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의 기술

최희서는 이준익 감독의 신작 〈박열〉에서 주인공 가네코 후미코 역을 맡은 배우다. 히든카드, 다크호스 혹은 신데렐라. 뭐라 부르건 상관없다. 놀라운 캐스팅인 건 사실이다. 하지만 여배우라면 누구나 탐낼 역이 그에게 돌아간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절개 디테일 오렌지 재킷과 팬츠는 포츠  1961(Ports 1961), 브라 톱은 디올(Di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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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시작하고 1시간여가 지났다. 가네코 후미코라는 인물이 배우로서의 커리어 말고, 당신 개인의 가치관에 어떤 영향을 남겼는지 물었다. “그 시절에 어떻게 이렇게 진취적인 페미니스트가 있을 수 있나 놀랐어요. 스물한 살짜리가 자기보다 훨씬 공부를 많이 한 예심 판사 앞에서 주옥같은 연설을 해요. 4페이지에 달하는 재판 기록이 충격 그 자체예요. 전율하면서 읽었어요. ‘인간은 인간이라는 이유 하나로 모두 평등해야 하고, 자유 앞에서는 성별의 구분이 있을 수 없으며, 절대 권력은 존재해선 안 되고, 따라서 천황제는 사회악이다’라는 내용이에요. 그것이 나의 의지라면 죽음조차도 두렵지 않다는 식의 발언도 있고요. 그런 걸 읽다 보니 변하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처음으로 페미니즘에 관한 책을 사서 읽어 보고, 많은 의문을 갖게 되었어요. 왜 여성 전용 주차장이 있어야 하지? 왜 한국 영화에서는 여성이 이렇게밖에 표현이 안 될까? ‘여성의 권리를 보장하라’가 아니라 ‘여성을 여성으로 규정짓지 말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저 자신이 달라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번 영화를 여자분들이 많이 봐주시면 좋겠어요. 이렇게 작고 어린 여자가 어떻게 이런 말을 하고, 왜 그토록 긴 자서전을 쓰고….”

그리고 그는 울먹이기 시작했다. 아주 희귀한 경우는 아니다. 배우는 대개 평균 이상으로 감성적인 사람들이고, 어떤 역할은 그들에게 씻을 수 없는 여운을 남긴다. 가네코 후미코는 제국주의의 그림자가 아시아를 뒤덮은 20세기 초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며 아나키즘에 눈을 뜨고, 식민지 청년과 사랑에 빠지고, 그와 함께 황태자 폭살을 도모하다가 재판에 넘겨지고, 과감한 사상과 기행으로 일본 사회에 파문을 남기고, 인간의 자유를 부르짖으며 죽어간 여성이다. 영화는 박열(이제훈)과 후미코의 만남 이후 행적을 그리며, 두 사람은 마치 보니와 클라이드(<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1967) 혹은 클라렌스와 알라바마(<트루 로맨스>, 1993)처럼 거침이 없다. 하지만 배우로서는 그들의 행동 뒤에 담
긴 동기, 생략된 어린 시절의 학대와 감옥에서의 고뇌 및 두려움까지 체화해야 했을 것이다. 감독은 <길>(1954)의 줄리에타 마시나, <브룩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1989)의 제니퍼 제이슨 리, <길버트 그레이프>(1993)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참고하라고 주문했다. 치열하고 울분에 찬 캐릭터들이다. 최희서는 ‘눈물이 날 것 같아서’ 이튿날로 예정된 첫 정식 시사회에서도 영화를 안 볼 거라 했다. 그는 아직 이 캐릭터를 마음에서 떠나보낼 준비가 안 된 듯하다.

