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화보

Fearless Females – ③

2017.05.11

by VOGUE

    Fearless Females – ③

    세기에도 여성의 삶 곳곳에는 사회 정치적 차별과 불평등이 존재한다. 우리 여자들의 개인적 경험에 공감하고 두려움 없이 수면 위로 드러내며 여성의 존재를 찬양해온 이들이 바로 패션계의 여자 디자이너들이다.

    Mary-Kate & Ashley Olsen

    케이트 블란쳇, 아티스트 레이첼 파인스타인, 메리 케이트와 애슐리 올슨, 워싱턴의 소셜라이트 겸 스타일 아이콘 디다 블레어가 뉴욕의 더 로우 매장에서 포즈를 취했다.

    케이트 블란쳇, 아티스트 레이첼 파인스타인, 메리 케이트와 애슐리 올슨, 워싱턴의 소셜라이트 겸 스타일 아이콘 디다 블레어가 뉴욕의 더 로우 매장에서 포즈를 취했다.

    “사람들은 차분하고, 순수하고, 미니멀한 방식으로 옷을 입었을 때 고급스럽게 차려입었다고 느낍니다.” 케이트 블란쳇은 말한다. 그녀는 자신이 아끼는 브랜드인 더 로우의 캐시미어 블랭킷 코트로 차분하게 멋을 냈다. 블란쳇 본인처럼 더 로우는 좋은 질 그리고 일종의 독립적인 동반 상승 효과와 동의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더 로우의 팬은 그녀만이 아니다. 메리 케이트와 애슐리 올슨의 고객들은 1990년대에 도나 카란이 뉴욕 여성들의 필수 아이템을 정의한 것과 같은 방식으로 11년 된 이 레이블이 우리 시대의 옷장을 정의하는 걸 지지하고 있다.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기까지 메리 케이트와 애슐리는 요란하지 않게, 자신들의 방식으로 아름다운 옷을 선보이며 늘 은밀하고 주의 깊게 작업해왔다. 실제로도 호들갑스러운 건 딱 질색이다. 그렇다면 지난해 6월에 서른 살이 된 전직 아역 스타인 두 사람은 어떻게 그렇게 다양하고 수많은 여성들의 옷장을 책임지게 되었을까? 이 쌍둥이 자매는 자신들의 디자인만큼이나 간결하게 대답한다. “지속성이죠.” 메리 케이트는 말한다. “우리는 정확하게 우리가 팔겠다고 약속한 것만 파는 믿을 만한 브랜드입니다.” 애슐리가 덧붙인다. “우리가 대답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는 유일한 사람은 우리 고객들이죠.” 이런 완벽주의에 가까운 단호함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고, 연예계와 금융계의 중역들과 수많은 회의를 해온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이 두 사람에게 ‘좋은 영향과 나쁜 영향’을 판별할 수 있는 능력을 연마하게 해주었다고 애슐리는 말한다. “우리는 우리 브랜드를 갖고 있어요. 그래서 어느 방향으로든 압박 받지 않습니다.”

    두 사람은 이탈리아산 니트를 제외한 모든 레디투웨어 제품을 미국에서 제작한다. “그건 많은 걸 의미합니다.” 메리 케이트는 말한다. “우리는 적어도 일자리 80개를 창출했어요.” 그들의 우아한 디자인은 태생적으로 패스트 패션에 도전한다.

    알고 보면 올슨 자매는 스타일뿐 아니라 여러 가지 면에서 시대를 앞서갔다. 그들은 <메리 케이트 앤 애슐리(Mary-Kate and Ashley)> 매거진 2001년 4월호에서 “우리는 언제쯤 첫 여성 대통령을 갖게 될까? 그리고 그 주인공은 누가 될까?”라는 질문에 대한 피처 기사를 통해 힐러리클린턴의 대권 도전을 예측했다. 16년이 지난 지금 그들의 디자인은 나이와 젠더-얼마 전 남성복을 론칭하긴 했지만-에 저항한다. “당신이 여성이든 남성이든 그 무엇이든 서로를 존중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메리 케이트는 말한다. 워싱턴에서 있을 위민스 마치(Women’s March)를 앞두고 그녀는 이렇게 덧붙였다. “이런 생각을 가진 건 여성들만이 아니에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합니다. 전 세계가 아주 흥미로운 분위기에 둘러싸여 있죠.”

