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Berlin Showtime 3

2017.07.28

by VOGUE

    Berlin Showtime 3

    베를린에서 한국 작가 3인, 김수자, 박찬경, 함경아의 전시를 만났다. 각자의 예술과 삶의 방식을 관통하는 이야기가 동시대의 미술적 화두로 수렴되는 현장을 기록한다.

    케베니히 갤러리 2층에 전시된 ‘Bottari’(2017). 2 얼마 전 작고한 절친한 동료 미하엘 O. 케베니히를 추모하는 흰색 보따리.

    케베니히 갤러리 2층에 전시된 ‘Bottari’(2017).

    기하학의 풍경 올해 카셀에서 열리는 도큐멘타 14의 메인 전시장을 둘러보다 우연 혹은 필연처럼, 층층이 김수자의 보따리를 만났다. 불확실하면서도 학구적인 태도로 무장한 채 정치적 이슈를 풀어내는 전시장에서 길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이정표처럼 무심하게 놓인 보따리 때문이다. 비슷한 시각, 베니스 포르투니에서 열리는 참여 지향적 작품 ‘마음의 기하학’은 하이라이트로 손꼽히고 있는데, 기다란 타원형 테이블 위에 놓인 찰흙 덩어리를 관객이 직접 손으로 빚어 만드는 모습은 현학적인 예술계를 환기시킨다. 한편 베를린의 케베니히(Kewenig) 갤러리에서는 최근 김수자의 예술적 화두가 어디를 향해 있는지를 보여주는 개인전이 열리는 중이다. 이미 구겐하임, 퐁피두, 모마 P.S.1, 베니스 비엔날레 등에서 전시를 연 이 예술가에게는 어디서 전시하는가보다 삶을 통틀어 천착한 주제, 이를테면 인간과 자연, 삶과 죽음, 존재와 실존, 육체와 정신 등이 ‘세계’ 혹은 ‘세상’이라 불리는 작금의 시공간과 과연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가 더욱 흥미롭다.

    올해 카셀에서 열린 도큐멘타 14에 설치된 김수자의 보따리와 조셉 코수스의 작품.

    올해 카셀에서 열린 도큐멘타 14에 설치된 김수자의 보따리와 조셉 코수스의 작품.

    김수자의 뉴욕 스튜디오와 인접한 곳에 작업실을 둔 조나스 메카스가 김수자의 보따리 오브제를 발견함으로써 도큐멘타의 개막을 실감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영화감독, 시인 그리고 작가인 그는 앤디 워홀, 존 레논, 오노 요코 등과 교류하며 뉴욕 기반의 미술 역사를 만들어간 주인공이다). 나 역시 이 작은 천 조각이 난민, 이주, 전쟁, 테러 등 인류가 자초한 현대의 역사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환부를 드러내며 저항과 자유를 부르짖는 출품작들을 끌어안는 듯한 위로를 받았다. 후에 그리스의 존경받는 예술가 야니스 쿠넬리스의 설치,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개념미술을 설파하는 조셉 코수스의 사진, 세계대전과 그리스 내전을 겪으며 자아 탐구적 작품을 선보인 루카스 사마라스의 거울 사이에 덩그러니 놓인 보따리. 역사를 뚫고 나올 듯 기운 센 이 작품들을 같은 화두로 꿰어내는 실이자 바늘 혹은 이불이었다. 김수자는 아테네와 카셀에서 동시에 열린 도큐멘타의 취지대로 2005년 아테네에서 만든 보따리에 카셀 현지에서 구한 옷을 합쳐 새 보따리를 만들었다.

    베를린 케베니히 갤러리에서 만난 김수자 작가.

    베를린 케베니히 갤러리에서 만난 김수자 작가.

    “보따리는 어딘가 먼저 놓기 어려운 오브제예요. 먼저 놓아 버리면 다른 작품이 방향성을 찾기가 힘들어지거든요. 그래서 전 보따리를 나중에 설치해요, 마치 점을 찍듯이.” 거의 마지막으로 설치를 하기 위해 전시장을 찾은 김수자는 절묘한 해석을 도출했다. “야니스 쿠넬리스가 그리스 섬의 채석장에서 석탄을 나르던 메탈 판을 가져와 설치한 작품을 보고 무언가를 감싸고 나른다는 느낌이 보따리와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남성성과 여성성의 문제에서 접근한 ‘젠더의 보따리’랄까요. 조셉 코수스의 얼굴 사진에 빨간색 십자가가 그려져 있는데, 그것이 보따리 매듭의 크로스로 인식되기도 했고요. 루카스 사마라스의 거울 작업도, 보따리를 일종의 거울로 본 제 작업과 만나는 부분이 있죠.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자연스럽게 작품 사이에 형식적 연관성이 생긴다는 사실이 놀라웠어요.” 한편 2층의 전시장, 팔레스타인의 벽과 난민 캠프를 재현한 작품 앞에서 보따리는 또 다른 콘텍스트를 만든다. 인간과 역사를 보듬는 관대한 예술가의 세계로 모든 것이 수렴된다고나 할까.

    얼마 전 작고한 절친한 동료 미하엘 O. 케베니히를 추모하는 흰색 보따리.

