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구의 심리학

춘풍이 내재된 욕망을 들쑤셨고, 다시 가구와 사랑에 빠졌다. ‘USM’이라는 훌륭한 가구를 갖고 싶다는 물욕보다 더 중요한 건 지금 이걸 갖고 싶어 하는 나의 상태와 심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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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구와 애인의 공통점이 있다. 한번 들여놓으면 애물단지가 되더라도 끝까지 부여잡고 있어야 하고, 재스퍼 모리슨이 디자인한 주전자처럼 어떻게든 고쳐 써야 하며, 버리기엔 본전 생각이 너무 많이 나고, 버리기로 작정했다 하더라도 비용과 상실감을 부담해야하며, 버린 후에는 반드시 대체할 것이 있어야 한다는 것.” 7년 전, 가구와 열렬한 사랑에 빠진 나는 이런 문장을 썼다. 하지만 그 열애가 언제까지 지속되었는지는 도통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큰맘 먹고 들인 스칸디나비아 스타일의 사이드보드 앞에는 장난감 상자가 겹겹이 쌓였고, 일본에서 공수한 가리모쿠60의 K체어 시트는 너덜너덜 내려앉았으며, 덴스크의 빈티지 협탁은 베란다로 물러났고, 스트링 선반은 분해된 채 사라졌을 뿐이다. 나의 희로애락을 함께하고 흥망성쇠를 증명하는 가구라는 존재에 대한 마음은 등 돌리고 자는 오래된 연인의 그것이 되어버렸다. 스위스에서 온 멋진 녀석을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 후로도 금단현상 없이 어떻게 가구에 대한 지난한 애정(혹은 끈질긴 물욕)을 끊을 수 있었을까 생각해봤다. 무언가를 갈망하던 상태가 일상이 되면 지극히 당연해지는 ‘쾌락 적응’이 원인이었을까. 한정된 공간이 점점 포화 상태가 되었고, 집을 옮기기엔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았기 때문이었나. <사물의 심리학>이라는 책을 쓴 아네테 쉐퍼에 따르면 30대 후반에서 시작하는 ‘중년’의 시기에 소비가 최고조에 달한다. 한 사람이 평생 물건을 사는 데 지출하는 금액을 그래프로 그려보면 U자를 뒤집은 모양이 나오는데, 그 꼭짓점이 40세 전후라는 것. 아이를 양육하고 부모를 부양하는, ‘이타적 추진력이 이기적 동기를 앞서는 이중 책임의 시기’이니 지출이 많고 가구에 쓸 돈은 없을 수밖에 없다. 한편 행복을 연구하는 심리학자들은 인생의 만족도는 U자의 그래프를 그리고, 40~50대가 그 최저점이라 주장한다. 그러니까, 고견을 정리해보자면 나를 위해 쓸 돈도, 가구 따위를 품을 마음의 여유도 없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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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주 페렉의 소설 <사물들>은 등장인물들을 그들이 소유하거나 욕망하는 물건을 통해서만 소개한다. 하지만 책은 소비 지상주의의 폐단을 지적하는 데 그치지 않고 ‘행복이라는 매력적인 덫’에 걸린 인간에게 묻는다. “왜 우리는 행복하기를 멈출 수가 없는가?” 나 역시 멋진 가구를 향한 물욕이 기쁨과 자부심, 마침내 행복으로 승화되던 과정 자체에 피로감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아예 접근 불가해서 물욕과는 상관없는 미술에 빠졌다. 때마침 도래한 ‘미니멀 라이프’ 시대에는 뭔가를 더 가지겠다는 욕망 자체가 더 먹어보겠다는 욕심만큼 미련해 보이기까지 했다. 물론 어디까지나 그 멋진 녀석을 만나기 전까지 그랬다는 거다.