    “내일은 어떤 일이 벌어질까? 집단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묻는 건 같아요.” 긍정적인 태도를 올해의 목표로 정한 애슐리는 말한다. “지금까지 우리가 이뤄온 건 믿을 수 없을 정도예요. 그것을 더 밀어붙이고 싶습니다. 하지만 우리 자신에 대해 좀더 부드러워지고 싶기도 해요.”

    — 글 / 엠마 엘윅 베이츠(Emma Elwick-Bates)

    Kate & Laura Mulleavy

    캘리포니아 헌팅턴 비치에서 촬영한 로라와 케이트 멀리비 자매.

    캘리포니아 헌팅턴 비치에서 촬영한 로라와 케이트 멀리비 자매.

    “우린 무언가 하고 싶을 때 그것을 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합니다,” 로다테의 케이트 멀리비는 말한다. 10여 년 전 케이트와 로라는 로다테의 어설픈 데뷔 컬렉션을 선보이기 위해 직접 바느질한 옷이 가득 담긴 트렁크를 끌고 뉴욕으로 갔다. 자매의 무모한 도전 뒤에는 자력으로 무언가를 해보겠다는 정신이 있었다. 그리고 최근 멀리비 자매를 영화 제작에 참여하게 만든 것 또한 바로 그 정신이다. 두 사람의 친구이자 뮤즈인 커스틴 던스트가 출연한 그들의 첫 작품 <우드쇼크(Woodshock)>는 올해 말 개봉 예정이다. (로라: “그것은 결국 일어나야 할 일이었어요. 제 마음속의 모든 것이 영화로 향하고 있으니까요.”)

    지금처럼 정치적으로 불확실한 시기에 우리는 모두 멀리비 자매의 선례를 따라야 한다. 그들의 고향인 캘리포니아 주의 지도자들은 새 정부의 정책 의제에 대항해 앞장서 대범한 태도를 취해왔다. 그들처럼 두 사람은 자신들에게 소중한 이슈를 옹호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중 가장 중요한 이슈는 사랑하는 캘리포니아의 자연을 보호하는 것이다. 캘리포니아의 자연은 멀리비 자매가 주로 영감을 얻는 원천이다.

    환경 친화적인 해변 도시 앱토스(Aptos)에서 예술가인 엄마와 ‘버섯에 관한 모든 걸 알고 있는’ 식물학자 아버지 밑에서 성장한 케이트와 로라는 개 짖는 소리가 들리는 패서디나 집에서 나와 전화 인터뷰를 했다. 그들은 친구들과 연례 휴가를 보내기 위해 빅서(Big Sur)로 떠나려고 준비 중이었다. “우리는 힘을 모으고, 삶의 위대한 아름다움은 자연이라는 걸 인식할 필요가 있어요”라고 케이트는 말한다. “자연을 보호하는 데 헌신해야 합니다. 지구 상의 모든 사람들이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걱정하는 것들이 공격받고 있어요. 그건 아주 가슴 아픈 일입니다.” 그런 긴장감은 그들의 옷에도 드러난다. 작년 가을 멀리비 자매는 집 뒤뜰의 윙윙 날아다니는 벌에서 영감을 얻어 플라워 아플리케와 폭포 같은 러플이 흩뿌려진 벌집 레이스 드레스를 무대에 선보였다. 당분간은 그럴 것이다. 로라는 “우리가 생각한 것 중 하나는 그 벌들이 더 이상 없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하는 것이었어요.”

    새로운 정치 현실은 그들에게 다른 질문도 던지게 한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여성들의 목소리를 증폭시킬 수 있을까? “우리는 젊은 세대의 여성들에게 리더가 되기 위해 싸워야 한다고 가르쳐야 합니다.” 로라는 말한다. 그렇다면 수많은 분야에서 벌어지고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여성 혐오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가? “여성으로서 창의적인 분야의 영향력 있는 자리에 있다는 건 멋진 일이에요”라고 케이트는 말한다. “패션 업계에서조차 많은 경우 여자보다 남자에게 기회를 더 주려고 합니다.” 로라는 이렇게 덧붙인다. “단순히 불평을 하는 게 아니에요. 세상에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거죠.”

    — 글 / 줄리아 펠젠탈(Julia Felsenthal)

    Sarah Burton

    사라 버튼의 등 뒤로 그녀의 두 딸이 그린 그림이 벽을 가득 채우고 있다.

