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Castle

파블로 피카소의 영혼이 깃든 곳, 프랑스 부아주루 샤토 별채의 높은 벽 위에 로렌스 와이너의 2004년 작품이 등장했다.

Boisgeloup_18714

부아주루 샤토의 전경. 로렌스 와이너의 텍스트 아트 ‘A lind drawn from the first star at dusk to the last star at dawn’(1995), 프란츠 웨스트의 조각 ‘Mercury’(2004).

파리로부터 북서쪽으로 약 60km 떨어진 노르망디에 위치한 부아주루(Boisgeloup) 샤토는 파블로 피카소가 1930년 6월 10일에 사들인 사유지다. 그는 이곳의 아름답고 평화로운 환경에 반해 조각 스튜디오를 설치하기로 했고, 1937년까지 아내 올가 코클로바(Olga Khokhlova), 외아들 폴(Paul)과 함께 정기적으로 머물렀다. 당시 온수도 전기도 없는 곳이었지만 피카소에게 최소한의 편안함이란 그저 그림을 그리기 위해 편히 사용할 수 있는 매력적인 장소를 의미했기에 그는 성의 정면을 마주하고 있는 별채에 조각 스튜디오를 설치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자 피카소는 자신의 모든 석고 조각을 부아주루에 있는 스튜디오로 가져왔다. 작품을 보호하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궁극적으로는 청동으로 주조하기 위해서였다. 이후 1930년대 말까지, 스튜디오는 손상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었지만 비어 있었다. 이 삶과 창조를 위한 장소에서 피카소는 이곳까지 방문한 당시 저명한 예술계 친구들을 종종 맞이하곤 했다.

댄 그레이엄의 작품 ‘Triangular Solid inside Triangular Solid’(2002).

댄 그레이엄의 작품 ‘Triangular Solid inside Triangular Solid’(2002).

피카소는 1937년에 부아주루를 떠났고, 올가는 1940년대까지 머물렀다. 올가와 폴은 피카소가 죽을 때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이후 수십 년 동안 이 조각 스튜디오는 창고 역할에 충실했다. 이윽고 폴의 아들 버나드(Bernard)와 그의 아내인 알민(Almine)이 현대적으로 보수하여 다시 이 저택에 생명을 불어넣기로 결심했을 때까지 말이다.

18세기 건축 양식과 역사를 그대로 간직한 이 근사한 대저택은 완만하게 경사진 공원에 위치한다. 현대 조각품을 선별, 전시해두었기에 먼 길이라도 애써 찾아갈 만한 가치가 있다. 미국 작가 조 브래들리(Joe Bradley)의 새로운 조각품도 파블로 피카소의 옛 스튜디오에 임시로 전시되어 있는데, 그의 작품은 부아주루의 고전적 풍경과 대조를 이 루고 있다. 1975년 미국 메인 출생으로 뉴욕에서 거주하며 작업 중인 조 브래들리는 화가로서의 경력을 시작한 이후부터 줄곧 난해한 그림의 미학을 발전시켜왔다. 의인화된 모양과 추상적인 표현주의 구도로 이뤄진 모듈식(Modular) 캔버스부터 좀더 희화적인 ‘Schmagoo Paintings’ 전시까지, 그는 매번 다양한 테크닉과 스타일을 탐험해왔다. 최근에는 조각 작업에도 착수했는데, 두 개의 서로 다른 경향이 공존한다. 이전에 발견된 것에 기초한 조형적인 청동 조각과 미니멀리즘 형태의 일체형 조각이 바로 그것이다. 특히 조 브래들리가 알루미늄 및 플렉시글라스로 만든 조각은 모듈식 회화처럼 대안적 구성주의에 활짝 열려 있다. 피카소의 강한 흔적이 아직도 유령처럼 배어 있는 이곳에서 조 브래들리는 구상적인 청동 조각으로 대처했다.

파블로 피카소 스튜디오에서 선보인 ‘Un soir à Boisgeloup’ 전경. 왼쪽부터 데이비드 스미스의 조각, 올가 루이스 피카소 아카이브의 사진, 파블로 피카소의 조각.

