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니스

피의 예언

2017.05.08

by VOGUE

    피의 예언

    ‘혈액 가라사대, 병이 있으리라 하매…’ 피는 당신의 어제와 오늘을 기록한 자서전이자 내일의 예언서다. 건강한 당신이 미리 혈액검사를 해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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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보 대행사를 경영하는 39세 골드미스 P에게 최근 고민이 생겼다. 생리 양이 눈에 띄게 줄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막연한 미래지만 언젠가 결혼하고 아이도 갖게 되리라 생각했는데, ‘그때’에 이르지 못한 채 폐경을 맞는 게 아닐까 심히 불안해졌다. 즉시 산부인과를 찾지 못한 건 부끄러움 때문이었다. “다리를 벌리고 싶지 않아요. 아무리 상대가 의사라 해도.”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 때문에 굳이 수치심을 자극하는 경험을 하고 싶지 않다는 거다. 그런 그녀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이야기는 하나뿐. “다리가 아니라 팔을 내주면 될 텐데요.” 잠시 멍한 얼굴을 하던 그녀, 그길로 산부인과에서 채혈하고 몇주 후 결과를 받았다. ‘호르몬 수치를 보니 아직 괜찮다. 나중에 인공수정을 시도하게 될 때도 성공률이 높을 것이다.’ 안심한 P는 즉시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피검사만으로도 ‘내 안의 여자’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있다니! 이렇게 간단할 줄은 몰랐네요.”

    지‘피’지기

    지금 세계 과학계는 무병장수를 위한 맞춤 컨설팅 이야기로 떠들썩하다. 젊고 건강할 때 혈액검사와 함께 DNA를 분석한 뒤 그에 맞게 미리 라이프스타일을 재정비하는 의료 서비스가 대중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트렌드 캐처 <보그>가 이를 놓칠 리 없다. 2016년 11월, <보그 코리아>가 피검사를 통해 자신에게 맞는 음식을 찾아 몸속 염증을 줄여야 한다는 기사를 게재했을 즈음, 호주 <보그>의 헬스 에디터 조디 스콧도 DNA 푸드 컨설팅을 리포팅했다. 그리고 지난 2월 미국 <보그> 또한 푸드 엑스퍼트 크리스틴 물크가 이 방법으로 다시 스키니 진을 입게 된 사연을 특필했다. ‘피’와 ‘DNA’는 이제 과학 주간지 <네이처>보다 하이패션지 <보그>가 더 주목하는 키워드가 된 것이다.

    채혈은 건강과 미에 대해 누구보다도 기민하게 움직이는 국내 스타들과 VIP 사이에서 통과의례가 된 지 오래. “빠르고 안전한 항노화 진단을 위함”이라는 게 린 클리닉 김수경 원장의 설명이다. “최근 안티에이징은 보다 근거 중심적인 치료를 지향하고 있어요. 혈액은 곧 환자의 자서전. 그것을 정독함으로써 본인의 몸에 대해 보다 깊이 통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됨은 물론, 지속적이고 근본적인 케어를 가능케 하는 동력이 됩니다.” 실제 항노화 클리닉을 방문하면 혈당, 간과 신장의 기능, 지질 상태 체크 같은 일반 화학 검사와 염증 수치, 각종 호르몬 검사 등을 실시한다. 그리고 그것이 노화에 미칠 범위를 예측한 뒤 맞춤형 답을 제시한다.

    혈액검사 하는 데는 ‘지름길’을 찾는 목적도 있다. 뷰티 컨설턴트 안미선은 아무리 비싼 케어로 공을 들여도 전혀 티가 나지 않던 한 한류 스타를 예로 든다. “백약이 무효하더니 몸속 취약 포인트를 찾아내 밸런스를 잡고 나자 시술의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하더라고요.” 피로가 누적된 간 때문에 시술 후 재생이 더뎠다는 것. “그 이후로 제가 하는 뷰티 컨설팅의 첫 단계는 혈액검사가 됐죠.”

    이젠 병증이 있어 피를 검사하는 시대가 아니다. 아프지 않기 위해, 아름답게 나이 들기 위해 피의 내역을 검토해야 하는 때가 된 것이다.

    피의 내력

    한 걸음 더 들어가볼까? “피가 가진 정보는 정말 방대해요. 마음만 먹으면 내 몸에 한족과 몽고족이 몇 퍼센트씩 섞여 있는지, 조상의 비율까지 알아낼 수 있어요.” 더 클리닉 김명신 원장의 말에 좀더 심화된 검사에 도전해보고 싶다고 요청했고, 나의 피는 또 그렇게 ‘DNA 링크’로 떠났다.

