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시5분의 인간을 위한 쇼핑

인공지능이 디자인한 옷을 구입하는 날이 왔다. 내 성향과 스타일에 따른 맞춤 옷이 정기적으로 배송된다. 일명 AI 퍼스널 쇼퍼는 내 옷장을 ‘시크’하게 만들 수 있을까?

AI 퍼스널쇼퍼 콜라주

“사만다, 오늘 파티에선 다 죽여야겠어. 가장 뜨거운 걸로 골라줘.” 옷장에 대고 이런 말을 할 날도 머지않았다. 인공지능이 맞춤 의상을 골라주는 서비스 ‘스티치 픽스’가 성행 중이다. 한 달에 옷 다섯 벌을 배송하면, 마음에 드는 것만 결제하는 서비스다. 데이터를 주면 데이터 간 상관관계, 조건, 실제 구매 등의 복잡한 일을 줄여나가 단순화시키고 유의미한 결과를 내놓는 것, 바로 빅데이터가 기본 원리다.

어려워 보이지만 간단히 말하자면 취향에 맞는 의상을 컴퓨터가 대신 수집하는 정도다. 소비자는 스티치 픽스 가입 시 ‘보헤미안’ ‘오피스 룩’ 등 선호하는 룩을 선택하고, 어떤 슬리브를 즐겨 입는지, 잘 어울리는 팬츠의 폭은 어느 정도인지 등을 기입한다. 유행에 따르는지 혹은 자신의 룩을 유지하며 입는지, 드레스와 청바지 중 어떤 종류를 자주 입는지도 파악한다. 이후의 일은 인공지능이 수집해 결과를 보내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슬리브리스를 자주 입는 A씨가 블랙 컬러와 플라워 패턴을 선호한다고 하면 그 시즌에 맞는 상품을 수집한 후, 예산에 맞춰 스타일리스트에게 추천한다. 스타일리스트는 이 중 소비자의 성향과 예산에 가장 적합한 옷을 다섯 벌 골라낸다. 이 과정은 한 달에 20달러가 부과되며, 다섯 벌 중 한 벌 이상의 옷을 구매했을 때만 돈을 낸다.

한번 물어보자. 당신은 몇 가지 질문으로 당신 옷장을 채우는 걸 허락할 것인가. 그 뒤엔 더 많은 수학적 계산이 들어간다. 스티치 픽스의 인공지능은 인스타그램 등에서 트렌드를 빠르게 수집하고 분류한다. 구매자의 핀터레스트에 진입해 어떤 코스튬에 핀을 꽂았는지도 학습한다. 가상 옷장에 박혀 있는 무의식까지 꺼내어 재단하고 정렬한다.

이 알고리즘, 그러니까 복잡한 계산식은 넷플릭스 추천 알고리즘으로 이미 증명된 바 있다. 넷플릭스의 데이터 사이언스 앤 엔지니어링 부회장으로 일하던 콜슨(Eric Colson)이 2012년 재임하며, 기존 필터를 인공지능으로 만들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인간이 배제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소비자의 성향이 쿨하지는 않다. 그래서 이들의 취향을 이끌어줄 수 있는 스타일리스트가 존재한다. 인공지능은 데이터를 축약해서 선보이고, 인간의 감각을 덧입히는 것이다.

최근의 스티치 픽스 인공지능은 상품 디자인까지 시작했는데, 트렌드를 파악한 인공지능이 이미지화를 통해 옷을 그려내고, 실제로 만들어낼 수 없는 소재와 디자인을 매치할 경우 인간이 투입되는 식이다. 스티치 픽스는 인공지능 디자이너의 옷을 처음엔 세 벌, 연말까지는 스물네 벌 출시할 것을 예고했다. 첫 세 벌은 당연히 솔드 아웃. 큐레이션과 자체 제작 상품으로 스티치 픽스는 연 매출 3,000억원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구글의 프로젝트도 있다. 구글과 유럽 리테일 업체 자란도(Zalando)가 선보인 프로젝트 뮤제(Project Muze)는 디자인을 위한 툴이다. 패션 그 자체에만 집중하기보다는 선호하는 음악 장르, 성별, 현재 기분, 평소 스타일을 입력하고, 가상의 마네킹 위에 대강의 그림을 그리면 3D 의상을 생성해주는 방식이다. 이 과정은 스티치 픽스의 인공지능과 같이 트렌드 정보를 미리 학습해놓은 구글의 알고리즘에 의해 정해진다. 가능하다면 몇 가지 질문에 더 응답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구글의 프로젝트는 보여주기식인 경향이 있다. 인간이 입을 수 없는 의상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원죄를 가진 인류가 사탄의 뱀을 칭칭 감고 광대의 옷을 입은 꼴이 등장하니까. projectmuze.com’에서 직접 체험해보라. 생성된 의상 자체가 인류에게 내리는 형벌이다.