    사라 버튼의 등 뒤로 그녀의 두 딸이 그린 그림이 벽을 가득 채우고 있다.

    사라 버튼은 합리적인 성향의 잉글랜드 북부에서 성장했다. 그녀는 예술가 기질이 넘치는 다섯 남매 중 한 명이었다. 그녀는 이렇게 회상한다. “늘 오빠들이 물려준 옷을 입었어요. 그래서 아름다운 옷에 대한 열망이 있었죠!” 그런 열망은 결국 그녀를 세인트 마틴 아트 스쿨로 인도했고 그녀는 그곳에서 패션 프린트 디자인을 공부했다. 버튼은 당시 모든 사람들이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알렉산더 맥퀸의 도발적인 재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고 기억한다. 맥퀸은 곧 인습타파적인 재기 발랄함을 지닌 디자이너라는 명성을 획득했다. 버튼의 스승인 사이먼 언글레스(Simon Ungless)는 맥퀸의 친구 중 한 명이었고 그녀의 학구열에 깊은 인상을 받아 맥퀸 밑에서 인턴 생활을 해보라고 제안했다. “약간 무서웠어요.” 버튼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한다. “왜냐하면 저는 그다지 패셔너블한 사람이 아니었거든요. 하지만 그와의 만남은 정말 감동적이었어요. 그는 너무나 사랑스럽고 아주아주 따뜻했습니다.”

    그녀는 맥퀸의 직관적 재능에 경외심을 느끼기도 했다. “그는 레이스를 가져다가 마네킹 주변에서 춤을 추며 1시간 만에 아름다운 드레스를 완성했죠.” 버튼은 회상한다. “그건 마치 조각 작품 같았어요. 그런 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초창기에 맥퀸은 많은 작품을 직접 만들었다. “단시간에 그는 모든 것을 만들었어요. 테일러링, 이브닝 웨어, 드레스, 자수, 가죽, 니트까지 모든 걸 말이에요!” 결국 맥퀸의 디자인 팀은 기술적인 도전에 절대 ‘노’라고 해서는 안 된다는 걸 배웠다. 아침에 스튜디오에 출근하면 맥퀸이 밤새 직접 해결해서 완성한 의상이 마네킹에 입혀져 있는 걸 종종 발견하곤 했기 때문이다.

    2000년 프랑수아 피노의 구찌 그룹(현재의 케어링(Kering))이 이 브랜드를 매입해서 재원과 생산 능력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을 때 버튼은 이태리의 새로운 공장에서 전문적인 기술을 스스로 익히며 시간을 보냈다. 그녀는 장인들에게 ‘직접 손을 더럽힐 용의가 있다는 걸’ 보여주면 그들이 종종 기대를 뛰어넘는 결과물을 만들어낸다는 걸 깨달았다.

    재능 있고 불안한 맥퀸이 2010년 스스로 목숨을 끊은 후, 14년 동안 그의 소중한 오른팔이었던 버튼은 자연스럽게 그의 자리를 계승했다. 곧바로 맥퀸이 마무리 짓지 못한 ‘Angels and Demons’ 컬렉션을 완성하는 책임을 떠맡았다. 침통하고 슬픈 컬렉션이 끝난 후 버튼이 마침내 무대 뒤에서 등장했다. 그러나 겸손하고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 그녀는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게 영 편치 않았다. “저는 늘 코러스의 일원이었어요. 한번도 솔로이스트였던 적이 없었죠.” 그러나 결과적으로 맥퀸의 접근 방식을 설명하는 경건한 일을 해냈다. 그의 최근 작품이 기술적 혁신을 보여준 후였기 때문에 그 컬렉션은 맥퀸이 수공예라는 개념, 즉 ‘패션을 만드는 과정에서 잃어버린 것’으로 돌아갔음을 보여줬다. “그는 암흑시대의 예술 작품을 보면서도 그 안에서 빛과 아름다움을 발견했죠.” 버튼은 당시 <보그>에 털어놓았다. “그는 매일 출근해서 드레이핑과 커팅을 했어요.”