한 달 전쯤, 한 지인이 ‘남자들을 위한 가구’로 USM을 소개했는데, 난 그 클래식한 미학과 지속 가능성의 철학에 완전히 반해버렸다. 그건 남자를 위한 가구가 아니라 그냥 남자 같은 가구였다. 스스로의 삶을 절제된 미학과 투철한 장인 정신으로 가꾸어가는 그런 남자. 군더더기 없이 선과 면으로 구성된 자태를 보고 있자면 이보다 더 품위 있고 견고한 가구는 없다는 확신에 다다른다. 블랙, 화이트, 네이비, 베이지 같은 색은 물론이고 옐로, 그린, 오렌지, 레드, 블루 같은 색을 가구의 세계로 들여왔다는 점은 얼마나 대담하고, 티끌 없는 색채를 내기 위해 또 얼마나 치밀해야 했을까. 무엇보다 USM은 1965년 스위스에서 탄생한 ‘세계 최초의 모듈러 퍼니처’. 볼 모양의 스틸 조인트에 크롬 파이프를 연결, 프레임을 만들고 여기에 스틸 패널, 서랍, 도어 등의 옵션을 설치하면 책장, 사이드보드, 수납장, 협탁, 옷장까지, 원하는 웬만한 형태를 만들어낼 수 있다. 나의 라이프스타일과 함께 변화하고, 성장하고, 진화하는 가구라니, 기가 막힐 정도로 맘에 들었다. 이후 내가 결제할 때까지 매장을 몇 번 찾아가고, 전화를 몇 번이나 했는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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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풍은 나의 내재된 욕망을 들쑤셨고, 마침(절대 의도한 건 아니다) 6년 만에 이사를 가야 하는 상황은 그것을 실행에 옮기도록 독려했다. 나는 가벼운 주머니 따위는 문제 삼지 않을 만큼 무모해졌다. 이미 수년 전에 소개된 아이템인 데다 ‘강남 사모님’들이 몇 달을 기다려 산다는 소문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USM은 트렌디하기커녕 지금껏 본 것 중 가장 클래식한 가구이며, 사모님 흉내 낼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 가구를 들일 때도 인연이 있는데, 지금이 그때라는 사실만이 중요할 뿐이다.

이전에도 나를 물욕의 무아지경으로 몰아넣었던 몇 가지가 있다. 10년 전, 내촌목공소의 의젓한 가구를 보고 말문이 막혔던 기억(이정섭 목수는 끝끝내 싸게 주겠다는 말 대신 “대출을 받거나 적금을 깨라”고 했다), 덴마크 디자이너 폴 카도비우스가 1911년에 만들었다는 ‘쉘빙 시스템’(집을 지으면 벽을 모두 이걸로 채우겠다고 다짐했다), 디자이너 마르티노 감페르가 만든 의자(집에 있는 의자를 모두 이걸로 바꾸고 싶다). 그중 친정의 장롱은 나를 가장 애태웠다. 오동나무로 만들어진 장롱은 아버지가 태어나기도 전, 할아버지가 첫 월급을 모아 일본인 장인에게 직접 산 것이다. 어린 아버지가 표창을 던지고 놀다가 선비같은 할아버지에게 흠씬 두들겨 맞았다는 바로 그 장롱. 지금도 아버지는 틈만 나면 당신들의 시간을 지켜온 장롱을 닦으신다. 내가 그 장롱을 탐낼 수 없는 진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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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과 인간의 관계를 연구한 사물연구학자(Thing Studies)들은 나이에 따라 물건에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도 변화한다고 말한다. 나도 예전엔 “내가 가진 것이 곧 나다”의 주문에 입각하여, 그 멋진 가구를 갖는 게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 혹은 일종의 신분 상승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인간의 자아는 자기 것이라 부를 수 있는 모든 것의 총합”이라는 말에 더 수긍이 간다. 이 물건이 나를 더 근사한 사람으로 만들어줄 거라는 기대보다도 내가 이 물건을 더 가치 있게 만들겠다는 포부와 존중이 먼저 생긴다. 어떤 소유물은 실제 안과 밖, 나와 타인의 경계를 이룬다. 이 ‘진화형 가구’의 가치가 나의 삶을, 나의 공간뿐 아니라 시간까지 내 손으로 만들어가고 싶다는 현대인의 본질적인 바람과 일맥상통하는 셈이다.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의 말을 USM을 통해 확인하게 되었다고나 할까. “우리는 자기 것에 대해 자신과 비슷한 감정을 느끼며 자기 것을 자기 자신과 비슷하게 대우한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USM의 모토는 ‘Make it Yours’다.

나는 곧 함께 살 USM과 잘 지내는 법을 몇 가지 찾았다. 근사한 사진집뿐 아니라 아이들의 동화책도 꽂아 함께 사용할 생각이다(그러는 김에 건축가 황두진의 철학처럼 딸아이에게 어른이 되어도 쓸 수 있는 책상을 선물할까 고민 중이다). 지금의 2단 서랍장을 거대한 책장으로 하루빨리 ‘증축’하기 위해 조바심 내지 않을 것이다. ‘뉴 페이스’를 들이느라 내 곁에 묵묵히 있어준 ‘올드 멤버’들을 외면하지 않겠다. 내친김에 나는 K체어의 시트 부분만 따로 판매한다는 걸 알아내 당장 구입했고, 원목 사이드보드도 반질반질 윤이 나게 닦아주었다. 참 오랜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