흔히 인공지능이 등장하면 주로 등장하는 이야기는 ‘사람의 일자리를 빼앗는가’이다. 이 두 사례는 사람의 일자리를 뺏지 않는다. 이미지를 수집하는 로봇은 이미 여러 직업군에서 쓰이고 있다. 스마트폰으로도 가능하다. 이프트(IFTTT) 앱을 검색해보라. 이미지를 분류하고 정리해 특정 직업인(스타일리스트)의 일감을 덜어주는 것에 해당한다. 비용과 피로를 줄이는 것이지 특정 인물의 일자리를 뺏는 것과 밀접한 관계는 없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은 퍼스널 쇼퍼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있다. 감각을 요하는 일이나 AI 역시 감각을 가질 수 있다. 인공지능이 단신 기사를 쓴 지는 오래되었으며, 최근엔 소설을 쓰고 있고, 작곡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있다. 언젠가 스타일리스트의 감각도 ‘정량적으로는’ 훔칠지 모른다.

다만 정성적인 영역에서의 인공지능은 굳이 인간을 대체하지 않는다. 패션에는 엄연히 격차가 있고, 파레토 법칙이 어느 정도 들어맞는다. 백화점 매출을 분석하면 주로 20% 정도의 고객이 60% 수준의 매출을 차지한다. 백화점은 이들을 위해 VVIP 등의 혜택 서비스를 만든다. 즉, 패션을 갈구하고 열망하는 20%가 있고, 그렇지 않은 80%가 있다. 나머지 80%의 소비자 역시 특별한 날의 의상과 그렇지 않은 의상을 비슷한 수준으로 구분할 것이다. 이 중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있는 퍼스널 쇼퍼는 80%의 소비자가 고르는 일상복이다. 즉 ‘저관여도’ 상품, 주로 자기 표현보다 신체를 보호하고 너무 튀지 않으며 편안한 의류를 말한다. 백화점이 아닌 온라인 숍을 기준으로 들면 파레토 법칙보단 롱테일 법칙이 강하다. 인공지능은 이 롱테일을 그럴듯한 것으로 만들어낸다.

유니클로 시대의 나에게 인공지능 퍼스널 쇼퍼는 구세주와 같다. 모니터 안에서 벌어지는 전쟁을 감내하기 위해, 목을 당기지 않는 스웨트셔츠를 입어야 칼과 방패 같은 키보드를 두들겨줄 수 있으니.

반대로 20%의 나에겐 기계의 추천은 무의미한 일이다. 우리의 기분은 오늘 8시와 8시1분에 제각각 다르다. 나의 옷장을 여는 것은 집을 나서기 직전, 8시 5분의 나여야 한다. 하이힐이 꺾이도록 급하게 뛰어나온 바로 그 말이다.

예술과 관련된 모든 것, 패션이나 음악, 미술 등은 모두 사고(Accident) 위에서 만들어졌다. 바스키아가 그랬고, 백종원과 이연복이 하나의 사고였으며, 오혁이나 베트멍이 그랬다. 어느 날 우리가 맥도날드 휴대폰 케이스를 들고 다닐지는 아무도 몰랐다. 전 인류적으로 봤을 때 그건 사고였다. 머물지 말라는. 기존 데이터에서 의미를 추출하는 인공지
능에게 사고란 분노에 휩싸인 구직자가 전원을 뽑아버리는 정도의 일일 것이다. 결국 AI는 사는 나와 만드는 나를 가장 크게 구분해줄 하나의 단추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