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ver Fear

반짝이는 까만 구슬을 품은 여자, 두려움 없는 행복한 민주주의자, 우리의 악녀, 김옥빈. 그녀가 영화 〈악녀〉로 돌아온다.

모자는 컴뱃밀리터리샵(Combat Military Shop).

모자는 컴뱃밀리터리샵(Combat Military Shop).

<악녀> 포스터의 뒷모습이 정말 근사하다. 바닥에 쓰레기 더미가 있는 줄 알았는데 사람이더라. 많이 죽였다. 진짜 많이 죽였다.(웃음)

정병길 감독은 첫 만남에서 어떤 이유로 당신이 이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는 얘길 하던가. 나를 두고 시나리오를 생각했다고 하더라. 유단자라고 소문이 났고 운동신경이 좋다고 건너 건너 들으신 것 같다. 감독님이 <매드 맥스>를 보고 ‘우리도 여자가 나오는 액션 영화를 만들자’ , ‘필’ 받아서 써 내려간 시나리오라고 한다.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신기했다. 한국에서 이런 시나리오가 나오다니. 액션 신이 어머어마하게 많이 나오는데 <매드맥스> <킬 빌> 수준이었다. 이런 시나리오를 직접 쓰고 투자도 받았다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욕심도 났다. 여자 주인공 ‘숙희’가 등장하지 않는 장면이 거의 없다. 아홉 살 때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나오는데 누구라도 욕심낼 만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영화가 잘 되면 여자 배우들에게 다양한 시나리오가 오고 표현할 수 있는 캐릭터의 폭이 더 넓어지는 계기가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갈고닦은 합기도와 태권도 실력을 펼쳐 보일 기회가 됐겠다. <악녀>에 쏟아부은 기간이 8개월이다. 액션스쿨에서 3개월간 훈련하고 다섯 달 동안 촬영했다. 영화용 액션은 카메라에 맞춰서 하는 운동이기 때문에 앵글에서 벗어나면 안 된다. 실제로 운동할 때는 몸을 보호하기 위해 최대한 몸을 작게 만들지만 영화용 액션은 커야 한다. 주먹으로 때릴 때도 화면 밖으로 나가면 안 되기 때문에 주먹을 항상 위로 유지해야 한다. 원래 운동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으면 더 힘들다. 빨리 늘기는 하지만. 여름이었는데 액션스쿨에 에어컨이 없다. 3개월 동안 거의 매일 나갔다. 무술 감독님이 전 배우 통틀어서 내가 제일 많이 나왔다고 개근상 받아야 한다고 그랬다. 나중에는 “그만 와도 돼! 그 정도면 현장에서 다 할 수 있어!” 그러셨다. 다치면 안 되니까 조바심에 계속 연습을 하려고 했다.

액션스쿨에서 연습하는 동영상을 봤는데 선이 정말 아름답더라. 타고난 운동신경과 즐거워하는 마음이 합쳐진 게 아닐까 싶었다. 팔다리가 긴 편이라 주먹을 휘두르거나 발 차기 할 때 시원시원해 보인다. 나 대신 남자가 들어와서 액션을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와일드한 액션 합을 감독님이 짜놨다. 여성의 장점을 살린 유연한 느낌의 아트 액션이 아니라 굉장히 와일드한 액션이다.

화이트 테일러드 재킷은 오프화이트 (Off-White), 블랙 셔츠와 타이는 바톤 권오수(Baton Kwonohsoo).

화이트 테일러드 재킷은 오프화이트 (Off-White), 블랙 셔츠와 타이는 바톤 권오수(Baton Kwonohsoo).

