을 그리면서 만화를 시작했다. 그 경험 때문에 지금처럼 사회문제를 다루게 됐을까?
정작 논평하는 존재를 잘 알지 못하는 것 같아 자괴감이 들었다. 더 안으로 들어가 갈등을 살아 있게 그리고 싶었다.

<몹쓸 년>에서 이대로 팔려갈 수 없다는 서른 살 여주인공에 공감이 갔다. 본인이 애착하는 작품 혹은 캐릭터는?
<오후 네 시의 생활력>의 영진. 사회에서는 진보와 보수의 편을 가르지만, 우린 살던 대로 살고 싶은 관성을 가진다. 영진은 그러면서도 내적 갈등에 눈감지 않아 예민하게 그려진다. 겉으로는 소심하고 고요한데 말이다. 겉으로 표현하지 않더라도 영진처럼 갈등에 눈감지 않는 사람이 사회를 조용히 이끈다고 생각한다.

추구하는 작품 세계는?
사람으로서 잘 살자. 그러다 보면 하고 싶은, 해야만 하는 얘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별히 추구하는 세계는 없다. 겪는 대로 겪고, 있는 그대로 판단하고, 상상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독자들이 무엇을 얻어가길 바라나?
삶은 고통이다. 무엇을 가져도, 갖지 않아도 힘들다. 다만 고통과 갈등을 갖고 살 때 우리는 ‘살아 있게’ 된다. 또 살아갈 이유는 딱히 없어도 ‘살고 싶다’는 자체가 생명이다. 살고 싶다, 더 재미있게. 살고 싶다, 더 의미 있게. 살고 싶다, 다음의 문장을 만들어갈 수 있게. 내 만화가 그것에 도움이 되면 좋겠다. 그냥 아무것도 아니어도 괜찮고.

준비 중인 작품은?
대신 살아줄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오해와 참견이 많을까. 또 사랑하는 사람들이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해 지친다. 청년의 이야기가 될 것 같다.

직업병이 있다면?
산책하면서 하는 혼잣말. 운동이 필요할 때 운동 관련 책으로 때우기.

작가의 필요조건은?
표현 욕구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사람. 그 외의 필요조건은 모르겠다. 재능은 성실과 욕구가 친구로 삼는다.

한국 만화 시장을 어떻게 보는가?
웹툰과 학습 만화 중심이다. 시장은 다채로울 때 풍성하고 단단해진다. 좋은 작가가 필요한 만큼 좋은 안목을 가진 독자도 필요하다.

 

20대의 초상_김정연

서울의 코딱지만 한 방에 사는 20대 여성 ‘이시다’를 주인공으로 한 웹툰 이 인기를 얻어 단행본을 출판했다. 소소하고 슬픈 일상사가 시처럼 예민하게 묘사된다. 그래픽 디자이너로 회사 생활, 퇴직 후에 자신의 콘텐츠를 글이나 그림 혹은 다른 무언가로 표현하길 원하다 만화가가 되었다.

서울의 코딱지만 한 방에 사는 20대 여성 ‘이시다’를 주인공으로 한 웹툰 <혼자를 기르는 법>이 인기를 얻어 단행본을 출판했다. 소소하고 슬픈 일상사가 시처럼 예민하게 묘사된다. 그래픽 디자이너로 회사 생활, 퇴직 후에 자신의 콘텐츠를 글이나 그림 혹은 다른 무언가로 표현하길 원하다 만화가가 되었다.

20대 여성의 고충을 그리는 만화 작가다. 당신은 누구인가?
스스로 세운 규칙 위에서 필요한 것만 그리는 사람. 결국엔 잘 그리는 사람보다 디렉팅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혼자를 기르는 법>이라는 제목이 특이하다. 개인적으로 바라는 목표인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동물 사육법을 찾아보곤 해서, ‘OOO를 기르는 법’은 익숙한 검색어다. 직장 생활을 하며 만화 속 ‘윤발이’의 실제 모델인 햄스터를 길렀다. 기본 요건 외에는 삶의 질을 충분히 마련해주지 못해 죄책감이 컸다. 불만족에 대해 생각했고, 사육 환경과 연계해 내 삶의 질에 대해서도 얘기하고 싶었다. 제목 자체가 흐름이 자연스러운 문장은 아닌데, 그만큼 나를 돌보는 일이 낯선 질문이 될 수도 있겠단 생각에 그대로 썼다.

주인공 시다는 뒷골목에서 성추행을 당하고, 야심 차게 독립했지만 먼지 쌓인 방에 산다.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나?
개인의 결심이나 노력에도 불구하고 벽처럼 느껴지는 문제가 있다. 특히 한국의 젊은 여성, 한 가정의 딸이란 위치가 불합리를 너무 요구한다. 같은 서울에 살아도 각자가 경험하는 서울이 다름을 안 이후로, 20대 무산자 여성이 사회와 어떻게 관계 맺는지 밖으로 말할 필요가 있었다.

