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는 동네의 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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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는 동네의 공식

2018-11-05T10:11:08+00:00 2017.08.04|

취향과 감성은 어떻게 도시를 잠식하나. 뜨는 동네에는 어김없이 ‘취향 있는’ 작은 자본과 엇비슷한 ‘감성’을 파는 상인들과 ‘힙스터 워너비’라는 3요소가 있다.

힙스터 일러스트(최종)2

 

“우리 동네 망했어요! 집 앞에 반바지 입고 로브 걸친 힙스터들이 출현하기 시작했어요.” 홍제동 사는 후배가 말했다. 거기 어딘가 사진 찍기 좋은 카페가 생겼단다. ‘망리단’에 이어 벌써 홍제라니, 범홍대권이 은하계 전체로 팽창하는 날이 생각보다 빨리 올 것 같다. “그래, 그놈의 젠트리피케이션…” 별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건성으로 위로를 건네는데, 후배의 ‘망함’은 그런 뜻이 아닌 모양이다. “아악, 보기 싫어! 어쩌면 좋지?”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가 말하는 힙스터란 정확히는 트렌드를 좇아 서울 곳곳을 헤집고 다니는 ‘힙스터워너비’일 것이다. 그거라면 싫을 법도 하다.

나는 이미 강북에서 가장 팬시한 동네 중 하나인 서촌에 살고 있다. 주말이면 행인들이 30분에 한 팀꼴로 대문 앞에 멈춰 서서 사진을 찍으며 수군댄다. “여긴 사무실이야, 살림집이야?” 그리고 누군가는 꼭 테이크아웃 커피 컵을 버리고 간다. ‘오, 이 골목 예쁜데? 기념으로 나의 DNA가 묻은 무언가를 남기고 가야겠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 정도는 조금 열 받지만 견딜 만하다. 나 역시 얼마 전 성수동 카페에서 미팅을 하고 나오는 길에 파자마 차림으로 빗물을 퍼내는반지하 주민을 보며 민망함을 느꼈다. ‘타인의 주거지에 차려입고 놀러 와서 사생활을 침해하는 트렌드 헌터 따위가 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만, 아무튼 미안합니다’ 하고 속으로 사과를 건넸다. 주거지는 주거지대로, 상업지는 상업지대로, 언제까지나 경계가 구분되길 바라는 건, 그러나 헛된 욕심이다. 나의 불만은 오히려 철물점과 세탁소를 헐고 들어오는 업종이 왜 죄다 카페, 빵집, 소품 숍인가 하는 것에 가깝다. 그중 태반은 장사를 하겠다는 건지 소꿉놀이를 하겠다는 건지 모를 정도로 내용이 허술하다. 아 참, 그들이 파는 건 물건이 아니라 ‘감성’이라던가? 식도락 힙스터들은 흙도 먹는다던데, 잘 디자인된 간판을 눈으로 뜯어먹게 해주는 것도 서비스라면 서비스겠다. 아무튼 고만고만한 가게가 끝없이 늘어선 팬시한 동네를 거닐다 보면 오래전 뉴욕에서 자영업을 했던 지인의 말이 떠오른다. “중국인이 장사를 해서 대박이 나잖아? 그럼 다른 중국인들은 그 블록에서 같은 아이템으로 가게를 차리지 않아. 상권을 보호해주는 거야. 유대인은그 건물을 사지. 한국인? 바로 옆에 비슷한 가게를 내고 자기들끼리 싸워.”

물론 건물을 사는 사람들도 있다. 서울시는 요 몇 년 낙후된 지역에 대해 전면 재개발보다 도시 재생이라는 소극적인 자세를 취해왔는데, 그 사이 일반인들이 도시 공간 기획자라든가 지역 활동가, 감성 디자인 그룹, 무슨 무슨 프로젝트 팀이라고 스스로 이름을 짓고 낡은 건물을 사들여 가게, 스튜디오, 호텔, 클럽 같은 것을 짓고, 나아가 블록을 통째로 상업화시키는 시도를 하고 있다. 대놓고 자기 이름을 내세우지 않을 뿐, 곳곳에 제2, 제3의 ‘장진우’들이 있다. 누군가의 말대로 ‘취향 있는 돈’이라 불러도 좋겠다. ‘취향 있는 돈’은 올 초 익선동 상인들끼리 불법 건축과 소음 문제 등으로 온라인 설전이 벌어졌을 때 나온 표현인데, 요즘 서울의 트렌디한 동네를 지배하는 어떤 움직임을 가장 잘 설명하는 말이다. 대기업 프랜차이즈만 막는다고 젠트리피케이션이 막아지는 건 아니다. ‘취향 있는 돈’ 을 먹여 살리는 게 바로 ‘인스타 셀럽’과 ‘힙스터’들이다. ‘홍제동 로브남’을 향한 원망은 이런 맥락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것은 지역 풍경의 급속한 변화를 예고하는 징후 같은 것이다. 그리고 그 변화가 향하는 바는, 이제 누구나 예측이 가능하다.

7년 전 미국으로 이민을 간 또 다른 지인이 있다. 2015년 한국을 방문한 그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서울의 디자인이 언제 이렇게 발전했지?” 나는 2014년 그와 함께 한 샌프란시스코 여행을 떠올렸다. 우리는 긴 아침 산책 끝에 당시 미국에서 화제라는 블루보틀 매장을 찾았고, 서로 상반된 반응을 내놓았다. 그는 신선한 원두와 산뜻한 디자인을 칭찬했고, 나는 “이런 카페 서울에 500개 있어요”라고 했다. 조국의 마지막 기억이 2010년 종로구 외곽에 고착된 그는 믿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 이미 나는 서울에 1인 1카페 시대가 열리는 게 언제쯤일까 초침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2년이 흘렀다. 올 초 다시 서울을 찾아 그 사이 ‘떴다’는 동네를 둘러본 그의 반응은 감탄에서 피로로 바뀌었다. “예쁜데 다 똑같아서 식상해.”

무라카미 하루키는 20대 때 명문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직을 하지 않고 재즈 카페를 차렸는데, 에세이집 <밸런타인데이의 무말랭이>를 보면 그에 관한 소회가 나온다. “돈이 없지만 그렇다고 취직하고 싶지 않은 인간도, 아이디어만 있으면 어찌어찌 장사를 시작할 수 있는 시대였던 것이다.(중략) 빠져나갈 길이 많으면 많을수록 살기 좋은 사회라고 나는 생각한다.” 오래전 글이지만 여전히 공감 가는 얘기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연남동, 을지로, 소월길 같은 곳에 취향껏 작은 가게를 차리고 자유롭게 먹고사는 꿈을 꾼다. 그건 나쁠 게 없다. 하지만 새로운 아이디어는 드물다. 트렌드를 주도하는 작은 자본과 엇비슷한 ‘감성’을 파는 상인들과 인스타그램 핫 스폿을 찾아 도시를 유랑하는 힙스터 워너비라는 3요소는 흥행 불패의 공식이 되었다. 이제 중요한 건 지역 선점 능력뿐이다. 그리하여 엇비슷한 취향과 감성이 모두의 집 앞으로 구석구석 파고든다. 나의 도시는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 제대로 가고 있는 게 맞나? ‘홍제동 로브남’은 그 답을 알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