감독님이 고맙기도 하고 원망스럽기도 했겠다.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나. 스태프들이 “누나, 다음에도 액션 하실 거예요?” 물어보면 “아니, 이번이 은퇴작이야”라고 얘기하곤 했다. 그런데 인간이 망각의 동물인지 촬영 끝나고 2주 만에 다시 하고 싶어지는 거다. 진짜 힘들었는데 즐기고 있다고 느낀 적이 굉장히 많았다. 처음에 감독님이 오토바이 연습을 시켰는데 그러다가 무술 감독님이 속도를 올리고 급브레이크를 잡은 다음에 핸들을 좌측으로 틀며 멈춰서 착지하는 연습을 하라는 거다. 너무 웃겨서 “감독님, 제가 예전에 탄 건 스쿠터예요. 이건 묘기인데요? 이거 하다가 사고 나면 죽어요. 그럼 촬영 중지되고…” “아니야, 할 수 있어!” 그렇게 연습을 했더니 다음에는 차 보닛 위에 매달려서 가라는 거다. 와이어에 다 묶어놨다고 안전하단다. 열심히 했다. 그다음에는 버스 뒤에 매달리라고 했다. 점점 뭐가 커져. “감독님, 다음번엔 비행기에 매다는 거 아니죠?” 그랬다. 나중에는 나도 익숙해져서 안전 불감증처럼 “별거 아니네?” 이러면서 했다. 그 순간 내가 즐기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몸 쓰는 쾌감이 있었을 것 같다. 언뜻 액션 연기는 마치 육체노동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할 때는 정말 힘들지만 집에 가서 누웠을 때 왠지 개운하다. 굉장히 고생해서 연습한 것이 카메라 앵글에 잘 담겼을 때 그동안의 노력을 보상받은 느낌이 들었다. 현장에서 액션 합이 바뀔 때가 많았는데 언젠가부터 무리 없이 소화하고 있다고 느낄 때 좀 짜릿했다. 어떤 액션 합을 줘도 할 수 있게 근육이 적응해놓은 상태라고 해야 할까.

굉장히 다양한 무기를 다뤘는데 손에 가장 잘 맞았던 무기는 무엇인가. 총, 칼, 도끼, 장총 등 온갖 무기류는 다 들고 나오는 것 같다. 30cm 정도 되는 단검이 잘 맞았다. 단검을 양검으로 쓰는 게 제일 좋다.

학생들이 습관적으로 연필 돌리듯 단검을 돌리는 거 아닌가. 이렇게 해서 한쪽에서 돌려서… 된다, 돼(웃음)!!

‘숙희’라는 캐릭터로부터 어떤 인상을 받았나. 여백이 많은 인물이었다. 뭔가 강렬한 동기가 있어서 나아간다기보다 그냥 행복하게 살고 싶은데 주변에서 이용해서 어쩔 수 없이 악녀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인물이다. 강인하기도 하고 연약하기도 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연기할 때 혼란이 진짜 많이 왔다. 불쌍하고 마음 아픈 캐릭터다.

나는 사실 여배우 원톱 영화라는 점 때문에 <악녀>가 보고 싶다. 앞으로 영화에 좀더 등장했으면 하고 바라는 여성 캐릭터상이 있다면. 컴퓨터에 여자 영화만 모아놓은 폴더가 있다. <미스 슬로운> 봤나. 그 영화 진짜 죽인다. 꼭 봐라. 미국 정치 로비스트에 대한 내용인데, 제시카 차스테인이 연기를 진짜 잘한다. 주체적이고 강력하고 카리스마도 있다. 시원한 쾌감을 주는 캐릭터들이 있었으면 하고 생각한다. <퍼스널 쇼퍼> <헬프>에 나오는 인물도 좋았다.

어떤 순간에 여자 영화 폴더를 열어보나. 이틀에 한 번은 영화를 보고 자려고 한다. 심심할 때 한 번씩 보고 연기에 자신이 없을 때도 본다. 활동 시작하기 전에 영감이 떠오르지 않을 때도 찾아본다. 이 사람은 이렇게 연기를 하고 이런 에너지를 가졌구나. 좋은 부분은 돌려 보기도 한다. 아, 칸국제영화제에 제시카 차스테인이 심사위원으로 온다. 이번에 칸에 가면 그 배우를 볼 때까지 돌아다니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제시카 차스테인 영화를 정말 좋아한다. 그 배우만 모아놓은 폴더도 있다. 데뷔하기 전 연극까지 모아두었다.

