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을 위한 자리

이번 대선만큼 ‘펫밀리’를 위한 공약이 많은 적도 없었다. 문재인 대통령 덕에 최초의 ‘퍼스트 캣’과 ‘퍼스트 유기견’이 등장할지 모른다. 펫밀리는 전보다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

반려동물 집과 침대는 펫소드(Pethod), 식기는 은기호(Eunkiho), 스냅백은 다솜(Dasom), 유령 스카프는 우프바이베럴즈(Wooof by Betters).

반려동물 집과 침대는 펫소드(Pethod), 식기는 은기호(Eunkiho), 스냅백은 다솜(Dasom), 유령 스카프는 우프바이베럴즈(Wooof by Betters).

청와대 최초로 ‘퍼스트 캣’이 입성할까? 문재인 대통령은 풍산개 마루와 지순, 고양이 찡찡이와 뭉치를 키운다. 기사가 나갈 쯤엔 행방이 정해지겠지만, 이사를 싫어하는 고양이의 이동이 걱정스럽긴 하다. 대통령의 반려동물은 늘 관심사지만, 공약에서 소외되는 분야였다. 거기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다고나 할까. 하지만 이번 대선은 달랐다. 주요 후보 5인 모두 다양한 반려동물 공약을 내놓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2년 대선에선 포경 금지, 곰 사육 폐지, 가축 생매장 금지, 화장품 동물실험 금지 등 광범위한 공약을 내놨는데, 이번엔 펫밀리를 위한 현실적인 공약이다. 당연히 천만 펫밀리의 표심을 무시할 수 없어서다.

‘캣맘’인 나에겐 ‘헌법에 동물의 생명권을 인정’하는 공약이 가장 인상적이었다(홍준표, 심상정 후보). 동물에게 사람과 물건 사이 제3의 지위를 부여하는 것. 아직 우리나라는 타인이 반려동물에 상해를 가하면 재물손괴죄가 적용된다. 반면 지난 1월, 미국 알래스카 주는 이혼 소송 시 반려동물 양육권 문제를 판사가 결정하게 했다. 법원이 반려동물을 가족의 일원으로 인정한다는 뜻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정책 페이지 ‘문재인 1번가’에서 ‘반려동물이 행복한 대한민국’ 공약은 5월 초까지 ‘좋아요’ 2만1,000여 개를 받았다. 요약하면, 민간 동물의 주치의 사업을 활성화하고, 반려견 놀이터를 늘리고, 동물과의 소통을 위한 행동심리 인력을 확충하고, 유기동물 재입양을 활성화하고, 길고양이 급식소 및 중성화 사업을 확대하고자 한다. 강아지 젤리, 양갱, 릴라와 살며 반려동물 인권에 관심이 많은 뷰티 크리에이터 양보람은 “키워본 사람의 마음을 아는 공약”이라고 했다. “뉴욕이나 파리에 가면 강아지끼리 노는 놀이터가 곳곳에 있어요. 근데 한강에 산책 갈 때마다 눈치 보여요. 전용 놀이터는 집에서 너무 멀고요. 얼마 전엔 반려견의 층간 소음 때문에 범죄도 발생했다죠. 펫밀리와 비반려인이 공존하는 방법을 찾아야 해요. 그게 반려동물의 교육 시설, 놀이 시설을 만들자는 공약과 맞닿는다고 생각해요.” 진돗개 로이를 키우는 포토그래퍼 이신구도 이 공약에 ‘좋아요’를 눌렀다. “행동심리 전문 인력을 크게 확충해야죠. 특히 주인들의 교육이 절실해요. 반려견을 보살필 자격을 갖추도록 하고, 입양을 허가 받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씁쓸하다는 듯이 말했다. “사실 불법적인 동물 거래 시장만 없어져도 다 양보하겠어요.”

대선 후보들이 내놓은 ‘펫밀리 공약’은 강아지 공장 같은 동물 상품화, 증가하고 있는 동물 학대 등을 구체적으로 해결하지 못한다는 비판이다. 고양이 세 마리를 키우는 패션 에디터 Y 역시 시급한 문제를 왜 제쳐두냐고 묻는다. “동물병원의 반려동물 매매를 금지하고, 전문 브리더를 양성해야죠. 매매 업체는 신고제에서 허가제로 바꾸는 것부터 시작해야죠. 동물 의료비의 부가가치세 폐지 같은 공약(홍준표, 심상정 후보)은 그 후 문제죠.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 부양 능력이 있기에, 소외된 동물에 대한 보호가 우선이에요.” Y는 수의사와의 연애를 꿈꿀 정도로 고양이의 병원비 폭탄을 맞았지만, 이건 차후 문제라고 생각한다.