    알렉산더 ‘리’ 맥퀸은 따라 하기 힘든 인물이었다. 그리고 버튼의 작품은 무자비하고 꼼꼼한 검증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그녀는 데뷔 컬렉션의 첫 의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확실하게 보여줬다. 맥퀸의 때 이른 죽음으로 트라우마를 겪은 이후에 그녀는 영감을 얻기 위해 자연의 치유력과 어린 시절을 보낸 잉글랜드 시골의 전통으로 눈을 돌렸다. 2011년 봄 컬렉션의 첫 의상은 맥퀸이 사랑했던 18세기 라인으로 재단된 프록 코트였다. 버튼은 그것을 닳아 해진 10겹의 시폰으로 만들었는데, 그것은 그녀가 도입한 새롭고 여성스러운 부드러움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처음부터 버튼의 여성성은 여러 가지 면에서 맥퀸과의 차이점을 분명하게 규정했다. 그녀는 자신만의 고요한 방식으로 슬픔에 잠긴 팀에게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줬고 하우스에는 심미적인 지속성과 일관성을 부여했다. 그녀는 하우스의 전통을 소중히 여겼다. 그리고 하우스의 모든 비밀스러움과 신비로움은 오롯이 자신의 머리와 마음속에 간직했
    다.

    “리와 함께한 쇼는 매번 너무나도 자전적이었어요.” 버튼은 말한다. “드레스는 각자 자신만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왜냐하면 패션은 그의 개인적인 여정을 표현하는 일종의 아바타였으니까요.” 맥퀸은 자기 안의 악령들을 분석하고 종종 디스토피아적인 세계에 대한 불안한 비전을 반영하기 위해 역사와 테크놀로지를 이용했다. 그러나 버튼은 같은 주제와 재료를 이용해 전통과 장인 정신에 대한 자신의 열정, 그리고 여성을 돋보이게 하는 방법에 초점을 맞췄다. “제게 중요한 건 단순히 쇼나 언론의 평이 아닙니다”라고 버튼은 말한다. “중요한 건 여성들에게 옷을 입히고 그 옷을 입었을 때 그들이 어떤 기분을 느끼는가에 대한 것입니다. 당신은 맥퀸 재킷을 입자마자 다른 자세로 서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 재킷은 허리 라인과 어깨선이 있고 어떤 권한을 부여받은 느낌을 갖게 하니까요. 여성들을 위해 그런 걸 만들 수 있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이죠.”

    맥퀸에게 훈련받은 결과는 아주 분명하다. 피팅 중인 그녀는 완벽주의의 좋은 예다. 버튼은 금속과 유리로 지어진 런던 이스트 엔드의 맥퀸 본사에 사무실을 갖고 있지만 그곳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작년엔 그곳에서 크리스마스 선물을 포장했어요.” 그녀는 말한다. “그게 다였죠.” 대신 그녀는 빛이 환하게 들어오는 꼭대기 층 스튜디오에서 자신이 작업하고 있는 컬렉션을 느끼고 싶어 한다. 재능 있는 디자인 팀과 ‘기분 좋은 혼돈’에 둘러싸인 채 말이다. 이곳엔 원단과 자수 샘플이 가득 담긴, 꼼꼼하게 라벨이 붙은 박스가 벽을 따라 쌓여 있다. 그리고 늘 바뀌곤 하는 영감을 주는 사진으로 가득한 무드보드가 그 옆에 놓여 있다.

    버튼은 깔끔하게 정렬된 핀들이 꽂힌 불룩한 새틴 쿠션을 습관적으로 손목에 찬다. 그녀는 러시아 출신의 폴리나 카시나의 여전사 같은 몸에 딱 달라붙도록 상체 라인을 솜씨 좋게 손보기 위해 이 핀들을 사용한다. 카시나는 이 하우스와 12년을 함께한 피팅 모델이다. 그녀는 버튼처럼 맥퀸과 버튼이 탄생시킨 수백 개의 디자인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어쨌든 완벽주의는 이 하우스의 DNA다. “리가 살아 있을 때 우리는 핀들을 색칠해서 구분하곤 했어요. 우리는 패브릭과 같은 색으로 핀 끝을 칠했습니다.” 제작 중인 의상의 시각적 효과를 방해하지 않도록 말이다. “요즘엔 많은 옷이 인간의 손길이 닿은 적이 없는 것처럼 보여요. 그래서 그 옷은 제대로 맞지 않습니다.” 그녀는 덧붙인다. “옷을 여성의 몸에 맞게 만드는 건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버튼의 작업은 공동으로 진행된다. “매 시즌 우리는 하나의 드레스나 스토리나 장소를 찾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디자인 팀이 하는 작업에 대해 설명한다. “거기서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어요. 이곳의 분위기는 정말 놀랍습니다. 대화가 끊이지 않죠. 그것은 아주 유기적인 작업 방식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모여 하나의 콜라주가 됩니다.”