최희서는 어린 시절 해외 주재원인 아버지를 따라 여러 나라를 떠돌며 살았다. 그 덕에 일어, 영어, 이탈리아어가 유창하다. 이준익 감독의 전작 <동주>(2015)에서 윤동주(강하늘)의 시집 출판을 돕는 가상의 일본인 캐릭터 ‘쿠미’ 역을 따낸 것도 어학 능력 덕분이었다. “제 유년기 베스트 영화가 <키드 캅>(1993)이었어요. 일본에 있을 때 이모가 가져다준 비디오테이프를 닳도록 돌려 봤어요. 그 영화 덕분에 한국말을 안 잊어버린 셈이에요. 이준익 감독님과 일하게 됐을 때도 <왕의 남자>(2005)가 아니라 <키드 캅> 때문에 흥분했어요. <키드 캅>의 그 감독님이라고?” 자신을 연출에서 10년 동안 손 떼게 한 비운의 데뷔작 <키드 캅>의 몇 안 되는 팬을 캐스팅한 감독은 알뜰하게 그를 활용했다. 최희서는 연기뿐 아니라 일본어 대사 번역까지 도맡았다. 쿠미의 분량은 여섯 신뿐이었지만 촬영이 없을 때도 다른 배우들의 일본어 감수를 위해 모니터 옆에 앉곤 했다. 영화 경력이 짧은 데다 연기 전공자도 아닌 최희서에게는 그만한 교육이 없었다. 그를 눈여겨본 이준익 감독은 이후 <박열> 시나리오 회의에 다시 최희서를 불렀다. “여자로서 가네코 후미코에 대한 너의 생각을 들려달라”는 것이었다. 배역을 주겠다는 약속은 없었다. 한달음에 달려가 작업을 돕고도, 최희서 역시 부탁하지 않았다. 거절에 익숙한 서른 살 언저리의 무명 여배우, 그것이 최희서의 좌표였다.

“감독님이 제작자 출신이다 보니 제작사나 투자사에서 뭐라고 할지 아셨던 거예요. ‘이 배우를 아무도 모르는데 그렇게 중요한 역할에 어찌 쓰느냐’는 말이 나왔어요. 나중에 듣기론 감독님이 그러셨대요. ‘너희가 후미코를 연기할 만한 배우 중에 이만큼 일본말 자연스럽게 하고, 일본 사람으로 보일 수 있는 배우를 데려오면 내가 쓸게.’ 하지만 일본 배우가 아닌 이상 그 조건을 만족하기 어려웠고, 일왕 욕을 엄청 하기 때문에 진짜 일본 배우가 나올 수도 없었어요. 그럼 결국 재일 교포인데, 감독님이 ‘그럴 바에야 희서를 쓰겠다’고 주장하셨대요.”

그렇게 프로젝트에 합류한 최희서는 다른 배우들보다 깊숙이 제작 과정 전반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실제 재판 기록과 자서전 원문을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번역하고, 대사를 제안하는 일을 맡았다. 이준익 감독은 농담 삼아 “너 연기 안 할 때는 내 영화에 와서 스크립터로 일하라”는 제안까지 했다. 그녀와의 작업이 꽤나 흡족했던 눈치다. 많은 관객들 역시 그럴 것이다. 가네코 후미코는 실존 인물이 아니라면 현재 한국 영화의 지형 안에서 탄생하기 힘든 똑똑하고 능동적인 여성 캐릭터다. 이준익 감독의 필모그래피 안에서도 이 정도 크기의 여성 배역은 없었다. 최희서의 낯설지만 꾸밈없는 얼굴은 이 독특한 캐릭터에 현실감을 부여한다. 하지만 그 낯설고 꾸밈없는 얼굴이 한국 영화계에서 더 활용될 여지가 있을지는 지켜볼 일이다. 어떤 예측도 지금은 섣부르다.

화이트 셔츠와 팬츠는 바톤 권오수(Baton Kwonohsoo), 목걸이는 넘버링(Numbering).

화이트 셔츠와 팬츠는 바톤 권오수(Baton Kwonohsoo), 목걸이는 넘버링(Numbering).

“점이 모여서 선이 된다.”

최희서가 생각하는 배우의 커리어는 그런 것이다. 이제 막 첫 주연작을 세상에 내놓았지만, 다음 좌표가 무엇이 될지는 알 수 없다. 차기작도 없는 상태다. <킹콩을 들다>(2009)에 시골 중학교 역도 선수로 출연해 호평을 받았지만 <동주>로 다시 관심을 얻기까지 6년이 걸렸고, <동주>의 인상적인 엔딩 신이 회자되고도 부르는 데가 없어 우울증에 걸릴 뻔했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이런 종류의 공백을 이겨내는 방식이다.

