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rkles Fly

시퀸과 글리터의 반항적이고 낙관적인 반짝임. 스스로 빛을 내는 패션이 혼돈의 시대에 우리를 구원한다.

바네사 악센테(Vanessa Axente@DNA Models)가 입은 금빛과 은빛으로 반짝이는 메탈소재 매시 톱은 발맹(Balmain).

바네사 악센테(Vanessa Axente@DNA Models)가 입은 금빛과 은빛으로 반짝이는 메탈소재 매시 톱은 발맹(Balmain).

훗날 지금 살고 있는 초현실적이고, 분열적이고, 요동치는 시대를 돌아볼 때 패션이라는 거울에 우리는 어떤 식으로 투영될까? 불가능해 보이는 모든 것 중 뉴욕부터 런던과 밀라노에 이르기까지 디자이너들이 관대하게 컬렉션 전체에 흩뿌린 수많은 스팽글의 심정적 위로일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곰곰이 이런 생각에 잠긴 채 나는 손바닥에 작고 반짝이는 물건을 쥐고 있었다. 나를 미소 짓게 한 그것은 북부 뉴욕 출신의 젊은 미국 디자이너 마이클 핼펀(Michael Halpern)이 만든 티셔츠에서 떨어진 것이다. 2016년 센트럴 세인트 마틴을 졸업한 핼펀은 흔히 번데기 단계라고 부를만한 위치에 있다. 밥 매키(Bob Mackie, 미국 패션 디자이너로 연예계 아이콘들에게 옷을 입힌 것으로 유명하다)와 스튜디오 54에서 춤추던 엄마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어 반짝이는 날개로 날아오르고 있는 아기 나비 말이다. 그는 런던 셰퍼드 부시(Shepherd’s Bush, 웨스트 런던의 한 지역)의 인도와 아프리카 원단 가게 중 지하에 자리한 가장 저렴한 곳에서 그 원단을 구했다. 핼펀은 자신의 런던 친구들처럼 무일푼이었지만 그 빈곤이 우울함에 맞서는 메가와트급의 화려한 무지개를 선보이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Preen

Preen

물론 패션은 우리 모두가 어떻게 느끼고 있는가에 따라 늘 그 방향을 조정해야 한다. 그래서 우중충한 색상, 저항의 슬로건, 행진을 위한 군복 파카, 그리고 점거를 위한 슬리핑 백과 함께 절제와 심각함이 깃든 유니폼이 현 상황에 어울리는 패션의 대응인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정치적으로 올바른 방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오늘날 시퀸의 저항은 훌륭한 대안이 되고 있다. 시퀸에는 희망이 있다. 패션은 매력적인 스팽글로 우리 자신을 치장할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현재 직면한 문제가 우리 세대를 정의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봄 컬렉션을 보는 동안 이런 생각이 가슴속을 파고들었다. 완곡하게 표현해서 지난해 9월 패션계에는 힘내라는 격려가 필요했다. 처음에는 불안함으로 가득한 쇼의 연속이었다. 우리 같은 전문 관객은 ‘See Now, Buy Now’ 쇼의 장단점과 어느 디자이너를 고용하고 해고했는지에 대한 소문, 그리고 기억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흐릿하기만 한 쇼가 너무 많다는 끝없는 대화의 수렁에 빠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다음 반짝이는 순간들이 나타났다! 그 순간들은 멍한 상태에 있던 모두를 순식간에 집중하게 만드는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thomb

시작은 뉴욕이었다. 소동은 늘 그곳에서 시작된다. 톰 브라운 무대의 주목할 만한 아이템은 트롱프뢰유 슬리브리스 수트 위에 기묘하게 늘어진 은색 시퀸의 원 숄더 가운이었다. 동시대적인 마를렌 디트리히를 위한 의상처럼 보였다. 로다테에는 <오즈의 마법사>에서 주디 갈랜드가 신었던 루비 구두와 똑같은 색이 인상적인 빛나는 퍼프소매 드레스가 등장했다. 마크 제이콥스는 다른 시대의 반짝임을 선보였다. 수많은 핫팬츠에 새틴과 반짝이를 입은 70년대 틴에이저들이 터무니없을 정도로 높은 플랫폼을 신고 쿵쿵거리며 무대 위로 걸어 나왔다.

Gucci

Gucci

이 분위기는 유럽으로 이어졌다. 구찌는 빛나는 태양 광선 스트라이프와 이집트에서 영감을 얻은 아르데코풍 칼라 장식의 반짝이는 시폰 드레스를 선보였다. 1934년 영화 <클레오파트라>에서 클로데트 콜베르의 의상으로 사용됐더라도 손색없었을 것이다. 런던으로 가보자. 손튼 브레가찌(Thornton Bregazzi)의 프린(Preen)에는 즉흥적으로 주름이 잡힌 실버 시퀸 의상이 더 많이 등장했다. 파리에서는 올리비에 루스테잉이 디자인한 발맹의 체인 메일을 비롯해 무심한 30년대의 세련미를 보여준 니콜라 제스키에르의 몸에 착 붙는 루이 비통 비대칭 사이렌 드레스에 이르기까지 부채처럼 접히는 팬 플리츠, 라메, 루렉스, 뷰글 비즈와 함께 이런 분위기가 이어졌다.

David Bowie

David Bowie

이런 패션 불꽃놀이의 배경에는 수많은 이유와 역사적인 반복이 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어려운 시기마다 미국인들을 이끌었던 반직관적인 창조적 본능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대공황의 막바지였던 1936년 애드리안(Adrian Adolph Greenberg, 의상 디자이너)이 <위대한 지그펠드(The Great Ziegfeld)>를 위해 환상적인 코스튬 수백 벌을 디자인 했을 때처럼 MGM에서 그렇게 많은 파이에트 장식을 사용한 적은 없었다. 수십 년 후 경기 불황이 강타한 70년대에는 데이비드 보위, 마크 볼란(Marc Bolan, 영국 그룹 티 렉스의 멤버), 그리고 뉴욕 돌스(New York Dolls, 미국 하드 록 밴드)가 금색 플랫폼을 신고, 시퀸이 박힌 핫팬츠를 입고 맹렬하게 등장했다. 글램 록 시절엔 아무도 젠더 유동성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처음으로 양지로 올라온 건 그때였다. 젊은 남녀 모두 시퀸, 립스틱, 반짝이 아이섀도를 공유했다.

이 부분이 오늘날 더 흥미롭게 느껴지는 지점이다. 스타들은 스팽글이 뿌려진 꾸뛰르를 입고 레드 카펫을 걸을 수도 있지만 시퀸은 힘과 돈의 편이 아니다. 글리터와 글램, 판타지와 현실도피는 연예인과 직업 댄서, 드래그 퀸과 팝 스타, 크로스드레서(이성의 복장을 입는 사람들)와 클럽광들의 전매특허이다. 그리고 반짝이는 동성애자 권리의 자랑스러운 전통이다. 바로 그 점이 이 새로운 글리터의 물결이 용감하고, 희망적이고, 반항적인 이유다. 그것은 불평등에 맞서는 낙관주의를 대변한다. 그리고 전 시즌을 통틀어 내게 가장 감정적으로 유의미하게 느껴지는 부분이다. 그 파란 시퀸을 봤을 때 나는 다시 미소 지었다. 왜냐하면 이 역사의 끝 혹은 마이클 핼펀의 시작은 비욘세가 그의 화려하고 멋진 70년대 반짝이 의상에 관심을 갖고 주문을 했다는 사실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