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트렌드

Modesty Blazes!

2017.08.29

by VOGUE

    Modesty Blazes!

    히잡을 쓴 소말리아계 미국인 모델 할리마 아덴의 성공! 이 시대가 새로운 여성상의 포용을 증명하는 신호다.

    19세 모델 할리마 아덴이 입은 벨벳 드레스, 자줏빛 모피 스톨, 체인 모양 목걸이는 드리스 반 노튼(Dries Van Noten).

    19세 모델 할리마 아덴이 입은 벨벳 드레스, 자줏빛 모피 스톨, 체인 모양 목걸이는 드리스 반 노튼(Dries Van Noten).

    당신은 히잡(아랍어로 ‘칸막이’라는 뜻이며 지금은 관습을 준수하는 무슬림 여성이 머리에 쓰는 스카프를 언급할 때 일반적으로 쓰는 단어)이 적어도 엉망인 머리를 가려줄 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지난겨울 뉴욕과 밀라노의 런웨이에 히잡을 쓴 최초의 하이패션 모델로 등장해 화제가 된 할리마 아덴(Halima Aden)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머리를 부드럽게 진정시켜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위로 붕 뜨게 돼요. 그러면 깔끔해 보이지 않을 겁니다”라고 케냐 난민 캠프에서 태어난 소말리아계 미국인 모델인 19세 소녀는 설명한다. 우리는 자동차로 그녀의 고향인 미네소타주 세인트클라우드로 가는 중이다. 웃을 때 보조개가 사랑스러운 그녀는 이렇게 덧붙였다. “하지만 누구나 머리가 약간 ‘이상해’ 보이는 날이 있게 마련이죠.” 이게 바로 할리마다. 그녀의 과거 경험은 다른 사람들에게 낯설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가는 곳마다 공통점을 찾아낸다.

    몇 년 전 찍은 그녀의 사진이 모교인 세인트루이스의 아폴로 고등학교 복도에 걸려 있다. 10대들(몇몇은 머리 스카프를 했고 다른 아이들은 플란넬 셔츠와 워크 부츠를 신었다)은 교실로 가거나 기도를 하러 갈 때 그 옆을 떠밀려 지나간다. 사진 속 9학년 소녀에겐 아직 약간의 젖살이 남아 있다. 그녀는 프린트 히잡을 쓰고 있지만 환한 미소에는 수줍음이 전혀 없다. 현재 할리마는 패션모델로는 작은 키인 165cm이다. 하지만 멈출 줄 모르는 열정, 혜성처럼 등장해 쌓아가고 있는 커리어, 그리고 26만 명의 팔로어들 (@kinglimaa) 덕분에 그녀가 이 사진에서 들고 있는 종이는 소름 끼칠 정도로 예언적으로 보인다. 그 종이 위에 그녀는 “나는 눈에 띄기 위해 태어났다 (I was born ‘2’ stand out!)”라고 적었다.

    Alberta Ferretti

    Alberta Ferretti

    그리고 그녀는 눈에 띄었다. 1년 전 그녀는 모교(그리고 세인트클라우드) 역사상 최초의 무슬림 동창회 여왕으로 뽑혔다. “저는 그처럼 작은 사건이 어떻게 소말리아 커뮤니티와 저의 학교에 바람을 몰고 왔는지, 그것이 어떻게 저 같은 소녀들에게 학생회와 클럽 등에 가입하도록 용기를 불어넣었는지를 목격했어요”라고 그녀는 고등학생들에게 인기 있는 푸드 코트에서 점심을 먹으며 말했다. 연보라색 머리 스카프가 표정이 풍부한 그녀의 검은 눈과 치아 교정기를 덮고 있는 도톰한 입술을 테처럼 두르고 있다. 검은 아바야(긴소매에 바닥까지 내려오는 로브)가 그녀가 편하게 신고 돌아다니는 뾰족한 9cm 힐 위로 흘러내렸다. “머리 스카프를 한 소녀들이 제게 와서 이렇게 말했어요. ‘오, 나도 졸업 파티에 가고 싶어요’ 혹은 ‘어떻게 하면 관현악단에 들어갈 수 있죠?’라고요. 저도 모르는 일이지만 그들은 제게 계속 조언을 구하러 왔습니다”라고 그녀는 회상한다.”

