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Master Into Art

2017.05.30

by VOGUE

    Master Into Art

    예술의 정의를 다시 쓰며 그 영역을 확장시켜온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의 소장품이 서울시립미술관을 찾는다. 전시 <하이라이트>에 앞서 〈보그〉는 아티스트 5인의 작업실을 찾아 현대사회를 탐구하는 작품의 기원과 마주했다.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던지는 마스터피스, 세상을 새롭게 볼 수 있는 황홀한 힘.

    JEAN-MICHEL ALBEROLA

    알베롤라 교체 고해상

    스케일의 예술가 프랑스 현대미술의 슈퍼스타이자 식지 않는 창작욕의 대가로 불리는 장 미셸 알베롤라. 알제리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자란 그는 1982년 파리의 유명 아트 딜러 다니엘 템플롱(Daniel Templon)이 발견하면서 날개를 달아 최고의 아티스트로 성장했고, 현재 프랑스 예술학교 보자르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많은 젊은 예술가들은 그에 대한 존경을 공공연히 표하곤 한다. 그는 신화와 성경책에서 영감을 받으며 작품에 그의 사인이 아닌 아폴론의 후손 악타이온의 사인을 하곤 한다. 그가 작업할 때 악타이온에 가까운 인물이 되어 작업하기 때문인 듯하다. 또 궁정화가인 베로네세, 벨라스케스, 그리고 모네에게서도 영감을 받는다. 그의 작품은 굉장히 상징적인데, 특히 여러 주제를 퍼즐처럼 끼워 맞추듯 표현하곤 한다. 때론 수수께끼를 푸는 듯하다.

    수많은 회화 작품과 작업 도구로 가득 찬 알베롤라의 작업실. 그는 여러 작품을 동시에 작업하는 스타일로, 회화와 회화 작업 사이에 조형 작업을 하기도 한다. 작업실 한쪽 사무실에서 동료 예술가들과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한다.

    수많은 회화 작품과 작업 도구로 가득 찬 알베롤라의 작업실. 그는 여러 작품을 동시에 작업하는 스타일로, 회화와 회화 작업 사이에 조형 작업을 하기도 한다. 작업실 한쪽 사무실에서 동료 예술가들과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한다.

    그의 사진만 봐도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 굳게 닫힌 입, 웃음기 없는 표정, 차갑고 고집 센 거장의 모습이었다. 파리에 위치한 그의 아름다운 작업실에 도착했을 때 그 공간은 작가를 닮아 있었다. 웅장했고, 모든 도구와 작품이 강한 아우라를 뿜고 있었다. 그를 찾아 밟을 때마다 요란스럽게 삐걱거리는 오래된 나무 계단을 올라갔다. 그의 이름에 걸맞지 않은 아주 작은 사무실이 나왔고, 어디선가 격양된 저음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다른 예술가들과 토론 중이었다. 직접 그를 만나고 1분도 채 되지 않아 선입견이 깨졌다. 친절했다. 게다가 차분하지만 강력하며 진솔하고 자유로운 세계관을 가졌다. 왜 식‘ 지 않는 창작욕의 대가’란 타이틀이 붙는지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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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업실이 아름답다. 이곳에선 보통 하루 몇 시간씩 보내는가?
    파리 작업실을 말하는 건가? 좀 이상하지만 난 한곳에 머물며 작업하는 작가가 아니다. 보통 한 작품을 완성하는 데 2년 혹은 3~4년의 시간이 걸린다. 회화의 경우 한 작품을 여러 번에 걸쳐 그린다. 문제는 내가 한자리에 오래 앉아 있지 못한다는 것이다. 항상 어딘가로 떠나야 한다. 예를 들면 그림을 한 차례 그리고 나서 어딘가로 떠난다. 다시 돌아와서 한 차례 그리고 나서 또 어딘가로 떠난다. 이런 식으로 반복한다. 참 이상하지 않나? 그렇게 작업마다 공백이 생긴다. 그림 그리기와 다음 그림 그리기의 사이에 다른 작업을 하곤 한다. 그 텀이 길든 짧든 말이다. 예를 들면 네온 라이트를 만들거나, 다른 창작물을 위한 아이디어를 짜낸다. 항상 다른 것을 찾아 헤맨다. 또 한 번 이상하지 않는가?(웃음) 이런 점이 보통 다른 작가들과 다르다. 하루 종일 앉아서 그림만 그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현재는 그렇다. 이 방식이 언제 어떻게 바뀔지는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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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 같은 대가들은 운명적으로 선택받은 것 같다. 예술가로 살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아주아주 오래전 일이다. 어느 날 그림 그리기 너무 적합한 순간을 만났다. 아주 불안정한 상황이었는데 말이다. 상상해보라. 지금 있는 이 공간이 당신에게 착 맞아서, 너무 좋아서, 무작정 머무르는 것이다. 아주 불안정한 상황이지만 내게 너무 맞는 것이라 떠날 수 없었고, 그림을 그려야만 했고, 그렇게 화가가 됐다. 이 공식은 어디서나 적용된다. 그것이 사랑이든, 음악이든, 약물중독이든. 그 불안정한 상황이 너무 좋고 적합해서 머무르는 거다. 나에게 바깥세상은 너무 어렵다. 모든 아티스트가 그렇듯이 세상과의 교감이 힘들다. 거의 대부분의 예술인이 불안정하지만 적합한 공간과 상황을 만나, 그 안에서 독창적인 예술 활동을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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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의 작품으로 가득 찬 갤러리에서 제3세계의 소녀를 만났다고 하자. 스스로를 어떤 작업을 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할 건가?
    아마도 소녀와 대화하는 순간 아이디어를 찾겠지만, 이렇게 말하겠다. 내 머릿속에 있는 모든 것을 특정 ‘스케일’로 구현하는 사람. 어떤 카테고리도 나누지 않고 머릿속의 모든 것을 꺼내서 말이다. 나의 작품은 ‘스케일’에 기반한다. 어려운가? 거리를 걷는 사람들, 차를 마시는 사람들, 거리의 개들, 이 모든 장면을 나만의 스케일에 넣는다. 그래서 작품 대부분이 그룹이다. 인구 그룹(Population)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당신을 화가라고 가정해보자.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릴 때 당신은 혼자다. 완성된 작품은 어딘가의 갤러리에 걸리고 컬렉터의 손에 들어갈 것이다. 이처럼 상황마다 장소가 바뀐다. 나에게 첫 번째 장소는 전시장, 두 번째는 컬렉터의 눈, 세 번째가 소녀의 눈이라면, 내가 작업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휴먼 스케일에 대해 설명할 것이다.

