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여행

굳이 대학살, 암살, 전쟁, 슬럼 등 아픈 역사의 현장을 찾아가는 여행이 있다. 이 ‘다크 투어’가 다른 나를 만든다.

다용도 바스켓 백은 수수(Susu 水水).

다용도 바스켓 백은 수수(Susu 水水).

‘다크(Dark)’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화이트(White)? 아니다. 블랙(Black)의 반대말이 화이트고, 다크의 반대말은 브라이트(Bright)이다. 어둠의 반대는 환함이기 때문이다. 모든 컬러에는 다크가 붙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다크 블루나 다크 레드처럼.

그렇다면 다크 투어(Dark Tour)는 어떤 여행일까? 매년 봄가을 밤에 서울 정동에서 벌이는 ‘정동 야행 페스티벌’ 같은 걸까? 아니면 한밤에 등산하는 야간 산행 같은 걸까? 그렇지 않다. 어두운 역사의 현장을 찾아가서 현재에 되새겨보는 역사 교훈 여행을 말한다. ‘Dark History Tour’인 것이다.

앞서 말한 서울 정동은 조선 말기에 대한제국(1897~1910년)의 중심지였다. 고종과 순종이 덕수궁에 거처했고,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 외국 공관과 배재학당, 이화학당 등 근대 사학이 정동에 자리 잡았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공립학교로 1886년에 세워진 육영공원도 현재 서울시립미술관 자리에 있었다.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된 중명전도 이곳에,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환구단도 현재 조선호텔 자리에 있다. 이처럼 정동에 남아 있는 건물이나 역사의 흔적을 둘러보면서 대한제국의 몰락 과정에 대해 설명을 듣고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이 바로 다크 투어다.

나는 피스앤그린보트(Peace & Green Boat)라는 크루즈선에 탑승해 강의를 몇 번 했다. 일본인과 한국인 각각 500명이 크루즈선을 타고서 동중국해나 동해를 7~10일 여정으로 여행하는 프로그램이다. 동해 프로그램이라면 후쿠오카, 나가사키, 부산, 블라디보스토크, 사할린, 홋카이도에 정박해 ‘다크 투어 사이트(장소)’를 버스로 탐방한다.

다크 투어 사이트는 여러 유형이다. 치열한 전투 현장이거나, 끔찍한 대학살과 은밀한 암살이 벌어진 곳일 수 있다. 칙칙한 감옥이나 묘지일 수도 있다. 대도시의 슬럼이나 외딴 지방의 유배지도 얼마든지 다크 투어 사이트다.

하지만 너무 어둡다고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일부 장소는 처참함을 드러내지만 대부분의 장소는 유적지로 관리가 잘되어 있어서 투어 자체는 쾌적하다. 문화해설사나 여행 전문가의 설명을 들으며 어두운 과거를 현재에 되새겨보는 가운데 의미를 느낄 것이다. 루소, 볼테르가 묻혀 있는 파리의 판테옹과 나폴레옹 1세가 안장되어 있는 군사박물관인 앵발리드는 엄숙하다. 하지만 쇼팽, 발자크, 에디트 피아프, 이브 몽탕이 있는 페르라셰즈 묘지는 아름다운 정원과 개성 있는 예술적 조각물 덕분에 볼거리가 많다.

우리가 다크 투어를 해야 하는 이유는 뭘까? 연극에도 비극이 있다. 셰익스피어의 <맥베스> <햄릿> <오셀로> <코리올라누스>를 비롯해, 베르디의 <가면무도회>는 모두 비극이다. 그곳에서 등장인물의 탐욕과 성격이 부른 변화무쌍한 인생을 목격한다. 그리고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우리가 다크 투어를 하는 이유도 비슷하다. 한 사람의 탐욕, 어리석음, 충동, 오판, 거짓, 불운이 빚어진 대형 사고 현장에 가면 공분과 함께 희생자에 대해 연민을 느낀다. 그리고 나는 당시 현장에 없었으니 천만다행이라는 안도감, 비극에 대한 재발 방지 노력에 대한 의무감마저 든다. 이른바 사회교육 효과를 얻는다. 이처럼 우리는 연민, 공분, 안도감, 사회교육 때문에 다크 투어를 떠나야 한다.

여행을 가면 겉에 보이는 현장만 보곤 한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 가더라도 그곳이 16세기에 가톨릭 교도들이 신교도를 죽였던 성바르톨로뮤 대학살의 현장이었음은 잘 모른다. 또 파리의 콩코드 광장이 18세기 후반 루이 16세를 비롯해 수많은 이들이 기요틴에 참수된 현장임은 모른 채 돌아온다. 공간뿐 아니라 시간 여행까지 한다면 우리는 훨씬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낄 수 있다. 참고로 서울에는 중구, 용산구, 마포구를 비롯해 가톨릭 신자들의 순교터가 많다. 일본에 가야만 신사를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서울 남산에서도 일제강점기에 많았던 신사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만약 5~10년 전에 다크 투어를 하려 했다면 상당히 고생했을 것이다. 사전 지식이 있더라도 역사의 현장을 실제로 찾기가 매우 어려웠기 때문이다. 다행히 이제는 어떤 곳이 다크 투어 사이트인지 찾기가 쉬워졌다. 도시 재생에 참여한 지자체가 현지를 찾아 보존하여 표지를 해놓는 경우가 많아졌다. 유적지를 공원이나 동상, 전시관, 박물관으로 조성해놓았다. 어두운 역사 지식을 담은 여행 서적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다크 투어를 하기에 최적의 시기다. 특히 지나치게 먼 고대, 중세보다는 근현대 시기의 다크 투어를 추천한다.

나는 최근 몇 년간 <다크 투어> 책을 집필하면서 국내외 다크 투어 현장을 더 많이 찾아다녔다. 탄핵 이슈가 거셀 때는 과거 대통령의 유적지를 다녔다. 대통령의 생가, 가옥, 별장, 기념도서관, 사고 현장 등 여러 장소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모든 대통령은 공과가 모두 있게 마련인데 이런 유적지에서는 공적만 보여줄 뿐 과오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이 없다. 후대를 위해서라면 균형 잡힌 시각이 절실하단 생각에 또 하나의 생각의 뿌리가 자라났다. 작년에는 20명 규모의 ‘컬처클럽’을 만들어 함께 매달 다크 투어 현장을 다닌다. 서울, 지방은 물론이고 중부 베트남에도 다녀왔다. 올해 들어서는 마음 맞는 여섯 명이 ‘웍앤웍’이란 모임을 만들어 매주 일요일 오전에 서울 곳곳을 탐사한다. 혹시 다크 투어에 관심이 간다면 혼자보다는 마음 맞는 지인들과 함께하길 추천한다. 자료를 조사하고 현장을 찾아가고 생각을 확장시키는 데 혼자보다는 두서넛이 훨씬 좋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