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Digital

약물도, 의사도 없는 디지털로 질병을 치료하는 시대다.

반지는 캐럿(Carat).

반지는 캐럿(Carat).

인류가 지성을 갖게 된 이유는 아마 모든 것을 의심하기 시작했기 때문일 것이다. 반대로 인류가 지성을 잃어버린 계기도 모든 걸 의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안아키’가 화제가 됐을 때 든 생각이다. 안아키는 ‘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 커뮤니티를 말하며, 일체의 예방접종을 거부하고, 자연요법으로 아이를 치료하자는 의미다. 문제는 대상이 ‘아이’라는 것이었다. 어떤 경우는 아동 학대에 해당한다.

인터넷에는 그들에게 동조하는 사람도 있었다. 약물에 대한 공포 때문이다. 알약이 적절한 치료 방법임을 의심하진 않는다. 다만 스마트폰 덕에 우리가 알 수 있는 정보의 폭이 늘어나자, 이 알약이 무슨 성분으로 우리를 낫게 하는지 알고 싶어졌다. 하지만 환자가 많은 국내 의료 여건상 자세히 설명해줄 합리적인 시간이 없거나, 환자는 관성대로 약을 받아오곤 했다. 사실관계를 떠나 한국에서는 항생제가 과다 처방된다는 이야기도 공중을 떠돈다. 즉 약물은 그 나름대로 발전하고 있지만, 우리는 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알 수 없는 데서 오는 두려움이 존재한다. 의심이 많은 특정 인물의 머리를 갉아먹는다.

2017년 현재, 여전히 창업의 메카인 미국의 실리콘밸리는 이러한 약점을 비집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들 스타트업은 주로 디지털 치료(Digital Therapeutics) 혹은 디지수티컬(Digiceuticals) 업체로 부른다. 보통 하는 일은 앱이나 기기를 통해 약물 처방 없이 생활 습관을 고쳐 질병을 예방하는 것. 여기까지만 들으면 별로 하는 일이 없어 보이지만, 실리콘밸리 전용 투자 정보 사이트인 엔젤리스트(angel.co)에서 업체 목록을 보면 대강 이해할 수 있다. 업체명이 디지털 치료(Digital Therapeutics)인 업체는 앱으로 우울한 기분을 조절해 습관적으로 담배를 무는 버릇을 조절하며, 스펠바운드(Spellbound)는 그림책 위에 스마트폰을 비추면 가상현실 그래픽을 띄워주는 어린이 전용 AR(Augmented Reality) 업체, 메드리듬(Medrhythms)은 음악의 음가를 통해 장애인이나 뇌경색 환자가 제대로 말할 수 있도록 한다. 약물의 투입 없이 여러 치료를 도입해 질병의 원인이 되는 생활 습관을 고치거나, 질병의 후유증을 완화시키는 것이다. 주사나 약물이 없다는 점에서 보면 신체에 삽입하는 생체 칩이나, 사람 손으로 하기 힘든 수술을 나노봇을 투입시켜 하는 수술과는 결이 다르다.

치료가 실제로 되기에 앞서 상식으로만 판단해보면 이런 업체의 치료법은 거의 사기에 가까운 기분이 든다. 중독 성분이라 해도 화학적으로 일시적 안정감을 주는 흡연을, 앱의 화면을 보면서 치료한다는 게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림책에 AR을 띄우는 것은 최신 기술도 아니며 몇 년 전부터 출간되고 있었다. 히트하지 못했을 뿐. 메드리듬의 NMT 치료는 디지털 없이 사람이 직접 가서 노래를 부른다는 점에서 음악 테라피로 봐도 무방하다. 크게 보면 TV를 보며 수면 호흡법을 따라 하고, 요가 동작을 흉내 내는 것에서 나아가지 못했다. 다만 실제로는 TV와 앱은 큰 차이가 있다. 스마트폰은 중력 센서, 가속도 센서, 각종 생체 인식 등이 가능한 종합 센서 기기이며, 입력도 자유롭다. TV의 입력 방식은 어찌 됐건 대부분은 리모컨 하나뿐이니까. 디지털 치료의 핵심은 앞서 말한 치료에, 환자가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다는 점이다. 장기적으로는 인공지능이 각 환자의 상태를 파악해 자동적으로 진단을 내릴 것이다. 이럴 경우 가장 훌륭한 점은 업체의 비용 절감, 이로 인한 환자의 치료 비용 부담이 줄어든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시장성에는 투자자가 가장 먼저 반응했다. 벤처 자금 펀드사 안드레센 호로위츠의 파트너 비제이 판데는 자사 블로그에서 말했다. “모든 병에 알약을 처방하는 건 구습이다. 심지어 미개해 보일 정도다(It’s going to seem backwards and even barbaric that our solution to everything was just giving out pills).” 일리 있는 이야기다. 굳이 약을 먹지 않아도 될 때도 우리는 뭔지도 모를 알약을 먹고 있다. 알약은 효율성 면에서 우수하지만 완벽하지도 않다. 알약을 삼켜야만 성인식을 통과하는 것처럼 가루나 액체는 어린이용으로만 만들어진다. 공포증을 유발하는 주사도 마찬가지.

디지털 치료 업체는 또, “제약회사는 알약 판매 후 어떤 부작용이나 효과가 있는지에 큰 관심이 없다”고 말한다. 이것이 약과 앱의 차이다. 앱은 증상의 완화, 통증의 정도를 꾸준히 기록하고 있으며, 흔히 말하는 인공지능과 딥 러닝에 의해 유의미한 통계 결과를 만들어낼 것이기 때문.

문제는 실제로 이러한 치료가 유의미한 효과를 불러오고 있는가의 문제다. 이에 대해 MIT 테크놀로지는 불면증 온라인 치료법을 제공하는 빅 헬스(Big Health)의 사례를 들었다. CEO 피터 헤임스(Peter Hames)는 “sleep.io는 수면제를 보완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대체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다. 또 다른 사례로 버타 헬스(Virta Health)는 앱을 통해 고지방 저탄수화물 식이요법을 제공, 약물 투여 없이 당뇨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했다. 임상 연구에서 10주간 식이요법을 제공받은 환자 262명 중 절반의 혈당 지수가 정상인 수준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디지털에 대한 믿음이 커지면 이 확률은 더 높아질 것이다.

디지털 치료의 장애물 역시 불신과 반지성이다. 인류는 오랫동안 무언가를 섭취하며 생장해왔으므로 먹는 데는 익숙하지만, 화면을 보며 병이 낫는다는 기분을 갖기엔 디지털의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우울증을 여가나 취미 생활을 포함한 무언가를 통해 개선하는 것에도 분명히 뇌 속 화학작용은 일어난다. 우리가 보고 믿기엔 안개가 지나치게 많이 껴 있을 뿐이다. 다만 생활 습관을 변화시키고 계속 유지하기 어려우니 알약이 더 간편한 문제도 있다.

결국 앞으로의 치료는 전통적인 방법인 약과 주사, 커뮤니케이션 기기를 통한 생활 습관 변화, 그리고 ‘안아키’와 같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의 대립이 될 것이다. 모든 이념이 그렇듯, 섭취와 생활 습관 변화는 적절히 조화를 이룰 때 가장 효과가 크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