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illennials

더 이상 디자이너 선생님은 없다. 대신 디자이너 친구들이 생겼다. 서울 패션계에 등장한 ‘밀레니얼 세대 패션 루키’들의 전염성 높은 젊은 에너지.

 

The-Siri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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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시리우스의 정연찬은 스물다섯의 나이를 믿기 어려울 정도로 차분하다. “옷이 하나도 안 팔리면 어떡해요?”라는 질문으로 도발해도 3초 정도 기다린 다음 “물론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긴 하지만요”라고 운을 떼곤 한다. 그러한 느긋한 성격은 그의 옷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우주에 있는 별을 담아내고자 했던 2017년 가을 컬렉션은 디테일이나 컨셉, 완성도 중 부족한 것이 없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눈에 띄는 자수 장식, 고급스러운 소재와 뛰어난 바느질, 우주를 닮은 모빌을 이용한 스타일링까지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DDP를 벗어나 경리단 골목 속 작은 갤러리에서 프레젠테이션을 선보인 방식조차 칭찬할 만했다. 그는 올해 초 런던 패션 위크 기간 동안 열린 ‘인터내셔널 패션 쇼케이스’에서 후보 80명 중 우승을 차지했다. 덕분에 그는 9월 밀라노 패션 위크에서 정식 데뷔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세계 무대에서 정식으로 인사를 올릴 기대에 떨릴 만도 하지만, 눈치채긴 어렵다. “근사한 관객들에게 근사한 선물을 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Blind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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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블라인드니스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신규용은 자신이 입고 싶은 옷을 만들고 싶었다. 심플한 브라운 스웨이드 재킷, 플라워 프린트의 네오프렌 티셔츠 등은 꽤나 인기를 끌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디자이너는 자신의 목표에 대한 혼란을 느꼈다. ‘내가 왜 디자인을 하고 있는 걸까?’라는 질문은 그를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었다. 함께하던 파트너가 떠나고, 가구 디자인을 공부한 박지선과 함께한 것도 그즈음. 그 실험을 처음 시작했던 2016년 봄 컬렉션은 마침 서울을 찾은 수지 멘키스의 시선을 끌었다. 덕분에 좀더 과감하게 용기를 냈던 다음 컬렉션은 더 많은 해외 프레스들의 관심을 끌 수 있었다. 그리고 올해 초에는 전 세계에서 총 1,200팀이 지원했던 LVMH 프라이즈에서 21팀을 뽑은 ‘세미 파이널리스트’에 올랐다. 3월 초에는 파리에서 칼 라거펠트, 안나 윈투어 등 패션계 전문가 45명에게 자신의 옷을 선보일 기회도 가졌다.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함께 후보에 오른 다른 디자이너들을 보며 용기를 가질 수도 있었고요.” 비록 8명을 뽑는 최종 후보에 오르진 못했지만, 블라인드니스의 변화는 계속된다. “새 길을 찾았으니, 이제 그 길을 달리는 일만 남았습니다.”

 

Window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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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이 전혀 다른 친구 셋이 모여서 하나의 옷을 만들면 어떤 모습일까. 윈도우00은 그 은밀한 실험의 결과다. 런던의 패션 명문 센트럴 세인트 마틴에서 남성복 디자인을 공부하고 있는 정태양, 모시현, 정성철은 이 실험을 위해 모였다. 졸업을 위해선 아직 시간이 남았지만, 브랜드를 만드는 데 걸림돌은 되지 못했다. “지금 우리이기에 만들 수 있는 옷이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가 지닌 어떤 미숙함이 누구에겐 신선함이 되길 바랍니다.” 정태양이 그 시작을 이렇게 말했다. 서울 패션 위크가 시작되기 전날 논현동의 한 주택에서 열린 그들의 데뷔 쇼는 일종의 패션 실험실이었다. 남자를 위한 트위드 재킷, 비단으로 만든 롱 드레스 등 남성과 여성 그 사이에 존재하는 누군가를 위한 옷은 분명 새로웠다. 자신들이 어떤 이미지로 남을지에 대한 고민도 잊지 않았다. 최랄라를 비롯한 친분 있는 사진가가 해석한 룩북과 영상은 휴대폰으로 패션을 만나는 요즘 세대의 고객들과 일맥상통하는 점. “만인을 위한 패션은 아닙니다. 하지만 저희 친구들, 또래들이 특별한 날을 위해 저희 옷을 떠올리면 저희는 성공한 셈입니다.”

 

Hyunwoo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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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디자이너에게 콘테스트와 어워드 등의 기회는 단순히 금전적인 지원 그 이상을 의미한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릴 수도 있고, 생각하지 못한 관계를 이어주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기도 한다. 올해 사디(SADI)를 졸업한 김현우는 그런 면에서 운이 좋다. 대한민국 패션대전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는 동시에 프랑스 남부에서 열리는 이에르 패션 페스티벌의 최종 후보에 올랐다. 줄리앙 도세나, 안토니 바카렐로 등 스타 디자이너가 탄생한 그곳에서 4월 말 디자이너로서의 자신을 증명해 보여야 한다. 우선 그의 무기는 <흡혈 식물 대소동>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졸업 컬렉션이다. 바닥까지 늘어진 실타래와 같은 기괴한 상상력과 매력적인 트렌치를 디자인할 줄 아는 상업성이 함께 돋보이는 작업들. 그 이후의 김현우는 지금으로선 미정이다. ‘스튜디오 콘크리트’의 일원으로 그곳에서 준비하는 새로운 패션 프로젝트를 맡고 있지만, 자신의 브랜드를 시작할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실험적인 디자인을 포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단순히 보여주기 위한 식이나, 대회만을 위한 디자인은 아닙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저만의 플랫폼이 필요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