테일러드 재킷 디자인의 보디수트와 에나멜 싸이하이 부츠는 YCH, 초커는 생로랑 바이 안토니 바카렐로(Saint Laurent by Anthony Vaccarello).

테일러드 재킷 디자인의 보디수트와 에나멜 싸이하이 부츠는 YCH, 초커는 생로랑 바이 안토니 바카렐로(Saint Laurent by Anthony Vaccarello).

<악녀>가 칸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의 초청작이다. 칸에서 제시카 차스테인을 마주치면 무슨 말을 건넬 생각인가. 모르겠다. 말은 못 걸 거 같고 그냥 옆에서 쳐다보기만 할 것 같다. <박쥐>로 칸에 갔을 때는 대단한 영화제인지도 모르고 시차도 안 맞고 그래서 계속 잠만 잤다. 신종플루가 유행하던 시기라서 밖에 안 나갔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후회스럽다. 그때 이후로 8년 만인데 이렇게 오래 걸릴 줄 몰랐다. 이번에 가면 눈 안 감고 있어야지 생각하고 있다.(웃음)

고정관념에 갇힌 인물이나 전형적인 인물을 연기한 적은 없는 것 같다. 내적 갈등을 겪더라도 늘 자신이 바라는 바에 충실한 캐릭터를 선택했다. 억지로 그렇게 하려고 한 건 아닌데 하다 보니까 그렇게 됐다. 재미있는 게 당시 내 상태에 따라 달라진다. 기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 캐릭터는 있다. 자기 생각 없이 질질 끌려다니는 캐릭터. 소극적인 것과는 다르다. 그리고 다른 얘기지만 작가나 연출자가 여자 캐릭터로서 혹은 여자 배우에게 불편한 텍스트나 디렉팅을 줬을 때 “위험하신 거 같아요”라고 얘기한 적도 많다.

불편한 지점을 얘기해서 상황을 바꾼 경우도 있었나. 아이를 낳는 장면이 있었는데 주변 간호사들이 모두 남자로 세팅되어 있는 거다. 살짝 화가 났다. 다리를 벌리고 앉아 있어야 하는데. 감독님한테 “왜 다 남자냐?”고 했다. 결국 바꿔서 촬영했는데 여기서 중요한 건 그 장면이 나중에 다 빠졌다는 거다. 으하하하하.

그 입장이 되어보지 않는 한, 정말 잘 모르는 것 같다. 이것도 논외지만, 숙희를 이용하는 국가 권력기관 책임자가 김서형 선배인데, 여자가 그렇게 멋있는 역할을 하니까 너무 좋았다. 그런데 김서형 선배가 항상 오더를 받는 인물이 그림자라는 설정이 아쉬웠다. 여자들만 뽑아서 훈련을 시키고 괴롭히는 카리스마 있는 여자가 그림자로부터 오더를 받다니. 책임자만 진짜 멋있게 나오든지, ‘007’ 시리즈에 나오는 멋진 할머니 같은 설정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테일러드 재킷은 디올 옴므(Dior Homme), 와펜 디테일 카키 셔츠와 팬츠는 페이(Fay), 베레는 컴뱃밀리터리샵(Combat Military Shop).

테일러드 재킷은 디올 옴므(Dior Homme), 와펜 디테일 카키 셔츠와 팬츠는 페이(Fay), 베레는 컴뱃밀리터리샵(Combat Military Shop).

