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를 읽거나 안 읽거나

지금 가장 많은 담론을 만들어내는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 그를 좋아하는 사람, 싫어하는 사람의 사적인 이유.

무라카미하루키(이기준)

LOVE

작가로서 항상 궁금한 것이 있는데, 그건 바로 ‘대중의 취향’이다. 하지만, <수학의 정석>처럼 <취향의 정석>이라는 개론서도 없고, 누군가가 취향을 주제로 강연하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작가는 독자들의 취향을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나는 국적을 가리지 않고, 20년째 왕성하게 팔리는 이 세계의 취향을 파악하기 위해 하루키를 읽는다. 읽을 때마다 ‘과연 사람들은 이런 걸 좋아하는군’ 하며 감탄하기도 하고, ‘아니, 이런 걸 좋아한단 말이야?’라며 갸웃거리기도 하지만, 여전히 하루키를 읽고 있다는 사실은 변함없다. 세상이 하루키를 꾸준히 소비하는 한, 나 역시 꾸준히 하루키를 읽고 있을 것이다. ―최민석(소설가)

‘하루키’ 하면 야구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만년 약체 팀인 한화 이글스의 골수팬인 나는 도쿄의 최강 팀인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두고 센트럴리그 최하위 팀인 야쿠르트 스왈로스를 응원하는 그의 모습에서 왠지 모를 위안을 얻는다. 음악에서도 그는 비틀스보다 비치 보이스를 더 좋아한다. 그의 DNA에는 메이저보다 마이너를 선호하는 유전자가 있음이 분명하다. 그의 작품 속 캐릭터들은 뭔가 결핍된 인물들이다. 하루키는 그들을 무심하게 바라본다. 그럼에도 그의 작품에서 아련한 온기를 느꼈다면 그것은 마이너에 대한 그의 애정 때문일 것이다. 가끔 아련한 정서가 그리울 때면그의 작품을 꺼내 든다. 수차례 보았던 왕가위 영화를 다시 보는 것처럼. ―김면중(아시아나항공 기내지 <Asiana> 편집장)

하루키의 어조는 명확하다. ‘~일 것이다’ 혹은 ‘~인 것 같다’ 따위의 추측이나 어림짐작이 아니라 뚜렷한 확신이다. 그 덕에 무언가 비밀스러운 의미를 내포하는 단어의 나열, 문장도 술술 잘 읽힌다. 끝까지 읽으면 삶의 태도에 대해 고찰하게 된다. 제일 처음에 읽었던 <1Q84>부터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거쳐 <기사단장 죽이기>까지 모두 그랬다.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한 혹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 것에 대해 또 다른 방향에서 시각을 제시해준다. 하루키가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이론이나 사실, 주변에 대한 고찰이 아니라 전부 자기 영혼에 대한 고찰이다. 그를 좋아하는 이유가 다시 한번 명확해진다. 현실과 한계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누구보다도 영혼이 자유로운 사람이기 때문이다. ―죠지(뮤지션)

평소 에세이, 수필집을 꽤 좋아하는 터라 한때 소설을 읽는 것이 꽤 힘들었다. 작가가 그린 ‘존재하지 않는 세’를 내 머릿속으로 그려내는 것. 허구의 세상을 현실로 받아들이며 상상의 나래를 펼쳐야만 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반면 하루키의 소설은 단 몇 시간 만에 책장을 덮게 하는 마력이 있다. 그의 책에 집중하면 잡념이 사라진다. 1인칭 시점으로 읽기 쉬운 평이한 문체로 글을 쓰고 책 한 권의 내용을 짧은 메시지로 요약할 수 있다는 점이 그의 강점일 것이다. ‘어떻게 그런 글을 쓸 수 있을까.’ 그의 책을 찾아보니 꽤 많은 에세이집을 출간했다. 소설 한 편을 쓰기 위해 규칙적인 삶을 지키며 오로지 ‘글쓰기’에 대한 그의 집념은 한때 글로 월급을 벌었지만 그 업을 지속하지 못한 나의 부족함을 채근했다. 그의 오랜 팬인 일본의 사상가 우치다 타츠루가 지은 <하루키 씨를 조심하세요>를 작년 서점에서 발견해 펼쳐 보며 확신이 들었다. 자신의 창작을 활성화하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활동을 즐기는 그의 태도에 반한 것. 그래서 매일 아침,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을 올려주는 트위터봇(@Haruki_essay)을 들여다본다. ―손혜정(정부 부처 홍보팀 주무관)

사춘기 무렵, 나는 <상실의 시대>로 하루키를 처음 접했다. 숨도 안 쉬고 읽었던 것 같다. 좀더 깊이 하루키에 빠진 건 스무 살 제2의 사춘기 때. 현실과 꿈의 충돌로 정신적인 방황을 꽤나 했는데, 그때마다 도서관 구석에서 손때 묻은 하루키의 작품을 실컷 읽으면서 갈증을 해소했다. 30대 중반을 넘어서고 있는 지금, <기사단장 죽이기>를 읽고서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의 작품에 흠뻑 빠졌다 나오는 것 자체로 무언가 정리되는 기분이 든다. 환부에 더 강렬한 자극을 주어 진정시키는 방법이랄까. 하루키의 수많은 작품은 그렇게 긴 시간 내게 안정제, 진정제의 역할을 해주었다. ―이영인(매경출판 편집팀장)

