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llennial Dollar Baby

엉덩이 무겁기로 소문난 프레스티지 브랜드가 달라지고 있다. 밀레니얼 형용사에 몸을 맞춰야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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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198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초까지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 바로 직전에 태어났다. 뼈대 있는 전문 기사를 선보여야 하는 <보그>에 다니고 있지만 오디언스는 그림으로 커뮤니케이션 하길 좋아하는 세대라 생각이 많아진다.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프레스티지, 쉽게 말해 백화점에서 파는 비싼 화장품 브랜드이다.

넓게 보자면 뷰티 업계는 밀레니얼의 수혜자다. 저렴한 디지털 홍보 수단이 널려 있고 ‘삐까번쩍’한 매장이 없어도 온라인 쇼핑을 선호하는 세대에겐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마진을 줄여 더 싸게 팔 수 있으니 문턱이 낮고 친근하다. 소비자와 긴밀히 대화하며 변화를 꾀하기엔 가격도, 컨셉도 가벼울수록 좋으니까. 반면 럭셔리 뷰티 브랜드에 밀레니얼은 뜨거운 감자다. 갑자기 가격을 파괴할 수 없고, 유행에 편승해 프리 몰드에 몸을 담그기엔 자존심이 허락지 않는다. 변화와 불황이 겹치며 수세에 몰리는 듯했던 프레스티지 브랜드에서 반전을 꾀하고 있음을 느낀 건 작년부터였다. 몇 년간 스터디한 끝에 새 단장을 시작한 것이다.

공유할 만한

‘인스타그래머블’이란 신조어는 ‘공유할 만한 정보’와 동일한 뜻이다. 휴대폰에 절로 손이 가는 신선한 비주얼이 절체절명이기에 패키지 디자인은 한층 더 중요해졌다. 이건 스킨케어에도 해당되는 얘기. 디올이 이달 론칭하는 ‘라이프’는 텍스처까지 ‘써보고 싶게 만드는 것’이 포인트였다. “사용감이 절로 느껴지는 컬러와 제형으로 표현해야 했습니다.” 크리스챤 디올 스킨케어 마케팅 디렉터 올리비에 한의 설명이다.

성격 급한

작년 이맘때 촬영장에 도착한 15ml 튜브 다섯 개. 립글로스인가 싶은 크기였지만 그건 ‘응급 케어’라는 컨셉으로 출시된 겔랑 ‘마이 수퍼 팁스’ 5총사였다. 한 제품을 오래 사용하는 것을 지겨워하고 자기에게 맞는 것만 콕 집어 사용하려는 요즘 세대의 습성에 기초해 기획된 스킨케어 제품으로, Y들의 깊은 관심을 얻어냈다.

놀아볼 만한

예쁘게 생긴 것 이상, 제품 안에 가지고 놀 만한 거리가 담겨 있어야 밀레니얼 뷰티다. 가장 낯설고도 놀라운 변신을 선보인 건 YSL 뷰티였다. 장난감 같은 투톤 스틱과 앙증맞은 틴트 입술이 립밤 안에 박혀 있는 ‘볼륍떼 틴트 인 밤’에 대해 설왕설래 말이 많았지만, PR 매니저 김서희 부장은 이것이 YSL 뷰티가 밀레니얼을 대하는 방법이라고 설명한다. “록시크 느낌의 브랜드 성격과 ‘플레이’를 지향하는 그들의 성향을 결합한 것이죠. 무심히 발라도 힙한 연출이 가능하게 기획했어요.” 도전에 대한 반응? 한국의 밀레니얼은 조기 품절로 응답했다.

자연적이고 자연스러운

라네즈가 미국 세포라 카운슬러들과 뷰티 전문가를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의하면 밀레니얼에게 ‘내추럴 웰니스’는 언제나 유효한 키워드다. 그들은 ‘내추럴’과 ‘오가닉’에 약하고 ‘Free’에 민감하다. ‘라이프’가 내추럴 성분을 사용하고 조금이라도 종이를 아끼고자 패키지 사이즈를 줄인 것은 디올이 궁극적으로 친환경 브랜드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종이 설명서도 아예 생략했다. 사용법과 효용쯤, 엄지 놀림 몇 번으로 찾아낼 수 있을 테니까.

보여주는

셀피를 즐기는 세대에게 메이크업 제품은 0순위다. 스킨케어가 강한 브랜드도 이에 보조를 맞춰야 했다. 에스티 로더는 쿠션으로 유입된 밀레니얼의 소중함에 주목하고 그들이 쉽게 문턱을 넘을 수 있는 제품을 기획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그 고민의 집결체가 새로운 립스틱, ‘퓨어 컬러 러브’다. 프레스티지 브랜드 사상 첫 3만원대 립스틱으로, 크고 럭셔리한 마그네틱 패키지 대신 아크릴 소재의 콤팩트한 디자인을 선택했다. 슬로건은 ‘믹스, 리믹스, 크리에이트 유어 룩’. 완벽한 적응이 아닐 수 없다. 쿠션 스틱 또한 기대가 크다.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베이스 제품에 호기심 많은 밀레니얼이 대거 입덕할 것이 분명하니까.