파블로 피카소 스튜디오에서 선보인 ‘Un soir à Boisgeloup’ 전경. 왼쪽부터 데이비드 스미스의 조각, 올가 루이스 피카소 아카이브의 사진, 파블로 피카소의 조각.

사실 피카소의 조각품은 그가 살아 있는 동안 당대에 거의 전시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20세기 조각 역사에 끼친 지대한 영향을 생각한다면, 후대의 어떤 작가라도 감히 그처럼 전설적인 장소에 감히 자신의 작품을 설치할 용기를 내지 못할 것이다.

피카소는 조각을 통해 이질적인 재료를 많이 다루었다. 우연히 발견한 오브제를 재활용해 원숭이 얼굴을 만든다거나, 염소 가슴을 만드는 식이었다. 조 브래들리도 청동으로 주조하고 페인트칠하기 위해 기존의 오브제를 고를 때 그런 식으로 작업한다. 작은 피규어, 발, 평평하고 납작하게 벽에 눌린 직사각형 얼굴, 틀에 넣어져 한쪽 눈만 남은 얼굴의 디테일, 반쯤 보이는 코와 입술 등. 평평한 표면은 회벽에 목탄으로 쓰인 피카소 이름의 마지막 두 글자를 가리고 숨기기 위해 걸려 있다.

우고 론디노네의 작품 ‘We run through a desert on burning feet, all of us are glowing our FACES look twisted’(2011).

우고 론디노네의 작품 ‘We run through a desert on burning feet, all of us are glowing our FACES look twisted’(2011).

다른 조각 또한 그 벽에서 발견된 사인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나무로 된 오리지널 오브제로 주조된 조각이 희한한 자동차 미니어처를 구성하고 있다. 30년대에 디자인한 듯한 라디에이터, 라디에이터의 둥근 뚜껑, 네 개의 바퀴, 펜더, 정육면체의 실내… 이 모든 건 ‘Garage Hispano-Suiza(히스파노 수이자 정비소)’라는 단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피카소의 매우 유명하며 인상적일 정도로 견고한 ‘히스파노 수이자(Hispano-Suiza)’는 여전히 성의 정문 앞 자갈길에 주차되어 있는데, 폴이 자동차 수집광이라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수수한 공예품처럼 조각된 자동차와 후미에 새겨진 글귀는 이 웅장하고 진지하면서도 친절한 환경에서 용감한 현대 미술가들을 피카소의 성지로 불러들이는 역할을 하고 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조 브래들리는 이 공간에 헌사를 바치고 있는 것이다. 피카소의 조각 스튜디오는 매우 수수해서 조각 도구를 관리하기 위한 흰색의 깨끗한 공간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농기구를 보관하는 헛간처럼 보였다. 물건을 고치거나 취미 활동으로 시간을 보내는 브리콜라주(Bricolage, 간단한 수작업)를 위한 장소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 공간은 정원을 향해 활짝 열려 있으며, 현대 미술가들을 초대해 중형 조각품을 설치할 정도로 친근함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 2012년, 알민과 버나드는 이 스튜디오에서 직접 자신들의 소장품을 소개하면서, 가느다랗고 깨지기 쉬운 사이 톰블리(Cy Twombly)의 작품을 피카소의 조각과 함께 세워두기도 했다.

조 브래들리의 작품 ‘Orches Relief’(2017).

조 브래들리의 작품 ‘Orches Relief’(2017).

