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toon Couture

언제부턴가 엉뚱 발랄한 만화 캐릭터가 하이패션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어릴 적 추억 속의 익숙했던 모습 혹은 성인이 된 지금, 순수했던 동심을 다시 찾게 하는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스포티한 티셔츠도 여성스러운 스커트와 매치하면 멋진 룩을 연출할 수 있다. 초록색과 네이비 컬러 두 벌을 레이어링한 스트라이프 반팔 티셔츠, 허리에 페플럼처럼 연출한 비치 타월은 PLF, 골드 스커트는 푸시버튼(Pushbutton).

스포티한 티셔츠도 여성스러운 스커트와 매치하면 멋진 룩을 연출할 수 있다. 초록색과 네이비 컬러 두 벌을 레이어링한 스트라이프 반팔 티셔츠, 허리에 페플럼처럼 연출한 비치 타월은 PLF, 골드 스커트는 푸시버튼(Pushbutton).

최근 서울을 방문한 굵직한 패션계 인사들의 인스타그램에 단골로 등장하는 건 경복궁이나 한복이 아니라 가로수길 라인프렌즈 스토어의 거대한 곰 인형 브라운이다. 무표정과 썩소, 두 가지 버전만 인식하던 샐쭉한 얼굴에 만개한, 낯간지러울 정도로 천진난만한 미소는 심지어 충격적이다. 모든 징후는 200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만화 캐릭터에 친근하고 살가운 태도를 취하는 하이패션계의 움직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세상의 유치한 모든 것에 경멸의 눈초리를 던지던 게 엊그제 같은데, 갑자기 귀여운 것들에 열광하고 있는 패션계란!

Jeremy Scott

Jeremy Scott

이 열풍에 승차한 디자이너들을 보자. 두말할 필요 없이 선두 주자는 제레미 스캇. 그는 자신의 레이블과 모스키노 컬렉션으로 매 시즌 다양한 만화 캐릭터(바비, 루니툰즈, 스폰지밥, 심슨즈, 슈렉, 파워퍼프걸, 슈퍼마리오 등)를 섭렵하며 비실거리던 이탈리아 하우스에 부흥기를 불러왔다. 캐릭터가 등장한 아이템은 대부분 쇼 직후 매장에서 구입할 수 있도록 캡슐 컬렉션으로 신속히 제작하는데, 스캇은 이 캐릭터들을 미국 대중문화의 아이콘으로 여긴다. 모스키노의 새 향수병으로 둔갑한 유리 닦는 스프레이 세정제나 그래피티 드레스와 연장선 위에 있다는 관점. “팝 컬처의 상징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대중문화를 비판하거나 풍자하려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싶어요. 캐릭터의 그래픽적 형태와 밝은 색감도 좋아하죠. 그렇다고 제가 마이클 잭슨처럼 어린 시절에 집착하는 타입은 아니지만.”

Uniqlo x Olympia Le-Tan

Uniqlo x Olympia Le-Tan

그가 도입한 대중문화 코드, 만화 캐릭터들은 사람들에게 즉각적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겐조의 움베르토 레온은 스캇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는 요즘 젊은 애들 사이에서 영웅이에요. 그의 영웅 역시 바로 그 아이들이죠.” 그는 인스타그램 세대가 부담 없이 살 수 있으면서 열광할 만한 캐릭터 디자인의 티셔츠와 스마트폰 케이스로 젊은 소비자들을 공략한다. 유사하게 안야 힌드마치가 전 세계적으로 팔아 치운 데굴거리는 눈알과 미키 마우스 손가락 같은 아이콘 가죽 패치의 양 또한 어마어마해, 그 수익만으로 브랜드 규모가 한 단계 성장했을 정도다. 혹자는 가죽 패치로 가득한 가방이 고가의 디자이너 백이 아니라 알록달록하게 꾸민 여중생의 교과서 커버 같다고 폄하하지만 디자이너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패션으로 생명을 구할 순 없지만, 적어도 우리를 미소 짓게 할 수는 있잖아요?”

이제 파자마 셔츠는 실내용이 아니라 실외용이다. 품이 넉넉해서 착용감이 편한 블루 스트라이프와  브라운 얼굴 패턴의 파자마 셔츠는 PLF, 스커트는 푸시버튼(Pushbutton), 왼쪽 모델의 스카프는 콜롬보 비아 델라 스피가(Colombo Via Della Spiga), 슬링백 플랫은 디올(Dior), 오른쪽 모델의 힐은 버쉬카(Bershka), 뱀부 테이블과 세라믹 꽃병은 자라홈(Zara Home).

이제 파자마 셔츠는 실내용이 아니라 실외용이다. 품이 넉넉해서 착용감이 편한 블루 스트라이프와 브라운 얼굴 패턴의 파자마 셔츠는 PLF, 스커트는 푸시버튼(Pushbutton), 왼쪽 모델의 스카프는 콜롬보 비아 델라 스피가(Colombo Via Della Spiga), 슬링백 플랫은 디올(Dior), 오른쪽 모델의 힐은 버쉬카(Bershka), 뱀부 테이블과 세라믹 꽃병은 자라홈(Zara Home).

