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맥주의 시대

지난달 어느 술자리에서 지인 하나가 취기에 작은 불평 하나를 내뱉었다. 와인같이 비싼 술이나 마시며 우아한 척 해대는 부류들은 믿을 수가 없다는 이야기였다. 퇴근 후 헛헛한 마음을 위로해주는 고마운 맥주 한 잔에 대한 찬양을 늘어놓다 별 의미 없이 튀어나온 말이었겠지만, 나는 괜히 섭섭한 마음이 들어 잡아뜯던 닭 모가지를 잠시 내려놓게 되었다. 나는 내게 친근한 와인이라는 술이 술자리 험담에 등장하게 되어 이런 기분이 드는 것인지 아니면 단지 술 취한 지인이 못마땅한 것인지를 한참 고민하다 결국 별말 없이 자리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들어와 손발을 닦고 자리에 눕자 그제야 그 섭섭함의 정체를 대충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와인에 대한 것도, 사람에 대한 것도 아니었다. 매우 뜬금없지만, 그것은 우아한 척하는 부류를 꼭 와인을 마시는 사람으로서만 한정 지은 선입견 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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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불평을 곱씹어 보면 맥주 마시는 사람은 우아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나는 사실 그것이 못마땅했던 것이다. 퇴근 후 내 방 책상 앞에 앉아 향이 진한 에일 한 잔을 즐기는 것을 대단한 우아함으로 여겼던 나였기에 그런 섭섭함이 들었던 것이다. 몇몇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맥주는 그렇게 단순한 음료가 아니다. 맥주 또한 다른 모든 음료들과 같이 다양한 스타일과 우아함을 가지고 있는 술이다. 한국 역사 속에서만 해도 1900년대 초반 ‘삐루’는 일부 상류층에서만 마실 수 있는 술이었고, 1970년대에도 정말 날을 잡아 마실 수 있을 정도로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가지고 있던 술이었다. 당시 술꾼들은 분명히 이 ‘삐루’를 마시며 우아를 떠는 부류들 흉을 보며 탁주 안주 삼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맛의 다양함을 이야기하자면, 맥주는 우리가 무심코 주문하는 생맥과 병맥으로만 나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와인보다도 더 복잡하게 분류할 수도 있는 것이 이 술이다. 필스너에일, 밀맥주흑맥주, 람빅괴즈 등은 물론이고 상면 발효, 하면 발효, 자연발효 그리고 다양한 지방색과 계절성을 띠는 맥주들로 무척이나 다양하게 분류된다. 이 같은 매력에 빠져 이제 한국에서도 맥주 마니아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고, 그들은 매일 새로운 맥주와 새로운 맛을 찾아다닌다. 소맥이나 치맥은 어느새 무료한 일상 속으로 들어와버린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런 추세를 따라 다양한 수입맥주들과 크래프트 비어의 대중적 접근이 활발해지고 있다. 작년 말, 역삼동에 자리 잡은 구스 아일랜드 브루 하우스 서울을 견학할 기회가 생겨 브루 하우스의 셰프와 브루마스터를 인터뷰할 수 있었는데, 그들도 이러한 변화를 따라 매우 다양한 맥주를 선보이고 있었다. 게다가 구스 아일랜드 브루 하우스 서울에서는 다양한 맥주와 어울리는 음식들을 개발해 ‘페어링’ 메뉴까지 선보이고 있었다. 구스 아일랜드가 만드는 인디언 페일 에일에는 무겁고 진한 맛의 메뉴를 매칭하고, 가볍고 산뜻한 음식에는 부드럽고 신선한 느낌을 주는 사워 에일을 매칭하는 등 기본에 충실한 페어링으로 구성되어 맥주 마니아들의 사랑을 받고 있었다. 구스 아일랜드는 1세대 크래프트 비어답게 다양한 맥주를 갖추고 있어 식사 구성에 따라 활용 가능하기에 맥주 마니아들을 쉴 틈 없이 공략한다. ‘사워 시스터즈’라고 부르는 새콤한 맛의 에일은 식전주로 곁들이기에도 좋고, IPA 매칭이 끝난 다음이라면 버번위스키 배럴에서 숙성시킨 임페리얼 스타우트를 식후주로 즐기도록 해두었다. 그런 발상은 참 재미있다.

