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작가를 찾아서

독자적 작업으로 당대에는 쉽사리 범주화하기 어려웠던 작고 작가들을 소개한다. 한국 현대미술사를 이야기할 때 사조 사이 빈 공간을 이어줄 뿐 아니라 다채롭게 만들어주는 주인공들이다.

권영우(1926-2013)

작가 권영우는 한국 단색화의 대표적인 작가 중 한 명이다. 다른 단색화 작가들이 서양화 기법으로 화면을 구축한 반면 그는 한지라는 매체를 재조명하여 동양화의 영역을 초월한 새로운 문법을 만들며 차별화된 스타일을 추구했다.

1926년 함경남도 이원에서 태어난 권영우는 동양화를 공부하여 작품 활동을 하다 1962년에 필묵(筆墨)을 버리고 동서양을 초극한 순수 회화를 지향하면서 한지만 가지고 작업하기 시작했다. 작가는 이를 통해 한지 자체의 물성을 최대한 드러낼 수 있게 되었다. 1964년에 구멍 뚫린 한지 작품을 출품하면서 아무것도 그리지 않고 흰색의 한지 그 자체를 주목하는 작업을 보여주었으며, 1970년대에는 한지를 뚫고, 찢고, 굴곡을 만드는 등 지속적인 반복 행위를 통해 화면의 질감을 부각시켰다. 반복적인 행위와 종이의 물질성과 촉각성을 화면에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이다.

권영우는 이후 1978년 작업에 전념하기 위해 프랑스로 이주하였는데, 이는 그의 작업 세계가 더욱 확장되는 계기가 된다. 한지에 날카로운 송곳과 칼과 같은 도구 혹은 손톱으로 점과 선을 반복적으로 뚫고 긋는 방법적인 변화를 시도하여 찢어진 화선지가 벌어져 열린 공간을 형성하기도 하고, 화선지의 찢어진 선묘에 먹과 과슈의 혼합 채색을 가함으로써 우연히 발생하는 농담의 리듬감으로 입체감을 보여주기도 했다.

작가는 한지를 중첩하여 바를 때 우연히 얻은 한지의 미묘한 색조 변화에 끌려서 한지라는 재료에 주목하게 되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더 정확하게는 한지의 사용뿐 아니라 그 이면의 정신문화를 작품에 함축해 전통을 계승하고자 했다. 한지를 매개로 한 행위성이 부각된 조형법의 작품은 한국 정신문화의 전통과 현대 화법의 결합이라는 미학으로 여전히 새롭게 읽히고 있다.

 

최욱경(1940-1985)

최욱경은 화려하고 강력한 색채와 역동적인 붓 터치 표현으로 잘 알려져 있는 작가이다. 부모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어릴 적 운보 김기창, 우향 박래현 부부의 화실에서 미술 지도를 받은 바 있으며, 본격적인 미술 공부를 위해 1963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이곳에서 그녀는 당시 미국 미술 현장의 주류를 이루던 추상표현주의 화풍을 흡수하고 내면화하여 한국 추상표현주의 대표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단색화가 주류를 이루던 1970년대 한국 화단에 역동적이고 화려한 색채 추상을 선보였던 최욱경의 화풍은 보수적이었던 당대 주류 미술계의 시각에서는 쉽사리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러나 그녀는 시류에 휩싸이지 않고 서구적 미술 양식의 영향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조형 양식을 구축하며 한국 색채 추상의 선구자가 되었다.

1979년 귀국 이후 1985년 급작스럽게 작고하기 전까지, 최욱경의 회화 세계는 유기적 형상과 추상표현주의를 염두에 두면서도 생명력 넘치는 조형 형식으로 생성되었다. 특히 대구의 영남대학교에 재직할 당시(1979-1981) 그녀는 산과 바다와 같은 한국 자연의 모습에서 생명의 본질을 느끼며 자신의 감정을 부드러운 곡선으로 결합하여 독특한 형태의 자연의 모습을 제시했다.

최욱경은 미국 체류 기간 15년을 포함하여 개인전 17회를 개최하고, 200~300호 크기의 대형 작품을 비롯하여 소묘, 수채화, 판화, 조각, 오브제 등 500여 점이 넘는 작품을 남겼다.

