틸다가 창조한 세계

틸다 스윈튼의 매 순간은 사라지지 않는다. 30년이 넘도록 연기해온 이 전대미문의 배우를 두고 ‘혁명적 예술가’라 일컬을 수 있는 건 연기력이나 열정 때문만이 아니다. 그녀가 지난 58년 동안 맡아온 자신의 역할, 바로 틸다 스윈튼이 된다는 것에 가장 충실했고, 그렇게 창조한 ‘틸다라는 이름의 세계’에서는 날마다 의미심장하고 모방 불가능한 존재론적 사유의 사건이 일어난다. 〈보그 코리아〉가 〈옥자〉의 개봉을 앞두고, 설사 지구상에서 모든 영화가 사라진다 해도 훼손되지 않을 ‘불멸의 틸다’를 기록했다.

은색 퀼팅 스톨은 우주여행에서 영감을 얻은 에어스페이스 컬렉션의 상징적 아이템이다. 스톨은 샤넬(Chanel).

은색 퀼팅 스톨은 우주여행에서 영감을 얻은 에어스페이스 컬렉션의 상징적 아이템이다. 스톨은 샤넬(Chanel).

지금 어디에서 이 질문지를 보고 있나?
반려견을 무릎에 앉혀놓고 침대 위에서.

올해 아홉 살인 내 딸은 강아지를 아주 좋아하는데 만지지를 못한다. 그녀를 위한 조언을 부탁해도 될까?
그녀에게 무엇인가와 마음을 나누기 위해서 그 대상을 반드시 물리적으로 만져야 할 필요는 없다고 말해
주는 건 어떨까?

〈옥자〉 이야기는 어떻게 시작하고 싶은가?
옛날 옛날, 한국의 어느 푸르르고 평화로운 산골짜기에서, 한 소녀가 친구를 위한 감을 따는데….

맨 처음 거대 동물 옥자와 소녀 미자의 스케치를 인천공항으로 가는 차 안에서 봤다고 했다. 옥자라는 생명체, 미자라는 어린이, 이 둘을 모두 껴안는 이 영화에 대한 첫인상이 어땠나?
봉준호 감독과 나는 평소 일본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에 대한 깊은 존경심을 갖고 있다. 예전부터 우리는 토토로에 대한 애정에 대해 꽤 자주 언급하곤 했다. 흥얼거릴 노래가 없을 때면, 그 아름다운 작품의 테마송을 부르곤 한다. 처음 봉준호가 보여준 작은 드로잉에서 소녀와 돼지를 봤을 때, 난 이것이 메이와 토토로, 그리고 그들의 모험에 대한 오마주를 표현할 수 있는 기회라는 걸 바로 알아차렸다.

마침내 완성된 시나리오를 처음 받아 봤을 때, 맨 처음 당신이 한 말을 기억하나?
아마도 ‘예스(Yesssssssssss)!’였을 것이다.

풍성한 A라인 코트의 클래식한 실루엣은 여배우 특유의 중성적인 카리스마와 잘 어울린다. 코트와 부츠는 샤넬(Chanel).

풍성한 A라인 코트의 클래식한 실루엣은 여배우 특유의 중성적인 카리스마와 잘 어울린다. 코트와 부츠는 샤넬(Chanel).

루시 미란도는 〈설국열차〉의 메이슨과 비슷한 맥락으로, ‘자본주의의 잔인함과 폭력성을 포장하는’ 전형적 인간이다. 이른바 ‘악역’이라는 레이어의 정체성을 입는 것은 당신에게 어떤 즐거움을 주나?
정말 그렇다. 메이슨과 루시 모두 그랬듯, 어리석음을 조합해내는 데서 오는 특별한 기쁨이란 게 분명 있다. 난 그 두 사람을 표현하는 데 있어 다른 어떤 말보다 ‘바보들’이란 표현이 알맞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자신이 가진 알량한 힘을 믿고 뻐기고 거만하게 굴지만, 사실 이는 자신들의 유약함과 무절제에 대한 강한 부정이기도 하다. 이 같은 인물의 초상을 한 번에 관통한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서로의 ‘연기’를 다른 인물의 그것에 레이어링하는 문제 같은 것이다. 두 인물은 모두 자신들의 스토리 안에서 ‘연기자(퍼포머)’였기 때문이다. 메이슨은 위협이 닥치면 잔혹함과 호통 뒤에 숨겨두었던 비겁함을 드러내고 마는, 자신을 보호하고자 하는 강렬한 욕구를 지닌 인물이다. 루시는 그녀의 진정성 있고 건전해 보이는 외모가 사기로 밝혀지면서 그 뒤에 감춰져 있던 사랑받고 싶은 욕구, 허영심, 쌍둥이 언니 낸시를 능가하고자 하는 끝없는 욕망을 비로소 드러낸다. 두 사람 모두 거짓말쟁이며, 두 사람의 이야기가 그들의 거짓말을 밝혀 보여준다. 두 인물 모두 비극적 광대다.

