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가까이 사는 방법

사람들이 모바일에 최적화되어가고 있다는 사실만 확실한 지금, 3만3,000여 편의 시를 언제든 꺼내 볼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이 등장했다. 하루 종일 종이 책을 만지는 시인이 이 속 깊은 애플리케이션의 사용기를 보내왔다.

블랙 컬러 태블릿 PC, 휴대폰은 애플(Apple).

블랙 컬러 태블릿 PC, 휴대폰은 애플(Apple).

어버이날 아침. 알람 소리가 들려 스마트폰을 보았다. 알림창에 “엄마에게 꽃을!”이라는 문구가 떠 있다. 클릭했더니 화면에 시구가 뜬다. “엄마는 또 나보다 나이가 많아 있었다. 당신을 서둘러 따라가 동무해주지 못하는 그것이 오늘…” 김주대 시인의 ‘엄마’다. 그렇지. 엄마는 언제나 나보다 나이가 많다. 그러니 나는 엄마의 친구가 될 수 없다. 마음의 이곳저곳이 아프다. 며칠 전은 근로자의 날이었고 그 날 아침엔 “노래가 노래를, 삶이 삶을 배반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위해 이 공장을…”이라는 송경동 시인의 ‘꿈의 공장을 찾아서’라는 시가 나를 찾아왔다. 매일 시로 여는 아침. 꽤나 멋지다. 퍽 잘 쓰진 못한 근미래 소설의 한 대목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는 내가 며칠 전부터 경험하고 있는 ‘사실’ 속 아침이다.

지난 3월 초 도서출판 ‘창비’의 홍보팀 사람들이 내가 운영하고 있는 시집 서점을 찾아왔다. 한 달 뒤 출시할 시앱 ‘시요일’의 홍보 매대를 설치하고 싶다는 게 방문의 이유였다. 시요일에 대한 소문은 이미 들은 적 있었다. 창비에서 출간된 시집 속 시 3만3,000여 편을 수록하고 있으며, 시집 제목이나 시인 이름은 물론 본문 속 단어까지도 검색해준다는 모바일 앱 서비스였다. 시큰둥한 마음이 먼저 찾아왔다. 한편으론 싫기도 했다. 종이로 만들어야 책이지, 싶었다. 접지도 괴지도 못하는 걸 어찌 책이라 부를 수 있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한편으론 궁금했다. 다른 것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신자본주의 시대에 시의 자리는 언제나 맨 뒷자리였다. 그러나 사람들이 모바일에 최적화되는 요즘, 시가 오히려 매체를 이용해 다른 세계를 보여줄 수 있지는 않을까 하는 어쩌면 헛된, 아니 분명히 헛된 기대 말이다.

덕분에, 매일 아침 시요일과 함께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마치 누군가에게 편지를 받는 기분이다. 일부러 이런 시구만 뽑는가 싶게 이슈에 걸맞은 데다가(그래서 본의 아니게 스케줄러 역할도 해준다) 그것이 시라는 딱딱하지 않은, 굳이 따지자면 부드러움을 지닌, 글이기 때문이다. 때론 받아 적어보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누군가에게 보내는 글이 된다. 어울릴 만한 누군가를 떠올리게도 된다. 잊고 있었던 이름도 있다. 시가 지닌 환기성 때문이다. 어
떤 정황, 어떤 단어, 어떤 느낌은 꼭 누군가를 불러오니까. 실제로 연락도 해봤다. 박성우 시인의 동시 ‘고양이 학교 회장 선거’를 받은 날이었다. 동시를 쓰고 싶어 하던 내 친구는 아주 잘 지내고 있었다. 이제는 동시를 잘 읽지 않게 된다는 이야기도 전해왔다. 그런 섭섭함마저 퍽 좋았다.

시집 서점에 도움이 되기도 했다. 정호승 시인의 시 제목을 가지고 시집을 찾는 손님이 찾아왔다. 아무리 시인이라도 제목만으로 시를 찾아낼 수는 없는지라 난감해하다가 퍼뜩 시요일이 떠올랐다. 혹시 모를 기대를 가지고 검색을 해봤더니 <밥값>이라는 시집이 검색되어 나온다. 얼른 꺼내어 건넸더니 시집을 데리고 간다. 신기한 경험이다. 한편으론, 시를 데이터베이스화한 창비의 영리함에 새삼 감탄하게 된다. 카피라이터, 각종 문화 기획자, 방송작가들을 비롯
한 다양한 작업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겠구나 싶은 것이다. 재미 삼아 몇 단어 검색해본다. 사랑, 행복, 돈과 같은 일반적인 단어에서 시작해, 심연, 나들목, 회한, 행적과 같이 조금은 특별한 단어에 이르기까지. 어떤 것은 있고 어떤 것은 없지만 흥미롭다. 필요한 자리에 시를 찾아 넣을 수 있는 더 넓은 기회가 생긴 것이다. 2차, 3차 콘텐츠로서의 가능성. 비록 한 출판사의 시집 속 시만이라는 한계가 있지만 폭이 넓어지기만 한다면 대단한 가능성이 되지 않을는지.

다만, 이러한 즐거움과 가능성이 흥미를 끌어내지 못한다는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해, 시앱 시요일을 자주 클릭하게 만드는 흥미점이 없다는 것이 그것의 약점이다. 앱이라 불리는 애플리케이션은 꾸준한 접속뿐 아니라 습관적인 접속이 생명이다. 이는 문학, 그 중에서도 시가 가지고 있는 심각성(혹자는 경직성)이 고스란히 담겼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시요일의 철학은 자극적인 부분 없이 담담한 디자인에도 담겨 있다. 어떤 것이 옳은 판단인지는 좀더 지켜봐야겠지만, 더 많은 이용자를 포섭해야 한다는 점에서 다소 아쉽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한 달가량 시요일을 사용해본 결과, 이 앱은 전자책으로서보다, 시를 우리의 일상에 끌어다놓는 플래폼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그 성패 여부는 당장의 다운로드 수나 유료 가입자 수만으로는 예단할 수 없겠다. 그렇다. 이 속 깊은 앱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한다. 그렇다면 마땅히 응원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매일 아침 시로 눈을 뜨고 싶다면, 시로 누군가를 떠올리고 싶다면, 방금 떠올린 시적인 단어가 실린 시를 찾고 싶다면 시요일을 켜보자. 나는 그렇게 하기로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