    그래서 그녀는 보다 대담해졌다. 미인 대회는 전통적으로 그녀가 속한 문화의 일부가 아니다(슈퍼모델 이만과 와리스 디리도 소말리아에서 환영받고 있지만). 그러나 2016년 가을에 할리마는 세인트클라우드 주립대학에 입학하면서 미스 미네소타 USA 타이틀을 위해 히잡을 쓰고 대회에 나갔다. 그 전에는 아무도 그런 적이 없었다. 그녀는 준결승까지 올라갔고 수영복 코너에선 부르키니(이슬람의 단정함을 존중하기 위해 디자인된 헐렁한 투피스 수영복)를 입었다.

    Yee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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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건 굉장한 뉴스였다. 몸은 가렸지만 전염성 강한 유쾌함과 자신감을 발산하며 대회에 참가한 할리마의 사진이 언론과 인터넷에 등장하며 IMG 모델 에이전시 사장인 이반 바트(Ivan Bart)의 눈길을 끌었다. 몇 주 지나지 않아 그녀는 현재 자신을 대변하고 있는 이 에이전시와 논의했다. 그리고 마리오 소렌티가 <CR 패션 북>(전 파리 <보그> 편집장 카린 로이펠트가 창간한 잡지) 표지를 위해 남색 히잡을 두른 그녀를 찍었다. “그 힘은 그녀의 눈과 존재감에서 나왔어요”라고 소렌티는 말한다. “그녀에겐 모던한 면이 있는 것 같아요. 신념이 넘치고 자신감 있게 여성스러움과 아름다움을 표현하죠.”

    할리마의 가족은 키스마요(Kismayo) 외곽의 작은 마을에서 대대로 낙타와 염소와 양을 키웠다. 인도양의 전략적 항구인 이 도시는 1990년대 초부터 간헐적으로 일어난 소말리아 내전의 화약고가 됐다. 점점 과격해지는 폭력을 피하기 위해 1993년 그녀의 부모님은 걸어서 국경을 넘어 카쿠마(Kakuma)로 향하는 피란민 대열에 합류했다. 11일에 걸친 대장정이었다. 카쿠마는 초가지붕 오두막, 텐트, 진흙집으로 이루어진 캠프로 케냐 동서쪽 아주 건조한 평원에 자리 잡고 있었다. 할리마는 1997년 그곳에서 태어났고 3년 뒤 남동생이 태어났다. “제게 카쿠마에서의 생활은 그렇게 힘들진 않았던 것 같아요”라고 그녀는 말한다. “‘쉽다’는 게 뭔지 몰랐으니까요.” 그녀는 어머니가 배고픔으로부터 가족을 지키기 위해 토마토를 키우고 향을 만들어서 팔았음에도 음식이 충분하지 않았던 걸 기억한다. 물은 귀했고 우물가에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던 어른들 사이에 싸움이 일어나곤 했다.

    그러나 아이들 사이에서 할리마는 관용과 다양성을 직접 체험했다. 캠프 주민들은 아프리카 전역에서 왔다. 때론 투르카나족의 아이들과 섞이기도 했다. 투르카나족은 마사이족처럼 유목 생활을 하는 목동들이다. 그들은 피부를 많이 드러내고 아쿠즈(Akuj, 하늘과 연관된 신)를 섬긴다. “우린 종교가 서로 섞였어요”라고 할리마는 회상한다. “우리는 크리스마스이브에 선물을 많이 받지 못했어요. 하지만 엄마 친구분들이 에티오피아 기독교인 들이었기에 요리를 해서 모든 아이들을 먹이곤 했어요. 에이드(이슬람 축일)가 되면 같은 일이 일어났어요. 이번엔 무슬림 가족들이 요리를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아쿠즈를 믿었어요. 투르카나 아이들이 제게 아쿠즈에 대해 경고했거든요.”

    그 영향인지 몰라도 그녀는 자신의 점잖은 드레스를 옹호하는 만큼 친구가 ‘정말 짧은 쇼츠’를 선택하는 것도 옹호하려 한다. “제겐 아주 노출이 심한 옷을 입는 친구가 있어요.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친구, 그걸 입어서 행복하고 아름답다고 느낀다면 그렇게 해. 저는 그녀를 기꺼이 변호할 거예요. 하지만 사람들이 그녀에게 죄책감을 느끼게 한다면 그건 모순이에요. 그들은 제가 그녀와 정반대로 몸을 가리는 것을 선택했다는 이유로 제가 억압받는다고 생각하죠.”