2005년부터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오고 있는데 스스로 달라졌다고 느끼는 계기를 만들어준 작품이 있나. 사실 그게 <박쥐>다. 현장에서 그렇게 사랑받을 수 있다는 걸 <박쥐> 때 처음 알았다. 연기자로 살아가면서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 것인가부터 내적으로 성숙해질 수 있도록 정말 많은 얘기를 해주셨다. 두 번째로 <유나의 거리>를 만나면서 또 달라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7개월 동안 대본을 받고 캐릭터를 공부하다 보니까 김운경 작가님의 가치관과 생각이 나에게 스며들었다. 인간이란 과연 무엇인가, 행복이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계속 생각해보게 되었다. 작품이 딱 끝나고 나니까 마음이 편안하고 따뜻해져 있었다. 지금도 김운경 작가님 생각하면 정말 좋다.

작품을 보는 시선에 미친 영향도 있을까. <유나의 거리> 이후로 캐릭터를 바라볼 때 이상하게 어떤 캐릭터도 밉지가 않다. 다른 사람들은 재미없다고 하는 대본도 나는 재미있게 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전체를 보면 구성이 부족할지라도 ‘몇 개 장면은 너무 좋았어!’라든지, ‘몇몇 캐릭터들은 해볼 만하겠던데?’처럼 재미를 찾아가고 있더라. 어떤 인물을 봐도 ‘그럴 수 있어, 사정이 있겠지’ 생각한다. 배우는 이해가 기본인 직업이니까.

영화 제목이 <악녀>이고 주인공이 김옥빈이라고 들었을 때 언젠가 했던 캐릭터 아닌가 기시감이 들었다. 악녀 같은 이미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퇴폐 여왕 김옥빈’이라는 댓글도 봤다. 다들 나를 안 만나봐서 그렇다.(웃음) 영화 하면서 그런 이미지를 쌓은 거니까 싫지는 않다. 사실 <악녀>가 더 나쁘길 바랐다. 보여줄 수 있는 끝판까지 갔으면 좋겠는데 너무 착해서 아쉽다. 시원하게 때려 부숴주고 복수할 때 낄낄낄 웃어주고.(웃음) 그 느낌이 뭔지 안다. 배우들마다 갖고 있는 이미지나 뿜어져 나오는 기운 때문에 그런 것 같다. <핸콕>을 보면서 샤를리즈 테론이 그전까지 액션을 많이 한 줄 알았다. 그런데 한 편도 없더라. 워낙 카리스마가 있고 시원시원한 매력이 있는 배우이다 보니 그런 오해를 하고 있었던 거다. 나에게도 센 기운이 있나 보다. 이 기운을 더 발산하게 그런 시나리오나 많이 창작했으면 좋겠다.(웃음)

누구나 선악을 품고 사는데 당신에게도 악녀 같은 기질이 분명히 있을 거다. 의외로 그런 부분은 단순하다. 덜컥 화냈다가 잊어버리고, 복잡하게 살지 않는다. 마음에 안 든다고 바로 얘기하고 “아까 그렇게 얘기해서 미안해” 하는 스타일인데,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되기도 하더라. 내가 다듬어야 될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나는 그냥 다들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다들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온전히 자기 자신에게 집중해서 원하는 걸 다 하고 사는 삶이었으면 좋겠다는 느낌이다. 물론 그렇게 안 되지만. 우리는 남과 비교할 때 가장 불행해진다. 특히 돈을 두고 비교를 하는데 우리 사회 분위기상 어쩔 수 없다고 해도 그렇게 살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 시선이 많이 바뀌어야 한다. ‘인도로 가서 살아야 하나?’ 생각도 한다.(웃음) 고운이(배우 채서진)가 한 달 반 동안 인도에 갔다 왔는데 여기저기서 얻어먹고 돌아다니면서 쓰고 온 돈이 100만원도 안 된다. 너무 행복한 모습으로 파자마 같은 옷을 입고 돌아왔는데 참 좋아 보였다.

컷아웃 소매 장식의 검정 코트는 포츠 1961(Ports 1961), 와펜 장식 장교 재킷은 페이(Fay), 벨트는 막스마라(Max Mara), 가죽 팔찌는 베니뮤(Venimeux), 에나멜 싸이하이 부츠는 YCH.