    버튼은 많은 호평을 받은 시적인 2017년 봄 컬렉션을 구상하고 있을 때 자신의 디자인 팀을 처음으로 스코틀랜드 셰틀랜드 제도의 현지답사에 데려갔다. “책이나 그림이나 사진을 보고 컬렉션을 디자인하면 그 장소가 실제로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없어요”라고 그녀는 말한다. “그리고 그냥 구글을 이용하면 다른 사람들과 같은 사진을 보게 됩니다.” 버튼과 동료들은 페어 아일(Fair Isle) 스웨터, 털실 뭉치, 장갑, 레이스처럼 곱게 짠 숄, 손으로 직조한 트위드, 그리고 강한 바람에 휩쓸린 북유럽 풍경과 섬 주민들을 포함해 수많은 아이디어를 안고 섬에서 돌아왔다. 섬 주민들이 만든 공예품에선 그들의 자부심이 드러난다.

    버튼은 거의 늘 자신의 디자인에 영감을 주는 영국의 역사와 자연에 끌린다. 그래서 이 컬렉션을 위해 잉글랜드 서쪽 끝에 있는 신비로운 시골인 콘월(Cornwall)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어린 시절 이곳에서 여러 번 휴가를 보냈다. 이곳은 아서 왕의 유산, 밀수업자들의 소굴, 한 세기 이상 화가들을 매료시켜온 유명한 다이아몬드 같은 햇살이 있는 땅이다. 250벌에 달하는 프리폴 컬렉션은 다른 어느 컬렉션보다 매장에 오래 걸려 있을 것이기 때문에 “우리 하우스에 관한 모든 걸 대변해야 합니다”라고 버튼은 설명한다. 그래서 그녀는 프리폴에 이어 이달 파리에서 선보일, 그녀가 ‘케이크 위의 당의’라고 별명 붙인 가을 컬렉션을 이 최초의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디자인해야 하고, 나아가 매장 판매와 런웨이 쇼도 통합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맥퀸 남성복 컬렉션도 마찬가지다).

    이것을 염두에 두고 버튼은 디자인 팀의 핵심 멤버들을 위한 이틀간의 콘월 모험을 계획했다. 우리는 상쾌한 11월 말 아침에 틴태절(Tintagel)에 도착했다. 아서 왕의 전설과 관련된 13세기 성의 흔적이 남아 있는 이곳은 거친 대서양 위로 높이 솟은 절벽 위에 자리해 있다. 그리고 심장이 멎을 정도로 아름답다. 버튼은 이곳의 ‘아주 으스스한 고요함’에 끌렸다. 신비로운 청동기 시대의 선돌과 높이 쌓인 돌 형상이 있는 마음을 뒤흔드는 넓은 황무지, 보드민 무어(Bodmin Moor)까지.

    다음 날 마라지온(Marazion) 근처에 있는, 썰물 때 걸어갈 수 있는 그림 같은 세인트 미카엘스 마운트(St. Michael’s Mount) 섬에서 디자인 팀은 돌길 옆 썰물 때 노출되는 작은 돌 웅덩이 안에서 소용돌이치는 해초에 일제히 매료됐다(맥퀸은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푹 빠져 있었다. 그리고 한번은 <보그>에서 찢어낸 해파리 사진을 바탕으로 드레스 컬렉션을 디자인하기도 했다). 제노(Zennor)라는 마을에서 우리는 12세기에 지어진 어부의 교회인 세인트 세나라(St. Senara)에 들렀다. 이 교회의 천장은 배의 외관 모양으로 지어졌다. 교회 신도석에는 교구의 부지런한 자수가들이 수놓은 기도 쿠션이 놓여 있었다. 이것을 보자 디자인 팀은 뛸 듯이 기뻐했다. 근처 세인트 아이브스(St. Ives)의 항구에선 ‘동네 마녀(주술사)’와의 만남이 성사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소원을 비는 나무가 있는 들판을 찾아 구불구불한 오솔길과 그림 같은 작은 마을을 지나갔다. 그 나무로 이어지는 흙길엔 부채 모양의 이끼가 덮인 나뭇가지가 격자 모양으로 얽혀 있었다. “자수, 천 공예(Fabric Manipulation), 시퀸까지 더할 나위 없네요”라고 버튼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길을 돌아 우리는 지하수가 솟아나는 연못가에서 자라고 있는 그 나무를 보고 걸음을 멈췄다. 낮게 퍼진 나뭇가지에는 소원과 기도를 상징하는 형형색색의 천 조각이 묶여 있었다. 디자인 팀은 나뭇가지 사이에서 현대미술의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정교한 실뜨기 패턴을 발견했다. 버튼은 아기의 턱받이 그리고 아이들의 양말을 발견했다.

