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말라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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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이집트에 막 들어섰을 때였다. 아프리카 종단은 남아프리카공화국부터 이집트까지 혹은 이집트부터 남아프리카공화국까지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여서, 이집트에 머무를 때 남아공에서 출발한 여행자를 꽤 만났고 아프리카 여행정보를 꽤나 주워들었다. 그중 아프리카를 종단하는 사람들조차도 거의 가지 않지만 갔던 사람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극찬한 곳, 말라위였다.

마치 바다인척 하는 거대한 호수가 있는 곳. 거대한 랜드마크는 없지만 사방팔방이 맑은 하늘과 초록으로 어우러져 있는 곳. 아직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사람들의 진심을 만나볼 수 있는 곳. 내가 겪은 말라위는 그랬다.

대한민국 국적으로 말라위를 들어가려면 비자발급이 필수이며 말라위 주변국가의 말라위 대사관에서 받을 수 있다. 말라위는 비자발급비용이 US100달러로 아프리카 국가 중에서도 꽤 비싼 편이다. 탄자니아에서 말라위로 가는 버스는 가격이 항공료에 육박하기 때문에 타자라 기차를 추천한다. 탄자니아의 다르에스살람에서 잠비아의 루사카까지 2박 3일이 소요되며 같은 노선임에도 빠른 기차와 느린 기차, 예전부터 사용되던 낡은 기차와 새로 들어선 신형 기차가 있다. 가격이 크게 부담스러운 편이 아니기에 1등칸을 추천한다. 며칠 전부터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2, 3등칸밖에 남지 않으니, 무시무시한 체력과 정신이 없다면 서둘러 1등칸을 예약하길 바란다. 1등칸은 4인 1실 형태(2층 침대)로 되어있어 편안하게 이동이 가능하다. 동행이 없다면 그 또한 새로운 사람들과 섞이는 기회가 될 수 있다. 타자라 기차가 유명한 이유는 움직이는 사파리이기 때문이다. 운이 좋다면 기차에서 이동하는 중간 중간 세렝게티를 능가하는 진짜 야생을 볼 수 있다. 말라위는 잠비아행 타자라 기차를 타고 잠비아를 들어서기 직전의 국경마을 음베야에서 내리면 된다. 그곳에서 말라위의 최북단 마을인 카롱가로 들어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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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위는 물가가 굉장히 싸지만 상대적으로 교통비는 비싸다. 카롱가로 들어서기 위해 달라달라에 올라탔다. 달라달라라고 불리우는 말라위의 봉고는 바닥과 내부를 다 뜯어내 무게를 최대한 줄이고 공간을 확보하여 9인승을 15인승으로 만드는 마법같은 개조차량이다. 물론 상상 이상으로 비좁다. 3줄이어야 하는 시트는 5줄이고, 3명이 앉을 자리에 5~6명이 끼어 앉아서 몸을 접은채로 몇 시간씩 이동한다. 그러다보면 그간 불평한 다른 모든 교통수단이 그립다. 오전 8시에 올라타서 잠이 들었다 깨도, 점심이 훌쩍 지나가도 같은 풍경이 계속 반복된다. 차가 가득 찰때까지 동네를 돌며 손님을 모으기 때문이다. 아직 한 걸음도 출발도 못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될때는 헛웃음밖에 안나왔지만 기존의 경험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던 이들의 다름과 느림을 받아들이는 순간 웃을 수 있었다. 그리고 언제 목적지에 도착해서 언제 밥을 먹고 무엇을 하겠다는 섣부른 계획은 세울 필요가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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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길치’인 주제에도 불구하고 지도 없이 걷기를 좋아한다. 말라위에서는 특히 그런 시간이 많았다. 빠르게 스쳐 지나갈 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뜻밖의 일이 벌어진다. 그것이 즐겁다. 골목을 꺾으면 눈앞에 펼쳐지는 새로운 순간들. 너머에 어떤 풍경이 있는지 모른 채 맞이하는 순간들. 갑자기 펼쳐지는 특별한 그 순간들 때문에 금세 다시 여행이 그리워지는 지도 모른다.

아무런 적개심 없이 웃으면서 다가오는 아이들을 보면서 다시 한 번 나를 들여다본다. 어느 날부턴가 낯선 이를 보면 일단 경계하고 의심했다. 기존의 경험을 바탕으로 동일한 실수와 피해를 줄이기 위한 방어수단이다. 하지만 이러한 행동은 호의로 다가오는 사람까지도 차단하며 그들과의 교류 역시 함께 차단한다. 애초에 그들과 섞이려고 시작한 여행인데 우습게도 그 기회를 스스로 잃어가는 나를 보면서 다시 한 번 다짐한다. “낯선 이를 보면 웃음부터 지어야겠다.”

아이들과 어른들 가리지 않고 벽에 들러붙어 무언가를 오랫동안 들여다본다. 무엇인지 궁금해 다가가보니 벽의 조그만 구멍 사이로 오래된 TV가 보이고 빼곡히 많은 의자가 놓여져 있다. 500원 정도면 입장이 가능하지만 그마저도 없는 사람들은 밖에 서서 구멍을 통해 몇 시간이고 들여다 본다. 말라위에서 이발비는 200원이다. 커다란 꼬치 역시 200원, 구운 옥수수도 200원, 커다란 닭다리는 500원, 식당에서 먹는 한끼 식사는 1000원 정도다. 5000원이면 배가 터질 때까지 다양한 부위의 바비큐를 먹을 수도 있다. 이들의 삶은 어쩌면 살아본 적도, 살아볼 수도 없는 할아버지 세대의 어린 시절과 닮지 않았나 싶다. 이곳의 시간은 아직 느리게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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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발달로 인해 삶은 편리해졌지만 우리는 서로에게서 멀어졌다. 나의 삶은 뚜렷해지고 우리의 삶은 사라진다. 누리는 것은 분명히 많아졌지만 그보다 더 소중한 것을 잊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문득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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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소하게 생각하는 모든 것들이 그들에겐 소중하다. 말라위의 시골엔 아직 절반이 넘는 아이들이 맨발로 다닌다. 수도와 전기는 밥 먹듯이 끊기고 핸드폰이나 카메라는 난생 처음보는 물건이다. 그래서인지 서로의 얼굴을 맞대고 보내는 시간이 자연스러운 곳이다. 그들은 그들의 시간을 함께 공유하고 있다. 그들을 보면서 삐삐도 없던 그 때, 친구집 문을 두들기던 어린시절이 잠시 그리워진다. 우리가 사소하게 생각하는 그 모든 것들이 감사한 것이 될 수 있는 곳. 어쩌면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한 숨 크게 들이마실 수 있는 곳. 말라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