맥주를 대단히 즐기지 않거나, 양식의 코스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페어링과 순서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의문을 품을 수도 있겠지만 맛을 즐기는 방법에는 참 여러 가지가 있다. 특히나 술과 음식의 매칭은 술꾼에게도 요리사에게도 대단히 재미있는 부분이다. 꽤나 잘 나간다는 레스토랑에 가보면 소믈리에들이 음식과 와인의 성질을 이야기하며 고객이 원하는 음식에 어울리는 와인을, 아니면 반대로 원하는 와인에 어울리는 음식을 추천해준다. 당연히 맥주도 와인만큼이나 매력적인 술이기에 그런 접근이 필요하다. 맥주와 음식을 매칭하는 데에는 기본적인 조건이 몇 가지 있다.

우선 맥주의 캐릭터가 강한 편이라면, 음식의 맛과 향도 그에 대등한 정도가 되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맥주의 캐릭터가 가늘고 섬세하다면, 그것을 가리지 않을 정도의 맛과 향을 가진 음식이 어울린다. 같은 필스너 류의 맥주를 마시더라도, 만약 지인 중 누군가가 아주 잘 익은 블루치즈 같은 안주를 가지고 왔다면 되도록이면 홉의 향이 살아있는 강한 캐릭터의 필스너가 서로의 향을 이끌어주며 어울리게 된다.

다음으로 공통점 찾기가 있다. 맥주와 음식 사이에 비슷한 향이나 맛이 있다면 그 둘은 순식간에 쉽게 어울린다. 연인과의 첫 만남에서 둘 사이의 어색함을 녹여준 공통점을 기억한다면 이해하기 쉬워진다. 맥아를 잔뜩 태워 만든 흑맥주의 경우, 레스토랑에서는 블랙 트러플과 곁들이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굳이 진짜 송로버섯이 아니더라도 트러플 오일을 뿌린 감자튀김과 함께 먹는 흑맥주를 상상해보면, 꽤 괜찮을 것 같다.

반대로 맥주와 음식의 대비를 이루는 매칭도 있다. 이것은 대부분의 맥주 애호가나 초보 미식가들도 어려워하는 부분이지만 오히려 쉽게 생각할 수도 있다. 다양한 레시피로 염지해 기름에 튀겨 낸 느끼한 프랜차이즈 치킨을 먹을 때, 우리가 진한 에일 보다 가벼운 라거를 선호하는 것과 같은 이야기다.

또 한 가지는 맥주의 맛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파악하고 그것을 망가뜨리지 않으면서 상호보완하는 맛을 찾는 것이다. 좋은 맥주라면 톡 쏘는 기포가 주는 청량감 외에도 맥아와 호프 등의 특징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릇 위의 맛을 넘어 자신의 취향과 기분도 잊으면 안 된다. 소믈리에나 브루마스터, 아니면 셰프가 지면과 화면을 통해 박사님 흉내를 내면 설명을 해주고 있기는 하지만, 이것은 사실 보편적인 이론을 정리해 전달하는 것일 뿐이다. 만약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맛이 있다면 남의 눈치 볼 것 없이 그대로 추구하면 되는 것이다.

맥주가 매력적인 이유는 이것에도 있다. 와인은 음식과의 매칭에 있어 매우 까다롭고, 변수 또한 엄청나게 많지만, 맥주는 자신의 파트너에 대해 조금 더 관대한 편이다. 한두 가지 점에서 조금 맞지 않더라도 한 발 물러서 받아주는 법을 알고 있다. 맥주는 자신의 매력을 발휘하는 방법을 아는 술이다.

한국에서 사랑받고 있는 크래프트 비어 브랜드 중 하나인 구스 아일랜드는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맥주의 매력을 한껏 발휘하는 방법을 잘 아는 똑똑한 브랜드다. 구스 아일랜드 브루 하우스 서울에서 선보이고 있는 ‘페어링’의 범위를 넓혀 분당, 판교 지역에 위치한 그래니살룬, 코라보, 그램스그라운드, 더탭하우스, 582펍, 올드스탠드, 모비딕, 제로투나인, 노란문 등 9개 펍과 함께 ‘구스 아일랜드 마이그레이션 위크 분당(Goose Island Migration Week)’을 지난 12일까지 진행했다. 구스 아일랜드의 마이그레이션 위크 분당에서 함께한 펍은 구스 아일랜드 맥주를 소스나 반죽에서 활용하여 새로운 메뉴를 선보이기도 했다. 리조또, 피자, 나초, 해물떡볶이, 홍합 스튜, 가리비 구이 등 다양한 요리를 선정하고, 그에 맞는 맥주를 함께 제안한 ‘구스 아일랜드 마이그레이션 위크 분당’은 맥주 마니아는 물론, 이제 처음 크래프트 맥주의 세계에 한걸음 다가온 사람에게 맥주에 대한 폭을 확장시켜준 계기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