디자이너들에게 가장 폭넓고 꾸준하게 사랑받은 만화 캐릭터는 단연 디즈니. 구찌의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2016 F/W 컬렉션의 스누피에 이어 S/S 컬렉션에는 도날드 덕을 출연시켰고, 2016년에 실사 영화로 개봉한 <정글북>을 위해 겐조의 움베르토 레온과 캐롤 림은 캡슐 컬렉션을 기획했다. 마리 카트란주는 2017 F/W 컬렉션에 디즈니 걸작으로 평가받는 <판타지아>의 장면을 특유의 섬세한 기법으로 드레스에 재현했다. 엠마 왓슨 주연의 <미녀와 야수> 실사 영화 제작을 기념해 크리스토퍼 케인은 색다른 캡슐 컬렉션을 발표했다. 작업에 참여한 디자이너들은 각자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대해 나름대로 유년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정글북>은 제가 가장 좋아했던 디즈니 만화예요. 저 역시 어린 시절 혼자 남겨질 때면 늘 두려움에 사로잡히곤 했죠. 두려움을 극복하는 정신과 독립성에 대한 내용이 마음에 듭니다.” “열 살 때 처음 <판타지아>를 봤어요. 캐릭터에 생기를 불어넣기 위해 음악을 사용하는 방식에 깊은 인상을 받았죠. 그 만화는 내가 꿈을 꾸게 해줬어요.” 레온과 카트란주에 이어 케인은 자신이 다소 속물적 디즈니 덕후였다고 고백했다. “6~7세 무렵에 엄마가 <톰과 제리>를 틀어주면 ‘이건 디즈니가 아니잖아!’라고 투정을 부리곤 했어요. 어린 제 눈에도 디즈니와 다른 애니메이션의 차이점이 분명히 보였거든요. 아름다운 그림의 디즈니 만화를 보고 싶었죠. 제 눈에는 디즈니가 최고였고 모든 장면이 너무 아름다웠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디즈니 캐릭터를 봤을 때 느끼는 첫 감상은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다. 토요일 아침, 잠옷 바람으로 TV 앞에 앉아 무념무상으로 만화 영화에 몰입하는 것이 전부였던 어린 시절. 어느 채널의 만화를 볼 것인지가 가장 큰 고민이었던 그 시절은 돈과 인간관계, 업무 등 수많은 스트레스와 압박에 시달리는 성인의 삶에 비하면 얼마나 단순하고 즐거웠나! 우리는 삶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기를 추억하는 동시에 우리를 지치게 하는 현실을 잠시 잊고 싶어 한다. 데뷔 때부터 꾸준히 만화 캐릭터를 의상에 응용해온 런던의 신인 디자이너 바비 애블리(Bobby Abley)는 우울한 현실에 힘을 북돋워준다고 덧붙였다. “어릴 땐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했어요. 인어 공주와 해적, 우주선 같은 것을 믿는 데 주저함이 없었죠. 패션과 만화 캐릭터의 공존에는 마법 같은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아요!”

최근 해변가나 풀장에서 수영복보다 더 쉽게 볼 수 있는 래시가드. 컬러풀한 라인프렌즈 카툰 패턴의 래시가드 톱은 PLF, 튤 페플럼 장식 피나포어 드레스는 푸시버튼(Pushbutton), 빨간색 힐은 버쉬카(Bershka).

최근 해변가나 풀장에서 수영복보다 더 쉽게 볼 수 있는 래시가드. 컬러풀한 라인프렌즈 카툰 패턴의 래시가드 톱은 PLF, 튤 페플럼 장식 피나포어 드레스는 푸시버튼(Pushbutton), 빨간색 힐은 버쉬카(Bershka).

한국에서 크게 인기를 끌고 있는 라인프렌즈나 카카오프렌즈는 어린 시절 기억과 직접적 연관성은 없지만, 그 시절 추억만큼 현대인의 팍팍한 삶에 위로가 된다는 점에서 유사한 효과를 발휘한다. 디자이너 박승건은 라인프렌즈와 협업한 PLF 컬렉션 작업을 할 때 ‘프렌즈’라는 단어에서 연상되는 화합, 끈끈함, 우정의 감성에 주목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각각의 캐릭터가 가지는 독특한 성격은 새 친구를 사귀는 것처럼 더 쉽게 친밀감과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우리의 감성을 아무리 자극한들 상업적인 가치가 없다면 의미가 없다는 게 패션계 만고의 진리. 많은 이들이 만화 캐릭터에 주목하는 이유는 우리의 마음을 건드리고, 그다음엔 쉽게 지갑을 열게 하기 때문이다. 특히 하이패션계에 등장하는 만화 캐릭터는 추억의 매개체인 동시에 최근의 큰 흐름인 스트리트 패션의 한 가지 표현 방식이다. 그런 관점에서 20대 이하 젊은이들에게는 친근함과 재미의 대상이다. 그들은 아직까지 그 만화 캐릭터들과 함께 성장하는 과정에 있다. “새로운 방식의 하이엔드(Highend)와 로우엔드(Low-end)의 만남입니다.” 패션 트렌드 분석 회사WGSN의 트렌드 전문가 롬니 제이콥(Romney Jacob)은 하이엔드 패션이 청년 문화를 받아들이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디자이너들이 SPA 브랜드와 캡슐 컬렉션 작업을 하던 것과 비슷한 맥락입니다. 패션 하우스가 젊은이들의 문화를 포용하는 거죠.”

