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쓰는 월급 사실주의자

나는 돈을 위해 글을 쓴다. 문학은 종교가 아니다. 데면데면한 비즈니스에 가깝다. 균일한 속도로 글을 생산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것은 어떤 문학적 성취보다 자랑스럽다.

월급사실주의 고해상

“너, 월급 사실주의자라며?” 누가 전화를 걸어와 물었을 때 무슨 말인지 몰라 당황하고 말았다. 알고 보니, 장강명 작가가 인터뷰에서 나를 포함한 몇몇 작가들을 두고 그렇게 부른 모양이었다. 2010년대에 활동을 시작했고, 생산력이 좋아서 꾸준히 글을 쓰고, 장편 쓰는 걸 어려워하지 않고, 직장생활을 했던 경험도 곧잘 녹여내며, 여러 장르를 자유로이 오가는 등 문학관도 상대적으로 유연한 작가군에 대해 농담에 가까운 명명이다. 임성순, 정아은, 심재천, 이혁진 작가를 비롯해 그렇게 함께 묶인 분들에 대해 떠올려보니 스치듯 인사한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한번 만나보지도 못했다. 아마 다들 나만큼 깔깔 웃지 않았을까? 모르는 사람들과 뜬금없이 한 묶음으로 묶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한참 웃고 나니, 내가 월급 사실주의자가 맞긴 맞는 것 같았다. 나는 정말 돈을 위해서 글을 쓴다. 그밖의 것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1년 내내 단편소설을 쓰고, 장편소설을 쓰고, 에세이와 칼럼을 쓰고, 동화를 쓰고, 영상 판권을 팔고 영상 대본도 쓰면서 회사 다니듯 일한다. 강의를 하거나 다른 직업을 가지지 않고 글로만 생계를 해결하는 셈인데, 확실히 국내 사정상 드문 경우이긴 하다. 적정한 수준 이상의 글을 균일한 속도로 생산하면 일이 몰리고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인데, 그 어떤 문학적 성취보다도 경제적 자립성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고 고백해본다. 딱 월급만큼 버는 것이지만 책이 진저리 나게 팔리지 않고, 10여 년째 원고료는 장당 1만원인 환경에서 이 정도도 벌기가 쉽지 않다. 마음이 각박해선지, 원고료가 높을수록 아이디어도 잘 떠오른다. 문학상을 생각할 때는 명예나 권위도 싫진 않지만 그보다는 액수에 신경이 쓰인다. 상금이 커 보여도 연봉으로 치면 얼마 되지 않으니 말이다.

안정적인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고, 1년에 완벽한 단편 두 편 정도를 쓰고, 3년에 한 번 정도 장편을 쓰며 활동하는 작가들이 더 보편적이긴 하다. 그보다 드물게 쓰는 작가들도 물론 많다. 적당한 양을 마음먹은대로 쓸 수 있으면 좋겠지만, 작가의 생산량이란 타고나는 것에 가까운 데다 스스로 조정할 수 있는 부분도 아니다. 정말이지 직장을 그만두고 싶지 않았는데,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제때 쓰지 못하면 몸이 아플 정도로 괴로워서 결국 그만두던 날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난다. 이런 시대에 전업 작가라니 제정신이 아닌 선택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지금은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힘차게 돌아가는 공장 같은 머릿속 덕분에 예술가인  동시에 직업인이라고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어서기쁘다. 비슷하게 많이 쓰는 작가들과 “요즘은 생산라인이 잘 돌아갑니까?” 하고 농담도 하곤 한다. 이러한 월급 사실주의자적, 소설 공장장적 태도가 작품의 내용에도 영향을 미쳤던 적이 있는지 곰곰 생각해보았는데 작품의 본질적인 면보다는 외연적인 면에 다소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더 많은 독자에게 읽히기 위해, 또 영상이나 다른 형태로의 용이한 변형을 위해 쉽고 빠르고 시각적인 표현을 선호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말이다. 다른 작가들을 대표해서 말할 수는 없지만, 문학에 대해서는… 별로 뜨겁지 않다. 문학은 나의 종교가 아니다. 절대적인 사랑의 대상도 아니며, 굳이 말하자면 데면데면한 비즈니스 관계랄까? 거대 자본의 영향을 받지 않고 내 멋대로 이야기를 쓸 수 있어서 소설이라는 형태를 선호한다 뿐이지, 소설이 다른 이야기 장르보다 높은 경지에 있는 어떤 것이라는 인식은 어쩐지 좀 촌스럽다고 생각한다.

문학은 저물어가는, 인기 없는 엔터테인먼트고 문학계 사람들은 그 점을 직시해야 한다고 평소에 믿어왔다. 문학은 아무것도 아니다. 작가도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면서 뭐라도 된 것처럼 망나니 짓을 하다간 아예 범죄자가 되기 십상이다. 요 몇 년간 문학계 사람들은 문학계가 자정이 안 되는 어두운 진창이란 걸 만천하에 밝히고 말았지 않았나? 그러니 이제 문학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야 문학을 잘할 수 있는 아이러니에 대해서 깊이 이야기해봐야 할 시기다. 성실하게, 직업윤리를 고찰하고, 축축한 바닥을 좀 건조하게 만들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소설을 쓴 지 9년쯤 되어가는데, 쓰면 쓸수록 환상이 사라진다. 아마 다른 문화 예술계 종사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는 그저 프리랜스 노동자일 뿐이고, 업계의 구조는 점점 나빠져가고 있으며, 동 세대는 가난해서 문화에 많은 소비를 하지 못한다. 어떻게든 생계를 확보하고 생계 너머로 가기 위해 발버둥치느라, 환상 따위에 좌지우지될 시간이 없다. 월급 사실주의는 직관이 반짝이는 농담이자 패러디일 뿐, 새로 등장한 문예사조나 운동 같은 건 아니다. 그러나 유효기간이 지난 권위를 신경 쓰지 않고, 직업인으로 스스로를 다져가며, 홀로 묵묵히 쓰는 월급 사실주의자들이 는다면 문학계가 지금보다 건강해지리라 생각된다. 얼떨결에 월급 사실주의자가 되어버렸지만, 한동안은 이대로 지내볼까 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