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방 라이프

각방 쓰기는 불화의 상징이 아니라 건강한 자기애의 발산이다. 자신만의 공간이 필요하도록 태어난 인류가 함께 홀로 살기 를 실천하는 법.

HER ROOM블라우스는 오브제(Obzéé), 스커트는 미샤(Michaa), 슈즈는 롱샴(Longchamp), 시계는 스톤헨지(Stonehenge), 클러치는 스마이슨(Smythson), 스트랩 샌들은 살바토레 페라가모(Salvatore Ferragamo), 귀고리는 H&M.

HER ROOM
블라우스는 오브제(Obzéé), 스커트는 미샤(Michaa), 슈즈는 롱샴(Longchamp), 시계는 스톤헨지(Stonehenge), 클러치는 스마이슨(Smythson), 스트랩 샌들은 살바토레 페라가모(Salvatore Ferragamo), 귀고리는 H&M.

올해 초 출간된 장클로드 카우프만의 <각방 예찬>은 베스트셀러에 오르진 못했지만 ‘차마 말하지 못했던 부부 침대 문제’를 침실 밖으로 끌어냈다. 30년 넘게 부부 관계를 연구해온 저자가 만난 150여 커플은 함께 방을 쓰는 문제에 대해 솔직한 심정을 전한다. “부부 관계가 죽었구나 하고 생각할 때가 언제냐면, 아침에 일어나서 처음 드는 느낌이 살인 충동일 때죠.” “남편이 코를 골 때면 맹수가 으르렁대는 것 같아요. 침대 속에 표범이 한 마리 있는 거죠.” 이와 같은 갈등을 거쳐 각방을 쓰게 된 커플들은 다음과 같은 소감을 전한다. “이제 좀 살 것 같아요. 천국이 아닌가 싶고, 사랑에 짜릿한 맛이 더해지죠!” 그리하여 저자는 결론을 내린다. 사랑하려면 떨어져서 자야 한다고. 같이 자는 한 침대는 사랑을 죽일 수도 있다고 말이다.

나는 이 책의 첫 장부터 마지막 장 마침표까지 동의한다. 결혼한다고 상상했을 때 가장 두려웠던 건 ‘내 공간이 사라지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었다. 남자를 미드로 배우던 시절, <섹스 앤 더 시티> 캐리는 이 걱정을 공포심으로 격상시켰다. 에이든과 동거를 시작한 캐리는 자신의 공간을 무신경하게 침범하는 그의 옷가지 등을 못 견디고 커튼을 달아버렸다. “당신을 정말 사랑하지만 나는 내 공간이 필요해!” 버지니아 울프도 말했다. 여성이 자유의 문을 열 수 있는 두 가지 열쇠만 찾을 수 있다면 미래에는 여성 셰익스피어가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그 두 개의 열쇠는 고정적인 소득과 자기만의 방이다. 그리하여 결혼 전 나는 남편에게 ‘방귀방’을 만들어주지 않으면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가스를 배설하는 쾌락을 누리지 못할까 봐 제안했던, 농담 한 톨 섞지 않은 진심이었다. 하지만 캐리도, 버지니아 울프도 아니었던 나는 커튼 고리 한번 달아보지 못하고 결혼했다.

결혼 후 각방에 대한 욕구가 일어나는 시간은 연애할 때 콩깍지가 벗겨지기까지의 시간과 동일하다. 상대방 때문에 나의 휴식 추구권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질 때부터다. 잠자는 습관이 정확히 일치하는 파트너를 만나는 일은 돈 많고 잘생겼으며 번듯한 직업이 있는데 나만 좋아하는 남자를 만날 가능성보다 낮다. 우리 모두는 이불을 돌돌 말거나, 김밥처럼 굴러다니거나, 8분의 6 박자로 코를 골거나, TV를 켜놓거나, 이를 박박 간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는 모두 숨을 쉰다. 파트너의 숙면을 방해하는 건 숨결 한 줌일 때도 있다. 남편은 다리 사이에 ‘뭔가’를 끼고 자는 습관이 있었는데 결혼 후 ‘뭔가’를 나로 정한 모양이었다. 이불이나 기다란 베개보다 따끈한 피가 흐르는 아내가 수면 애착물로 적당했을지는 몰라도 나는 출근길 만원 버스에 껴 있는 것만 같았다. 숨 막힌다고 항변했지만 스스로 날씬하다고 자신하는 남편은 자기 다리가 무거울 수 있다는 사실을 믿을 생각이 없었다.

HIS ROOM재킷과 셔츠, 팬츠는 코스(Cos), 안경은 스테판 크리스티앙(Stephane Christian), 슈즈는 브로이어 블루(Breuer Bleu), 브리프케이스는 스마이슨(Smythson), 스카프는 브로이어 블루, 벨트는 S.T. 듀퐁(S.T. Dupont), 선글라스는 스테판 크리스티앙, 시계는 엠포리오 아르마니 바이 파슬(Emporio Armani by Fossil).

HIS ROOM
재킷과 셔츠, 팬츠는 코스(Cos), 안경은 스테판 크리스티앙(Stephane Christian), 슈즈는 브로이어 블루(Breuer Bleu), 브리프케이스는 스마이슨(Smythson), 스카프는 브로이어 블루, 벨트는 S.T. 듀퐁(S.T. Dupont), 선글라스는 스테판 크리스티앙, 시계는 엠포리오 아르마니 바이 파슬(Emporio Armani by Fossil).

