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전, 그 후

9년간 영화인들은 손발이 꽉 묶인 암흑기를 경험했다. 새 정부가 들어서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바뀐 지금, 영화인들이 기대하는 ‘정상적’ 미래.

레드 수트는 클루 드 클레어(Clue de Clare), 화이트 실크 블라우스는 휴고 보스(Hugo Boss).

레드 수트는 클루 드 클레어(Clue de Clare), 화이트 실크 블라우스는 휴고 보스(Hugo Boss).

필요가 있다. 제일 먼저 ‘블랙리스트’라는 이름으로 상징된, 특정 영화인과 작품에 대한 배제다. 정부에 반기를 들었다는 이유로 지원 사업에서 배제되고, 아시아 최고의 영화제에서 상영이 막힐 뻔한 작품도 있었다. 그렇게 여러 작품과 영화인이 배제된 그 공백은 친정부적 인사들과 <인천상륙작전>이나 <연평해전>같이 작품성은 전무하고 정치적 의도만 가득한 괴작으로 채워졌다. 영화진흥위원회는 영화인이 아닌 정권과 친한 문
화계 인사가 위원장을 맡았고 부산국제영화제는 오랫동안 영화제를 꾸려온 산증인이 쫓겨나고 점령군이 들어왔다. 또 그에 부화뇌동한 정치인들은 구체적으로 타깃을 지정해 압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부산 해운대의 지역구 국회의원 하태경이 <다이빙벨>의 상영을저지하기 위해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위원회를 압박한 부분은 결정적이었다. 영화진흥위원회에 영화를 진짜로 진흥시킬 수 있는 인물이 위원장으로 취임한다든가, 부산국제영화제에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이 억울한 누명을 벗고 복귀한다든가 하는 ‘9년 전으로 돌아가는’ 프로세스는 당연히 진행돼야 한다. 9년간의 이런 영화계에 대한 압박은 조금 다른 차원으로 창작자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친정권적인 영화는 쉽게 투자가 되고, 반정부적인 메시지를 가진 영화의 경우 대배우나 힘 있는 제작사 없이는 쉽게 투자 라인을 통과하기 힘들었던 현실은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상당히 큰 부담감으로 다가왔다. 제도적인 검열은 없었지만 이런 일이 생기면서영화감독들은 ‘자기 검열’을 할 수밖에 없었다. 조금이라도 정치적 메시지가 드러나는 영화는 될 수 있는 대로 기획하지 않으려 애썼다. 예를 들자면 나는 <왓치맨>처럼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한 한국형 슈퍼히어로 영화를 기획한 적이 있다. 1970년대라면 빌런은 당연히 독재자일 수밖에 없다. 남북한이 동시에 독재자 아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전 정권에서 이런 기획을 함부로 투자사에 제안할 수는 없었다. 일단 기획을 하는 나 자신의 검열을 통과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내가 조금 더 용기 있는 감독이었다 하더라도 투자사 직원의 자기 검열을 통과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 정부가 들어선 이후 감독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눌 때, 분위기가 바뀐 것을 느낄 수 있다. 감독들이 자기 검열로부터 자유로워진 것이다. 대통령이나 유력 여당 정치인이 메인 빌런인 영화를 쉽게 떠올릴 수 있게 됐다. 나아가 그런 기획이 이제 흔해질 것이니 역으로 정치적 메시지를 뺀 스토리를 만들어야한다는 발 빠른 감각의 발언도 나온다. 한마디로 자기 검열을 피할 수 있게 되니 할 수 있는 이야기의 차원이 여러 방향으로 확장된다는 말이다. 단순히 ‘이전 정권을 마음 놓고 욕할 수 있는’ 단계를 뛰어넘는 소재의 다양성이 확보된다.
당대 정권에 반하는 정치적 메시지를 가진 영화는 그 기획부터 어려웠던 것을 증거하는 영화도 있다. 최근 200만 명 가까이 관객을 동원한 히트 다큐멘터리 영화 <노무현입니다>는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의 지원으로 제작됐다. 사실 만들어지기까지 온갖 우여곡절이 많았던 영화다. 특히 이 영화는 지난 정권 상황상 투자원을 확보하기가 매우 힘들었다. 하지만 지극히 소수의 용기 있는 투자자들이 나섰다. 일반적인 상업 영화에 투자되는 금액만큼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적게는 몇백만원에서 몇천만원까지 쌈짓돈을 투자했던 그들은 지금 ‘대박’을 실감하고 있다. 정권이 바뀌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개봉조차 불투명했을 일이다.
투자사의 분위기도 당연히 일신된다. 정치적 메시지 때문에 자유롭지 못했던 부분뿐 아니라 창작자들의 자기 검열이 사라지면서 다양화된 소재를 맞이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부분은 바로 그 음험했던 9년간 영화는, 또 문화 예술은 어떤 하나의 도구처럼 보였던 것이 사실이다. 정권을 홍보하고 그릇된 역사를 왜곡하는 방식의 도구가 등장했고, 그것을 저지하기 위해 반대되는 목소리를 높이기 위해 애쓴 작품도 어쩔 수 없이 ‘반정부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도구’의 운명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이번 정권에서 가장 기대되는 부분은 영화 작품이 어느 방향의 도구도 아닌 하나의 인간성을 가진 주체로 변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정치적이지 않을 수 있는 자유’까지 얻는다는 것은 정말 창작자로서 고마운 일이다.
이렇게 ‘9년 전으로 돌아가는’ 일도 기대되지만, 앞으로의 한국 영화, 그 미래를 찬란하게 만들 기대 역시 하게 된다. 특히 그중 가장 중요한 부분은 영화계의 ‘승자 독식 구조’를 개선하는 것이다. 극장, 배급, 투자, 제작을 모두 하나의 계열사가 맡는 ‘수직 계열화’는 한국 영화의 양적인 성장에 기여하긴 했지만 한국 영화계 전체를 놓고 봤을 때 개별 작품의 성공률을 지극히 떨어뜨리는 효과를 가져왔다. 마침 도종환 문체부 장관이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던 지난 10월 극장과 배급업을 겸하는 것을 금지하고 일부 영화의 스크린 독점을 방지하는 것을 골자로 한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배급과 상영이 분리되면 모든 극장 체인이 모든 작품을 동일한 조건으로 상영할 수 있다. ‘자사 영화 밀어주기’라는 것이 사라진다. 또 거기에 ‘스크린 점유 상한제’ 역시 가세하면 ‘되는 영화만 밀어주기’라는 자본주의적 획일화의 병폐 역시 개선의 가능성이 생긴다. 우리는 ‘매체 노출은 적었지만 입소문에 의해 성공할 가능성이 있는 영화’를 수없이 놓친 바 있다. 정권이 바뀌며 이런 부분이 개선되면, 현재 ‘구멍가게’ 수준인 영화 제작자들은 숨통이 트일 수도 있다. 투자처가 다양해지고, 만든 영화가 자유로운 경쟁 속에서 극장에 걸릴수 있다. 한마디로 성공 확률이 높아진다는 이야기다. 아직은 시간이 좀 걸리는 이야기지만, 군소 제작사에서 웬만해선 자신들에게 주어지지 않았던 높은예산의 영화도 꿈꾸기 시작했다는 소문도 들려온다.
과연 메이저가 아닌 영화사를 친구와 운영하고 있는 나는 정치적 메시지로부터 자유로우며 예산도 많이쓰는 영화를 만들 수 있게 되는 걸까. 이제는 시대 탓도 힘드니 순전히 내 능력에 달렸을 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