    ‘Group Perstective, 2014’.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이 2015년에 소장한 작품으로 이번 전시 에서도 선보인다.  아래 붉은색 작품은 ‘Cédric Villani’s Hand(Cercignani’s conjecture), 2011’.

    ‘Group Perstective, 2014’.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이 2015년에 소장한 작품으로 이번 전시 <하이라이트>에서도 선보인다. 아래 붉은색 작품은 ‘Cédric Villani’s Hand(Cercignani’s conjecture), 2011’.

    당신에게 예술은 소명일 테지만 작품을 통해 남에게 전하고 싶은 바도 있는가?
    어떤 메시지도 없다. 메시지는 보는 사람이 갖고 있다. 독자 스스로 생각해야 한다.

    화가이자 조각가이자 시네아스트이자 작가로, 하나의 장르로 정의할 수 없는 작업을 한다. 가장 좋아하는 매체는 무엇인가?
    하나를 고를 수 없다.

    이번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소장품 기획전의 출품작 선정 기준은 무엇인가?
    두 개의 오래된 작품이 있다. 그중에 하나를 재단에서 골랐다.

    대가의 반열에 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을 긴장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계속 연구해야 하는 것. 인생처럼.

    영감은 어디에서 받는가?
    너무 많은 것으로부터 영감을 받는다. 하나로 정의할 수 없다.

    예술의 정의는 아티스트마다 다르다고 생각하는가? 당신의 예술에 대한 정의는 무엇인가?
    아름다움, 전파, 내 사고의 승격.

    예술에서 가장 좋아하는 인용구는 무엇인가?
    난 하나의 인용구로 작업한다. 프란츠 카프카가 말한 “강으로부터의 울림(Un appel monte du fleuve)”.

    특히 좋아하는 예술적인 시기는 언제인가?
    딱히 좋아하는 시기는 없다. 굳이 고르자면 고전일수록 좋다.

    DILLER SCOFIDIO + RENFRO

    DS+R 스튜디오는 하이라인 옆, 첼시에 위치한다. 벽과 문이 없는 개방형 회의실과 사무실은 마치 경계를 모르는 그들의 작업처럼 보인다. 아래는 고가 화물 노선을 공원으로 업사이클링한 ‘하이라인’, 구름으로 둘러싸인 ‘블러 빌딩’, 역발상 설치로 놀라운 반응을 끌어낸 ‘Musings on a Glass Box’.

    DS+R 스튜디오는 하이라인 옆, 첼시에 위치한다. 벽과 문이 없는 개방형 회의실과 사무실은 마치 경계를 모르는 그들의 작업처럼 보인다. 아래는 고가 화물 노선을 공원으로 업사이클링한 ‘하이라인’, 구름으로 둘러싸인 ‘블러 빌딩’, 역발상 설치로 놀라운 반응을 끌어낸 ‘Musings on a Glass Box’.

    예술의 민주주의 지난 2002년, 스위스 엑스포에서는 독특한 빌딩이 전세계적인 관심을 불러 모았다. 빌딩은 빌딩이되, 건물을 구성하는 재료가 남달랐다. 3만5,000개의 고압 노즐에서 뿜어져 나오는 미세한 물방울이 창문이 되고, 벽이 되고, 문이 되고, 지붕이 되었다. 엘리자베스 딜러(Elizabeth Diller)와 리카르도 스코피디오(Ricardo Scofidio)의 뉴욕을 거점으로 하는 스튜디오, 딜러 스코피디오+렌프로(DS+R)의 ‘블러 빌딩’은 판타지 영화 속 컴퓨터 그래픽으로나 등장할 법한 구름의 빌딩을 현실화했다. 환경으로 기능하던 ‘물’을 적극적으로 빌딩 재료로 활용하면서 공간과 벽, 건축의 물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흔들고, 습도, 온도, 풍향 등의 날씨에 반응하는 테크놀로지로 자욱한 물안개를 뿜어내어 오히려 현대의 기술이 만들어낸 시각적 의존성에 질문을 던진 것이다. 미술과 건축 두 가지 기반을 갖추고 있는 이들은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현대사회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어떻게 극복하고 끌어안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독특한 접근 방식과 아이디어로 표현해왔다. 이를 위해 설치, 공연, 퍼포먼스 등의 표현 방식을 아우르는 것은 물론이고, 고전적인 의미로서의 ‘건축물’도 그 범위 안에 포함시켰다.