 

차학경(1951-1982)

차학경은 부산에서 태어나 1961년 미국으로 이민한 한국계 미국인이다. 영어 이름은 테레사 학경 차(Theresa Hak Kyung Cha).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후반까지 UC 버클리 대학교에서 비교문학과 미술을 공부했으며 개념미술, 퍼포먼스, 비디오아트, 문학 등 매우 다양한 장르의 작품 활동을 펼쳐왔던 작가이지만, 불의의 사고로 31세에 요절했다.

이민자로서 또 여성으로서의 차학경의 정체성은 작품에 많은 영향을 끼쳤으며, 이는 기억이나 소외와 같은 주제로 이어졌다. 시적이고 개념적인 경향이 강했던 그녀의 작업은 언어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데 의사소통이라는 기본적인 언어 기능에서 벗어나 언어를 분석하고 외국어와 같은 또 다른 언어와의 관계를 실험했다.

차학경은 아티스트 북, 메일 아트, 퍼포먼스, 슬라이드 쇼, 필름, 비디오, 설치와 같은 다양한 소재를 사용했다. 이로써 개인적인 경험을 작품으로 적극 끌어들였고 아시아, 유럽, 미국이라는 문화적 레퍼런스를 녹여냈다. 이런 방법론은 <딕테(Dictee)>(1982)라는 출판물의 형태로 귀결된다. 과거와 현재, 역사와 허구, 이미지와 언어가 교차하는 이 책은 사진, 도표, 붓글씨, 지도, 자필 편지, 서류 등 다양한 전달 매체를 삽입하고 자신의 어머니 허형순, 유관순, 잔 다르크, 테레사 수녀 등의 이야기를 다중의 목소리를 가진 화자를 통해 표현하고 있다. 지금도 이 작품은 남성 지배적이며 제국주의적 담론에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내고 페미니즘 예술의 한 지표를 제시한 사건으로 평가받고 있다.

사실 차학경의 작업은 장르를 넘나들고, 하나의 작품에 다양한 의미의 층위를 담아내는 터라 쉽게 구조화하거나 범주화하기 어렵다. 다양한 의미 체계에 내재된 언어 구조에 관심을 가졌던 그녀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그것이 전달하는 가치를 해체하고 그 해체 위에서 기존 의미 체계의 가려져 있던 관계와 의미를 드러내고자 했다. 그녀의 삶과 작품 활동은 비록 짧았지만 당대 포스트모던적 특성을 극명히 보여주는 실험적 탐구로 꾸준히 인정받고 있으며, 후배 작가들에게 지속적인 영감을 주고 있다.

그녀가 수학했던 미국 버클리 대학의 퍼시픽 필름 아카이브(PFA)에서 그녀의 작품과 글에 대한 아카이브를 보관하고 있다.

 

손상기(1949-1988)

손상기는 ‘한국의 로트레크’라는 별칭으로 알려진 회화 작가다. 극심한 가난과 척추만곡증이라는 신체 장애, 그리고 짧은 작업 여정이 언뜻 드라마틱한 작가의 삶으로 비칠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비판적 현실 인식을 가지고 생전 치열하게 작업을 했던 작가로 기억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민중미술 작가들과의 교류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주로 다루었던 주제도 1980년대 민중의 현실적인 모습이었기 때문에 민중미술 작가로 알려져 있기도 하지만, 전형적인 민중 미술의 그것과는 다른 결을 가지고 있다. 고향인 여수에서 그는 아낙네와 농부 등 평범하고도 고된 일상을 화폭에 담으며 일상적 삶을 리얼리즘으로 그려냈는데 이때에는 사회비판적 시각을 지녔다기보다 힘든 노동을 영위하는 서민들의 모습과 고향 풍경을 그저 정감 있게 표현하는 데 주력했다.

1979년 서울 아현동에 정착하면서 작업을 이어가던 손상기는 이 시기 산업화, 도시화 속에서의 도시 빈민과 노동자의 삶, 여기서 비롯된 소외된 인간상과 소비사회의 풍자 등을 작업 주제로 다뤘다. 간략한 화면 구도에 메마른 유화 물감을 나이프로 긁어내는 작업을 반복하면서 화면 안에 거친 질감을 드러내는 데다 채도가 낮은 어두운 색조가 주를 이루어 삭막한 도시 풍경을 재현한다.

도시 생태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단한 삶을 주로 표현하던 그는 이후 자신과 주변 사람의 삶에 대한 민중주의적 성찰과 애정으로 작업 주제가 변화해갔다. 손상기의 작품은 비판적 현실주의 문법에 토대를 두고 개인의 삶을 민중에 투영시킴으로써 독자적인 리얼리즘을 구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