컷아웃 소매 장식의 검정 코트는 포츠 1961(Ports 1961), 와펜 장식 장교 재킷은 페이(Fay), 벨트는 막스마라(Max Mara), 가죽 팔찌는 베니뮤(Venimeux), 에나멜 싸이하이 부츠는 YCH.

배우야말로 비교에서 자유롭기 힘든 직업 아닌가. 자의든, 타의든. 어릴 때는 드레스 하나라도 내가 더 예뻐야 했다. 그런데 그날뿐이지 3일, 일주일, 한 달 지나면 누가 기억이나 하나. 지금 나이를 많이 먹은 건 아니지만 다 부질없다.(웃음) 죽는 건 매한가지고 누가 먼저 가냐다.(웃음) 더 웃긴 건 길 가다가 들어간 밥집 아줌마라든지 다른 직종 사람들 만나면 아무도 모른다. 왜 그렇게 욕심을 내고 안달복달했을까? 그때 이후로 욕심이 없어졌다. 물론 어느 정도 갖춰서 보여줘야 하는 직업이니까 적당히 하는데, 스트레스 받는 정도까지는 안 가려고 한다. 살 같은 경우도 어쩔 수 없이 유지는 하고 있지만 술도 많이 마셔주고.(웃음) 영화 할 때는 싹 빼고. 나는 정말 빡세게는 안 살고 싶다.

여전히 배우로 일하는 동력은 무엇인가. 배우 일을 하고 있을 때 제일 살아 있다고 느낀다. 대본 읽을 때만 유일하게 머리가 빨리 잘 돌아간다. 내 캐릭터가 무엇인가, 현장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살아 있는 거 같고 밥값 하는 거 같다. 사람한테 일은 중요하다. 난 다른 건 관심 없다. 집에 달력 붙여놓고 X자 쳐가면서 촬영 크랭크업을 기다린다. 이번 달에는 운동 몇 번 갔네, 대본 몇 번 봤네 그러면서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재미있다.

달력이 꽤 쌓여 있겠다. 아니다. 이것도 한 지 얼마 안 됐다. 생각 없이 연기할 때도 있었고.(웃음) 어릴 때부터 꾸준하게 연기에 열정을 갖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하면서 바뀌었다가 중간에 또 하기 싫어졌다가 나중에는 하고 싶어서 폭발했다가. 이것도 리듬을 탄다. 늘 같지는 않다.

지금은 어떤 상태인가. 너무너무 불타오르는 시기다. 욕심이 많아진다. 아무래도 경험치가 쌓이니까 현장이 쉬워져서 그런 거 같다. 자꾸 혼나는 거 같고 해놓고도 자책만 하던 시기를 지나 지금은 현장에서 간섭도 하고 오지랖도 넓어졌다. 하지만 노련함과 별개로 연기는 항상 모자라 보인다.

로프로 완성한 케이프는 버버리(Burberry), 아이보리색 테일러드 재킷은 푸시버튼(Pushbutton), 베레는 컴뱃밀리터리샵(Combat Military Shop), 핑거리스 가죽 장갑은 칼 라거펠트(Karl Lagerfeld).

로프로 완성한 케이프는 버버리(Burberry), 아이보리색 테일러드 재킷은 푸시버튼(Pushbutton), 베레는 컴뱃밀리터리샵(Combat Military Shop), 핑거리스 가죽 장갑은 칼 라거펠트(Karl Lagerfeld).

인터뷰 전에 SNS에 들어가봤는데 마냥 밝은 웃음이 가득했다. 인스타그램은 소통을 위한 것인가, 기록을 위한 것인가. 다작을 하지 않다 보니 팬들에게 미안해서 가끔씩 ‘이렇게 살고 있어요’ 생존 신고 느낌으로 올린다. 일상 사진도 올리고 싶은데 대충은 못 찍겠다. 예쁘게 하고 나가는 일이 별로 없어서 그렇다.

