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식 고찰

오늘도 분식을 먹은 당신에게, 음식문헌학자 고영이 역사를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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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물을 알곡 상태로 조리해 먹기, 또는 그렇게 한 음식을 일러 “입식粒食”이라고 한다. 밥이야말로 입식을 대표하는 음식이다. 곡물을 빻아 가루를 내고 가루로 반죽을 치는 과정을 거쳐 조리한 음식을 먹는 방식, 또는 그렇게 한 음식을 일러 “분식粉食”이라고 한다. 빵과 국수가 분식을 대표한다. 만두, 교자 등도 못잖은 분식이다. 입식과 분식은 각각 벼-쌀 문화권, 그리고 밀-밀가루 문화권과 맞아떨어진다.

음식은 혀만 즐거운 미식으로 다가 아니다. 먹어 봐야 맛을 안다. 내가 실제로 무엇을 먹을 수 있느냐 하는 조건이 맛의 감각, 맛있는 음식을 둘러싼 상상력과 표현에 앞선다. 사람은 자연이 허락한 자원에서 식료를 얻는다. 거기서 음식 문화를 시작한다. 그 다음 사는 지역 밖에서 온 식료에 반응하고 거기서도 나름의 음식 문화를 다시 일군다. 대륙과 대양을 잇는 무역에 따른 생물종과 음식 문화의 이종 교배를 보라. 그렇게 음식 문화를 일구고 이어가는 동안 “좋은 맛” “맛난 음식”에 잇닿은 상상력과 표현이 끝없이 다시 태어난다. 잠깐 자랐다가 사라자기도 한다. 미각과 미식은 자연과 역사와 문화의 산물이다.

만주가 원산지인 콩은 관포지교管鮑之交의 주인공 관중의 노력을 통해 기원전 7세기 이후 전 중국으로 퍼질 수 있었다. 콩이 유럽과 북미에 전해진 시기를 대략 18세기로 본다. 콩의 남미 전파는 이보다도 늦었다. 안데스 원산의 감자가 이 땅에 들어온 지는 200년이 될까 말까 한다. 조선 정부는 1906년 비로소 양파를 도입했다. 조선에서 개인 독농가에 의한 양파 재배는 1909년에 시작되었다. 사과도 딸기도 감귤도 배추도 최근 100년 사이에 완전히 종이 바뀌었다. 돼지도 닭도 그렇다. 우유 짜는 홀스타인 종 젖소가 들어온 지도 약 100년이다. 그 전에는 송아지 갓 낳은 한우 암소 말고는 우유를 얻을 데가 없었다. 송아지가 젖 떼면 우유는 없었다. 첫 송아지를 낳고 나면 늘 젖을 짤 수 있는 홀스타인 젖소가 들어오기 전까지, 이 땅에서 우유는 귀한 약재일 뿐 일상의 식료일 수가 없었다. 낙농 문화를 만들어가기에는 그 양이 너무나 부족했고 서민대중이 접할 기회가 너무나 적었던 것이다.

김치는 어떤가. 19세기 말 이후 산동 화교가 속이 꽉 차는 결구배추를 들여오면서 김치의 역사도 완전히 변했다. 속이 차지 않는 조선 재래종 배추로는 오늘날의 통배추김치를 담기가 어렵다. 오늘날 한국인의 김치 문화를 대표하는 통배추김치는 화교가 들여온 중국 산동 배추와 함께 전국적인 김치가 되었다. 산동 배추는 서민대중의 밥상에 파고들어 전에 없던 김치 역사를 만들어냈다. 1943년 이후 재배를 시작한 새 품종 딸기 재배는 산딸기 미각과 전혀 다른 딸기 미각을 이 땅에 퍼뜨렸다.

들어온 생물, 새로운 종과 아종을 낳은 작물과 가축도 당연히 지역화와 토착화를 거친다. 카사바, 마니옥, 유카, 감자는 이제 각 지역의 일상생활 속에서, 음식의 실제에서 반드시 같은 작물 또는 식료가 아니다. 페루 사람들의 콩 음식 상상력과 한국인의 콩 음식 상상력이 반드시 맞아떨어지지는 않는다. 옥수수와 고추를 둘러싼 상상력도 그렇다. 중국 온주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뒤, 캘리포니아에 갔다가 다시 일본으로 돌아온 밀감蜜柑, 일본어로 “미캉”이라 하는 감귤류는 시트러스 가운데 “만다린”이라는 분류에 든다. 이 감귤류는 19세기 말 일본에서 제주에 들어온 뒤, 온 지구에서 가장 멋지고 개성이 넘치는 제주 특산 시트러스, 만다린으로 몸을 바꾸었다. 더 열거하기도 벅차다. 보통 사람들의 먹는 감각, 맛있는 것, 맛있는 음식을 향한 상상력은 자원의 교체, 낯선 식료와의 만남과 함께 변하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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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식 또한 한국 특유의 궤적을 보인다. 이 땅의 사람들에게 주식의 으뜸은 단연 밥이었다. 쌀밥 먹을 형편이 못 되면 기어코 보리밥이나 조밥을 지어 먹었다. 1950년대 이후 한국 정부는 혼분식 장려 운동을 통해 이 감각을 꾸준히 바꾸었다. 1969년부터는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쌀밥을 못 팔게 했다. 이름하여 “무미일無米日”, 쌀 없는 날을 정부가 강제한 것이다. 한편 정부는 “분식센터” 개업을 주도했다. 이때 한국인은 지나치게 낯선 빵보다 역시 국수를 끼니로 선택한다. 국수 중심의 분식은 독자적인 한국인의 한 끼로 점점 그 지위와 몸집을 키웠다. 빵은 분식집이 아니라 여전히 제빵과 제과를 엄격히 구분하지 않는 빵집 또는 제과점에만 있었다. 자장면, 짬뽕, 중국집 우동 등 중식면과 칼국수, 그리고 인스턴트 라면이 분식의 중심이었다.

무미일 강제가 스러진 뒤, 분식집에는 김밥과 덮밥이 껴든다. 한국 분식집은 슬그머니 쌀밥까지 껴안은 저가 한식 패스트푸드점으로 변한다. 밥이 나오는 분식집, 분식을 본래 뜻과 상관없이 저가 한식 패스트푸드로 받아들이는 감각 또한 다른 지역에서 보기 힘든 음식 문화사의 한 장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