특별히 아끼는 만화 속 에피소드는?
16화 에피소드 ‘응’. 주인공이 정자였을 때를 그린 것인데, 서로 경쟁하지 않는 상태, 그러니까 태어날 생각이 전혀 없는 정자 집단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 와중에 한번 해보겠다고 나서는 주인공에게 모두가 “잘 살아라!” “반드시 행복해라!”고 소리치고 수정란은 “응”이라고 대답하는데, 앞뒤 맥락 때문에 그리면서도 기분이 이상했다.

독자가 무엇을 얻어가길 바라나?
만화를 읽으며 자신이 원하는 것과 원하지 않는 것은 무엇인지 질문했음 좋겠다. 나 또한 그러려고 애쓴다.

그래픽 디자이너로 회사에 다니다 만화가가 됐다. 특별한 사건이 있었나?
원래 출판사를 클라이언트로 두고 책 만드는 일을 했다. 일을 하면서 내 콘텐츠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 일하는 단위를 개인으로 줄이고 싶었고. 그러다 사회생활을 지속할 컨디션이 깨지면서 퇴사했고, 막상 쉬면서 큰일 났지 싶었다. 조금씩 축적한 메모를 기반으로 이야기를 만들기 시작했고, 어떤 형식이 적합할지를 고민하다 만화로 그렸다. 출판물을 염두에 둔 작업이었지만 생활비가 필요해서 웹툰 연재도 함께 희망했다.

만화를 그릴 때 어떤 과정부터 시작하나?
그림 그리기는 목표가 아닌 수단에 가까워서, 보통 ‘무엇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을 먼저 하지 않는다.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기면 일단 간단한 텍스트로 써보고, 그다음에 그릴지, 쓸지, 말할지 중에 선택하거나 나눈다. 그린다는 판단이 들면, 사실 그린다기보단 선의 좌표를 움직여 이미지를 만드는 방식으로 작업한다.

직업병이 있다면?
평소 생각을 토대로 대사나 이야기를 쓰기에 메모를 자주 한다. 예전엔 좋은 생각이다 싶으면 적지 않아도 괜찮았는데, 요즘엔 금방 까먹는다. 관심 있는 뉴스나 정보도 많이 수집한다.

작가의 필요조건은?
혼자 판단하고 운영할 일이 많아 매뉴얼을 짠다. 꼭 지키지 않아도 괜찮으니 유지하고 싶은 룰을 구체적으로 정해놓으면 호흡이 긴 일에도 최소한 일관적이다.

주거 환경에 대한 욕망이 강한 편이라는 기사를 봤다. 작업 공간은 어떠한가?
집과 작업 공간을 함께 사용한다. 크지 않은 원룸이지만 실측해서 가구를 배치한 덕에 나름 잘 쪼개 쓰고 있다. 물건을 잃어버렸을 때를 제외하곤 천장 등을 절대로 켜지 않고 스탠드 조명에만 의존한다. 그 때문에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불명확하고 편해서 손님들이 오면 눕곤 한다. 언젠가는 좋은 오디오를 들여놓고 싶다.

요즘 관심사는?
컴퓨터와 나의 관계에 대해서 정리 중이다. 내 기능의 대부분을 컴퓨터에 넘겨버린 것 같아 아예 훨씬 더 효과적으로 컴퓨터형 인간이 될 수 없을지 고민 중이다.

 

아픈 우리 젊은 날_이대미

실내디자인과를 졸업한 뒤 디자이너로 일하다 2009년 퇴직하고 습작을 시작했다. 대한민국 도시 어디쯤 사는 30대 여성 비우를 모델로 한 를 펴냈다. 유화풍의 강렬한 그림체와 과감한 편집으로 한국 그래픽 노블의 다양성을 보여주고 있다.

실내디자인과를 졸업한 뒤 디자이너로 일하다 2009년 퇴직하고 습작을 시작했다. 대한민국 도시 어디쯤 사는 30대 여성 비우를 모델로 한 <비우>를 펴냈다. 유화풍의 강렬한 그림체와 과감한 편집으로 한국 그래픽 노블의 다양성을 보여주고 있다.

실험적인 단편영화 같은 그래픽 노블을 선보이는 작가다. 당신은 누구인가?
얼마 전 <사피엔스의 미래>라는 책을 읽었다. ‘인류의 미래는 더 나아질 것인가?’를 화두로 삼았다. 알랭 드 보통은 인간의 파괴적인 충동 본능을 언급하며 인간의 뇌를 “결함 있는 호두”라고 말했다. 그의 시각에 어느 정도 동조한다. 나를 포함한 우리의 나약함과 한계에 측은지심을 느낀다. 개개인의 인생 숙제에 대해 표현하고 싶다. 낭만적인 말일지 모르지만, 때로는 눈물 날 정도로 숭고하며 아름답게 말이다. 이제 출발점에 섰다.

