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추럴 뷰티는 없다

좋은 거 먹고 행복하게 살면 화장품 없이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말, 설마 진짜로 믿었나? 에코 라이프 신봉자들로 가득한 발리의 직사광선 아래 내 한 몸 바쳐 임상 시험에 도전했다.

화이트 원피스는 로우클래식(Low Classic).

화이트 원피스는 로우클래식(Low Classic).

나는 화장대 앞에 3분 이상 앉지 않는다. 얼굴에 바르는 건 토너, 크림, 선블록뿐이다. 선블록은 일정 시간마다 덧발라야 한다는데 내 경우는 한번 집을 나서면 그 길로 끝이다. 짧은 여행에는 토너와 크림도 생략하고 친구가 휴대 용기에 담아준 에센스만 들고 다닌지 몇 년 됐다. 아무튼 건조하지만 않을 정도로 기초 제품을 바르고 집을 나서고, 피곤해 보일 때는 여기 빨간 립스틱을 더하며, 꾸며야 할 자리에는 빈 눈썹을 메우는 정도 성의만 보인다. 그래도 딱히 피부가 나쁘다는 말은 못 들어봤다. 세상 편하게 산다고? 에이, 선수끼리 왜 이러실까.

‘관리’라는 걸 도통 귀찮아하는 나에게 발리는 천국이었다. 우붓에는 갖가지 이유로 메이크업을 포기한 여자들이 많았다. ‘화장품과 식품에 흔히 쓰이는 팜유 때문에 고릴라 서식지가 파괴된다’, ‘치약과 스크럽에 사용되는 미세 플라스틱은 바다로 흘러가 녹지도 않은 채 영원토록 떠돈다’, ‘선블록 때문에 산호가 희게 변한다’. 이너 뷰티를 추구하는 히피들은 천혜 자연을 해치지 않는 천연 화장품을 사용하거나 섭생만으로 나이에 걸맞은 건강하고 자연스러운 피부를 유지할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게다가 그곳에는 만날 때마다 잔주름과 기미 한두 개 갖고 내가 쭈그렁 할머니가 됐다는 식으로 겁을 주거나, 얼굴에 살이 쪘네 빠졌네, 피곤해 보이네, 잔소리를 해대는 사람들이 없었다. 동양인의 나이를 짐작 못하는 그들은 내가 스물다섯이라 하건 서른이라 하건 곧이곧대로 믿었다. 나는 당당하고 자신 있게 맨 얼굴로 햇빛 아래를 활보했다. 그리고 불과 몇 개월 후 그것은 무모한 임상 시험임이 밝혀졌다.

발리에 산 지 2개월째, 눈에 띄게 기미와 주근깨가 올라오고, 이마와 미간에 주름이 지기 시작했으며, 볼이 쑥쑥 꺼지는 게 느껴졌다. 똑같이 게으르게 지냈어도 미세 먼지 가득한 서울의 햇살과 적도 지방의 직사광선은 파괴력이 달랐다. 나는 더 열심히 선블록을 바르고 보습을 하지 않은 것을 뼈저리게 후회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인터넷에서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51세 백인 여성 두 명을 비교한 것으로, 두 사람 모두 음식과 건강에 대해 글을 쓰는 베스트셀러 작가였다. 그중 길리언 맥키스는 저칼로리 오가닉 채식 메뉴만 먹으면서 디톡스에 열을 올리는 쪽이고, 나이젤라 로슨은 고기, 버터, 디저트, 알코올 등 몸에 나쁘다는 건 다 먹는다. 그들의 사진에서 충격을 받은 이유는 두 사람의 나이 차가 마흔 살쯤 돼 보인 탓이었고, 그중 70대로 보인 쪽은 자연주의에 심취한 길리언 맥키스였다. 음식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디톡스냐, 보톡스냐, 그것이 문제로다.

나는 그 사진을 평소 ‘내추럴 뷰티’를 입에 달고 사는 백인 남성에게 보여주었다. “쉰 살이 되었을 때 누구와 데이트를 하고 싶니?” 그는 대답을 회피했다. 그리고 이런 말을 했다. “너는 걱정할 필요 없어. 자연스러운 네 나이로 보여.” 그것이 결정타였다. 동양인의 나이를 잘 모르는 서양인에게 제 나이로 보인다는 건, 한국인 사이에선 제 나이보다 열 살은 늙어보일 거란 뜻이니까. 나는 때가 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집에 가야겠어. 코리안 스타일 스킨케어가 필요해!” “그게 뭔데?” “보톡스, 필러, 레이저.” 그는 경악했다. “그러다 니콜 키드먼처럼 돼! 내추럴한 게 가장 아름다운거야. 행복하게 살고, 많이 웃고, 자신을 사랑하는 여자는 충분히 사랑스러워 보여.”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지긋지긋한 내추럴 뷰티.’