    나는 몸이 약한 것에 대한 열등감이 있다. 세 자매가 같은 강도로 노동을 해도 막내인 내가 가장 먼저 앓아눕고, 조금만 열심히 운동한 날이면 누가 밟고 지나간 것처럼 몸이 쑤신다. ‘다른 사람들도 다 똑같이 힘든데 내가 엄살을 부리는 걸까.’ 가끔 궁금하기까지 했다. “몸이 염증에 얼마나 취약한지 알려주는 지표, 아디포넥틴과 고감도 C반응 단백 수치가 높네요. 평소 근육통을 쉽게 느끼거나 몸살이 잘 나는 체질인 거죠.” 염증? 노화와 질병의 원인이라는 그것? 그렇다면 나는 다른 사람보다 관절염이나 혈관 노화 관련 질환에 걸릴 확률이 높고 세균 감염에도 더 취약하다는 뜻이 아닌가. 타고난 약골에 전염병이 돌면 먼저 죽을 가능성이 높은 사람이라니! 이뿐 아니다. 아킬레스건도 약하다. 김 원장의 설명에 따르면 멀쩡히 잘 걷다가 스텝이 꼬이며 잘 넘어지는 사람들은 그 원인이 발목에 있는 경우가 많다. “아킬레스건이 지나치게 뻣뻣하거나 혹은 약해서 적절한 보행이 안 되는 거랍니다.” 이런 사람들은 유난히 탁탁 소리를 내며 발바닥 전체로 내려찍듯 걷는 경향이 있고, 엉덩이가 납작할 가능성이 높다. 연결된 근육 중 하나인 중둔근이 퇴화되는 거다. 내 엉덩이를 돌아보며 한숨을 내쉬는 사이 김 원장은 더 무서운 얘기를 덧붙인다. “나이가 들어 뼈가 약해진 상태에 낙상의 확률까지 높다면 설상가상이죠. 골절의 가능성이 그만큼 커지니까요.” 늙으면 뼈도 빨리 안 붙는다던데 이를 어쩌지? 불안감이 커져만 간다.

    게다가 알코올 의존도가 높으니 절대 혼자 술 먹는 기회를 만들지 말라는 둥, 음식의 맛에 지나치게 민감한 편이니 과식을 경계하라는 둥 잔소리가 적혀 있다. 포만 민감도, 지구력, 근력, 운동 후 회복도, 내 몸 어느 부위에 살이 잘 붙을지까지 시시콜콜 모두 적혀 있는 한 권의 리포트.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이렇게 태어난 것을!

    피검사, 꽃길의 서막

    “걱정할 거 없어요. 몸의 운명은 타고나는 것이 30%, 만들어지는 게 70%니까요.” 김명신 원장은 사색이 된 나를 위로하며 “피검사는 더 오래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꽃길의 서막”이라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나같이 골골한 유전자를 타고났다면 아주 소량의 아스피린을 장복하거나 오메가 3, 6, 9를 비율에 맞춰 잘 먹어두면 된다. “운동 후 근육통이 왔을 때를 떠올려보세요. 그것도 일종의 염증이지만 치료를 위해 몸의 재생 라인이 가동된 뒤에는 더 단단한 근육을 갖게 되잖아요? 몸속의 염증도 같은 원리예요. 미세한 염증이 발생했을 때마다 적절한 대응을 해온 몸은 무감한 사람들보다 오히려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어요.” ‘골골 팔십’이라더니 옛말에 틀린 것이 하나 없구나! 아킬레스건 또한 스트레칭을 열심히 해서 유연성을 확보하고, 발목의 약점을 보조할 수 있는 근육을 강화하는 운동을 미리 하면 된다. 그렇게 해서 얻어지는 멋진 각선미는 덤이다.

    피의 내력을 아는 건 자기를 받아들이고 가장 잘 맞는 헬스 케어 스타일을 간구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지구력이 약하다면 스트레스 받아가며 심장이 터져라 오래 달릴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강약 리듬을 살려 서킷 트레이닝을 하면서 견딜 만큼 운동하면 된다. 그렇게 하루하루 단련하다 보면 결국엔 그 누구보다도 강한 몸을 갖게 될 터이니, 이것이 전화위복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어차피 인생이란 끝까지 살아봐야 아는 것. 유전자의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그 끝은 창대할 수도 있다. 당신이 피의 예언에 귀를 기울이는 지혜만 갖고 있다면 말이다.

      에디터
      백지수
      포토그래퍼
      LEE SHIN G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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