밤하늘의 별과 은하수를 연상케 하는 패턴의 스웨터와 부츠는 샤넬(Chanel), 핀스트라이프 패턴의 오버사이즈 와이드 팬츠는 러버보이 바이 찰스 제프리(Loverboy by Charles Jeffrey), 구조적인 더블 링은 라델앤울프 × 폴라 노어(Räthel&Wolf × Paula Knorr), 선글라스는 틸다 스윈튼 × 젠틀몬스터 (Tilda Swinton × Gentle Monster).

밤하늘의 별과 은하수를 연상케 하는 패턴의 스웨터와 부츠는 샤넬(Chanel), 핀스트라이프 패턴의 오버사이즈 와이드 팬츠는 러버보이 바이 찰스 제프리(Loverboy by Charles Jeffrey), 구조적인 더블 링은 라델앤울프 × 폴라 노어(Räthel&Wolf × Paula Knorr), 선글라스는 틸다 스윈튼 × 젠틀몬스터 (Tilda Swinton × Gentle Monster).

루시 미란도는 이가 유난히 희고, 헤어스타일이 유난히 인위적이다. 캐릭터를 창조하고 성격을 강조하기 위해 그녀의 외모 중 특별히 신경 쓴 것이 있나?
우리가 이 자본주의의 꼭두각시 캐릭터들에 접근하는 데 있어, 그들의 ‘입’에서 시작한 건 명백한 이유가 있었다. 그들은 다른 모든 것에 앞서, 소비자인 존재들이다. 미란도뿐 아니라 메이슨의 경우에도 치아는 두 인물 모두를 그려내는 데 있어 중요한 열쇠를 제공했다. 그들의 입, 특히 10년간 슈퍼 돼지 프로젝트와 함께 치아 교정기를 해가며 가꿔온 눈부시고도 화면발 좋은(미디어 친화적인) 미란도의 치아는 처음부터 자본주의를 겨냥한 우리에게 핵심적인 모티브가 되어줬다.

사실 루시 미란도의 캐릭터는 낯설지 않다. 많은 기업이 그렇게 하고 있고, 이렇게 이율배반적인 사람은 일상 속 우리 주변에도 많다. 어쨌든 흔한 듯하면서도 영화적인 캐릭터인데, 그녀를 어떻게 활용하고자 했나?
루시는 사기꾼이다. 말과 행동이 다르다. 여러 가지 면에서 이 같은 행동은, 자본주의 기업들에 대한 많은 것을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감춰진 착취에 대한 진실을 모호하게 만드는, 사람을 혹하게 하는 광고 아이디어를 광적으로 선호하는 경향이 대표적이다. 물론 이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최근 들어, 어디에서든 특히 부패한 관행을 사회적으로 눈감아주는 분위기나 정치인과 기업 중역들 간의 배타적인 태도 등이 만연하고 있다. 루시처럼 극단적이고도 만화적인 모방을 통해, 우리로 하여금 이런 것을 피할 수 없는 사회적 규범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패
턴과 권력을 조명하는 게 더욱 중요해졌다.

〈설국열차〉의 관전 포인트 중 하나는 당신과 송강호 사이의 케미스트리를 목격하는 거였다. 이번에는 당신이 미자 역을 맡은 안서현이라는 배우와 섰을 때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다.
처음 봉준호 감독이 내게 안서현의 사진을 보여줬을 때, 그녀가 무성영화 시대의 스타처럼 생겼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상상한 미자의 이미지와 완벽히 들어맞는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영화를 그녀와 함께 할 수 있었다는 건, 우리에게 큰 행운이었다. 미자의 무모하리만큼 강한 확신과 몸을 사리지 않는 용기는 3개국과 대륙을 오가며 펼쳐진 길고 힘들었던 촬영에서 안서현 본인이 보여준 그것과 다를 바 없었다. 옥자에 대한 그녀의 깊은 연민은 이야기 전체를 뒤흔든다. 무엇보다 나는 그녀가 정말 좋다.