    “1992년에 P.S.1에서 처음 선보인 보따리와 1999년 베니스 비엔날레의 보따리 트럭, 코소보 난민을 위한 보따리와 지금의 보따리는 아마 다 다를 거예요. 전 세계가 그야말로 전쟁터가 되어버렸기 때문이에요. 특히 독일과 그리스는 무수한 이민자들을 받아내야 하고, 어떻게든 공존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죠. 작금의 위태로운 상황이 보따리를 보는 관객들의 시각에 더 묻어날 거라 봐요.”
    과연, 베를린 케베니히 갤러리의 보따리는 먼저 떠난 이를 추모하는 역할을 했다. 토요일 오전, 갤러리 앞에서 초인종을 눌렀더니 직원이 직접 나와 맞이해주었다. 17세기에 지어진 후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도 온전히 남은, 베를린의 두 개 건물 중 하나인 이곳은 케베니히의 갤러리로 변모하면서부터 새 생명을 얻었다. 2층과3층 사이의 계단에 이르러 그녀는, 불과 몇 주 전에 창립주인 미하엘 O. 케베니히를 잃었다고 말했다. 투박한 나무 계단 위에 놓인 하얀색 보따리는 그가 실제 사용하던 침대 시트로 생전에 아끼던 옷, 모자, 향수 같은 물건을 싸둔 작품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갤러리로 꼽혀도 손색없을 정도로 지적인 고유함으로 충만한 공간이 ‘보따리처럼’ 김수자의 작품을 품어 안았다.

    ‘To Breathe: Mandala’(2010).

    ‘To Breathe: Mandala’(2010).

    <숨결의 기하학(Geometry of Breath)> 전시는 누군가의 사적 공간에서 진심 어린 환대 받는다는 느낌과 함께 본질적 친밀감을 준다. 김수자의 지난 10년간의 삶의 궤적이 그녀의 신체를 통해 펼쳐진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1층에 들어서자마자 아메리칸 스타일의 주크박스에서는 작가의 숨소리가 들리고(‘To Breathe: Mandala’), 그녀가 입었던 검은색 옷이 빨랫줄에 널려 있으며(‘Bottari’), 20년동안 모아온 머리카락(‘Topology of Time’)과 2013년 멕시코 국경 지역에 비디오 작품을 설치하며 얻은 지문(‘Geometry of Body’)이 대구를 이루고, 석고로 본뜬 팔과 손(‘Deductive Object’)이 손짓하고, 빛바랜 요가 매트(‘Geometry of Body’)가 회화처럼 걸려 있으며, 자수로 기록한 숨의 주파수(‘One Breath’) 가 울려 퍼진다. 그 옆으로는 미국 이민자들의 포트레이트(‘An Album: Hudson Guild’)와 쿠바 아바나에서 포착한 흐릿한 존재들(‘An Album: Havana’)이 자리하는데, 나의 이야기와 타인의 이야기가 더 이상 구분되지 않는 순간이다.

    베니스 포르투니에서 선보이고 있는 ‘Archive of Mind’(2017).

    “그동안 보따리를 실존의 질문으로 던지고 내용물을 사람의 존재로 채워왔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다가오진 않았을 거예요. 그간 만들어진 조각의 형태 속에서 ‘감싸는 것’의 의미나 보따리의 의미, 혹은 페인팅을 재정리하는 작업을 해왔다면, 이번에는 내 몸의 기하학을 확장해서 보여주었다고나 할까요. 요가 매트나 머리카락 같은 건 나의 몸의 결정체이자 내 몸의 기하학이 일종의 흔적으로 각인되는 거죠. 흔적을 통해 보이지 않는 기하학을 유추하는 것, 그래서 기하학은 이 전시를 더욱 구체적이면서도 추상적으로 만들어줍니다.”
    베니스 포르투니의 클레이 워크숍 ‘Archive of Mind(마음의 기하학)’은 지난해 국립현대미술관에서도 선보인 바 있다. 관객들이 일일이 찰흙으로 만든 구가 쌓여 우주가 되었다. ‘빚는다’는 행위는 구복을 상징하기도, 기억을 소환하기도 하지만, 이 곳 베니스에서는 무한하면서도 생득적인 느낌이다. “구를 만들기 위해선 두 손을 이용해 찰흙을 같은 압력과 방향으로 끊임없이 어루만져야 해요. 손과 움직임에서 나오는 수많은 선을 상상해보세요. 반대편에 나오는 지름과 반지름은 끝없이 펼쳐지는 드로잉인 셈이죠.” 언젠가 테이블 앞에서 구를 빚었을 때, 나는 세상과 연결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보따리를 싸고 펼치고, 스스로 바늘이 되어 인파 사이를 걷는 등의 몸과 예술을 잇는 (보이지 않는) 기하학의 선들이 세상을 돌아 평범한 사람들의 손끝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보따리로부터 자유로워진다”고 표현했고, 앞으로도 새 작품이 속속 나올 테지만, 그것이 무엇이든 더욱 첨예해지는 그녀의 은유적 질문이야말로 날 움직이게 하는 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에디터
      윤혜정
      포토그래퍼
      CHOI DA HAM, JEAN-PIERE GABRIEL ('ARCHIVE OF MIND'), JASPER KETTNER (DOCUMENTA 14), IMAGE PROVIDED BY KUKJE 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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