경험해본 적 있는

설화수의 체험 키트 소식은 많은 것을 의미한다. 경험을 나누는 속성이 있고, 써봐야만 진입할 가능성이 높은 소비자를 앞에 두고 언제까지고 수염만 쓰다듬고 있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경험하게 해 성과를 얻어낸 브랜드 중 하나가 겔랑. PR 매니저 안지나 부장은 좋은 제품인데 알려지지 않았다면 일단 경험하게 하는 것이 답이라고 말한다. “샘플링에 정말 많은 힘을 쏟았어요. 그 결과 각종 랭킹 사이트 파운데이션 부문에서 네 개가 톱 10에 진입하는 쾌거를 얻었죠.”

개인적인

작년 랑콤은 노드스트롬 백화점에서 즉석 파운데이션을 만들어주는 부스를 운영했다. 측정을 통해 딱 맞는 컬러를 제조해주는 이 퍼포먼스는 큰 반향을 일으켰다. 유난히 시뮬레이션을 좋아하는 밀레니얼들은 ‘나만을 위한’ 것을 제안하면 큰 관심을 보인다. 클라란스와 키엘 등이 원하는 앰풀을 섞어 쓰는 제품을 개발하거나, SK-II가 기계 측정을 한 후 제품을 처방하는 서비스를 강화하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럭셔리 뷰티의 밀레니얼 구애 리포트는 여기까지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밀레니얼이 윤리적 브랜드에 반응한다는 리포트에 “좋아요는 누르겠지만 윤리를 지키느라 올라간 비용을 기꺼이 감당할 만큼 부자는 아니다”라는 반박이 존재하고, 유명세보다는 가치와 질을 우선시한 다지만 YSL 뷰티 쿠션의 연관 검색어는 ‘호환되는 저렴이 쿠션’이다. 이뿐인가. 세포라 카운슬러들은 밀레니얼들이 멀티펑션의 오가닉 뷰티를 지향하는 동시에 과학적이고 혁신적인 제품을 기다린다고도 답했다. 밀레니얼, 도대체 그들은 무엇을 원한단 말인가?

의문의 끝에 캘빈 클라인 ‘ck 올’이 있다. 90년대 X세대를 형상화한 ‘ck 원’의 조향사 듀오가 근 30년이 지난 2017, 밀레니얼을 위해 다시 뭉쳤다. 그들은 “장벽이나 고정관념 없는, 텅 빈 슬레이트 같은 깨끗함으로 개인주의를 찬양한다”고 설명한다. 지나치게 하얘서 흐릿해 보이기까지 하는 패키지의 뒷면은 완벽한 백지. 캘빈 클라인은 이곳에 자신만의 메시지를 그려 넣는 캠페인을 진행할 예정이다. 슬로건은 “모두가 되고, 하나가 되고, 그 자체가 된다”. ‘아무 말 대잔치’처럼 보이지만 그게 그냥 밀레니얼이다. 쓰고 싶은 대로 써지고 읽히는 대로 읽히며, 100명의 100가지 취향이 존재하는 그런 세대 말이다. 이것이 뷰티 브랜드가 중심을 잃지 말아야 할 이유다.

이제 곧 Z 제너레이션이 온다. 초등학교 때 이미 메이크업을 시작하고 식약처에서 허가한 어린이 화장품과 엄마의 화장대 사이에서 욕망을 저울질하는 아주 새로운 세대다. 트렌드 예측 기관, 뷰티스트림즈의 란부 대표는 그들을 밀레니얼처럼 다루려 하면 큰코다칠 거라 경고한다. “Z는 지나치게 정보가 많아서 오히려 아무것도 믿지 못하고, 실컷 놀아봐서 끝내는 묵직한 진실만 갈구하게 될 겁니다.” 밀레니얼이 지금 백지에 무엇을 그릴지 X세대인 나는 모르겠다. 하지만 Z가 A로 회귀하게 될 미래에도 결국 브랜드가 지켜내야 할 것은 하나다. 시대를 관통하는 뷰티의 뿌리, ‘진심’ 말이다. 시대에 적응하되, 정체성을 잃지 않고 나아가길. 메가히트의 꿈은 좌절되었어도 로열티 높은 팬과 영속을 보장받을 수 있을테니, 그것만으로도 족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