    Blur 03

    수많은 뉴욕의 랜드마크가 그들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됐다. 링컨 센터 프레지던츠 다리, 독특한 로비와 공간을 자랑하는 줄리어드 스쿨, 수트케이스를 차곡차곡 올려둔 것처럼 보이는 컬럼비아 대학의 교육 센터 등이 모두 그들로 인해 만들어졌다. 뉴욕을 대표하는 21세기 업사이클링형 공원 하이라인(High Line) 역시 그들의 손을 거쳤다. 하이라인 공원의 끄트머리 허드슨 야드에 짓고 있는 신개념 건물 ‘더 셰드(The Shed)’와 증축을 앞둔 미술관 모마(MoMA)도 DS+R의 긴 프로젝트 리스트에 포함되어 있다. 그뿐인가, 그들은 스파이크 존즈와 영화 <그녀>를 위한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하기도 했으며, 음악가 데이비드 랭(David Lang)과 함께 할 오페라 <Mile Long Opera> 프로젝트에 매진하고 있다.

    수많은 픽셀로 이루어진 설치 작품 ‘Exit’. 이민이라는 주제를 지리학자, 프로그래머 등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과 완벽하게 객관적으로 시각화했다.

    수많은 픽셀로 이루어진 설치 작품 ‘Exit’. 이민이라는 주제를 지리학자, 프로그래머 등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과 완벽하게 객관적으로 시각화했다.

    한국에서 소개할 작품 ‘Exit’은 이민과 관련한 작품이다. 어떻게 이 주제를 선택하고 발전시켰나?
    폴 비릴리오(Paul Virilio)와 까르띠에 재단이 ‘이민(Human Migration)’에 대한 작품을 해보지 않겠냐고 먼저 제안해왔다. 폴 비릴리오는 테크놀로지와 미래, 속도와 공간에 대해 탐구하는 프랑스 철학가이자 이론가인데, 우리는 그가 정의한 이민의 세 가지 원인, 정치적, 경제적, 환경적 요인을 바탕으로 이를 탐구하는 프로젝트를 강렬한 방식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지리학자, 프로그래머, 지도 제작자와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 물론 통계학자들까지 참여하는 팀을 꾸렸다. 우리는 이것이 아주 객관적으로 보이길 바랐다. 감정적으로 다루어지기 쉬운 주제라 객관화하기 위한 과정이 상당히 어려웠다. 이것을 어떻게 데이터로 이야기할 수 있을지, 또 기존 미디어, 이를테면 필름, 사진, 내러티브 텍스트 등이 아닌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했고, 결국 지오코드 픽셀을 사용하게 된 것이다.

    6. Musings on a Glass Box. Photo by Matthew Johnson

    까르띠에 재단과의 관계가 궁금하다. 까르띠에 재단의 장누벨 건축물을 기념하기 위한 ‘Musings on a Glass Box’는 여전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건축적인 의미에서 건축물을 어떻게 기념할 것인가를 고민해 만든 작품이었기 때문에 그 과정 자체도 의미 있고 재미있었다. 그러나 까르띠에 재단과의 첫 만남은 그보다도 훨씬 더 이전의 일이다. 우리는 관람객의 입장을 나타내는 커다란 로봇을 컨베이어 벨트에 설치하고 그 안에 마이크로 카메라를 장착해 움직이도록 하면서 ‘관람(Spectatorship)’을 탐구하는 설치 작품을 함께 했다. 이후 다양한 프로젝트를 함께 해오고 있다. 에르베 샹데스(Hervé Chandès)는 아주 비상한 사람이다. 예술을 고전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편견 없이 바라보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은 팝 가수, 패션 디자이너, 수학자, 지리학자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모아 독특한 주제를 가지고 그 이상의 무언가를 탐구해나갈 수 있는 세상에서 거의 유일한 곳이 아닐까 한다.

    High Line_Aerial view at Little W. 12th Street_photo by Iwan Baan_Courtesy of Diller Scofidio + Renfro

    당신들은 예술 행위에 ‘민주주의’를 실현하겠다고 외치는 듯하다. 스튜디오의 운영 철학도, 당신들의 예술 철학도 근본적으로는 민주주의다.
    그 공식이 맘에 든다. 사실이다. 매우 그렇다. 토니 가르니에가 건축한 파리의 오페라 극장을 생각해보면, 로비가 오디토리엄 홀보다 훨씬 더 크다. 퍼포먼스를 보고 로비를 나서면 관객 스스로가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공간, 그것이 건축의 힘이다. 우리 작업 중에서도 링컨 센터나 하이라인 같은 ‘시민 공간’에서 사람들이 연결되는 모습을 목격한다. 많은 공간이 사유화되고 민영화되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1㎡의 공간을 사용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돈과 자원을 써야 하는지를 생각해보면 말이다. 따라서 공공장소를 만들어나가는 것은 매우 중요한 작업이다. 또 이러한 공간에서 사람들의 습관을 바꾸고 싶다. 하이라인이 가진 ‘아무것도 하지 않음’의 개념이 정말 마음에 든다. 현대인들은 하루 종일 생산적인 일에 소모된다. 그러나 하이라인 공원에서는 조깅을 할 수도, 강아지를 산책시킬 수도 없다. 그저 걷고 앉는 일 이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 돌아가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기술은 사적인 공간과 공공의 공간의 개념을 완벽하게 바꾸어놓았다. 사적인 공간과 공적인 공간이 명확하게 구분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소셜 미디어가 이러한 벽을 허물었다. 소셜 미디어는 매우 사적인 경험을 공공연히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지 않나. 그러니 이런 공공의 장소가 완벽하게 사적인 공간으로 탈바꿈할 수도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하이라인에서 키스를 나눈다. 키스하기 좋은 장소 1위가 바로 하이라인이라고!