    Alberta Ferretti

    Alberta Ferretti

    몇 년간 지속된 이민 신청 과정을 거친 후 2005년에 할리마는 그녀의 어머니, 남동생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오게 된다. 처음엔 세인트루이스에 도착했고 1년 후에 세인트클라우드에 정착했다. 어머니는 그곳에 조성된 꽤 규모가 큰 소말리아인 사회에 친구들이 있었다. 바로 그 무렵 할리마는 처음 히잡을 썼다. “엄마가 그걸 쓴 걸 보고 저도 엄마처럼 되고 싶었어요.” 중학교 생활은 힘들었다. 스쿨버스를 타거나 교실을 오갈 때 “아이들이 머리를 가렸다는 이유로 저를 놀렸어요”라고 그녀는 회상한다. “몇몇 소말리아 학생들이 소말리아 출신이 아닌 학생들에게 욕을 가르쳐주곤 했어요. 그래서 그들은 제 모국어로 저를 욕했습니다. 6학년 때 한 남자애가 저를 ‘소말리안(Somalian)’이 아닌 ‘스멜리안(Smellian)’이라고 불렀고 다른 아이들도 따라했어요. 하지만 이젠 철이 들었고 지금 그와 저는 아주 친한 친구로 지내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반(反)이민·난민 행정명령을 내린 때와 비슷한 시기에 할리마가 성공을 거두었다는 사실은 씁쓸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월 소말리아를 포함해 주요 무슬림 6개국의 이민을 중단시켰다. “저는 난민이었어요. 그리고 제 가족이 미국에 와서 새로운 삶과 기회를 갖도록 문을 열어준 것이 기쁩니다. 제 경험으로 볼 때 난민들은 폭력을 가장 두려워하고 가장 진저리 치는 사람들입니다. 엄마는 정부 당국을 아주 존중하는 사람이에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난 그가 말하는 모든 것에 동의하지 않아’라고 말할 수 있어요. 하지만 존중해야 해요.”

    점심 식사 후 우리는 사람들이 가득한 카멜 스퀘어 소말리 몰의 복도를 걸었다. 그곳은 미니애폴리스 시내에서 자동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수수한 4층 건물이다. 200여 개의 매장에선 엄격한 무슬림들을 위해 아주 다양한 옷을 판매하고 있다. 잡아당겨서 착용하는 심플한 여아용 히잡부터 넓은 허리띠를 두른 꽃무늬 혹은 환상적인 레이스 아바야(Abaya), 반짝이는 디락 (Dirac, 소말리아 결혼식 때 입는 금색 수가 놓인 반투명한 보석 빛깔의 숄)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할리마는 그녀와 셀카를 찍고 싶어 하는 열렬한 소녀 팬들과 자진해서 조언을 해주면서 베일을 좀 더 바짝 당기는 중년 여성들 때문에 계속 발걸음을 멈췄다. 거침없는 중년의 가게 여주인 두 명이 오랫동안 그녀를 구석에 몰아넣고 단호하게 “인샬라(신의 뜻대로)!”를 추임새로 넣으면서 소말리아어로 속사포처럼 그녀에게 무언가를 얘기했다. 그날 저녁 소말리아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며 나는 할리마에게 그들이 무슨 얘길 했는지 물었다. “‘우리는 당신이 지금 훌륭한 일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아요. 하지만 그 업계에서 오래 일 할수록 그들은 당신이 팬츠를 입고 다음엔 좀 더 타이트하고 노출이 많은 옷을 입길 바랄 거예요. 그리고 머지않아 더 이상 히잡을 쓰지 못하게 할 겁니다!’라고 했어요.” 그녀는 한숨을 쉬었다. “그들의 딸들이 제 영향을 받기 때문에 이해는 해요. 하지만 패션계에선 누구도 제게 그런 압력을 넣지 않습니다.” 할리마는 보호자와 함께 여행한다. “저는 세계 톱 에이전시 중 한 곳과 계약했어요. 그들에겐 이미 모든 것을 벗을 의향이 있는 모델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히잡을 쓰는 사람은 오직 저 하나뿐이에요.”