    “상당히 불편하네요”라고 그녀는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이유는 잘 모르겠어요. 좀 거슬리는 느낌이에요.” 그녀는 곧 혼자 훌쩍였다. 버튼은 약해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브렉시트와 최근 미국 대선 때문에 혼란스러웠던 그녀는 그에 대한 창의적인 대응책을 준비하고 있었다. 1월 초 런던의 스튜디오에서 그 대응책이 무엇인지 드러났다. 버튼은 영국 시골에서 대가족과 함께 크리스마스 휴가를 보냈다. “저는 완전히 다른 두 세계에 살고 있어요!”라고 그녀는 말한다. 그녀는 쌍둥이가 태어난 후 진정한 휴가를 가져본 적이 없다고 고백했다. 다행히 아끼는 아일랜드 보모가 올해 카운티 코크(County Cork, 남쪽 끝에 있는 아일랜드에서 가장 큰 카운티)에서 결혼할 예정이다. 그래서 버튼은 그 여행과 그 여행을 통해 얻게 될 디자인 아이디어 때문에 흥분해 있다. 그녀는 크리스마스 휴가 기간 동안 가을 컬렉션을 구상했다고 말한다. “잠시 멈추는 건 상당히 도움이 됩니다. 그런 다음 다시 돌아오면 아주 좋죠.” 버튼은 콘월 여행 때 찍은 사진이 가득 담긴 테마 보드를 들고 스튜디오로 돌아왔다. “악마의 덫, 드림 캐처, 숲속에 있는 마법에 걸린 성스러운 나무들… 이 모든 것이 이교도적으로 느껴진다는 점이 마음에 들어요.” 버튼은 말한다. “2017 S/S 셰틀랜드 컬렉션은 바다와 연관이 많았어요. 동시에 땅과 나무에 관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원단 책임자인 킴 아벨라가 각종 원단과 버튼이 몇년 전 벼룩시장에서 발견한 플래퍼 드레스 조각, 초서체가 휘갈겨진 아주 오래된 종이에 싸여 있는 15세기 리본 그리고 꿩 깃털 등을 배열해 정교한 색조의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이곳에선 팬톤 컬러칩 따위는 중요하지 않아요!”라고 버튼은 빈정거리는 투로 말했다. 틴태절의 가파른 경사면을 뒤덮은 잔디 물결은 니트 전문가 루시 쇼우에 의해 동화 속 ‘처녀의 머릿결’ 같은 메탈릭 니트로 구현됐다. 컬러 리본을 무작위로 꿴 느슨한 직조의 트위드는 신비로운 부적 나무를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아이폰으로 찍은 이끼 사진은 프린트 원형을 만들기 위해 정교하게 이어 맞춘 후 컴퓨터 공학적으로 처리되었다. 맥퀸에서는 이런 프린트와 자수 배열이 너무나 복잡하기 때문에 먼저 작은 크기의 종이 버전으로 만들어본다. 그 종이 버전은 아름답게 옷을 입힌 인형의 집 거주자들처럼 스튜디오 여기저기에 놓여 있다.

    “우린 아주 운이 좋아요,”라고 버튼은 아이디어가 넘치는 자신의 일터를 둘러보며 말한다. “시간 압박이 있긴 하지만 우리에겐 창의성을 발휘하고 사랑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있어요. 맥퀸의 아주 놀라운 점은…” 그녀는 스포트라이트를 자연스럽게 자신의 팀에게 돌리며 말을 이었다. “그곳에서 나온 모든 것이 완벽하게 사랑받아왔다는 겁니다.”

    — 글 / 해미시 보울스(Hamish Bowles)

      포토그래퍼
      ANNIE LEIBOVITZ, ED TEMPLETON, MIKAEL JANS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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