세상에 하고 싶은 얘기를 전하는 채널로 SNS를 활용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작년에 스폰서 보도 방송을 보고 남긴 글이 엄청 화제를 몰고 온 것처럼. 방송을 보고 너무 열 받아서 그랬다. 그 행동을 한 ‘나쁜 놈’들에게 뭐라고 해야지, 화살이 ‘그 여자 배우가 누구냐’로 가서 너무 화가 났다. 사실 속으로 들끓는 게 있다. 불의를 못 참는다고 해야하나? 예전부터 배우가 안 됐으면 경찰이나 기자가 됐을 거라고 말했다. 적성검사 하면 언론인으로 나온다.(웃음) 기질 자체가 불의를 못 참아서 실수할 확률도 높다. 예전에 팬하고 싸운 적도 있다. 욕해논 거를 공개적으로 리트윗 하고 똑같이 메시지 보내고 막. 아이 때는 에너지가 넘쳤다.(웃음) 지금은 조금 성숙해졌다. ‘화가 많이 났나 보다. 다 부질없다. 먹고사는 게 더 중요하지’ 이런다.(웃음)

왜 이렇게 바뀌었나. 모르겠다. 지금도 끓는 건 있다. 성질이 어디 가지는 않는다. 그런데 참고 산다. SNS를 소통의 창구로 이용하면 악용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겪어봤잖나. 어떻게 하면 언론의 관심과 기대치를 높일 수 있는지 나는 안다. 관심도를 유지하면서 갈 수 있는 방법도 아는데 예전에 다 해봐서… (웃음)

촬영 안 할 때는 무슨 일을 하며 보내나. 심심하게 지낸다. 운동 하고 영화 보고 운동 하고 영화 보고 운동 하고 영화 보고. 예전에는 특이한 운동도 많이 했는데 지금은 유지할 정도로만 한다. 춤을 배울까 생각 중이긴 하다. 얼마 전에 연극 <남자충동>을 보러 갔는데 류승범 오빠가 바르셀로나에 재즈 댄스를 배우러 간다는 거다. “여기서 배워도 되는데 거기까지?” 그랬더니 “열정적이잖아” 하는데 뭔가 거기서 배워야 재즈 댄스도 진짜 열정적일 거 같은 거다. 갑자기 나도 진짜 배우고 싶어졌다.(웃음)

뛰어난 운동신경은 가문의 전통인가. 우리 세 자매가 다 운동신경이 좋다. 막내도 그 순한 얼굴을 하고 진짜 운동 잘한다. 육상으로 도 대표도 했다. 광양여고가 여자 축구로 유명한데 감독님이 둘째 축구 시키라고 찾아온 적도 있었다.

막내 동생 채서진이 배우 일을 시작해서 든든할 것 같다. 정말 그렇다. 예전에는 모든 걸 혼자 생각하고 혼자 결정했다. 작은 일은 같은 직업군이 아니면 이해의 폭이 좁다. 동생이 일을 시작하고 나서부터 연애를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외로움도 못 느낀다. 영화를 보고 나면 둘이 2시간 가까이 수다를 떤다. “그 장면은 왜 좋았는데?” “거기서는 어떤 생각이었는데?” “나는 반대로 생각했거든” 그런 대화들. 동생은 친구와 영화를 봐도 급하게 집에 온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다며. 애착이 가는 캐릭터가 다를 때가 많은데 각자 이입을 하고 나중에 같이 설명할 때가 제일 재미있다. 내가 못 보는 부분을 동생의 시선으로 볼 때 약간 존경심도 생긴다. 이 새끼 다 키워놨더니…(웃음) 동생은 중학생 때부터 서울에 와서 같이 살았다.

키우다시피… 본의 아니게. 그래서 내가 철이 들었다.