    DAIDO MORIYAMA

    끊임없는 도시의 왁자지껄함 속에서 분절된 일상을 포착해낸 흑백사진을 투영한 실감 나는 멀티스크린 작품 ‘개와 망사 스타킹(Dog and Mesh Tights)’. 9개월 동안 도쿄, 홍콩, 타이베이, 휴스턴, LA 등의 건물 외벽 또는 버려진 뒷골목을 배회하며 마주친 대상을 포착했다.

    끊임없는 도시의 왁자지껄함 속에서 분절된 일상을 포착해낸 흑백사진을 투영한 실감 나는 멀티스크린 작품 ‘개와 망사 스타킹(Dog and Mesh Tights)’. 9개월 동안 도쿄, 홍콩, 타이베이, 휴스턴, LA 등의 건물 외벽 또는 버려진 뒷골목을 배회하며 마주친 대상을 포착했다.

    들개의 사진 사진이 일상이 되기 전부터, 일상의 오만 가지 모습과 표정을 담아온 사진작가가 있다. ‘아레 부레 보케(거침 흔들림 흐릿함)’란 단어를 탄생시킨, 전설의 사진가로 불리는 ‘모리야마 다이도’. 사진은 ‘완벽한 구도로 흔들림 없이, 대상을 알아볼 수 있게 찍어야 한다’는 정설을 파괴하고, 흔들림과 강렬한 흑백 대비를 채용해, 사진의 새로운 장을 연 사진가다. 조금쯤 흔들려도, 사진 속의 인물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아도, 쇼윈도의 절반쯤 잘려나가버려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렇다. 그는 모리야마 다이도다. 도시 풍경을 사진으로 짓이기는 사진가다. 그의 손으로 해체된 도시 풍경은 있는 그대로를 드러낸 사진보다 강한 상징성을 갖는다. 흔들리고 흐릿하고 거친 사진 속에서 도시는 살아 숨 쉬는 ‘다큐멘터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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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리야마 다이도는 1938년 오사카에서 태어나, 상업 디자이너를 거쳐 사진의 세계에 입문했고, 1963년 25세의 나이로 독립했다. “독립 당시 나에게 있던 것은 어머니한테 받은 미놀타 SR7 한 대와 체력뿐이었다”고 그는 회상한다. 카메라 한 대와 체력, 젊음이 있으면 충분했다. 미군 기지가 있는 요코스카를 찾아가 사진을 찍었다. 요코스카를 어느 정도 사진으로 담은 후엔 ‘바닷마을’ 즈시를 찾았다. 그렇게 그는 평생 도쿄를, 파리를, 상파울루를, 마라케시와 뉴욕을, 하와이를 오가며 스트리트 사진을 찍었다. 패셔니스타를 찾아 헤맨 것도, 세계 유산으로 남은 유적을 찾아다닌 것도, 가난한 거리의 아이들이나 전쟁터를 담은 것도 아니었다. 그는 오로지 길 위에서 모든 것을 사진으로 남겼다. 전신주, 수도꼭지, 이름 모를 이의 얼굴, 개 한 마리, 도시의 여인들, 쇼윈도, 들꽃, 쓰레기, 벽보… 대체 무엇을 찍은 것일까? 그의 사진을 볼 때 누구나 가지는 의문이다. 어디를 봐도 도시 풍경이다. 매일 보는 그것이다. 그런데 어디서 본 모습인지 도저히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한 번 더 보게 된다. 모리야마 사진의 매력은 처음 봤을 때와 다음에 봤을 때, 또다시 봤을 때 각기 다르게 보인다는 데 있다. 보는 이의 정신 상태에 따라, 관점에 따라 얼마든지 달리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보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올해로 만 79세가 되는 모리야마는 여전히 매일 길을 나선다. 블랙 데님에 블랙 티셔츠를 걸치고. 주머니에는 니콘 쿨픽스와 피스 슈퍼라이트 한 갑을 찔러 넣고. 황야를 떠도는 들개처럼 도시에 그의 발자국과 이빨 자국을 남기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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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업실 간판이 개의 사진이다. 수많은 사진 중 미사와 미군 부대에서 찍은 저 개 사진을 간판으로 쓰는 이유는 무엇인가?
    내 얼굴을 내거는 것보다는 그나마 낫지 않은가.(웃음) 1971년에 미사와 미군 부대 근처에서 찍은 사진이다. 당시 일본 주둔 미군 부대 주변에 버려진 개들이 많았다. 내 추측인데, 미군 병력 축소로 미국으로 돌아가는 군인들이 개까지 데려가지 못한 것 같다. 그 개들 중 한 마리를 우연히 찍었는데, 다들 좋아하는 사진이라 내걸었다.

    당신에게 저 개는 어떤 의미인가?
    나의 대표작이기도 하고, 오래전 사진이지만 나도 좋아하는 사진이다. 마치 나를 보는 것 같다. 나는 ‘개’ 같은 습성을 갖고 있다. 성격이 개 같다는 의미가 아니다. 눈을 뜨면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고, 좁은 골목을 보면 끝까지 가보고 싶다. 개와 다른 점은 내게는 카메라가 있다는 점이다. 들개처럼 정신없이 거리를 헤매며 사진을 찍는다. 그런 내 성향이 고스란히 드러난 한 장이다.

    26개 패널에 부착된 3,262장의 컬러 폴라로이드 사진으로 구성한 설치물 ‘폴라로이드 폴라로이드(Polaroid Polaroid)’. 이번 까르띠에 전시를 통해 한국에 처음 소개하는 모리야마 다이도의 작품이다.

    26개 패널에 부착된 3,262장의 컬러 폴라로이드 사진으로 구성한 설치물 ‘폴라로이드 폴라로이드(Polaroid Polaroid)’. 이번 까르띠에 전시를 통해 한국에 처음 소개하는 모리야마 다이도의 작품이다.