쌍방향 거울과 거무스름한 나무 격자로 만든 댄 그레이엄(Dan Graham)의 파빌리온(Triangular Solid inside Triangular Solid, 2002)이 이곳을 찾는 이들을 환영한다. 공원 중턱에 자리한 이 조각은 자연과 인공물을 결합해 반사시키며 보는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중이다. 근처에는 줄리안 슈나벨(Julian Schnabel)이 만든 두 개의 청동 조각(Leutwyler, 1990, Head on a Stick, 1986)이 이제는 잊혀버린 토템의 조각 기둥처럼 땅에 심어져 있다. 로렌스 와이너(Lawrence Weiner)의 텍스트 아트가 장식된 저택 앞 잘 가꾸어진 잔디에는 파피에 마세(Papier Mâché, 풀을 먹인 딱딱하고 두꺼운 종이)로 만들어 알아보기 쉬운 프란츠 웨스트(Franz West)의 금속 조각상(2008~2009)이 설치되어 있다. 조각 스튜디오의 별채 뒤에 위치한 새로운 구조물에는 작지만 최첨단 조각이 전시되어 있다. 리처드 프린스(Richard Prince)가 만든 이 작품은 대좌 위에 놓인 스포츠카의 일부(Elvis, 2007)다. 작고한 존 맥크레켄(John McCracken)의 화려한 보드(Surf, 2003), 루이스 네벨슨(Louise Nevelson)의 검정 캐비닛(Cascade Wall, 1982), 그 앞의 스탠드에 놓인 올리비에 모세(Olivier Mosset)의 맞춤 모터사이클(Panhead, 2007) 등은 웬만한 동시대의 전시장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작품이다. 프랑스어로 부아주루라는 단어는 ‘Louche(Shady, 그늘진)’를 거꾸로 읽는 기괴한 속어인 ‘Chelou’처럼 들리지만, 실제 부아주루에는 전혀 그늘이 없다. 단지 피카소의 아우라와 그의 유령에 압도당했을 뿐이다. 자신의 손자 버나드를 통해 이야기를 전하는 이 친절한 유령은 분명히 그곳에서 보낸 자신의 청춘을 재현하게 되어 기쁠 것이다.

조 브래들리의 작품 ‘Untitled’(2017).

조 브래들리의 작품 ‘Untitled’(2017).

물론 누구나 언제든 부아주루에 갈 수 있는 건 아니다. 이들은 이따금씩 현대 미술가를 초대해 이 전설적인 예술가의 놀이터에 도전해보라는 미션을 주고, 그때마다 선택적으로 대중에게 문을 여는 개인 주택이다. 담으로 둘러싸인 이 저택의 마법은 입구를 지나 공원으로 들어갈 때 고조된다. 그 곳에 오랜 세월 안전하게 보관되어 있는 특정한 생물의 다양성이 피카소의 유산을 둘러싸고 편안한 기운을 불러일으키는 듯, 도시 생활의 부담으로부터 벗어나는 자유로운 해방감을 선사한다.

(왼쪽부터)올리비에 모세, 루이스 네벨슨, 존 맥크레켄의 작품.

(왼쪽부터)올리비에 모세, 루이스 네벨슨, 존 맥크레켄의 작품.

또 다른 ‘피카소의 마법’이란 그가 살아 있는 내내 아내와 연인들에게 자신의 곁에서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집과 공간을 지금 봐도 기가 막힌 안목으로 선택했다는 것이다. 그의 스튜디오도 마찬가지였다. 유목민의 그것처럼 이동이 가능하며, 쉽게 다시 설치할 수 있는 공간이 대부분이었다. 아마도 그가 풍수학을 자연스럽게 꿰뚫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의 창조적인 힘을 지구의 파동에 강하게 연결시키는 느낌으로. 피카소가 주술사였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줄리안 슈나벨의 작품 ‘Head on a stick’(1986).

줄리안 슈나벨의 작품 ‘Head on a stick’(1986).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피카소를 찍은 무수히 많은 사진을 주의 깊게 지켜보시길. 평범한 모습의 사진, 부아주루에서 신선한 풍요로움을 만끽하며 찍은 사진, 짧은 바지를 입거나 (심지어는 속옷 차림으로!) 상체를 노출해 강인한 투우사 같은 모습으로 리비에라에서 작업 중인 사진, 정장 차림으로 아내나 연인들과 함께 찍은 카리스마 넘치는 사진, 날카롭게 긴장한 상태로 집중하며 스튜디오에서 작업 중인 사진. 피카소를 담은 사진은 그의 에너지와 활력 넘치는 기질 그리고 힘을 포착했다. 부아주루에서는 이보다 훨씬 부드러운 느낌과 인상을 경험할 수 있다. 이는 격렬한 분노를 초월하는 평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