침대는 인간 전용 충전기다. 고된 하루를 마치고 하루 종일 몸을 조이던 스타킹 따위의 허물로부터 빠져나와 침대로 기어 들어갔을 때 찾아오는 안도감이란. 폭신한 시트는 날 선 근육에 이제 그만 쉬어도 된다고 토닥인다. 침대에 기대 마시는 캔 맥주는 독일 브루어리에서 갓 뽑은 맥주보다 맛있고, 이불 동굴에서 보는 웹툰은 할리우드에서 4D로 보는 애니메이션보다 재미있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나면 그 신성한 자유의 땅에 침입자가 생긴다. 침대를 나눠 써야 한다면? 충전의 속도는 더뎌진다. 적당히 차갑고 사각거려야 할 시트가 뜨뜻미지근하게 데워져 있다면? 매번 중고 충전기를 사용하는 셈이다. 게다가 우리에겐 밀폐된 공간에서 혼자 하고 싶은 일이 제법 있다. 새끼손가락으로 시원하게 코 파기, 멍 때리며 끝도 없이 인터넷 쇼핑몰 클릭하기 같은 일. 그냥 아무도 없길 바라는 순간들. 침대라는 주제에 천착해온 작가 최수철은 침대 위에 누워 그치지 않는 영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강아지도 오줌으로 자기 영역을 표시하는데 어째서 우리는 각자의 땅을 잃어버린 걸까. 도대체 언제부터 결혼하면 한 침대에서 자는 게 당연해진 걸까. 각자 다른 라이프스타일로 불면의 밤을 보냈던 부모님은 환갑을 넘겨서야 다른 방에서 잠을 청하신다. 하지만 나는 부모님이 각방을 쓴다고 말씀하시는 걸 들어본 적이 없다. 얼마 전 결혼한 친구는 집들이 날 싱글 침대가 두 개 놓여 있는 침실 문을 부랴부랴 닫으며 “남편 코골이가 심해서…”라고 묻지도 않은 질문에 변명을 늘어놓았다. ‘각방’을 검색하면 ‘드라마 <내일 그대와> 분노한 신민아, 이제훈에게 각방 쓰자고 제안’ ‘강부자, 이묵원과 금혼식 한결같은 순애보… 절대 각방 안 쓴다’ 같은 기사가 뜬다. 50% 이상의 부부가 각방을 사용한다가 ‘팩트’여도(<여성조선>의 설문에 따르면 부부 400쌍 중 각방을 쓰는 비율은 52%. 놀라운 수치다!) 세상은 여전히 각방을 별거의 전 단계이자 불화의 증거로 여긴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극빈층을 제외하고 부부는 한 침대에서 자지 않았다. 로마 시대에는 침대에서 먹고 읽고 쓰고 손님을 맞이했다고 전해진다. 가장 편안한 공간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본능적 상황에 도덕적 잣대를 들이민 건 종교 집단이다. 중세 말 가톨릭 교회는 침대를 강력한 부부 결합의 상징으로 정착시켰고 침대를 따로 쓰는 일은 불경한 일이 되어버렸다. <파리지엔은 남자를 위해 미니스커트를 입지 않는다>의 저자는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할머니, 할아버지는 각자 자기 방에서 정숙하게 따로 잤다고 기억한다. 시대에 따라 부부에게 요구되는 도리는 달랐고, 부부가 쓰는 침대에는 점점 더 가치와 이미지가 덧입혀졌다. 한마디로 ‘신화’가 생긴 것이다.

침대 신화에서 자유로운 쪽은 오히려 침대 당사자다. 잠자는 배우자 옆에서 3단 점프를 하는 광고로 잠자리의 편안함을 강조하던 시몬스 침대는 말하자면 우린 모두 홀로 편하게 자고 싶은 욕구가 있다는 사실을 말한 선구자다. 요즘 침대는 이보다 좀더 솔직하다. ‘따로 또 같이’를 대놓고 전면에 내세운다. 모션 베드라고 불리는 시대의 발명품은 싱글 침대 두 개로 구성된 트윈 베드다. 레고 블록처럼 언제든 뗐다 붙였다 할 수 있다. 등판, 다리판도 척척 움직여 무지개 자세로 책을 보든 물구나무서기 자세로 잠을 자든 상대방을 방해하지 않고 방해받지 않는다. 정말 천재적인 가구가 아닐 수 없다. 이번 생에 또 한 번 결혼하는 미친 짓을 저지른다면 밥솥보다 먼저 구매하려고 생각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결혼 9년 차가 된 지금 나는 남편과 따로 잔다. “우리 따로 잘까?”라는 말을 입 밖에 낸 적은 없으니 사회적 통념에 당당히 맞선 건 아니다. 각방 라이프는 마치 연어가 산란기가 되면 어릴 때 살던 곳으로 돌아가듯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한 명이 침대를 차지하면 한 명은 소파로, 한 명이 소파를 차지하면 한 명은 침대로 향한다. 라텍스 매트리스 침대가 솜 쿠션 소파보다 쾌적하지만 이를 두고 다투지 않는다. 라텍스 매트리스에서 둘이 부대끼는 것보다 소파에서 쪽잠을 청하는 편이 행복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부터다. 침대에서 불가사리처럼 온몸을 펼치면 기분이 좋지만 같은 욕구를 가진 남편과 다리 각도를 맞추면서까지 누리고 싶은 행복은 아니다. 각자 자리를 잡고 나면 내일을 위한 휴식에 돌입한다. TV, 책, 스마트폰 등 사각형의 세계에 빠져 있는 상태는 오르가슴이 주는 쾌락보다 짜릿하지 않지만 손 잡기처럼 평화롭다. 우리 일상은 작은 평화로 채워지고 유지된다. 나는 ‘각자의 방’에서 로맨스 소설 <김비
서가 왜 그럴까>를 읽으며 부회장 캐릭터에 빠져들고 있지만 남편에 대한 마음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