독특한 광택의 블랙 스톤을 장식한 벨 슬리브 드레스는 샤넬(Chanel).

독특한 광택의 블랙 스톤을 장식한 벨 슬리브 드레스는 샤넬(Chanel).

촬영 전부터 영화의 제작 단계에서부터 함께 했다. 배우일 뿐 아니라 제작자이기도 한데, 당신이 맡아 수행한 역할은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나?
아주 초반부터 <옥자> 프로젝트에 관여할 수 있었던 건, 내게 큰 특권이었다. 지난 수년간 다른 영화에서도 프로듀싱 파트너로 일한 적이 꽤 자주 있었는데, 그때마다 늘 그랬듯, <옥자>에서 역시 시작 단계부터 존재하던 고유한 가치에 계속해서 충실할 수 있도록 하는 일, 기존에 시도하지 않았던 독창적인 것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자유를 보호하는 일 등에 관여했다. 이번 영화의 크리처 디자이너 중 하나였던 나의 사랑하는 친구 산드로 콥과 나는 특별히 옥자의 움직임을 위해 우리가 아끼는 스프링어 스패니얼 로지에게서 받은 영감을 잘 담을 수 있도록 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로지는 봉준호 감독이 초창기 이 프로젝트를 처음 착안하는 데 영감을 준 뮤즈이기도 하다. 우리는 로지의 턱이 후들거리는 느낌 등 다양한 요소에 관해 그를 비롯한 특수효과 팀과 스카이프를 통해 아주 깊이 있는 이야기를 여러 차례 나눴다.

〈옥자〉는 궁극적으로 동물과 인간에 대한 이야기로 알려져 있지만, 봉준호는 이를 ‘괴상하고 히스테리컬한 우화’로 만들었을 거라는 기대가 있다. 절망적이지만 동시에 낙관적인 이야기랄까. 그것을 희망이라 부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거대 담론에서 출발한 이 영화가 관객에게 미치는 영향을, 당신은 어떻게 상상하고 있나?
사실 관객이 보일 특정한 반응에는 연연하지 않는 게 현명한 것 같다. 궁극적으로 우리가 프로파간다를 만든 건 아니니까 말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볼 때는… 자기중심적 태도와 탐욕의 함정에 대한 보다 넓어진 관점, 자연에 대한 존중의 마음, 그리고 모든 창조물 간에 서로 사랑해야 할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조금이라도 확장되길 소망해본다.

플리티드 스커트를 변형한 울 소재 피나포어 드레스는 샤넬(Chanel), 오버사이즈 포플린 셔츠는 러버보이 바이 찰스 제프리(Loverboy by Charles Jeffrey), 볼러 햇은 스티븐 존스(Stephen Jones).

플리티드 스커트를 변형한 울 소재 피나포어 드레스는 샤넬(Chanel), 오버사이즈 포플린 셔츠는 러버보이 바이 찰스 제프리(Loverboy by Charles Jeffrey), 볼러 햇은 스티븐 존스(Stephen Jones).

어떤 영화든 존재의 이유가 있다. 지금, 이 세상에서, 전 세계 영화계에서 〈옥자〉가 있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넷플릭스와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이 방법이 아니었다면 이 영화를 볼 수 없었을 수백만의 사람들에게 이런 독창적인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거라고 믿는다. 난 <옥자>의 존재 가치를 믿는다.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농약 회사가 너무도 명백한 사기 행각을 벌이고 있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 자연을 존중해야 한다는 진실을 시의적절하게 일깨워주는 영화, 우리에게 필요한 건 사랑뿐이라는 사실과 도덕적 청렴함에 대한 확신이란 신념에 대한 찬가로서의 <옥자> 말이다.

최근 봉준호 감독을 만난 건 언제인가?
마지막으로는 스카이프로 화상통화를 했다. 주로 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지금, 봉준호가 눈앞에 있다고 가정해보자. 묻고 싶은 말은?
오늘 저녁은 어디서 먹을까?

그를 몰랐다고 치자. 그럼에도 〈옥자〉를 선택했다면 이 영화의 어떤 지점 때문일까?
순수한 영화적 가치와 스토리텔링,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반영한 세계를 창조해내려는 시도가 담긴 작품이니까!

색색의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과 스톤을 흩뿌린 스웨터는 샤넬(Chanel), 네온을 장착한 플라스틱 모자는 피어스 앳킨슨(Piers Atkinson).

색색의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과 스톤을 흩뿌린 스웨터는 샤넬(Chanel), 네온을 장착한 플라스틱 모자는 피어스 앳킨슨(Piers Atkinson).

