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노마드 침공기

최근 서울에서 가장 가파르게 집값이 상승한 동네에 살다가 앞날이 무섭고 힘들어 동남아에 가봤다. 옛말 틀린 것 없다. 사람 사는 데 다 똑같다.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전 지구적 재앙 속에서 디지털 노마드는 어떤 역할을 하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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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의 베이스캠프는 서촌이다. 사흘이 멀다 하고 젠트리피케이션의 예시라며 언론에 오르내리는 동네다. 4년 전 처음 이사 올 때 나를 매료시킨 작은 가게들은 대부분 주인이 바뀌었다. 저렴한 국밥집, 백반집, 분식집 대신 파스타에 커피 한 잔 마시면 2만원 돈이 나오는 카페가 그득하고, 한때 빚을 내서 사려다 포기한 빌라는 30% 이상 가격이 뛰었고, 주택 상태 대비 임대료가 턱없이 비싸서 연말에는 한적한 동네를 골라 이사 갈 계획이다. 부동산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전후 세대 서울 사람들이 종종 하는 “그때 그 땅만 안 팔았어도…” 비슷한 레퍼토리가 내게도 있다. 몇 해 전 역시나 빚을 내서 제주도에 건물을 사려다 말았는데, 그 건물 가격이 2년 만에 열 배가 뛴거다. 내가 그때 그 건물만 샀어도 평생 놀고 먹을 텐데, 라는 한탄을 내 친구들은 벌써 지긋지긋해한다. 요 몇 년 제주와 서울을 오가며 살던 나는 작년에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물려받은 땅도 없이 이 물가 비싼 나라의 가장 인기 있는 동네에서 살아남으려고 안달복달할 정성(그리고 비용)이면 어딘가 따뜻하고 공기 맑은 나라에서 떵떵거리며 살 수 있지 않을까? 그리하여 나는 노트북 한 대를 챙겨 발리로 떠났다. 잠깐, 부러워하긴 이르다.

“시내 가깝고, 수영장 있는 독채면 돼.” 내 조건을 들은 발리인 친구는 깜짝 놀랐다. “어휴, 그런 집은 엄청 비싸. 월 60만원은 줘야 할걸?”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물가 비싼 도시 서울(<Economist Intelligence Unit>, 2016)에서 온 나는 호기롭게 외쳤다. “그 정도는 감당할 수 있어.” 하지만 그런 집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경험상, 도시의 변화는 원주민들이 가장 늦게 알아챈다. 서촌도 그랬다. 4년 전 그곳 부동산을 둘러볼 때 중개업자들이 오히려 어리둥절해서 내게 물었다.

“요새 외지인들이 집 구하러 많이 오네. 왜 그러는 거예요?” 2년 후 그들의 태도는 이렇게 바뀌었다. “이 동네에서 전세를 찾겠다고? 있어봤자 부르는 게 값일 텐데, (나를 아래 위로 훑으며) 돈은 있고?”

내가 발리에서 큼지막한 방 두 칸과 거실, 깨끗한 수영장, 정원이 있는 월세 80만원짜리 독채 빌라를 둘러본 날, 발리에서 1년째 살고 있는 어느 유럽인은 그것도 비싸다고, 호주인들의 휴가 시즌이 끝나면 싼 집 많이 나오니까 기다리라고 했다. 하지만 그런 집은 두번 다시 나타나지 않았고, 내게 충고했던 유럽 친구조차 몇 달 후에는 살 집을 못 찾아서 발을 동동 굴렀다. 결국 나는 서울 월세 가격으로 매일 개인 수영장에서 선탠을 하겠다는 원대한 꿈을 포기하고 기둥마다 개미가 들끓는 집에서 합판 한 장 너머 옆방에서 들려오는 교성을 음악 삼아 지내기 시작했다. 물론 누군가에겐 수영장 딸린 방 한 칸짜리 독채 빌라가 월세 100만원, 두 칸짜리가 130만원이래도 여전히 좋은 가격일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 저렴하던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아니다. 더구나 그것이 불과 몇 달 전이라면 말이다. 2016년 한 해 발리를 찾은 외국인은 450만 명 이상이다. 곳곳에 그들을 대상으로 한 리조트와 렌털 하우스를 짓고 있지만 아직 공급이 초과됐다는 신호는 보이지 않는다. 그즈음 발리의 외국인 커뮤니티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

“발리에서 살려고 왔는데 생각보다 집값이 비싸요. 다른 좋은 곳 없나요?”
댓글: “요새 태국 어디가 뜬다던데.” “코팡안 주변에 빌라가 엄청 생겼죠. 그거 나중에 다 어떻게 하려는지.”