 

HATE

하루키의 에세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이상하게 뇌리에 오래 남은 문장이 있다. “결승점에서 기다리고 있을 아내가 내 사생활에 대해서 뭔가 대단히 불쾌한 사실(몇 가지인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을 발견했을지도 모른다.” 이 제 발 저린 도둑의 문장으로부터, 나는 하루키의 이야기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정사 장면 몇 개를 떠올린다. 안 물어봤는데 성행위를 지나치게 자세히 묘사하는 친절함, ‘고추’와 ‘가슴’에 관한 노골적 농담. 종종 둘 중 하나는 기혼자이고. 아, 물론 여자는 쭉 뻗은 각선미에 인형처럼 귀엽고. 나에게 하루키는 재즈 바에서 병맥주를 마시며 젊은 여성에게 60년대 후반 격동기의 아름다움을 3시간 내리 예찬하다가 끝내 음흉한 눈빛을 보내는 ‘아주 오래된 신세대’다. 정치적으로는 대단히 진보적인 듯하나 기혼자인 자신과 젊은 여성과의 하룻밤 관계는 자유연애주의자의 아름다운 백일몽으로 포장하는. 그 특유의 살살거리는 문체 속에 숨어 있는 마초적 자의식을 간파했다고 생각한 이후로 그의 작품을 반기지 않는다. 서점에 가면 몇 장 거들떠보고, 주위에서 많이 언급하면 가끔 사서 읽다 포기하긴 하지만. ―마고(프로듀서)

하루키 책 안 읽는다. ‘안 읽었다’가 아니라, 안 읽을 거다. 이유는 하나다. 판권이 비싸다. 국내 순수문학 출판사마저 돈을 엄청 가져다 바치면서, 출간하게 해달라고 빈다. 선인세만 20억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그 돈을 한국 작가를 위해 쓰면 한국 문학이 풍성해질 것 같다. 하루키 책의 판권을 둘러싼 이러한 경쟁은 출판계에서 한국 작가가얼마나 홀대 당하고 있는지 증명한다. 독자들이 한국 작가보다 하루키를 더 좋아해서겠지. 그렇다고 하더라도 출판사들은 내가 판단하기에 거의 미쳤다. 새 책이 나올 때마다 판권 가격은 더 높아진다. 그 사이, 어쩌면 미래에 굉장한 작가가 될지도 모를 무명의 작가는 자취방에서 출간 자체가 미지수인 원고를 퇴고하고 있겠지. ―이우성(시인, 미남 컴퍼니 대표)

90년대 대학을 다니고, 문과생이면서 문화계에 일하는 사람 중에 하루키 작품을 안 읽은 사람은 나뿐일 거다. 90년대 대학 친구들은 모두 하루키를 읽었다. 그래서 읽지 않았다. 영화 평론을 하면서 하루키의 문장이 영화 대사로 인용될 만큼 인기를 구가했을 때도 읽지 않았다. 마흔이 넘으니 독서의 패턴과 취향이 점점 더 확실해진다. 이제 와서 내 취향과 게으름을 그가 유명하다고 타협하고 싶지 않다. 물론 하루키는 문학적 취향을 드러내는 작가가 아니라 하나의 ‘교양’이 됐다. 그러고 보니 집에는 나도 모르는 하루키 책이 한두 권은 늘 굴러다녔고, 결혼 후 서재를 합치니 하루키의 팬인 부인의 소장 책이 엄청 많다. 자꾸 얘기를 하다 보니 ‘언제 한번 읽어볼까’ 싶지만 글쎄, 그 언제가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다. ―김형석(영화 평론가)

뭐가 되고 싶으냐고 물어보면 항상 대답은 소설가였다. 글 쓰는 일을 하며 살고 싶었는데 글 같은건 비슷하게도 못 쓰니까 이 꿈은 그냥 꿈이다. 하루키의 삶은 내가 바라는 이상이다. 살고 싶은 곳에서 원할 때까지 지내다, 가고 싶은 곳으로 가서 글을 쓰고 돈을 많이 번다. 홍보를 하지 않아도 모든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어 많은 사람들이 ‘의무적’으로 읽는다. 잘하니까 그런 거라 생각하지만 너무 잘하는 거 같아서 얄밉기도, 부럽기도 하다. 원하지 않는 만남은 피할 수 있고, 어디든 펜과 종이, 노트북만 있으면 쓸 수 있으니, 우리(사진가)처럼 월세나 장비값이 나가지 않는다. 생각하고 있는 이 순간도 참 부럽다. 샘이 나서 그가 싫다. ―김참(사진가)

하루키의 책은 글귀가 간결해서 빠르게 읽을 수 있고 편하기까지 하다. 그런 장점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지만 항상 주제가 비슷하고 캐릭터 설정도 사실상 큰 변화가 없다. 꾸준함이라고 좋게 표현할 수도 있지만 두세 권 읽으면 다른 책도 어떨지 감이 와서 더 이상 집어 들지 않게 됐다. ―김아일(뮤지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