발리에서 그 말을 밥 먹듯 들었다. 한 남자는 내가 외출 준비하는 모습을 보더니 감동 받은 얼굴로 말했다. “정말 인상적이야! 제품 하나만 촉촉이 바르고 끝이라니. 내 여자 친구는 아침, 점심, 저녁 메이크업을 바꾸거든. 사귀는 동안 한 번도 맨 얼굴을 본 적이 없어. 왜 좀더 자연스러울 수는 없는지 답답해. 나는 있는 그대로의 그녀를 사랑하는데, 그녀는 왜 자신의 내추럴 뷰티를 인정하지 않는 거냐고.” 그의 여자 친구는 일본계 화장품 회사에 다니는 중국인이다. 발리에서 다이빙 숍을 운영하는 프랑스 남자는 말했다. “중국 여자들은 왜 다이빙할 때 풀 메이크업을 하고 오는 거야? 물고기한테 잘 보이려고?” 그 역시 ‘내추럴 뷰티’ 신봉자였다. 또 다른 백인 다이버는 말했다. “인도에서 다이빙 강사로 일한다는 프랑스 여자 손님이 왔는데, 와우, 난 그렇게 선블록 많이 바르는 사람 난생처음 봤어. 그렇게 태닝을 싫어하면서 왜 다이버가 된 거지?” 하지만 그 모든 순간, 태양에 그을려 맥반석 오징어 껍질처럼 쪼글쪼글해진 그들의 피부가 나를 두렵게 만들었다. ‘저기, 그러지 말고 좋은 선블록 추천해줄 테니까 자네들도 좀 써봐’ 라는 말이 목구멍에 맴돌았다.

화장품 없이 아름다움을 유지할 수 있다는 건 섭생만으로 모든 병을 치유할 수 있다는 일명 ‘안아키’족의 믿음과 유사한 것이다. 아기를 질병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는 항생제가 필요하고, 생기 있는 피부를 위해서는 노화를 막아줄 선블록이 필수다. ‘내추럴 뷰티란 없어.’ 나는 어느 때보다도 그 말을 깊이 새겼다. 그리고 그동안 게으른 스킨케어에도 불구하고 내 피부를 지탱해준 ‘언내추럴한’ 행위의 힘을 새삼 실감했다.

이제 비밀을 말할 때가 됐다. 스물여덟 살 때인가 처음 보톡스를 맞았다. 미간 찌푸리는 버릇을 없애기 위해서였는데, 과연 그러고 나서 인상 쓰지 말란 소리를 덜 듣게 됐다. 필러, 레이저, 영구 제모 등도 틈틈이 했다. 과연 ‘화장품보다 피부과!’라는 뷰티 구루들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4년 전에는 눈 밑 지방 재배치 시술을 했다. 아마 저세상에 갈 때 누가 ‘네 평생 가장 보람되게 쓴 돈이 무엇이냐’ 물으면 나는 그때의 시술비 200만원이라고 말할 거다. 하루에 열두 번씩 “졸려? 피곤해? 우울해?”라는 질문에 답하느라 에너지를 허비하는 대신 또렷하고 여성스러운 인상을 갖게 됐으니까. 또 다른 비밀은 이것이다. 내가 사용하는 세 가지 기초 제품은 아무렇게나 고른 게 아니다. 뷰티 에디터들만큼은 아니겠지만 17년간 잡지 언저리에서 일하며 온갖 편집장, 에디터, 화장품 회사 직원, 쇼핑 중독자 등을 친구로 둔 덕에 초고가 화장품부터 홈쇼핑 떨이 상품까지 웬만한 제품은 다 써봤다. 그 결과 여느 한국 여자나 프랑스 여자들처럼 아침저녁으로 기초 제품만 여덟 가지씩 바르지 않더라도 적당히 효과를 볼 수 있는 라인업을 찾아냈다. 색조 역시 이것저것 해본 끝에 내가 한국인치고 꽤나 진하게 생긴 얼굴이라 조금만 손을 대도 과해 보인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아이고, 그것 참 귀찮은데 잘됐구나’ 하고 관둔 것이다. 귀찮다는 건 사실 핑계일 뿐, 내게는 이게 최선인 셈이다.

누구든 내추럴하게 살 수는 있다. 하지만 ‘뷰티’는 또 다른 문제다. 드물게 아무런 노력 없이 노년까지 맑은 피부와 건강한 혈색을 유지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타고나기를 잘 타고난 게다. 하지만 햇볕을 받으면 금세 탄력을 잃고, 중년이 되기 무섭게 정수리에 흰머리가 돋아나고, 먹으면 먹은 만큼 살이 찌는 나 같은 보통 여자에게, 중년 이후는 그냥 ‘내추럴’과 ‘내추럴 스타일’이 갈리는 시기일 뿐이다. 나는 후자를 선택했고, 그 여파와 사례를 목도한 뒤에는 결코 전자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참고로, 발리에서 돌아온 후 너무 바빠서 아직 코리안 스타일 스킨케어를 받지는 못했다. 대신 생전 안 하던 마스크 팩을 이틀에 한 번꼴로 하고 살을 좀 찌웠더니 귀국 직후 충격과 공포, 걱정에 휩싸여 나를 쳐다보던 친구들이 조금은 안심하는 눈치다. 이것도 코리안 스타일 스킨케어의 일종일까? 아무튼 이 모든 얘기는 말했다시피 비밀이다. 내추럴 뷰티의 환상에 사로잡힌 순진무구한 사람들 앞에서 에센스만 촉촉이 바르고는 “그래? 난 귀찮아서 메이크업 같은 거 못해. 자, 외출 준비 끝”이라고 말하는 순간의 뿌듯함을 위해서, 나의 영악한 동지들이여, 우리는 서로의 비밀을 굳게 지켜줄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