이번에 봉준호의 방식에 대해 새삼 알게 된 것이 있다면 무엇이었나?
내가 그를 그 어느 때보다 더 사랑하게 됐다는 점. 그의 관점과 아티스트로서의 권위, 그리고 친구로서의 의리에 더더욱 감명받았다는 점.

뮤즈는 서로의 진화에 도움을 주는 존재라는 점에서 봉준호와 당신은 서로에게 뮤즈다. 그는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주나?
모든 우정은, 누군가에게 상처럼 늘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봉준호 감독이란 친구가 있다는 건 나에게 진정한 기쁨이다. 우리가 함께 하는 모험과 계획은 내 삶의 가장 소중한 보물의 일부다. 난 우리가 서로를 더욱 용감하게 그리고 대담하게 만든다고 굳게 믿는다.

한 감독과 지속적으로 작업하는 당신은 그들의 영화에서 일맥상통한 역할을 맡는다.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도, 코엔 형제도, 웨스 앤더슨 감독도, 봉준호 감독도 당신에게서 어떤 특정한 이미지를 바란다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배우 입장에서는 혹시 그 이미지를 배반해버리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나?
그렇게 생각할 것만은 아니다. 서로 다른 영화감독이 마법처럼 빚어내는 세계의 아주 특별한 분위기 속으로 발을 들인다는 것은 내가 여전히 연기를 하고 영화에 출연하는 이유가 된다. 다른 모든 것에 앞서는 절대적인 이유 말이다. 웨스 앤더슨과 벨라 타르, 봉준호의 각기 다른 이질적 우주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각각의 세계 안에서 마치 집에 온 듯한 편안함을 느낀다는 것은 내 삶의 기적 중 하나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이 모든 세계는 서로가 함께 치밀하게 지어내는 것이다. 우리가 함께 창조하는 콜라보레이션이자, 우리가 함께 고른 인물이다. 매번 새로운 이야기에 다가갈 때마다 우리는 각자의 렉시콘(어휘의 저장고)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린다. 그리고 이 영화는 다음 영화에 영향을 준다.

루카 구아다니노의 〈비거 스플래쉬〉를 보다가 든 생각인데, 러닝 타임 내내 목소리를 거의 내지 않는 당신은 버스터 키튼 같았다. 후에 〈헤일, 시저!〉를 다시 봤는데, 쌍둥이 기자 역할의 목소리가 매우 이질적이었다. 〈설국열차>에서 당신의 목소리는 정말 위압적이다. 이번 〈옥자〉에서 당신의 목소리는 지나치게 사교적이다. 당신에게 목소리란 어떤 의미인가?
데릭 저먼과 함께 하던 연기 인생의 초반 몇 년 동안, 슈퍼 8을 사용한 무성영화 작업도 자주 하고 말을 하지 않은 채 일한 경험이 있는 터라, 내게 목소리를 내지 않는 일은 낯설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편안한 일이다. 침묵으로 연기하는 경험은 내게, 목소리란 단지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동원되는 연기의 많은 수단 중 하나라는 걸 가르쳐주었다.

밤하늘의 별처럼 서로 다른 크기의 시퀸을 촘촘히 장식한 울 점프수트는 샤넬(Chanel), 카멜리아와 진주알 장식 모자는 스티븐 존스(Stephen Jones).

밤하늘의 별처럼 서로 다른 크기의 시퀸을 촘촘히 장식한 울 점프수트는 샤넬(Chanel), 카멜리아와 진주알 장식 모자는 스티븐 존스(Stephen Jones).

배우에게 가장 중요한 미덕은 무엇이라고 보나? 통찰력과 유머 감각. 세상은 당신을 성공한 여배우로 인정하고, 또한 그렇게 인식한다. ‘성공한 여배우’라는 건 어떤 여배우를 말하는 건지 생각해본 적 있나? 돈과 명예를 떠나서 말이다.
난 그저 날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난 진실을 말하면서도 그런 삶을 살 수 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좋아하는 곳에서 그런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내게 성공이란 이런 것이다.