    요즘도 매일 사진을 찍는가?
    사진을 안 찍고는 버틸 수가 없다. 나는 ‘개’이기 때문에 매일 나가야 한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도, 간편한 옷을 입고 우선 밖으로 나간다. 산책을 하다 보면 기분이 좋아지고 셔터를 누르게 된다. 도시의 구조물,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쇼윈도의 최신 패션, 아스팔트 사이에 핀 꽃, 온갖 것이 때로는 조화를 이루고 때로는 힘겨루기를 하며 살아간다. 도시에는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집합해 있다. 그런 복잡함 속에 몸을 두면 절로 기분이 고양된다.

    하루 몇 시간쯤 사진을 찍는가?
    오늘은 아침에 우리 동네(이케부쿠로)를 산책했다. 1시간쯤 걸었다. 어떤 날은 아침에 2시간쯤 산책을 하고, 또 다른 날은 오후 내내 어슬렁어슬렁 여기저기 돌아다닌다. 컨디션, 기분, 날씨 등에 따라 산책하는 시간이 달라지는데, 시간을 막론하고 매일매일 걷고 사진을 찍는 일과는 50년 동안 변하지 않았다.

    50년 동안 길 위에서 사진을 찍었다. 도쿄에서도 특히 신주쿠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
    왔는데, 50년 사이에 변한 것이 있는가?
    지난 50년 동안 가장 많이 다닌 곳이 신주쿠다. 신주쿠는 오피스가, 환락가, 쇼핑가 등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다. 50년이면 강산이 몇번 변했겠나. 사람도 거리의 모습도 크게 변했다. 그렇지만 인간의 본질적인 부분이랄까, 도시의 욕망, 인간의 욕망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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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에 찍은 영화 포스터가 공개되었다. 올가을 개봉하는 데라야마 슈지의 원작 소설 <아아, 황야>의 영화 포스터인데, 신주쿠 골든가(일본의 문인, 영화감독 등이 모이는 작은 술집이 즐비한 장소)에서 촬영했더라.
    ‘골든가’는 세계 유산으로 지정해야 할 장소다. 작은 공간에 개성 있는 인물들이 몰려들어 술 한 잔 기울이며 인생과 문학과 예술을 논하는 유일무이한 곳이다. 데라야마 슈지는 신주쿠를 ‘네온의 황야’라고 불렀다. 고층 빌딩이 무성한 장소가 아니라, 인간의 욕망과 체액이 혼연히 교차하는 곳. 이 작품은 소설이 발표되었을 때 표지 사진을 찍었고, 연극 무대에 올랐을 때는 연극 포스터를 찍었고, 이번에 영화화되면서 영화 포스터를 찍게 되었다. 데라야마 슈지가 타계한 후에도 그의 작품과 내 사진의 인연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매우 고맙고 반갑고 감회가 새롭다.

    젊은 시절에 쓴 에세이가 모두 주옥같다. 그림 실력도 뛰어난데 왜 사진을 선택했나?
    상업 디자인을 하면서 앉아 있는 것에 싫증이 났다. 어릴 때부터 친구들과 노는 것보다 거리를 걸어 다니는 것이 좋았다. 글을 쓰는 것도, 그림을 그리는 것도 모두 앉아서 하는 일이다. 그렇게 멈춰서 하는 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사진도 구도를 정하고 이렇게 찍을까 저렇게 찍을까 고민하지 않는다. 순간적으로, 본능적으로 셔터를 누르고, 또 바로 다음 사진을 찍으러 걷기 시작한다. 멈추어 있는 것이 싫다. ‘개’도 그렇지 않은가.(웃음)

    그렇게 걷고 걸어서 도쿄는 물론 하와이, 상파울루, 파리, 뉴욕 등 전 세계 각지의 스트리트를 사진에 담아왔다. 왜 한국은 찍지 않았는가?
    딱히 찍고 싶은 도시가 있어서, 적극적으로 능동적으로 찾아다니는 성격이 아니다. 우연히 어느 도시에서 사진전을 열겠다는 연락을 받으면, 그 사진전을 열기 위해 그 도시를 찾아간다. 사진전이 열리는 동안 호텔에 지그시 있지 못하고 거리를 산책하며 하루 종일 사진을 찍는다. 한국에서 사진전을 열겠다는 연락을 한 번 받았는데 재정적인 문제로 취소됐다고 했다. 한국에서 개인전이 열리고 그곳에 갈 기회가 생긴다면, 서울의 골목길을 쏘다니며 사진을 찍을 것이다.

    BERNIE KRAUSE

    샌프란시스코 중심가에서  떨어진 자연 속에 작업실을 두고 있는 버니 크라우스. 그는 40여 년간 자연의 소리를 채집하며 세상에서 가장 건강한 오케스트라를 완성해왔다.

    샌프란시스코 중심가에서 떨어진 자연 속에 작업실을 두고 있는 버니 크라우스. 그는 40여 년간 자연의 소리를 채집하며 세상에서 가장 건강한 오케스트라를 완성해왔다.

