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ry Of Dreams

70년간 애비뉴 몽테뉴를 수호한 파리 패션의 성전, 디올 하우스. 전설로 남은 창립자와 뒤를 이은 성실한 후계자들은 디올이라는 세계의 벽돌을 견고히 쌓아왔다. 패션의 정수 오뜨 꾸뛰르와 립스틱과 향수로 대표되는 현실의 비즈니스가 공존하는 곳. 변화라는 동력과 꿈이 지닌 힘을 보여주는 디올 70주년 기념 전시가 파리에 모습을 드러냈다.

사진가 닉 나이트가 포착한 디올 꾸뛰르 드레스의 모습. 존 갈리아노가 디자인한 드레스를 입은 지젤의 이미지는 2006년 11월 영국 를 위해 촬영한 것.

사진가 닉 나이트가 포착한 디올 꾸뛰르 드레스의 모습. 존 갈리아노가 디자인한  드레스를 입은 지젤의 이미지는 2006년 11월 영국 <보그>를 위해 촬영한 것.

“2월 12일 크리스찬 디올의 새로운 꾸뛰르 하우스의 ‘오프닝’은 단지 비범하고도 아름다운 컬렉션만 선보인 건 아니다. 그 사건은 프랑스 패션에 자신감을 안겨줬고, 그렇기에 이 반짝이는 성공은 파리에서 패션 그 이상을 의미했다.” 1947년 4월 1일 자 미국 <보그>는 “새로운 하우스, 새로운 활기, 새로운 아이디어”라는 문구 아래 크리스찬 디올의 데뷔를 ‘대서특필’했다. 당시 42세였던 무슈 디올의 데뷔는 패션계에 의미심장한 사건이었다. “다시 한번(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모든 것을 거대한 규모로 선보였다. 의상은 우아했으며, 모두 여성의 몸에 맞추어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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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70년 후인 2017년 7월, 다시 한번 파리 패션의 자존심을 세울 만한 거대한 규모의 ‘오프닝’이 있었다. 파리 장식미술관에서 디올 하우스 창립 70주년을 기념한 전시 <Christian Dior: Designer of Dreams>가 문을 연 것이다(내년 1월 7일까지). 하우스 창립자는 물론, 그 뒤를 이은 후계자 여섯 명이 이룩한 세계를 총망라했다. 300벌이 넘는 꾸뛰르 드레스는 물론 디자이너의 삶과 그 친구, 디자이너들이 영감을 받은 예술가와 작품, 수백 점의 서신과 문서, 향수와 립스틱을 비롯한 뷰티 제품 등이 3,000㎡에 달하는 광활한 미술관을 가득 채웠다. 1905년 장식미술관 개관 이후 가장 커다란 규모의 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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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프리뷰 및 축하 파티가 열린 7월 4일, 미술관 입구인 리볼리 거리는 이미 축제 분위기로 충만했다. 디올로부터 초대장을 받은 중국의 젊은 남녀 배우는 앞에 모인 팬들에게 인사를 건네느라 분주했고, 그 뒤로는 칼리 클로스와 벨라 하디드 등 디올의 최신 컬렉션으로 빼입은 톱 모델들이 재빠르게 전시장 안으로 이동했다. 때마침 차에서 내린 비앙카 재거의 뒤를 따라 입구에 들어서자 좌우로 나뉜 미술관의 중앙 홀이 반짝이고 있었다. 안내를 맡은 박물관 직원은 우선 몽테뉴 거리의 매장을 닮은 왼쪽 계단을 향해 오르라고 손짓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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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의 시작은 핑크색 타프타를 만지고 있는 디올의 사진. 그리고 1905년 디자이너의 탄생부터 2017년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의 첫 번째 꾸뛰르 쇼까지 이어지는 연대기가 빼곡히 옆벽을 채우고 있었다. 이 타임라인은 전시 예고편에 가까웠다. 하우스 역사와 디올의 영감, 컬렉션의 테마별로 이뤄진 23개의 주제는 이 시간들을 세세하게 짚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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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디올 아버지가 운영하던 노르망디 비료 회사의 광고 전단부터 나치 수용소에서 풀려난 여동생의 안부를 걱정하는 편지, 그가 사모하던 달리의 조각 작품까지. 상상을 뛰어넘는 수집력과 현대적인 비주얼 장치디자이너 나탈리 크리니에르(Nathalie Crinière)의 솜씨)는 우리에게 디올 역사의 한쪽도 놓치지 않기를 종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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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는 눈앞에서 지켜보는 커다란 책과 같습니다.” 장식미술관의 올리비에 가베(Olivier Gabet)와 함께 큐레이팅을 맡은 플로렌스 뮬러(Florence Müller)는 이토록 세심한 배려에 대해 설명했다. “서서 전시를 바라보는 관객에게 시각적 매력을 전달해야 합니다. 작품에 관한 짧은 텍스트를 통해 시선을 끌어당길 수 있어야 하죠. 그렇게 함으로써 관람객이 뭔가 배울 수 있어야 해요. 그렇기에 디올의 미적 코드를 중점적으로 다룬 테마는 무척 중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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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 역사를 관통하는 중요한 테마 중 인상적이었던 건 ‘정원(무슈 디올의 정원과 라프 시몬스의 꽃 장식 드레스가 함께하는)’ , ‘어라운드 더 월드(19세기 자포니즘의 영향을 받은 도자기와 존 갈리아노가 디자인한 오리엔탈 드레스의 행렬)’ , ‘아티스틱 어피니티(청년 디올이 운영하던 갤러리를 복원한 공간과 스털링 루비의 회화가 이어진다)’. 모든 테마에는 그에 어울리는 하우스 초기 디자인과 최근 디자이너의 작품, 그에 어울리는 디자이너 소장품 혹은 미술 작품이 함께했다. “올리비에 가베와 함께 디올의 작품, 조각품, 회화 사이에 대화를 창조하기 위해 수개월 동안 작품 선정에 공을 들였습니다.” 뮬러의 말이다.

