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의 요리 실력

요리에 ‘혁신’이 시작된 건, 과학자들이 요리로 외도를 하면서부터다. 부엌을 실험실로 삼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후예들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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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생을 살펴보면, 천재가 다른 분야를 기웃거릴 때 세상이 폭발적으로 발전한다는 생각이 든다. 미술가이자 과학자이자 건축가이자 사상가였던 그는 요리사이기도 했다. 궁에서 연회 담당자로 일했고 식당도 운영했지만 훌륭한 요리사로 평가 받았던 것 같진 않다. 푸짐하게 먹는 게 미덕이던 시대에 바질잎 한 장만 올린 빵 조각을 내서 원성을 듣기도 하고, 평생 풀만 먹고 살 수 있는 요리 레시피 따위를 개발하기도 했다. 당시 넓적한 모양이었던 국수를 지금의 스파게티 모양으로 만드는 제면기를 만들기도 했는데, 이를 먹기 편하게 삼지창 포크를 발명한 것도 그다. 전쟁 통에도 와인을 빚고, 삶은 달걀 커터, 짐승 도살 장치, 자동 석쇠, 냅킨 건조대 같은 숱한 조리 도구를 발명한 그는 요리와 과학의 크로스오버를 실행한 최초의 요리 과학자였다. 식재료가 지닌 성질과 음식을 맛보는 우리의 감각은 ‘생물학’이고, 식재료를 자르고 섞는 건 ‘물리학’이며, 조리하는 과정은 모두 ‘화학’임에도 불구, 요리와 과학은 냉동고와 화롯가만큼 거리가 있는 사이였다. 요리가 손재주의 일종으로 여겨진 탓이다. 요리에 ‘혁신’이 시작된 건, 과학자들이 부엌을 기웃거리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물리학자, 포토그래퍼, 마이크로소프트사 CTO, 특허 관리 기업 창업자… 경력을 나열하기도 숨 가쁜 네어선 미어볼드는 과학자만이 낼 수 있는 요리책을 세상에 내놓은 대표적인 인물이다. 요리에 관심이 많았지만 ‘왜?’로 시작하는 궁금증을 해결해주는 책이 없자 작가, 기계공, 자료 조사원 등과 팀을 꾸렸고, 원심 분리기, 동결 건조기, 레이저 커터 등 최첨단 시설을 갖춘 요리 연구실 ‘쿠킹 랩’을 열었다. 수천 번의 요리 실험을 거쳐 완성한 책 <모더니스트 퀴진>은 그야말로 전 세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과학적 논리로 중무장한 요리책이었고, 조리 중인 음식을 절단해서 촬영한 사진은 예술에 가까웠다. 이후 <모더니스트 퀴진 앳 홈>을 한 차례 더 펴냈고, 올해 빵만 다룬 <모더니스트 브레드> 출간도 앞두고 있다.

‘주방의 화학자’, ‘요리의 과학자’로 불리는 해럴드 맥기는 또 어떤가. 문학과 천문학, 물리학을 공부한 과학자인 그는 주방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음을 증명해 보인다. 1984년에 나오고 2004년에 개정된 저서 <음식과 요리>는 ‘요리사의 성경’으로 불리는데, 지금까지도 셰프들이 주방에 두고 너덜너덜해지도록 보는 책으로 유명하다. “스테이크를 구울 때 한 번만 뒤집는 것이 정석으로 되어 있지만 부드러운 질감과 촉촉함이 더 중요하다면 1분마다 뒤집어주며 굽는 것이 정답이다. 자주 뒤집어준다는 것은 어느 면도 다량의 열을 흡수하거나 방출하지 못한다는 것을 뜻한다”처럼 바로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탄탄한 내용이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꼽히기도 한 그는 <뉴욕 타임스>와 큐리어스북닷컴(curiouscook.com)에 칼럼을 연재하고 식품 회사 컨설팅을 하는 등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과학의 전당 MIT에서 공부만 하다가 요리사가 된 J. 켄지 로페즈 알트도 있다. 그에게 요리란 해답 없는 질문의 끝없는 연속이었다. ‘달걀을 삶는 완벽한 방법’에 다가서기 위해 30초 단위로 달걀을 삶아서 비교하고, 팬케이크의 베이킹 소다 양을 조절해보는 등 고전적 레시피를 과학으로 증명해 보였다. 숱한 실험을 통해 결론 내려진 레시피는 평소 우리가 믿어 의심치 않았던 레시피보다 손쉽고 맛있는 음식을 선사한다. 그의 실험은 음식 비평 사이트 ‘시리어스이츠닷컴(seriouseats.com)’의 ‘The Food Lab’에 업데이트되고 있다.

J. 켄지 로페즈 알트가 ‘주방의 너드’라면, 제프 포터는 ‘요리 긱’으로 불린다.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고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인터넷 관련 벤처기업의 컨설턴트, 리서치 프로젝트 운영 등 실로 다양한 경력을 가지고 있는 그는 아마추어 요리사이기도 하다. 식기세척기로 생선 찌기, 고온 오븐에서 45초 만에 피자 굽기, 단백질 접착제로 고기 붙이기 등 분자조리학의 원리를 응용한 재미있는 실험을 즐기는데, 이와 같은 내용이 담긴 저서 <Cooking for Geeks>는 실용적이지 않을 때도 있지만 호기심만은 배가 부를 때까지 채워준다. 과학자만이 가질 수 있는 기상천외한 호기심이다. 그렇다면 한국 대표는? 분자생물학을 연구하는 과학자이자 실험적 레스토랑 ‘빌바오’ 오너 셰프인 이강민 교수가 있다. 요리하는 과학자답게 그의 식당은 ‘식재료 본연의 맛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레스토랑’이라는 평가다. 얼마 전 그는 <나는 부엌에서 과학의 모든 것을 배웠다>를 펴냈는데 김장용 소금이나 옹기의 원리 등 우리나라 요리와 식재료에 대한 과학적 분석도 담겼다.

과학자만 과학의 관점으로 요리를 해석하는 건 아니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하버드대는 레스토랑 엘 불리의 수석 셰프 페란 아드리아를 강사로 초빙해 과학 수업을 맡겼다. 과목은 ‘과학과 요리’. 부엌에서 식재료를 활용해 과학의 기본 원리를 가르치는 수업이다. 요리사와 과학자가 본격적으로 협업한 만남도 있다. 물리화학자 라파엘 오몽과 미슐랭 스타 셰프 티에리 막스다. 둘은 분자 요리 연구를 해왔고 프랑스 요리혁신센터도 설립했다. 국내에도 출간된 <너무 맛있어서 잠 못 드는 화학책>에서 둘의 찰떡같은 호흡을 확인할 수 있는데 화학과 요리가 주고받은 영감의 시너지가 흥미진진하다. 물리학자 니컬러스 커티는 말했다. “금성과 화성의 온도를 잴 수 있는 기술을 갖고도 수플레 내부를 들여다보지 않는 것은 이상하지 않은가”라고. 물론 인간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태어나기 전부터 요리를 했고 분자 요리를 모르고도 맛있는 음식을 즐겨왔지만, 수플레 내부를 들여다본 이상 그전으로 돌아갈 이유가 없다. 요리에 푹 빠진 과학자들이 안내하는 근거 있는 미식의 세계란 뇌까지 황홀해지는 맛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