    야생의 소리 버니 크라우스는 생태음향학자이자 동식물 연구가이다. 40여 년간 자연의 소리를 채집한 그는 <보그 코리아>의 사진 촬영도 자연 속에서 하길 원했다. “야생동물이 있고, 방해할 사람이 적죠.” 샌프란시스코 시내에서 외곽으로 1시간을 달려 도착한 그의 집은 아름다운 자연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가 수집한 15만 종의 생물음은 음악으로, 오케스트라로 인정받아 신영역을 개척했다. 이전에 그는 도어스, 스티비 원더, 조지 해리슨과 작업한 잘나가는 음악가였다. 1968년 우연히 워너 브라더스의 앨범 제작을 위해 숲의 소리를 채집하다 충격을 받았다. 10년 뒤, 영화 <지옥의 묵시록>을 위해 음악을 작곡하고 헬리콥터 음향 효과를 만드는 데서 여덟 차례 해고당한 뒤, 본격적인 생태음향학 박사 학위 과정을 시작했다. 새로운 음악을 시작한 것이다. 최근 옥스퍼드 출신의 동료 리처드 블랙포드와 함께 BBC의 의뢰를 받아 <자연의 소리 교향곡 (The Great Animal Orchestra, Symphony for Orchestra and Wild Soundscapes)>을 제작했다. 이 공연은 2014 첼트넘 시에서 BBC 웨일스 국립 오케스트라가 초연했다. <Biophony>라는 제목의 발레 공연도 기획했다. 생태음향에 안무를 짠 신개념 무대로 2015년에 알론조 킹 라인스 발레와 샌프란시스코에서 초연했다. 그는 기계음에서 자연의 소리로 매체가 바뀌었을 뿐 여전히 음악을 한다고 말한다. 2016년에는 과학과 예술의 합류를 주제로 한 파리 까르띠에 전시에 참여했고, 이 작품은 이번 한국에서 열리는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소장품 기획전에서도 선보인다.

    Bernie Krause during Warner Borther recording session in San Francisco. Not credited

    지금 당신의 공간에선 어떤 소리가 들리는가?
    냉장고 소리와 고양이 ‘캣’이 컴퓨터 타자를 두드리는 소리와 고양이 ‘시위드’가 먹을 것을 달라고 보채는 소리.

    하루 종일 자연의 소리를 채집하며 지낼 것 같다. 주요 일과는?
    옛날에는 세계 어딘가에서 소리를 채집하는 게 주된 일과였다. 나이가 드니(내년이면 여든 살) 지역별로 녹음한 파일을 정리하고 어떤 동물인지 확인하는 일로 하루를 보낸다.

    당신은 꽤 유명한 음악가이자, 기타리스트, 작곡가였다. 당신을 생태음향 전문가로 이끈 ‘강렬했던 첫 소리’는?
    어릴 적부터 자연의 소리를 인식하고 있었다. 1940년대 초반, 미국 중서부 시골의 세 살배기는 자연의 소리에 잠이 들곤 했다. 시력이 좋지 않아 소리의 세계는 자라면서 늘 중요했다. 그 소리가 내 삶과 예술에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은 건 서른 살쯤이었다. 바이올리니스트로 시작해 작곡가, 일렉트로닉 뮤지션, 그리고 생태음향 학자이자 동식물 연구가로 소리의 삶은 자연스레 이어졌다. 강렬했던 첫 소리를 꼽자면, 1968년 10월이 떠오른다. 지금은 고인이 된 동료 폴 비버(Paul Beaver)와 함께 워너 브라더스를 위한 앨범 <In Wild Sanctuary>에 쓰일 소리를 채집하려 샌프란시스코 북쪽에 있는 뮤어 숲을 방문했다. 자연의 소리를 음악에 쓴 건 처음이었다. 녹음기를 켜자 어마어마한 자연의 소리가 귀에 다가왔다. 순간, 이 일을 평생 하고 싶어졌다. 10년 뒤, 생태음향학 박사 학위 과정을 시작했고 본격적으로 이 길에 들어섰다. 원시적이면서 현대적인 우리 문화의 뿌리를 추적하는 데 자연의 소리만 한 게 있을까?

    Krause_UVA Photo Luc Boegly (2)

    자연의 소리를 만나려면 무엇부터 해야 할까?
    인간이 만드는 모든 소음을 차단하고, 숲에 앉아 조용히 주변에 귀를 기울여라. 삼림욕과 비슷하다.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면 어떤 변화가 찾아올까?
    아주 어릴 때부터 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장애(ADHD)가 있었다. 곳곳의 빛과 소리 때문에 산만했고, 난독증도 있었다. 하지만 50년 전 우연찮게 자연의 소리를 발견한 후 달라졌다. 생태음이 내 불안을 즉각 해소했고, 생애 처음으로 편안함과 안정을 느꼈다. 육체가 허락하는 한 이 일을 계속하고 싶은 이유다. 덧붙이면, 자연의 소리는 세상의 경이와 기적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종교적인 경험에 가깝다.

    이 생태음 오케스트라의 목적이 “생명을 찬양하는 것”이라고 했다. 당신이 소리를 채집하는 궁극적 목적이기도 한가?
    그렇지는 않다. 자연의 소리를 듣고 녹음하면 그저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생물 종을 구별하는 데 유용한 주파수의 대역폭을 제공하는 것을 제외하고, 생물음 채집의 ‘목적’은 더 없다. 생물음은 별게 아니고 한 시기, 한 서식지에 사는 생명체가 집합적으로 만들어내는 소리다. 건강한 서식지에서는 생체 음향적 표현이 아주 잘돼 있다. 이는 음향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분광 사진 기법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곤충은 대개 특정 자리를 고수하는 반면에 양서류, 파충류, 조류, 포유류는 각기 다른 주파수와 시간대를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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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을 내버려두고, 쓸데없는 제품을 강박적으로 소비하길 멈추라”고 말한 적 있다.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방법을 소개해달라.
    나와 캣(키우는 고양이)은 굳힌 흙으로 만든 집에서 산다. 적어도 우리 집을 만들기 위해 잘려나간 나무가 없다는 것에 스스로를 위안한다. 집에서는 태양열을 쓰고, 모든 쓰레기는 재활용한다. 아주 적은 양의 물을 쓰고, 그 물은 우물에서 길러온다.