여론 조사나, 주변 펫밀리에게 물어봐도 최대 관심사는 ‘유기동물’이다. 안철수 후보자는 유기 원인을 없애고 복지를 강화하는 공약이 주였다. 예를 들면 반려동물 이력제를 통해 생산과 판매를 투명화하고, 감금틀 사육을 단계적으로 폐지하고 동물 복지형 축산 농장에 인센티브를 주고, 신고 포상금 제도로 동물 유기 단속을 강화하는 등의 내용이다. 펫밀리는 입을 모아 말한다. 이런 제도를 바탕으로 사람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쉽게 동물을 판매, 구매할 수 있음에 강한 문제의식을 품어야 한다. 샌프란시스코, 보스턴, LA 등의 도시에서는 허가를 받아도 번식업장 퍼피밀(Puppy Mill)에서 태어난 동물을 펫숍에서 파는 것이 불법이다. “반려동물을 키우고 싶다면 유기동물보호소부터 찾고, 꼭 구매를 원한다면 브리더를 소비자가 직접 방문해 동물이 태어난 환경을 확인하는 문화가 확산돼야 해요.” 유기견을 키우는 공무원 K가 말했다. “이를 위해선 생산업장의 시설 관리 기준을 강화하고, 인터넷 채널을 포함한 전 유통 과정을 감시해야죠.”

문재인 대통령은 동물 가족 네 마리에 이어 유기견 토리도 입양하기로 했다. 미디어는 최초의 ‘유기견 퍼스트 도그’라고 했다. 한때 잡지를 강타하던 테마가 있었다. 강아지를 안은 연예인이 “사지 말고 입양하라”는 슬로건을 외치던 화보들이다. 한 명이라도 더 나서준다면 좋은 일이다. 하지만 2015년 유기된 동물 수는 약 8만 마리다. 하루 평균 250마리가 버려져 보호소에 입소한다. 실제로는 20만 건에 육박한단 얘기도 있다. 이건 대통령이 유기견을 입양한다고, 연예인이 나서준다고 해결될 숫자는 아니다.

영국과 독일, 미국은 민간단체 중심으로 유기동물 정책이 촘촘하게 운영된다. 정부에서는 강력한 법을 제정하고, 관련 업무는 민간 동물보호단체에 일임하는 식이다. 일본에선 정부와 지자체의 비중이 높다. 중앙 정부에 반려동물 담당 직원이 6인 이상이고, 지자체 별로도 담당 직원이 상주하고 직영 보호소를 운영한다. 물론 높은 안락사율 등의 문제로 변화가 요구되긴 한다. 우리나라는 동물에 관한 업무가 농림축산식품부와 환경부 등으로 분산되다 보니 반려동물에 대한 대책이 제각각이다. 전담 부서 설치가 급하다.

반려동물을 기르는 데 지출하는 가구당 평균 비용은 2016년 기준으로 11만3,538원이다. 말 그대로 평균일 뿐, 나의 친구는 고양이 두 마리를 키우는 데 월 100만원을 쓴다. 물론 나는 그만큼은 아니다. 건강하게 자라주는 고양이 덕분이기도 하고, ‘체질 특성에 따른 맞춤 사료’를 먹이거나, 국민 펫신탁(사후 반려동물 관리자에게 일정 금액을 지급하는 상품)과 연 40만원대의 보험 상품도 들지 않기 때문이다. 가끔 동물병원에 가면, 나의 고양이를 최고급으로 먹이고 입히지 못하는 집사라 부끄럽지만(직원은 ‘아기’의 생활에 관해 많이 질문한다) 나도 엄연한 펫밀리다. 대선 주자들, 특히 대통령의 반려동물 공약을 읽으며 늘 그렇듯 ‘지켜주기만 하길’이란 생각이 들었다. 대통령은 취임 첫날 일정으로 야당 인사들을 만났다. 그 통합의 마음으로 대선 주자들의 반려동물 공약 중에 버리기 아까운 것(대부분)을 취합하길 바라면 너무 앞선 걸까. 다른 시급한 문제도 많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