최희서는 이른바 ‘엄친아’고, ‘스펙’ 좋은 배우다. “그런 말 너무 싫어요.” 소곤거리며 말했지만 그것이 아직은 최희서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는 대학부터 가고 나서 하고 싶은 거 하라는 부모님 말에 학원 한 번 안 빠지고 정석으로 공부해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에 들어갔고, 입학과 동시에 연극을 시작했다. UC버클리 교환학생 시절에는 공연예술 공로상을 받아 화제가 됐다. 연대 동문들과 서울라이트 필름이라는 영상 제작 단체를 만들어 직접 단편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을 하기도 했다. “연기를 하고 싶은데 아무도 캐스팅을 안 해주니까 친구들이랑 단편이라도 찍어야지 한 거예요. 연출 욕심은 없는데, 스토리에 대한 갈증은 있어요. 기회가 된다면 작가님들과 좋은 시나리오를 만들어보고 싶어요.” 최희서의 설명은 한국 영화계의 진부한 성 역할과 스타 시스템 안에서 똑똑한 여배우가 살아남을 수 있는, 이론상 가능하지만 누구도 실행해본 적은 없는 방법을 가리킨다. 물론 차선일 뿐이다. 모든 배우는 선택 받는 존재가 되기를 꿈꾼다. 그도 예외는 아니다. 다만 그 꿈을 이루지 못한대도, 그가 어딘가에서 어떤 식으로든 연기를 계속하리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것도 예술가로서의 품위를 적절하게 지키면서 말이다. 그는 일이 없을 때면 책을 읽고, 블로그에 글을 쓰고, 필름 사진을 찍고, 여행을 다니고, 복싱을 하고, 오디션을 보고, 어학 공부를 한다. 배우이기 전에 한 사람의 인간으로, 예술가로, 충실한 삶을 살아내려 노력한다. 그러다 이따금 행운이 따랐다. 이를테면 신연식 감독과의 만남이 그랬다. <동주>의 작가인 그는 지하철에서 산발을 한 채 정신없이 연극 대본을 외는 최희서를 보고 호기심에 명함을 건넸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시작된 것이다.

“정말 신기해요. 3년 전만 해도 우울하게 연극 하고 있었거든요.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말끝에 그는 웃었다. 웃을 때면 그의 얼굴은 순식간에 화려해진다. 솔직히 말해, 최희서는 미모 하나만으로 쉽게 주연을 꿰찰 수 있는 타입의 배우는 아니다. 스스로 체격 조건에 한계가 있다고도 말한다. “언젠가는 액션 영화를 해보고 싶어서 복싱을 배웠어요. 경찰, 형사, 탐정… 그런 역 해보고 싶거든요. 그런데 <원더 우먼>과 <악녀>를 보고 포기해야 되나 생각했어요. 갤 가돗과 김옥빈 씨 같은 팔다리 긴 사람들이 하니까 확실히 멋있더라고요. 하하.” 하지만 최희서는 끊임없이 발견의 기쁨을 주는 재미있는 얼굴을 가졌다. 입꼬리가 시원하게 치솟는 그 웃음이 특히 그렇다. 가네코 후미코는 여기에 코를 찡긋거리는 버릇을 더했다. 그럴 때면 후미코는 무정부주의 투사에서 사랑스러운 여자로
돌변한다.

그 얼굴을 보고, 그의 생각을 듣는 동안, 여러 배우의 이름이 익스플로러 팝업 창처럼 후드득 머릿속에 펼쳐진다. 그가 가장 존경한다는 리브 울만부터 제시카 차스테인까지, 그리고 그 사이 지루한 아프로디테들을 병풍 삼아 일세를 풍미한 개성 있는 배우들이 종잡을 수 없이 돌출된다. 배우는 준비되었다. 이제 그에 걸맞은 배역만 있으면 된다. 우리에겐 더 많은 가네코 후미코가 필요하다. 스테레오타입을 벗어난 똑똑하고 생생한 진짜 여자들이, 그리하여 이처럼 단단한 여배우들이 설 자리가, 더 많아져야 한다. 최희서는 그런 바람을 품게 하는 배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