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비밀

문재인 정부가 부탄의 국민행복지수를 국내에 적극 도입할 예정이다. 가능할까? 참고로 부탄 정부의 관심사는 ‘아직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다.

부탄고해상

한국에서 부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부탄은 히말라야산맥 동쪽에 자리한 인구 75만 명의 작은 왕국이다. 흔히 부탄을 마지막 샹그릴라 혹은 은둔의 왕국이라고 한다. 부탄이 외부 세계에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불과 20여 년이 채 안 된다. 부탄에 TV와 인터넷이 들어온 것도 1999년부터다. 이런 부탄에 대해 최근 우리 국민의 관심이 부쩍 높아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부탄을 다녀와 감명을 받았다는 언론 보도 탓도 있다.
최근 ‘가난하지만 행복한 나라 부탄’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아마도 우리가 ‘부유하지만 불행한 나라’이기 때문 아닐까. 1970년대 초 부탄과 우리는 1인당 국민소득이 250달러 전후로 큰 차이가 없었다. 우리는 ‘성장 지상주의’ 정책을 폈고, 부탄은 ‘행복 지상주의’를 선택했다. 그 결과 우리는 지금 1인당 국민소득이 2만8,000달러가 됐지만, 부탄은 아직도 2,800달러 수준이다. 잘살게 된 대한민국이 왜 가난한 나라 부탄을 부러워하게 됐을까.
부탄은 국내총생산(GDP)이 아닌 국민총행복(GNH)을 국정 철학으로 한다. 국민 총행복을 도입한 부탄 4대 왕 지그메 싱게 왕축의 말을 들어보자. “모든 나라 정부와 국민이 경제적 부를 늘리기 위해 노력하는데, 그것을 성취한 사람들은 안락한 생활을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빈곤하고 비참한 삶을 살고 심지어 사회적으로 소외당한다. 또 경제적 부를 위해 환경을 파괴한다. 모든 사람은 행복을 열망한다. 따라서 한 나라의 발전 정도는 사람들의 행복에 의해 측정되어야 한다.”
부탄의 국민총행복은 네 개의 기둥 위에 세워졌다. 첫 번째는 지속 가능하고 공평한 사회경제 발전, 두 번째는 문화의 보전과 증진, 세 번째는 생태계 보전, 네 번째는 앞의 세 가지를 뒷받침할 좋은 통치(민주주의)다. 네 기둥은 9개 영역과 33개의지표로 구체화된다. 이처럼 부탄은 국민총행복에 다차원적으로 접근한다. 9개 영역은 생활수준, 교육, 건강, 문화 다양성, 공동체 활력, 심리적 웰빙, 시간 사용, 생태적 다양성, 굿 거버넌스인데, 이런 영역이 국민총행복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같다. 즉 행복을 위해서는 생활수준이나 교육, 건강, 문화가 똑같이 중요하다.
직접 부탄에 머물며 그 예를 볼 수 있었다. 부탄에서 모든 의료는 무상이고, 유치원부터 10학년까지 무상 의무교육이며, 공부를 잘하면 대학까지 무상으로 다닐 수 있다. 부탄 정부는 올바른 시간 사용을 매우 중시하는데, 하루 24시간 중 8시간은 일하고, 8시간은 잠자고, 8시간은 자신과 가족, 공동체를 위해 사용하라고 한다. “당신이 8시간 이상 일하면 소득은 늘지 모르지만 더 행복해지지는 않는다.”부탄 관리의 말이다. 부탄에서는 첫눈이 오는 날은 공휴일이다. 모든 공공 기관은오후 5시면 칼퇴근한다.
북쪽으로 중국, 남쪽으로 인도 사이에 끼어 있으면서도 이들은 어떻게 독립을 유지하면서 국제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을까? 이런 의문은 그들의 문화 정체성과 자긍심을 알면 풀린다. 부탄에서는 학교와 관공서 등을 출입할 때는 전통 의상을 입어야 하고, 모든 건축물에는 전통 문양이 들어가야 한다. 억지스럽게 보이지만, 그들로서는 인구 대국 사이에서 생존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한다.