    소리에 대한 과학적 정의 말고, 당신의 정의는 무엇인가?
    공기 중 진동. 하지만 음향은 여러 가지 근원에서 발생한 소리가 우리 귀에 도달하는 것을 말한다. 주요 근원은 세 가지다. 첫째는 지질음이다. 바람, 물, 지구의 자전 등에서 발생하는 소리다. 둘째는 생물음이다. 한 서식지에 사는 모든 생물이 동시에 만들어내는 소리를 집합적으로 이르는 단어다. 마지막은 인간음이다. 사람이 만들어내는 모든 소리를 가리키는 인간음은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사람이 조정해서 만드는 음악, 언어, 공연 등이고 다른 하나는 불분명하고 혼란스러운, 아무 정보도 제공하지 않는 소음이다.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소장품 기획전에 출품하는 ‘The Great Animal Orchestra, 2016’은 어떻게 기획했나?
    까르띠에 재단의 관계자가 동명으로 발간된 내 책을 읽고 연락을 해왔다. 과학과 예술을 통합시키는 무언가를 선보였으면 좋겠다고. 어떤 서식지의 생물음이 작품 목적에 적합한지, 형식은 어떻게 할지 준비하는 데 18개월이 걸렸다.

    ALESSANDRO MENDI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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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수의 시인 “이탈리아의 문화부 장관, 아니 비교할 수 없는 분이죠.” 알레산드로 멘디니의 아틀리에에서 한때 일한 한국 디자이너가 흥분하며 말했다. 이 87세의 디자이너에겐 여전히 한 달에 수십 건의 프로젝트와 인터뷰 요청이 쏟아지지만 “작은 인터뷰 하나하나에도 정성을 다하는 분”이라고 했다. 2015년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대규모 회고전에 멘디니가 손주의 손을 꼭 잡고 나타났다. 구멍 뚫린 원 모양의 라문 조명 아래 손주를 세우곤 활짝 웃었다. 순간 손주는 동그란 원반을 달고 다니는 천사가 되었다. 순수하고 맑고 마술 같은 멘디니의 작품은 작가가 그러하기 때문이다. 멘디니 하면 떠오르는 것은 아마도 와인 오프너 ‘안나 G.’일 것이다. 여자 친구가 기지개를 켜는 모습에서 착안한 이 작품은 지금도 다른 버전이 디자인되며 사랑받고 있다. 프루스트 의자도 빼놓을 수 없다. 고전적인 의자에 폴 시냐크의 점묘를 찍어 고전과 현대를 결합한 혁신적인 작품이다. 역시 다양한 패턴과 컬러로 계속 리디자인되고 있다. 그의 작품을 일일이 거론하자면 천일야화라도 펼칠 판이다. 멘디니의 출발은 건축이다.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하고, 이후 10년간 건축과 디자인 실무를 익혔다. 그후 <카사벨라(Casabella)> <모도(Modo)> <도무스(Domus)> 등 세계적인 건축 잡지의 편집자이자 비평가로 활동했다. 그때 발굴한 건축가 중 한 명이 자하 하디드다. 멘디니는 자하 하디드가 건축한 DDP를 방문할 때 ‘인연’이라며 즐거워했다. 1979년에는 진보적인 디자인 그룹 알키미아의 멤버로 참여했고, 59세인 1989년 건축가이자 동생인 프란체스코와 함께 아틀리에 멘디니를 설립했다. 우리는 노년에 무엇을 새로 시작할 수 있을까? 그는 이때부터 기능주의에 치우치던 디자인계에서 과감히 벗어나 다양한 색채의 판타스틱한 작품을 선보이며 이탈리아 디자인을 세계적인 반열에 올려놓았다.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전시 에서 선보이는 ‘Glass Warrior, 2002’. 완벽한 균형미와 강렬한 색감, 이야기를 품은 듯한 디자인이 돋보인다. 멘디니는 자신의 모든 작품이 시적인 의미를 지녀야 한다고 말한다.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전시 <하이라이트>에서 선보이는 ‘Glass Warrior, 2002’. 완벽한 균형미와 강렬한 색감, 이야기를 품은 듯한 디자인이 돋보인다. 멘디니는 자신의 모든 작품이 시적인 의미를 지녀야 한다고 말한다.

    당신을 인터뷰해서 영광이다. <보그 코리아>의 인터뷰에 응한 이유는 무엇인가?
    패션계에서 일어나는 변화에 관심이 많아서 이전부터 <보그 코리아>를 펼쳐 보곤 했다. 아름다운 사진과 전체적으로 탁월한 감각, 훌륭한 레이아웃에 감탄했다.

    DDP에서 열린 대규모 회고전에 이어, 이번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소장품 기획전으로 한국 팬과 만난다. 어떤 작품으로 어떻게 전시를 구상했는가?
    까르띠에 재단 컬렉션 중 도자기 작품에 집중했다. 소수만 존재하는 아주 특별한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우선 선정에 앞서 서울시립미술관(SEMA)의 전시 공간을 유념해 살폈다. 사각형의 전시 공간 전체를 연한 파란색으로 칠하고, 방의 중심을 따라 붉은 진열장을 나란히 놓아 도자기를 든 사람 팔처럼 보이게 해놨다. 마치 중요한 제례를 치르듯이 보이게 말이다. 내가 디자인한 꽃병 외에도 이번 전시에는 일본의 기타노 다케시, 그리고 파라과이의 훌리아 이시드레스(Julia Isidrez)와 후아나 마르타 로다스(Juana Marta Rodas)의 꽃병을 함께 선보인다. 설치물의 초점은 전시 공간 끝 쪽 벽에 그려진 커다랗고 상징적인 원에 집중될거다. 전시 공간의 모든 벽은 스위스계 브라질 사진작가 클라우디아 안두자르의 율동감 있는 사진 연작으로 뒤덮일 거다.