    Max Mara

    Max Mara

    근처에서 머리 스카프를 쓴 어린 소녀가 엄마와 이모들이 산만하게 수다를 떠는 동안 유명인을 봐서 황홀한 듯 우리 테이블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저는 저런 소녀들이 잡지를 넘기면서 자신들과 비슷한 누군가를 볼 수 있길 바라요. 그런데 제가 왜 히잡을 벗겠어요?” 적어도 당분간은 패션계가 그녀를 바꾸려 할 것 같진 않다. 지난 2월에 그녀는 뉴욕에선 이지, 밀라노에선 알베르타 페레티 무대에 섰다. 머리 스카프와 코디해서 입는 코트의 모델이 된 것이다. 페레티는 피팅 과정에서 할리마를 만났고 그녀의 강인함과 사랑스러움이 멋지게 조화를 이룬 것에 매료됐다. 아랍에미리트에서 시간을 보낸 그녀(최근에 그녀는 그곳 공주 중 한 명의 웨딩 가운을 디자인했다)는 “이 지역에서 베일을 쓰고, 여행을 하고, 일을 하고, 멋지고 흥미진진한 삶을 살고 있는 수많은 여성들을 만났어요”라고 회상한다. “그래서 다른 현대 여성처럼 할리마에게 쇼에 출연할 기회를 주는 건 어떨까?라고 생각했어요.”

    막스마라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이안 그리피스는 이렇게 말한다. “할리마는 개성이 아주 강해서 런웨이에서 빛을 발합니다. 그녀는 그냥 걷기만 해도 지적이고, 자신감 넘치고, 야망 있고, 용감한 여성이라는 인상을 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조건 그녀를 캐스팅하고 싶었어요.” 시장에 대한 고려도 한 가지 요소였다. “어느 주요 도시의 고급 쇼핑가에 가도 히잡에 막스마라 코트를 입은 여성들을 보는 건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라고 그리피스는 말한다. “그러니 우리 런웨이도 그걸 반영하면 안 될 이유가 없는 거죠.”

    미니애폴리스에서 그녀를 만나고 일주일 후에 나는 롱아일랜드에서 온라인 쇼핑몰 모디스트(The Modist)의 사진 촬영을 하고 있는 할리마를 다시 만났다. 그녀는 유니세프 일에 참여하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그녀는 재건된 소말리아, 즉 전쟁으로 파괴된 그곳의 학교, 박물관, 주요 스포츠 경기장이 복구되는 걸 보고 싶다. “그곳에 살고 계시는 제 할머니는 그것이 희망 사항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세요. 하지만 저는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녀는 모델 일 덕분에 얻게 된 도약의 발판을 이해하려고 애쓰고 있다. “저는 그것이 얼마나 막강한지 알고 있어요. 이제 저는 과거에 무슬림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제 얘기를 듣고 소말리아계 미국인들에 대해 무언가 이해하게 되죠.”

    한편 소말리아계 미국 여성들은 패션계뿐 아니라 정계에도 진출하고 있다. 작년 11월에 34세의 일한 오마르(Ilhan Omar)가 미네소타주 입법부 의원으로 당선되면서 미국 역사상 최초로 소말리아계 미국인(그리고 히잡을 쓴) 국회의원이 탄생했다. 전화로 오마르는 자신과 할리마가 보여주는 이미지가 미국 무슬림 사회를 뛰어넘어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문제는 순응이에요. 제 경우엔 정계 여성들이 당선되기 위해 특별히 어떤 이상적인 모습에 순응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무슬림이든 아니든, 히잡을 썼든 안 썼든 젊은 여성들은 할리마를 보면서 ‘와, 그녀는 자기 방식으로 성공했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빈틈없는 정치가인 오마르는 자신의 생각을 확실히 납득시킨다. “그녀가 자신에게 충실하면서도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진다면 사람들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건 자신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거라는 걸 이해하게 될 겁니다. 그들은 다른 누군가가 될 필요가 없습니다.”

      LESLIE CAMHI
      포토그래퍼
      ANTON CORBIJN, INDIGITAL, COURTESY OF YEEZY, GETTYIMAGES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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