몇년 전,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지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과연 어떤 학교인가?
드럼듀안(Drumduan)을 말하는 거겠지? 4년 전 내가 살고 있는 스코티시 하일랜드 지역에 나의 친구이자 같은 학부모인 이언과 함께 설립한 학교다. 교육학자인 루돌프 스타이너(Rudolf Steiner)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우리는 유치원생부터 18~19세의 학생들에게 어떤 외부 시험이나 성적 체계도 없는 완전한 통합 교육을 제공한다. 학생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교실 밖에서 보내면서 몸을 쓰는 놀이나 공작, 자연과의 상호작용 그리고 과학에서 인문학에 이르는 각 과목 교과과정을 통해 배움을 얻는다. 난 새로운 세대의 교육에 대한 철학을 나누고, 이처럼 선구적 시도를 함께 할 만한 후원자들을 찾고 있다. 언젠가는 우리의 혁신적 시도가 스코틀랜드 지역의 시스템을 넘어 더 확대되고 실행되기도 희망하고 말이다. 다행히 그 사이 자신의 아이가 현대사회의 경쟁 스트레스를 최소화할 수 있는 건전한 어린 시절을 보내길 바라는 부모들이 점점 더 많아지면서, 우리의 규모도 점차 커지고 있다. 이곳은 자율과 행복이 보상받고 자연과 함께하는 통합적 사고를 통해 자급자족과 정착 생활로 나아갈 수 있는 곳이다. www.drumduan.org에 들러보면 좋겠다.

당신의 아이들에게 어떤 가치를 가장 강조하나?
친절, 포용, 연민, 동정심. 공감 능력이라고 해두자.

울 점프수트는 샤넬(Chanel), 카멜리아 모자는 스티븐 존스(Stephen Jones).

울 점프수트는 샤넬(Chanel), 카멜리아 모자는 스티븐 존스(Stephen Jones).

존 버거가 세상을 뜨기 전인 올해 초, 한 방송사에서 〈존 버거의 사계〉를 방영했는데 아직 생각나는 문장이 있다. “무언가를 다른 이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계산할 수 없는 목적지에 이르기까지 그것과 동행하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 이것이 그가 글을 쓰는 이유이기도 하듯, 당신이 연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들과 나누는 대화는 늘 내가 새로운 여정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끈다. 나는 매번 내 연기가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작품에 임하는데, 그러고 나면 그다음 여정이 스스로 모습을 드러낸다.

언제 존 버거가 가장 그리운가?
당연히 매 순간… 그는 지난 30여 년간 내게 매우 중요한 친구였다. 몇 년 전, 나는 한겨울 프랑스 산골 마을의 부엌 식탁에 마주 앉아 존 버거와 오랜 대화를 나누었고, 나를 비롯한 몇명의 친구들은 이를 에세이 필름으로 만들고자 했다. 하지만 촬영을 마치고 나서, 우리가 존에 대해 충분히 담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이 작품을 사계절로 이루어진 네 편의 영화로 만들자고 제안한 것이다. 이후 1년간 우리 그룹 가운데 한 명 혹은 구성원 중 다른 사람이 연출을 맡았고, 그 결과 네 가지 다른 초상의 컬렉션으로 작품을 완성했다. 그가 없는 지금, 그립다는 말만으로는 우리의 마음을 충분히 표현조차 할 수 없다. 하지만 생전에 그를 알았던 우리가 <존 버거의 사계>를 만들어, 우리가 그토록 높이 샀던 그의 원대함과 빼어난 시각, 지혜와 유머, 인류애에 대한 존중 등을 보여줄 수 있게 된 건 대단한 행운이라 생각한다. 그의 글은 우리 시대 문화의 값으로 따질 수 없는 크나큰 공헌이다.

헬멧과 연결되는 우주복 네크라인을 응용한 시퀸 트위드 미니 코트 드레스와 부츠는 샤넬(Chanel), 시퀸 레깅스는 몰리 고다드(Molly Goddard).

헬멧과 연결되는 우주복 네크라인을 응용한 시퀸 트위드 미니 코트 드레스와 부츠는 샤넬(Chanel), 시퀸 레깅스는 몰리 고다드(Molly Goddard).

당신의 친구가 되기 위한 첫 번째 요건은 무엇인가?
친절함.

지금의 삶에서 덜어내야 할 것이 있다면?
수줍음.