이 먼 나라까지 와서 또 이런 꼴을 보게 되다니! 나는 비로소 ‘디지털 노마드’니 ‘은퇴 이민’이니 하는 제1세계 용어의 숨은 뜻을 알았다. 그것은 ‘삶의 질’과 ‘가성비’를 좇아 세계를 떠돌며 지역 생태계를 파괴하는 메뚜기 떼를 우아하게 일컫는 말이었다. 나는 그 무리의 가장 끄트머리를 좇는 메뚜기고. 퍼덕퍼덕.

발리의 호텔이나 식당, 요가 숍 등에서는 느긋한 얼굴로 업장을 둘러보며 고객 관리를 하는 호주인, 유럽인, 더러 중국인이나 일본인들을 볼 수 있다. 그들은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에 자극 받아 발리로 날아온 줄리아 로버츠 워너비들에게 제1세계에는 못 미치지만 현지 물가보다는 현저히 비싼 가격에 서비스를 제공한다. 하지만 현지인 스태프의 월급은 적게는 12만~13만원, 많게는 30만원 정도에 불과하다. 물론 우붓의 스타벅스에 가보면 급작스러운 부동산 열기에 힘입어 어렵잖게 세계화에 동참하게 된 부유한 원주민을 잔뜩 볼 수 있다. 그들에게 지금은 크나큰 기회의 시기일 것이다. 하지만 기왕에도 땅 한 조각 없던 사람들의 삶은 더욱 곤궁해질 수밖에 없다.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 에어비앤비의 광고 카피는 2010년대 여행자들의 열망을 정확히 간파한 것이다. 사람들은, 심지어 시끌벅적한 단체 관광으로 이름난 중국인들조차, 이제는 무리 지어 관광지를 둘러보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현지인들과 같은 집에 묵고, 같은 밥을 먹고, 그들의 문화를 체험하는 것이 쿨한 태도로 간주된다. 에이전시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여행지를 발굴하려 애쓴다. 그 결과 전 세계의 로컬 식당이 유럽풍 카페로 변신하고, 어딜 가나 아델과 샘 스미스의 노래가 울려 퍼지고, 리조트와 게스트하우스가 들어서고, 급기야 현지인들이 살던 저렴한 가옥마저 ‘여행은 살아보는 거’라 믿는 디지털 노마드에게 점령당한다. ‘전 세계에서 적은 돈으로 눌러살기 좋은 도시’를 구글에서 검색하면 업데이트 시기별로 다양한 리스트를 발견할 수 있다. 나는 발리에서 이렇게 말하는 여행자를 수도 없이 만났다.

“피피 섬은 이제 끔찍해. 망할 놈의 할리우드 영화 <비치>로 그렇게 됐지. 코사무이와 코팡안은 또 어떻고. 해안가에는 흉측한 가게가 늘어서 있고 사람들로 바글바글하지.” 서양인이 운영하는 오가닉 카페에서 유럽식 건강 음식을 먹으면서 백인과 일본인이 그런 말을 한다. 아이러니다. 그런 순간마다 나는 서촌과 제주를 떠올렸고, 앞으로 이곳에서 벌어질 일이 다큐멘터리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이곳에서 내가 만난 많은 현지인들은 평생 발리를 벗어나본 적이 없다고 했다. 나는 광폭한 서울 물가의 대안으로 동남아를 고려해보았고, 이곳에서 나 같은 생각으로 이민을 떠나온 부자 나라의 가난뱅이들을 잔뜩 만났다. 하지만 우리 같은 사람들이 올려놓은 물가를 감당할 수 없는 현지인들은 어디로 가야 할까? 서촌과 경리단길의 장사꾼들이 건물 재계약을 포기하고 종로나 열정도로 떠나듯 킨타마니 화산 마을 같은 곳으로 옮겨갈까? 디지털 노마드와 히피들, 은퇴 이민자들이 “발리는 이제 끔찍해”라며 어딘가로 떠나버리면 이곳은 어떻게 될까? 압구정처럼 휘황하지만 실속 없는 공동으로 남을까? 혹은 홍대, 명동, 가로수길처럼 단기 관광객이 즐겨 찾는 값비싸고 흥성한 도시로 남아 팽창을 계속할까? 제1세계 서민들이 ‘가성비’와 낭만을 좇아 몰려가는 다음 보리밭은 어디일까? 길리? 페니다? 캄포트? 치앙마이? 젠트리피케이션은 국지적인 단위의 문제가 아니며, 나는 집 한 칸 없는 서울의 전세 난민이자 부자 나라의 가난뱅이 디지털 노마드로서 그 흐름에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고 있다. 그것은 절망적인 깨달음이었다. 우리에게는 두 가지 옵션이 있을 뿐이다. 계속 떠돌거나, 주택 대출의 굴레로 걸어 들어가거나. 어디에도 영원한 천국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