대기업에 다니다가 퇴직하고 습작을 시작했다. 특별한 계기는?
회사 구조 조정으로 소속 팀이 공중분해 됐다. 두 가지 선택이 주어졌다. 권고사직을 받아들이거나 다른 계열사로 가는 것. 나는 회사 계열사인 유명 기획사의 면접까지 봤다. 어느 날 선배가 “나는 거긴 또 안 간다”고 했다. 이 대답이 인생을 바꿨다. 회사에서 불의를 참고 양심을 팔아가며 머문 시간이 부끄러웠다. 회사를 그만두고 아버지께 내 책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많이 편찮으시던 아버지께서 어느 날 물으셨다. “책이 얼마나 되었느냐?” 나는 50% 정도라고 답했다. 아버진 생전에 자식의 책을 볼 수 없을 거라는 표정이셨다. 한 달 뒤 돌아가셨다. 그날은 눈이 펑펑 내렸다.

<비우>의 강렬한 색감은 뭉크의 유화를 연상시킨다. 본인이 추구하는 그림체인가?
뭉크 그림을 아주 좋아한다. 어둡다고들 하지만 환상적인 색상과 조형성이 정말 아름답다. 그림을 평생 그리고 싶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그려보고 싶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색을 좋아한다. 아름답지 않은 색은 없다. 내 속도대로 이야기와 그림을 만들고 싶다.

<비우>는 스토리도 인상적이다. 환영에 시달리는 일러스트레이터 비우가 역시 환영에 시달리는 소설가를 만나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런 스토리를 구상한 이유는?
나를 안다고 자신했지만 잘 몰랐다. 내가 괜찮기도, 더럽게 싫기도 했다. 그런 고민이 알게 모르게 작업에 투영됐다.

<비우>의 대사 중에 “사람들은 각자의 이유로 아파한다. 이제 나는 조금씩 내가 아픈 것을 느끼는 만큼 그들의 아픔도 느낄 수 있다. 얼마나 아파했을까?”가 있다. 특히 애착이 가는 대사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우아한 방법으로 이 고통이 인생의 숙명임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아닐까?” 문제를 회피했다. 편하고 쉬우니까. 그들은 쓰나미가 되어 돌아왔다. 문제를 맞닥뜨리지 않으면 면역성은 파괴되고 나중에는 왜 이런 상태까지 왔는지 모른다. 결국 자포자기하여 남에게 총을 쏘거나 자신에게 겨눈다. 무섭다. 문제를 푸는 시기에는 나락으로 떨어진다. 바닥을 치니 우아할 수 없다. 하지만 우아함을 발휘하려 노력하면 조금씩 명랑해지는 것 같다. 파랑새는 마음속에 있으니까. 책의 마지막 구절도 좋다. “하나만 보는 건 진짜 보는 게 아니지.” 내가 지향하는 삶의 태도다.

준비 중인 작품은?
인간 혹은 종에 관한 작품이다. 나는,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왜 다름을 혐오하는가?

직업병이 있다면?
신체적 능력이 저하된다. 3년 동안 다래끼와 피부 트러블을 달고 살았다. 다행히(?) 지금은 다래끼가 났다. 즉, 작업 중이다.

웹툰을 중심으로 만화가 재조명받았지만, 아직 그래픽 노블, 그림책의 영역은 다르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학원에서 ‘스토리텔링’을 접했다. 그곳에서 만난 황선미 선생님께서 정권이 교체되면서 처세술이나 자기계발서가 서점을 채웠다고 말씀하셨다. 그 책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다양한 책이 공존해야 한다는 거지. 사회는 점점 경직되어간다. 모 아니면 도, 흑 아니면 백이다. 다양성이 사라지고 각박하고 여유가 없다. 한국 만화에서 웹툰의 비중이 크다. 웹툰 작가가 되기도 어렵다고 들었다. OSMU도 활발해서 자본도 많이 모인다. 나는 시장과 상관없이 그래픽 노블과 호흡이 맞을 뿐이다. 다만 다양한 매체가 있을 때 좋은 콘텐츠가 많아지니…

덧붙이고 싶은 말은?
여성, 제3세계, LGBT, 인종 등 잠든 것들이 깨어나고 있다. 점성학을 공부한 적이 있다. 행성은 각자의 역할이 있는데 그중에 외행성이라고 일컫는 천왕성, 해왕성, 명왕성이 흥미롭다. 천왕성과 명왕성은 기존의 질서를 부수고 해왕성은 경계를 모호하게 한다. 방법의 차이는 있지만 결국 기존 질서의 전복이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알 수 없지만 매우 흥미롭다. 앞으로의 세상은 어떻게 될까? 나는 앞으로도 좋은 작업을 하기 위해 노력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