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치와 인어

주성치 영화를 볼 때면 한 컷이라도 놓칠까 봐 웃음까지 꾹 참는 그의 오랜 팬 요조가 보내온 주성치의 인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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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한답시고 대학교를 휴학했다. 그리고 집 근처에 있는 비디오 대여점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비디오 가게에서 일하면서 얻은 가장 큰 장점은 뭐니 뭐니 해도 최신 프로를 공짜로 빠르게 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가게에 손님이 그렇게 많지도 않았기 때문에 일이 끝나는 오후 3시까지 보통 하루 두 편 정도를 볼 수 있었고 나는 그렇게 한두 달 만에 웬만한 신프로를 다 섭렵하게 되었다. 도르르 바퀴가 달린 미닫이로 된 이중 선반의 안쪽에는 상대적으로 오래된 옛날 비디오들이 빨간 구프로 딱지를 붙인 채 꽂혀 있었다. ‘이제 볼 것도 없는데 옛날 영화들이나 좀 볼까’ 하고 들여다본 그 구프로의 세계에서 나는 주성치를 처음 만났다. 슬랩스틱과 유치한 개그가 난무하는 그의 영화를 나는 박장대소 한 번 없이 그저 가만 노려보았다. 내가 웃지 않았던 이유는 재미가 없어서가 아니었다. 다만 내가 웃다가 한 컷이라도 놓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주성치를 사랑하게 되어버렸다. 이제 영영 돌이킬 수 없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가면 쓴웃음을 몇 번 짓곤 했다.

나는 20대 후반까지 쭉 무명 시절을 보냈는데 ‘유명해지면 주성치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순진하지만 진지한 생각 하나로 음악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버텼다. 우여곡절 끝에 발표하게 된 데뷔 앨범에는 주성치를 위해 ‘슈팅스타’라는 노래를 실었고, 지금까지 매년 (돈이 없거나 너무 바쁘거나 한 해는 빼고) 주성치 티셔츠를 제작해 입고 다녔다. 그리고 내가 그동안 만난 남자들은 거의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서 나를 피곤하게 했다.

“주성치가 더 좋아? 내가 더 좋아?”

사람들은 주성치가 영화 홍보를 위해 내한한다고 할 때마다 나에게 쪼르르 달려와 알려주었고, 주성치의 열애 소식이 들리거나 스캔들이 터지면 또 나에게 쪼르르 달려와 일렀다. 그 외에도 검증 안 된 소문-주성치가 알고 보면 삼합회 중간 보스다 같은-을 알게 되었을 때에도 쪼르르 달려왔다. 나는 그 모든 이야기를 기분 좋게 들었다. 좋지 않은 얘기라고 해도 그에 관한 거라면 뭐든 사람들이 그렇게 쪼르르 달려와주는 것이 나로서는 그저 뿌듯하고 감사했다.

주성치의 신작 <미인어>가 지난 2월에 개봉했다. 사실 한국에서의 개봉은 많이 늦은 편이다. 이 영화는 이미 1년 전인 2016년 2월에 개봉해서 중국 역대 1위의 흥행을 했다. 그리고 곧 한국에서 개봉도 하기 전에 다운로드 사이트에 <미인어>가 돌았다. 역시 다정한 내 친구들은 ‘쪼르르’ 시전을 하였다.

“주성치가 이번에 감독한 <미인어>라는 영화가 ‘토◯◯’에 떴어! 다운 받아서 나는 봤는데 너한테도 보내줄까? 아, 너는 이미 봤을라나?”

나는 국내 개봉을 확신하며 끝까지 미리 보지 않았다. 물론 궁금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이 정도 참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드디어 한국에서도 개봉한다는 기쁜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주성치에게는 몇 편의, 리메이크라고 하기 쉽지 않은 리메이크작이 있다(두 편 모두 감독은 다른 사람이다). 그중에서 내가 본 것은 <홍콩 레옹>과 <홍콩 마스크>인데 두 편 다 원작에 충실하고자 하는 마음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을, 아니 그냥 이건 별개의 영화라고 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금방 깨달았던 기억이 있다. ‘인어’라는 단어를 마주하면서 안데르센의 ‘인어 공주’ 이야기를 떠올리지 않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에, 제목을 보고 자연스럽게 인어 공주의 익숙한 전개를 떠올렸지만 이내 지웠다.

내가 아는 주성치는 인어를 그렇게 다룰 사람이 아니야.

스케줄 때문에 개봉 다음 날 종로의 한 극장에 영화를 보러 들어가면서 나는 대략적인 시놉시스를 읽지도 않았다. 나에게는 이미 일종의 ‘주성치 그래머(Grammar)’가 체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주성치 그래머가 무엇인지 거칠게 설명해보자면 그의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주성치 본인이거나 혹은 남자)은 초반에 대체적으로 악하거나 약하며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점차 정신을 차리다가 마지막에는 강하고 의로운 존재가 된다. 그 내러티브의 사이사이를 정신없는 슬랩스틱과 유치한 개그가 탄탄히 받쳐주며, 여주인공 역시 남주인공과 비슷하게 못생기거나 약한 존재에서 아름답고 훌륭한 동반자로 변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실제로도 주성치의 연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젠장.

역시나 영화는 초반부터 탄탄하게 그의 문법대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내 예상대로 주성치의 인어는 안데르센이나 월트 디즈니의 인어와는 완전히 달랐다. 그의 인어는 사람처럼 걸으며 남자 주인공보다 더 높은 목청으로 노래를 불러젖힌다. 게다가 이번 영화는 그의 예전 리메이크작과도 완전히 달랐다. 보편적인 감동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홍콩 레옹〉과 <홍콩 마스크>가 감동적이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그럴 수는 없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그것은 결코 보편적이지는 않은 감동인 것이다).

마지막 밥알까지 싹싹 긁어 밥그릇을 비우듯 엔딩 크레딧의 마지막 줄까지 긴장을 놓지 않고 영화를 보았다. 영화관을 나오며 그는 아직도 자라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다음 날엔가 영화사에 연락을 취했다. 한 일주일 정도 뒤에 주성치를 사랑하는 팬들과 이 영화를 함께 보고 같이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영화사 측의 답변은 당황스러웠다. <미인어> 상영이 그 전에 종료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아니, 주성치의 영화인데, 1~2주 만에 영화를 내릴 수가 있나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하루하루 지날수록 상영관 수가 무섭게 줄었다.

이유가 뭘까. 이미 다운로드 받아 영화를 본 사람이 너무 많아서일까. 이제 한국에서 주성치의 인기는 시들해진 것일까. 혹은 이제 그의 문법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일까.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마치 연인을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 잘못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그냥 내가 다 미안해’ 하고 사과하는 것처럼 나는 그냥 이유도 맥락도 없이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

내가 더 잘해야겠다고. 그게 무엇이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