    밀라노에 있는 당신의 아틀리에는 무척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아틀리에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어디인가?
    내 아틀리에는 열린 공간이다. 그중에도 벽과 유리로 둘러싸인 조그만 공간이 있는데 그곳에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한다.

    밀라노에 자리한 멘디니 아틀리에. 집에 최소한의 물건만 들여놓고 사는 멘디니지만 아틀리에는 수많은 대표작으로 꾸며져 있다.

    밀라노에 자리한 멘디니 아틀리에. 집에 최소한의 물건만 들여놓고 사는 멘디니지만 아틀리에는 수많은 대표작으로 꾸며져 있다.

    작업 과정에서 가장 희열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
    생각하기 위해 혼자 있는 시간이 매일 꼭 있어야 한다. 작업을 함께 하는 사람들과 대화하고 상의하는 것도 좋아한다. 모두 내 친구들이다. 특히 남동생 프란체스코는 중요한 존재다.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천진난만함을 유지하는 비결은 무엇인가?
    늘 호기심에 가득 차 있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내려고 하는 것이 비결이다.

    영감의 원천은 어디인가?
    아주 많다. 그중에도 시각예술에 대한 역사를 탐구하는 것은 연도를 불문하고 늘 내게 서정적이고 정신적인 주제에 대한 영감을 준다.

    사랑하는 손주를 위해 라문 ‘아물레또(Amuleto)’ 조명을 만들었다. 가족, 사랑하는 사람들이 당신 작업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가? 그 조명 말고 또 어떤 작품이 있는가?
    가끔씩 특정한 사람의 이름을 딴 작품을 만들곤 한다. 이제까지 안나 와인 오프너, 크리스티나 러그, 차차차 유리잔, 프루스트 안락의자, 알렉스 긴 의자 등 여러 사람을 위한 작품을 만들었다. 이런 작업은 물건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과 같다.

    개인적으로 당신의 ‘포크 시리즈’를 좋아한다. 포크를 손에 비유해 그림을 그렸는데, 손을 많이 쓰는 이탈리아인의 특징을 잘 살렸다. 도시와 그 도시인의 특징 또한 당신에게 영감을 줄 것 같은데 어떠한가?
    사람들의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모습보다는 정신의 근원을 관찰하길 더 좋아한다. 내 작품은 하나같이 추상적이기 때문에, 도시의 물성 같은 특성보다는 그 도시가 가진 은유적인 특성과 개념에 더 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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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이나 침실에 놓은 당신의 작품은 무엇인가? 아마도 그걸 가장 좋아해서 곁에 뒀을 것 같다.
    사실 집을 가구나 각종 물건으로 채우고 싶어 하지 않는다. 아주 기초적인 물건만 가지고 소박하고 외떨어진 삶을 산다.

    열렬한 팬에게 선물을 하나 보낸다면, 당신의 작품 중 어떤 걸 선물하겠나?
    아마 그 사람을 위해 특별히 그린 그림을 선물할 것 같다.

    당신의 작품을 보면 상업과 예술의 경계는 무의미하다. 당신이 생각하는 예술의 기준은 무엇인가?
    만드는 모든 작품, 심지어 기능 위주로 디자인한 물건까지도 시적인 의미를 지녀야 한다. 시는 내가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이자 예술이다.

    지금 머릿속을 가득 채운 생각은 무엇인가?
    내 작업은 험난하고 폭력에 가득 찬 이 세상에서 긍정에 도달하고자 하는 끊임없는 여정이다. 이 생각을 계속한다. 또 점점 커져만 가는 사회의 불균형이 늘 마음속에 비극으로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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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가의 반열에 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을 긴장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물론 있다. 현재 세상은 긴장으로 가득 차 있다. 평안함이 없다. 인간이 마주하는 문제와 의심은 점점 커져만 간다. 이렇게 현기증이 날 정도로 많은 변수는 특히 내 직업군에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통합할 수 없게 만든다. 이것이 늘 나를 긴장시킨다.

    예술에 관한 수많은 작품과 인용구 중 가장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가?
    인용구라기보다 내 생각을 말하자면 이 세상에서 사람과 동물의 영혼이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다. 이런 면에서 나는 범신론자라 할 수 있다. 작품 중에서는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을 가장 좋아한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혹시 현재 예술 풍조에서 싫어하는 것도 있는가?
    돈과 힘을 거머쥐기 위한 예술을 보면 불안하다.

    나이와 상관없이 당신은 여전히 꿈을 꿀 것 같다. 지금 당신의 꿈은 무엇인가?
    지금 당장으로 말할 것 같으면, 영화를 보러 가는 것!

      에디터
      김나랑(JEAN-MICHEL ALBEROLA, BERNIE KRAUSE, ALESSANDRO MENDINI), 조소현(DILLER SCOFIDIO + RENFRO, DAIDO MORIYAMA)
      포토그래퍼
      JULIEN WEBER, JAY YUE, IWAN BAAN, LUC BOEGLY, HIRAIWA SAKI, MOK YE RIN, PIERGUIDO GRASSANO, COURTESY OF DILLER SCOFIDIO+RENFRO, THE ARTISTE / GETSUYOSHA LIMITED DAIDO MORIYAMA PHOTO FOUNDATION
      인터뷰
      지윤선 (칼럼니스트 / JEAN-MICHEL ALBEROLA), 손혜영 (칼럼니스트 / DILLER SCOFIDIO + RENFRO), 김민정 (칼럼니스트 / DAIDO MORIYA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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