윈드브레이커는 아침저녁으로 일교차가 클 때나 운동할 때 유용하다. 단추 장식 A라인 스커트에 슬리브리스 톱처럼 연출한 것은 원피스 수영복. 여자 모델은 울고 있는 제임스의 얼굴이 유머러스하게 그려진 제임스 윈드 점퍼를 착용했다. 남자 모델은 화이트 피케 셔츠 위에 레트로풍의 브라운 얼굴 윈드 점퍼를 레이어드했다. 의상은 PLF, 남자 모델이 입은 와이드 트레이닝 팬츠는 푸시버튼, 여자 모델의 스카프는 콜롬보 비아 델라 스피가(Colombo Via Della Spiga), 남자 모델의 스웨이드 소재 태슬 로퍼는 유니페어(Unipair).

윈드브레이커는 아침저녁으로 일교차가 클 때나 운동할 때 유용하다. 단추 장식 A라인 스커트에 슬리브리스 톱처럼 연출한 것은 원피스 수영복. 여자 모델은 울고 있는 제임스의 얼굴이 유머러스하게 그려진 제임스 윈드 점퍼를 착용했다. 남자 모델은 화이트 피케 셔츠 위에 레트로풍의 브라운 얼굴 윈드 점퍼를 레이어드했다. 의상은 PLF, 남자 모델이 입은 와이드 트레이닝 팬츠는 푸시버튼, 여자 모델의 스카프는 콜롬보 비아 델라 스피가(Colombo Via Della Spiga), 남자 모델의 스웨이드 소재 태슬 로퍼는 유니페어(Unipair).

이렇듯 하이엔드 패션 시장의 영향력을 잠재적 고객층으로 확장하는 동시에 만화 캐릭터 시장을 넓히는 역할도 겸한다. 바비 인형, 디즈니, 산리오(헬로 키티)의 단순한 캐릭터 상품 평균 가격대는 3만원이지만 패션계와 손을 잡으면 단가가 200만원에 육박할 정도로 치솟는다. 수집가들의 욕망을 자극하고 패션에 관심이 많다고 자부하는 이들을 마켓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캐릭터 업계는 꾸준히 증가하는 패션 디자이너와의 협업에 적극 뛰어들고 있다.

풋볼 티셔츠를 응용한 ‘트러스트’ 티셔츠. 루스 핏에 소매를 길게 디자인해 남자는 넉넉하게, 여자는 오버사이즈로 귀엽게 연출할 수 있다. 남자 모델은 티셔츠 안에 블루 스트라이프 긴팔 셔츠를 레이어드했다. 의상과 양말은 PLF, 남자 모델의 로퍼는 이스틸로(Eastilo at Amon Movement), 여자 모델의 지브라 패턴 힐은 디올(Dior).

풋볼 티셔츠를 응용한 ‘트러스트’ 티셔츠. 루스 핏에 소매를 길게 디자인해 남자는 넉넉하게, 여자는 오버사이즈로 귀엽게 연출할 수 있다. 남자 모델은 티셔츠 안에 블루 스트라이프 긴팔 셔츠를 레이어드했다. 의상과 양말은 PLF, 남자 모델의 로퍼는 이스틸로(Eastilo at Amon Movement), 여자 모델의 지브라 패턴 힐은 디올(Dior).

“디자인에 유머 감각과 재미를 가미하는 걸 좋아해요. 만화는 그걸 표현하는 자연스러운 방법 중 하나죠.” 그래픽 일러스트레이션 패션 레이블 레이지 오프(Lazy Oaf)의 젬마 실(Gemma Shiel)은 캐릭터를 응용한 디자인이 제품에 즉각적 상업성을 더하는 데 효과가 있다고 인정했다. 그렇지만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듯, 그저 캐릭터를 박아 넣는다고 무조건 잘 팔리는 건 아니다. “엄청난 팬덤을 가진 캐릭터로 작업할 수 있지만 디자이너에겐 어떻게 다르게 만들 것인가라는 과제가 남아 있죠.” 이야기는 다시 푸시버튼과 라인프렌즈의 PLF 컬렉션으로 돌아간다. 디자이너 박승건은 이번 협업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라인프렌즈가 패션을 보여준다’는 의지가 느껴졌고 그래서 더 패셔너블한 컬렉션을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귀여움은 그대로 살아 있으면서 스타일리시한 면도 절대 빠뜨리지 않고, 거기에 친구와 우정에 대한 감정까지 담으려고 노력했죠.” 성공적 캐릭터 패션을 원한다면 거기엔 이성과 감성이 균형을 이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