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의 계절엔, 에릭 로메르

영화 <로맨스>

프랑수아 트뤼포, 장 뤽 고다르, 클로드 샤브롤, 자크 리베트. 이 이름들에 ‘에릭 로메르’를 더하면 ‘누벨바그 5인방’이 완성된다. 에릭 로메르는 ‘최후의 누벨바그’라 불릴 만큼, 말 그대로 최후의 순간까지 영화를 만들어 온 감독이다. 1920년에 태어나 2010년 아흔 살에 타계한 그의 유작은 2007년에 발표한 <로맨스>다.

 

영화 <모드 집에서의 하룻밤>

소설가, 교사, <카이에 뒤 시네마> 편집장 등의 이력을 거친 로메르는 1959년 촬영한 <사자자리>로 데뷔했지만 대중의 외면을 받는다. 스스로 ‘도덕이야기’라 이름 붙인 6편의 연작 중 하나인 <모드 집에서의 하룻밤>(1969)이 흥행에 성공하면서, 아니 당시 영화계를 강타하면서, 그의 영화 경력은 주목 받기 시작한다. 내용은 단순하다. 한 남자가 우연히 만난 한 여자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다시 또 다른 여자에게 매혹된다는 얘기다. 그래서 그가 갈등한다고 말한 것은 결코 아니다. 중요한 것은 여기서 로메르가 말하는 ‘도덕’이란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의미가 아닌 프랑스어의 ‘모럴리스트 moralist’를 뜻한다는 점이다. 그에 따르면 “모럴리스트란 인간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을 묘사하는 데 흥미가 있는 사람”이다. 당연히 이 연작은 외형상의 서사나 플롯보다는 인물의 마음 상태와 느낌에 집중한다. 이후 로메르는 <비행사의 아내>(1981)를 시작으로 ‘희극과 격언’ 시리즈, 1990년부터 1998년까지 ‘사계절 이야기’ 등을 선보이며 거장의 반열에 오른다.

 

영화 <녹색광선>

로메르의 세계관을 정리하는 것은 매우 어렵지만, 몇 문장으로 그에 대해 써보면 이렇다. 뛰어난 통찰력으로 일상의 사소한 순간에서 생의 가치를 발견한다. 얼핏 빤해 보이는 남녀관계를 통해 인간 정신을 탐구하는 철학가와 같은 면모가 짙다. 배우의 눈빛이나 표정, 몸짓, 말투의 억양, 공간의 분위기, 그날의 날씨 등을 영화에 고스란히 담아낸다. 저예산으로 최소한의 스태프를 꾸려 간결한 방식으로 영화를 완성해낸다. 이쯤 되면 떠오르는 감독이 하나 있을 거다. 바로 홍상수 감독. 참고로 홍상수 감독이 가장 좋아하는 로메르의 작품은 희극과 격언 시리즈 중 하나인 <녹색광선>(1986)이다.

 

영화 <비행사의 아내>

4월 13일부터 5월 7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에릭 로메르 회고전이 열린다. 회고전의 타이틀은 ‘연애의 모럴’이다. 위에서 언급한 <모드 집에서의 하룻밤>, <녹색광선>, 유작 <로맨스> 등도 상영된다. 개인적으로는 <에릭 로메르와 함께>를 꼭 보고 싶은데, <비행사의 아내>, <녹색광선> 등 로메르와 많은 작업을 함께한 배우 마리 리비에르가 연출한 에릭 로메르에 대한 다큐멘터리다. 회고전을 보러 갔다가 로메르에 대해 더 알고 싶어진 사람에게는 <에리크 로메르-아마추어리즘의 가능성>(피오나 핸디사이드, 마음산책)을 추천한다. 국내에는 희귀한 그의 인터뷰를 모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