모마에서 일주일 동안 잠을 잔 ‘The Maybe’ 프로젝트나 록 페스티벌 무대에서의 시 낭독 같은, 영화 이외의 다른 활동을 계획하는 것이 있나?
서서히 진척 중인 각양각색의 프로젝트 가운데서도, 요즘은 친구인 올리비에 사이야르와 함께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지난 5년간 우리는 파리에서 가을 축제의 일부로 선보인, 현존과 시간의 일회성에 대한 라이브 퍼포먼스 시리즈를 발전시켜왔다. 이것에 얽힌 더 많은 계획이 있다. 첫 세 작품, ‘The Impossible Wardrobe’(2012), ‘Eternity Dress’(2013), ‘Cloakroom: Vestiaire Obligatoire’(2013)는 나와 올리비에가 공저자로 이름을 올린 책의 주제였는데, 2014년 리졸리에서 발행한 바 있다. 또 올해는 글래스턴버리 록 페스티벌의 ‘필턴 팰리스 시네마 텐트(Pilton Palais Cinema Tent)’를 공동 큐레이팅하고 있다.

우리는 종종 당신이 스코틀랜드의 해안 마을에 살고 있다는 걸 잊는다. 당신이 닭을 키우고 있다는 것도 함께 잊는다. 당신이 자연을 우정만큼이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당신의 일상은 과연 어떤 모습일지, 모두들 궁금해했다.
나의 일상은 내가 사는 스코티시 하일랜드 지역 사람들 대부분과 그리 다르지 않다. 내 일상을 이루는 것도 마찬가지다. 주로 아이들, 학교, 정원, 멀고 가까운 사람들과의 다양한 형태의 대화, 글을 쓰고 읽는 일, 바닷가, 언덕과 숲을 걷는 일, 반려견, 닭, 집, 쇼핑, 요리하고 먹는 일 같은 것들…

당신은 영화와 예술을 통해 세상과 교류하려는 사람 같다. 삶의 영감은 무엇으로부터 받나?
자연, 우정, 인간의 타고난 재능, 관점.

예술이 삶을 모방한다고 생각하나? 혹은 삶이 예술을 모방한다고 생각하나?
예술은 삶의 일부다. 그 둘은 함께 움직이는 동시에 독립적인 것이다. 예술이 없는 삶은 훨씬 열악할 것이 분명하다.

은색 퀼팅 스톨과 메탈릭한 스키니 팬츠는 샤넬(Chanel).

은색 퀼팅 스톨과 메탈릭한 스키니 팬츠는 샤넬(Chanel).

필모그래피만큼이나 독서 리스트도 궁금하다. 몇 가지 추천해줄 수 있겠나?
지금 막 떠오르는 건 몽테뉴의 다양한 수필, 야생 수달들 사이에 살았던 개빈 맥스웰의 작품, 셜리 잭슨과 뮤리엘 스파크의 이야기, 노먼 맥케익과 프랭크 오하라의 시, 데릭 저먼의 저서 <모던 네이처(Modern Nature)>, 존 버거가 쓴 모든 것, 낸시 밋퍼드, P.G. 우드하우스, 그레이엄 그린의 작품도 마찬가지다.

혹시 ‘틸다 스윈튼’을 뛰어넘어야 한다고 생각한 적은 없나?
솔직히 난 당신이 방금 ‘틸다 스윈튼’이라 묘사한 그 존재와 매일매일 너무 가까이 함께 살아가고 있기에, 그녀와 무언가를 협상해야 할 필요도, 욕구도 느끼지 못한다. 그녀의 필요와 기쁨이 바로 나의 필요와 기쁨이다. 우리는 서로 조화를 이루며 잘 살아가고 있다. 간혹 그녀의 삶에 도전하는 요소가 있다면, 그건 타인에 대한 아젠다다. 조심스레 다뤄지지 않을 경우 귀중한 에너지를 소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질문은 서울 개인전을 연 아이작 줄리앙을 만났을 때 그에게 건넨 첫 번째 질문으로 대신하려고 한다. 당신은 ‘Better Life’를 믿나?
내가 아는 한 ‘Better Life’라고 불리는 특정한 것은 없다. 그러나 당신이 왜 이걸 묻는지는 알겠다. 보다 나은, 보다 정확한, 보다 만족스러운 존재가 되기 위한 탐구는 세상 모든 종(種)을 진화의 방향으로 이끄는 것, 즉 지구상에 있는 동안 보다 밝고 공정하고 보다 많은 인생 경험을 할 수 있을 거라는 것에 대한 희망이다. 우리는 매일 상황이 개선될 것이라는 희망, 전쟁과 탐욕, 무례에 대한 그릇된 추종이 자정될 거라는 희망을 품으며 잠자리에 들고 아침에 눈을 뜬다. 우리는 이 세상이 우리 스스로를 통해 보다 나아질 것이란 걸 알게 될 것이다. 그래서 계속해서 더 높은 곳을 바라봐야 한다. 결국 그것 말고는 대안이 없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