부탄은 또 자연과 생태 보전을 매우 소중하게 생각한다. 부탄 헌법은 전체 국토의 60% 이상이 숲이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실제로 72%가 숲으로 덮여 있다. 전 국토의 51%는 자연보호 구역이다. 부탄은 이러한 문화와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 독특한 관광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부탄은 외국인 관광객에 대해 자유 관광을 허용하지 않는다. 하루 200달러(비수기) 혹은 250달러(성수기)를 미리 지불해야만 비자가 나온다. 이 돈을 지불한 사람에게는 미리 정해진 관광 일정에 따라 숙박과 관광에 필요한 모든 서비스를 제공한다. 부탄의 관광정책은 한마디로 ‘높은 부가가치, 낮은 영향’이다. 이러한 정책을 통해 관광객 수를 실질적으로 제한하면서 자신들의 문화와 자연을 지킨다. 부탄을 여행한다면 명심해야 한다.
부탄의 국민총행복은 행복을 집단적으로 이해한다. 부탄 초대 민선 총리 지그메틴레이의 말을 들어보자. “행복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지 않으면 사적으로 혹은 개인적으로 그것을 얻을 수 없다. 당신이 다른 사람의 행복에 기여할 때, 스스로의 행복이 증대한다.” 무한 경쟁 속에서 나만 행복하면 된다는 극단적 이기주의가 우리의 행복을 해치고 있음을 일깨워준다. 이들은 국민총행복의 증진을 위해 9개 영역의 33개 지표에 대해 전체 국민 중 1%를 대상으로 국민총행복조사를 실시한다. 이 조사 결과에 기초하여 국민의 행복도를 측정하는 한편, ‘아직 행복하지 않은 사람’에 대한 맞춤형 정책을 실시한다.
모든 주요 정책을 실시할 때도 이들은 반드시 국민총행복에 미치는 영향을 심사한다. 이 심사에는 물질적 풍요뿐 아니라, 형평성, 성 평등, 부패, 자연, 건강, 문화, 스트레스 등 9개 영역의 22개 지표가 사용되고 있다. 이 심사에서 4점 만점에 평균 3점을 넘지 못하면 그 정책은 채택될 수 없다. 설사 심사를 통과하더라도 특정분야의 점수가 너무 낮으면 시정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부탄은 아직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지 않았다. 경제에는 도움 될지 모르지만, 나머지 지표에 나쁜영향을 미칠 거라 판단하기 때문이다.
부탄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국민총행복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을까, 아니면 인도의 라다크처럼 세계화의 물결에 떠내려갈까. 아무도 알 수 없지만, 나는 부탄이 지금의 국민총행복 정책을 유지한다면 20년 후에는 국민소득 1만 달러 수준에서 좋은 나라를 만들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여기에는 비록 입헌군주이지만 국민의 절대 신뢰를 받는 국왕의 역할이 매우 크다. 물론 인구 75만밖에 되지 않는 가난한 나라 부탄의 국민총행복 정책을 우리나라에 그대로 도입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부탄이 주는 시사점은 매우 크다. 즉 우리도 이제는 국민소득이 3만 달러나 되니 성장(GDP)보다는 국민총행복을 더 중요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총행복은 다차원적이고 집합적이기 때문에 국가의 적극 개입에 의해 달성할 수 있다. 특히 ‘아직 행복하지 않은 사람’에 초점을 맞추어 행복정책을 실시하는 이들의 행보는 매우인상적이다. 성장주의는 ‘행복한 사람(대기업과 부유층)’을 더 행복하게 하면 그 혜택이 나머지에게도 돌아갈 것이라는 이른바 낙수 효과 이론에 기초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 더 이상 낙수 효과는 없다. ‘아직 행복하지 않은 사람’을 직접 대상으로 한 맞춤형 정책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가 절실히 느끼는 부분일 거다. 행복의 비밀이 보이지 않는 요즘, 그 열쇠는 부탄에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