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신세계

북괴의 선전 문구와도 같은 파격으로 기존 다큐멘터리 영화의 문법에서 벗어난 정윤석 감독의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 이 새빨간 영화는 한국 사회를 돌아보는 특별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그것도 아주 웃기고 후련한!

테일러드 재킷은 디올 옴므(Dior Homme), 검정 셔츠는 바톤 권오수(Baton Kwonohsoo), 데님 팬츠는 구찌(Gucci), 가죽 벨트는 폴로 랄프 로렌(Polo Ralph Laur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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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만세, 만만세!”가 울려 퍼지는 극장 안을 상상해보라. 시뻘건 화면 한가득 온갖 금기어와 육두문자들이 시원하게 내리꽂히고, 소나기보다 시끄러운 음악 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시작부터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뛰어다녔다. 제목부터 도발적인 <밤섬해적단 서울 불바다>의 한 장면이다. 지난 1월 로테르담국제영화제에서 열린 월드 프리미어 시사회에서 관객들은 음악에 맞춰 머리를 흔들고 이 낯선 청춘들의 모습에 환호를 보냈다. 북괴의 선전 문구와도 같은 파격으로 기존 다큐멘터리 영화의 문법에서 벗어난 이 영화는 ‘밤섬해적단’이라는, 지금은 해체되었으나 실제로 존재했던, 문제적 펑크 밴드와 이들에게 일어난 지난 6년간의 일련의 사건을 무규칙적인 빠른 비트로 쫓아간다. 밤섬해적단의 노래 ‘김정일 만세’의 김정일이 사실은 장영실상까지 수상한 바 있는 견실한 어느 중소기업 대표의 이름이듯, 이들의 1집 앨범 <서울불바다>에서 제목을 따온 영화는 관객의 고정관념을 수시로 뒤흔든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조형예술과 다큐멘터리를 전공한 후, 미술과 영화의 경계에서 첫 번째 장편영화 <논픽션 다이어리>를 제작한 정윤석은 부산국제영화제 비프 메세나상과 베를린국제영화제 넷팩상을 수상하며 다큐멘터리라는 장르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전작에서 그는 1990년대 거품경제와 지존파 사건을 엮어 삼풍백화점 붕괴, 사형 제도 등 ‘국가적’ 살인의 추억을 얘기했다. 프랑스 누벨바그의 기수 로베르 브레송이 전한 잠언(“창조란 사람과 사실을 변형하거나 발명하는게 아닌, 이미 존재하는 사람들과 사실 사이에서 존재하는 모습 그대로 새로운 관계를 엮는 것이다.”)처럼 그는 잊혀가던 지존파 사건을 메타포 삼아 1994년을 재구성했다. 영화는 ‘응답하라’ 시리즈로 모두가 달콤한 향수에 젖어 있던 2014년 개봉했다. 지존파와 압구정 오렌지족 대신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말죽거리를 말춤으로 채울 때였다. 그리고 세월호 사건이 터졌다. 놀라울 만큼 모든 게 20년 전 그대로였다.

“전 예술은 언제나 예언적 기능이 있다고 생각해요. 2007년부터 <논픽션 다이어리>를 준비했는데, 한국 사회에서 1990년대를 소비하는 방식에 대한 문제의식을 느꼈어요. 시대의 어두운 이면을 감추고 풍요로움만 강조하는 것이 사회의 보수성을 역설적으로 증명하는 것 같거든요. IMF 당시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비정규직법도 그때 통과됐잖아요. 과거를 정직하게 바라보고 싶었어요.”

6년이라는 제작 기간을 거쳐 선보이는 그의 신작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는 청년 세대의 눈을 통해 한국 사회의 부조리를 헤집는다. 뉴타운 개발부터 강정마을 사건, 국가보안법까지, 만만찮은 현실 속에서 밤섬해적단의 멤버 권용만과 장성건, 그리고 이들의 매니저 박정근의 음악 인생은 험난한 희극과 웃기는 비극 사이를 오간다. “2010년 홍대 두리반에서 밤섬해적단을 봤어요. 성조기 모자와 경찰복을 입고 노래를 했는데, 그 후 우연히 이 친구들의 PPT 공연을 보고 충격을 받았죠. 일단 가사가 너무 좋았고, 형식도 아방가르드했어요. 청년 세대 문제, 한국 사회의 권위주의, 비정규직 같은 사회적 불평등 이런 얘기를 잔뜩 하고 있는데, 그걸 내뱉는 방식은 소음이더라고요. 그러니까 관객들은 시끄럽다고 나가요. 그때 한국 사회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용산 참사와 같은 슬픈 일이 많았지만 대부분은 거리의 목소리를 외면해버려요. 결국은 그게 우리 사회의 모순과 우리들의 이야기인데도 말이죠. 이 친구들의 언어를 영화로 잘 번역해주고 싶었어요.”

시인이자 소설가 장정일은 권용만이 쓴 밤섬해적단의 가사를 보고 난 후, <실천문학>에 그를 추천하기도 했다. 장정일은 김일성과 김정일, 박정희를 동급으로 보는 밤섬해적단의 음악을 이념으로서의 반공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권위주의에 대한 반발로 해석하며, 이들을 자유주의자라고 일컬었다. 이후 권용만은 시인으로 등단했다. 한편 박정근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게 됐다. 밤섬해적단 가사의 연장 선상이라고 볼 수 있는 시시껄렁한 SNS상의 농담이 문제가 된 것이다. 그리고 박정근은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감독조차 전혀 예상치 못한 드라마틱한 전개였다. “처음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영화의 세계관이 확장되는 계기가 되어 좋았죠. 하지만 이런 일이 생길줄 알았다면 전 이 영화를 찍지 않았을 거예요. 감독과 배우의 관계인 동시에 친구이기도 하니까요.” 박정근 사건은 다행히 대법원의 무죄판결로 끝났다. 하지만 여전히 ‘표현의 자유’와 ‘행동권의 자유’에 대한 의문은 남는다. 스스로를 ‘멍청이’라 표현하고 “싸구려 음악을 해서 망해도 싸구려 대미지만 입는다”며 낄낄대던 악동들은 국보법 사건 이후, 검사와 기자로 대변되는 어른들로부터 지속적인 이념적 커밍아웃을 강요당한다.

“쓰레기를 뒤지던 아이들이 무언가를 부수고 있다.” 어느날 감독의 머릿속에 떠오른 한줄의 문장으로 시작되었다는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는 겁 없는 청춘의 솔직한 분노와 순수한 열정으로 유쾌하게 나가다 기성 사회라는 답답한 벽에 부딪힌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시민은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주류에서 소외당한 이들에게 주어진 인간의 권리는 얼마만큼일까? “전작에서 1990년대라는 한 시대를 다뤘다면, 이번엔 그 시대에 성장기를 보낸 특정 세대를 주목한 셈입니다. 영화를 본 젊은 친구들이 자신의 얘기라고 생각해준다면 너무 고마울 것 같아요.” 촛불 집회와 탄핵 이후, 새 정부가 ‘대동강의 기적’을 말하는 2017년 여름, 이 새빨간 영화는 관객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갈까? 밤섬해 적단은 해체되었지만 희망이라는 가능성을 엿본 이들의 저항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