트렌치 코트는 버버리(Burberry), 화이트 셔츠는 바톤 권오수(Baton Kwonohsoo), 타이는 구찌(Gucci), 가죽 장갑은 칼 라거펠트(Karl Lagerfeld), 레이스업 부츠는 지암바티스타 발리(Giambattista Valli).

트렌치 코트는 버버리(Burberry), 화이트 셔츠는 바톤 권오수(Baton Kwonohsoo), 타이는 구찌(Gucci), 가죽 장갑은 칼 라거펠트(Karl Lagerfeld), 레이스업 부츠는 지암바티스타 발리(Giambattista Valli).

여배우들이 사는 공간은 어떤 모습인가. 묘사해준다면. 심플 그 자체다. TV가 제일 크다. 그건 포기할 수 없다. 소파도 크다. 왜냐하면 TV 보려면 편해야 하니까.(웃음)

서울에서는 어느 동네를 가장 좋아하나. 좋아하는 동네는 없다. 그나마 잘 가는 데는 희한하게 압구정 로데오다. 텅 비었는데 건물주들한테는 죄송하지만 조용해서 좋다.(웃음) 갈 때마다 ‘여기가 왜 이렇게 됐지? 어떻게 해야 다시 살아나지? 일단 임대료를 반으로 내리면 되는데 왜 다들 안 내리지?’ ‘사드가 풀리고 대형 엔터테인먼트 사무실 한 곳이 이사 오면 근처에 빵집이랑 카페가 생기겠지?’ 별생각을 다 한다.

공개 연애할 때 자신의 행복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처럼 보여서 좋았다. 새롭게 연애를 하게 된다고 해도 여전히 같은 태도일까. 다음은 결혼 발표가 되지 않을까.(웃음) 처음에는 무서울 게 없어서 너무 재미있게 연애를 했고 마지막 공개 연애 때는 거짓말 하기 싫으니까 맞다고 했다. 다음에는 연애의 결실을 맺어서 결혼하고 싶은데 그 과정에서 또 들키게 되면 거짓말 하기 싫으니까 또 공개 연애가 되겠지.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든 건가. 생각이 계속 바뀐다. 어릴 때는 부정적인 생각이 강했다. 그런데 작년에 딱 서른 살이 되니까 해도 될 것 같은 거다. 하고 싶은 작품 많이 하고 아이를 낳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선택의 문제인 것 같다. 예전엔 왜 결혼하기 싫어했지?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일을 하고 싶어서인 거 같더라. 일하는 게 더 행복하면 일을 하는 거고, 놓치기 싫은 사람이 나타나면 결혼을 선택하는 거고. 어떤 일을 해서 행복하다면 감수하고 선택해야 할 것 같다.

예전 인터뷰에서 세상에 필요한 건 록 스타라고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록 스타는 정치든 미디어든 어떤 것과도 싸워 이길 수 있는 존재라고 말했다. 지금 세상에 필요한 건 누구일까. 진짜 제대로 된 언론인. 정직한 언론인. 거짓말 하지 않는 언론인. 팩트 체크로 네거티브를 걸러내는 거 보고 든 생각이다. 작은 변화지만 세상이 바뀌었다. 미국은 거짓말이 심한 언론인이 많아서 국민들이 언론보다 트럼프 대통령을 더 믿는다고 하더라. 그나저나 록 스타에서 언론인으로 넘어오다니 너무 비약이 크다. 하하.

문득 김옥빈이 끝까지 배우를 하는 운명을 타고난 이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릴 때는 내 이름을 싫어했다. 김옥빈이라는 이름이 궁금해서 찾아봤는데 죄다 남자더라고. 심지어 순천경찰서 강력반 반장님 이름이 김옥빈이다.(웃음) 김옥빈 기자도 있어서 검색하면 내 기사가 자꾸 뒤로 밀린다. 그분이 여자인지 남자인지 궁금하다.(웃음) 물론 지금은 나도 내 이름을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