웅장한 이번 전시를 준비하는 모습을 포착했다. 디올의 아카이브는 물론 전세계 미술관에서 예술 작품과 자료를 빌려왔다. 아래는 지난 70년간 이어진 디올의 꿈을 시작한 주인공 무슈 디올

웅장한 이번 전시를 준비하는 모습을 포착했다. 디올의 아카이브는 물론 전세계 미술관에서 예술 작품과 자료를 빌려왔다. 아래는 지난 70년간 이어진 디올의 꿈을 시작한 주인공 무슈 디올

 

전시는 창립자의 세계에 머무르지 않았다. 곳곳에서 시간에 따른 브랜드의 변화를 눈치챌 수 있다. 특히 이브 생 로랑, 마크 보앙, 지안프랑코 페레, 존 갈리아노, 라프 시몬스, 그리고 현재 하우스를 이끌고 있는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에 이르는 역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작품은 미술관의 오른쪽 공간에서 차례대로이어진다. “각 디자이너마다 드레스 열다섯 벌과 가장 상징적인 사진 및 자료를 열 점 정도씩 전시했습니다. 회고전을 위해 연대적인 접근법은 필수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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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70년 역사 속 무슈 디올이 하우스를 지킨 건 고작 10년. 대신 시대에 따라 페레의 이태리 특유의 글래머, 갈리아노의 광기 서린 카오스, 그리고 시몬스의 현대적인 로맨스 등이 디올의 언어를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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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로처럼 이어지는 전시장은 디올이라는 과목을 가르치는 학교이자 종교적 성전의 역할도 겸한다. 종교적 분위기가 절정에 달하는 곳은 디올의 아이콘인 ‘바 수트’를 전시한 공간. 허리 아래로 봉긋하게 솟아오른 원조 바 수트가 전시의 2부를 시작한다. 그리고 그 위로 발렌시아가, 랑방, 파퀸, 발맹 등 50년대 디자이너의 작품, 뮈글러, 고티에, 맥퀸, 가와쿠보 등 동시대 디자이너가 재해석한 버전이 고대 신전의 석상처럼 관람객을 내려다본다. 여기에 ‘디올 무도회’ ‘스타 인 디올’ 등의 공간은 미술관 천장까지 가득한 스케일이 압도적이다. 나와 비슷한 속도로 전시를 둘러보던 미국 <W> 편집장 스테파노 통키는 그 앞에서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떨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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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을 둘로 나눈 계단에 다다를 때쯤이면, 이런 의문이 생기기 마련이다. 70년간 디올이라는 이름의 신화가 계속되는 이유는 뭘까? 비슷한 시기에 활동하던 디자이너 이름이 사라진 반면, 샤넬과 더불어 파리 패션을 상징하는 이름으로 디올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하지만 그 답도 전시 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는 1947년 하우스를 설립하자마자 미국, 영국, 일본 등으로 날아가고, 향수 비즈니스를 시작하고, 라이선스를 고민했다. 사망하기 전 자신의 뒤를 이을 디자이너(생 로랑과 보앙)를 점찍어 영입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즉,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패션 사업의 기본 공식은 모두 그의 머리에서 탄생한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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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패션 사진가와 매체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자서전을 내는 등 유명세를 관리하는 처세도 뛰어났다. 디자이너로서 자신을 포장하고, 알리는 능력도 갖춘 것이다. 아마 무슈 디올이 2017년을 살아간다면 ‘파워 인스타그래머’로 이름을 날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CHRISTIAN DIOR_ DESIGNER OF DREAMS_SCENOGRAPHY 18  _Adrien Dirand

끝없이 이어지는 전시장을 거닐다가 수많은 유명인도 경외의 표정으로 함께 전시를 바라보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퍼스트레이디,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의 가족, 나탈리 포트만, 제니퍼 로렌스 등등. 그중 가장 눈길이 갔던 건 지금 바로 디올 꾸뛰르를 이끌고 있는 아티스틱 디렉터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

장식미술관 개관 이후 가장 커다란 규모의 전시는 그 규모와 방대함에서 관람객을 놀라게 한다. 아틀리에 장인들의 광목 샘플은 물론 디올을 대표하는 바 수트, 다이애나 비가 입은 드레스, 최근의 꾸뛰르 컬렉션 드레스까지 모두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장식미술관 개관 이후 가장 커다란 규모의 전시는 그 규모와 방대함에서 관람객을 놀라게 한다. 아틀리에 장인들의 광목 샘플은 물론 디올을 대표하는 바 수트, 다이애나 비가 입은 드레스, 최근의 꾸뛰르 컬렉션 드레스까지 모두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이 웅대한 유산을 어깨에 짊어져야 할 그녀는 과연 어떤 시선으로 전시를 바라봤을까? 마침 지나가던 <뉴욕 타임스> 기자가 그녀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런 과거의 영광이 부담스럽진 않나요?” 까맣게 눈가를 칠한 그녀가 잠시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렇게 답했다. “과거와 함께 살아가는 건 좋아요. 어쩌면 제가 로마 출신이라 그런지 모르겠어요. 우리 주변의 모든 곳이 역사거든요. 그걸 지워버릴 수는 없어요. 아름다운 방식으로 과거와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체득할 수밖에요.” 빛나는 유산에 몸을 웅크리지 않고, 그 꿈을 이어나가는 법을 깨닫는 것. 그건 지금 패션계 모두가 깨달아야 하는 중요한 명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