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문명화 과정

우리가 몰랐던 바다를 이해하는 또 다른 방법을, ‘미술 읽어주는 소설가’ 백민석이 써서 보냈다.

싱가포르의 해상 지리 및 역사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한 작품을 선보이는 찰스 림 이 용.

싱가포르의 해상 지리 및 역사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한 작품을 선보이는 찰스 림 이 용.

탁한 옥빛의 바닷물이 출렁이는데 그 위로 쇠로 된 벽 같은 것이 솟아 있다. 물결은 요동칠 준비를 하는 것처럼 높낮이가 다르다. 벽은 쇠로 된 것이 틀림없다. 표면을 물들인 검붉은 것은 쇠붙이의 표면에 스는 녹이고, 그 사이로 비치는 흰빛은 쇠의 원래 색깔이거나 아니면 말라붙은 소금일 것이다. 그리고 벽 한가운데 크기를 짐작할 수 없는 표지판이 하나 붙어 있는데, “들어가지 마시오. 출입 제한”이라고 쓰여 있다. 파도의 거친 에너지를 분산시키기 위한 것인지, 벽에는 주름도 져 있다. 싱가포르 작가 찰스 림 이 용의 작품 ‘Sea State 4: Line in the Chart’가 보여주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기 위해서는 약간의 힌트와 시간이 필요하다. 이 전시가 바다에 관한 전시라는 힌트, 저 검붉은 쇠 벽 아래 출렁이는 것이 바닷물이라고 추론할 시간. 다시 의문이 피어오른다. 어떻게 바다에 쇠로 된 장벽을 세울 수 있지? 왜 바다에 장벽을 세웠지? 거기 뭐가 있다고?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지만 배를 타고 나가 바다를 정복한 해양 국가는 아니다. 북쪽은 육로로 중국과 이어져 있고 서쪽 바다는 중국 대륙에, 남쪽과 동쪽 바다는 일본 섬에 가로막혀 있다. 따라서 배를 타고 아주 멀리까지 나갈 일이 얼마 없었다. 그래서인지 우리에겐 루노 라고마르시노의 작품에 등장하는 콜럼버스 같은 해양 탐험가도 거의 없고, 배를 집어삼키는 대왕문어 같은 해양의 상상력에 뿌리를 내린 문화도 많이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오래전부터 바다를 탐험하고 신대륙을 발견하고 식민지를 개척했던 역사를 가진 나라에 바다의 의미는 우리와 다를 것이다. 싱가포르처럼 그들은 바다에 장벽을 세우고 출입 금지 표지판을 달 생각을 하는 나라다. 내가 처음 작품을 보았을 때 낯설게 느껴졌던 그 부분이다. 우리 문화에서 바다는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규모와 힘을 지닌 대자연이고, 따라서 그 자체로 이미 장벽으로 기능한다. 싱가포르에 실제로 존재하는 바다 장벽처럼, 장벽에 또 하나의 장벽을 세우는 일은 우리 문화에서는 좀처럼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국제갤러리에서 8월 20일까지 열리는 <격자에 갇힌 바다(Gridded Currents)>전은 이처럼 ‘바다’라는 대자연을 관리하려 드는 문명의 여러 모습을 담은 전시회다. 싱가포르의 바다 장벽은 공중에서 촬영한다면 분명히 바다 위에 쳐진 선, 도형, 격자처럼 보일 것이다. 여기서 ‘관리’란 인간을 위한 총체적인 쓰임을 말한다. 무역을 가능케 하고, 관광에 기여하며, 광물과 수산물을 채집할 수 있고, 때로는 국가의 영토를 한정하는 국경의 역할도 하고, 이 전시회처럼 예술의 중요한 컨셉으로 쓰이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인간을 위한 쓰임의 총체가 문명이다.

신대륙 발견 신화의 부조리한 재생산 속에서 반복되는 유럽 중심주의와 폭력성을 이야기하는 루고 라고마르시노.

신대륙 발견 신화의 부조리한 재생산 속에서 반복되는 유럽 중심주의와 폭력성을 이야기하는 루고 라고마르시노.

니나 카넬의 ‘Shedding Sheaths’는 이번에 해저에 그어진 격자를 보여준다. 전시장 바닥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고무 조각 역시 인간이 바다 밑에 그려놓은 실질적인 격자라고 할 수 있다. 이 오브제 작품은 못 쓰게 된 전력용 혹은 통신용 케이블을 이용한다. 도시와 도시, 국가와 국가, 대륙과 대륙 사이의 인터넷 통신을 위해 인간은 바다를 가로질러 데이터를 송수신할 수 있는 케이블을 깔아왔고, 그 케이블이 세계의 해저에 지금 격자처럼 쳐져 있는 것이다. ‘Grid’는 격자무늬이면서 배전망이라는 뜻도 가진다. 전시 제목인 ‘격자에 갇힌 바다’는 은유적인 표현이 아니다. 이미 바다는 해상이든 해저든 인간이 그어놓은 격자로 어지러운 것이다. 그 격자는 그 옛날 바다의 지도를 만들고 미지의 공간을 상상하며 가상으로 그어놓은 모눈이 아니다. 그 격자는 쇳덩이처럼 단단하고 해저 케이블처럼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인간이 진출하고 탐험하는 데는 바다에 배가 없어서는 안 된다. 역청은 인간이 처음 나무로 배를 만들어 바다에 띄웠을 때부터 침수로부터 안전을 지켜주는 역할을 했다. 역청으로 나무배의 틈새를 막아 원거리까지 배를 몰고 나갈 수 있었고, 비로소 대륙과 대륙 사이를 격자무늬처럼 가로지를 수가 있었다. 김아영은 그 역청을 오브제 삼아, 인간이 어떻게 바다를 육지처럼 활용해왔는지 서사적인 시각으로 바라본다. 성경에도 노아의 방주에 역청을 발랐다는 기록이 나올 정도로 아주 옛날부터 쓰인 재료다. 영상 작품인 ‘무한 반복의 역청 지휘’는 역청을 바른 배를 통해 바다를 지휘할 수 있게 된 인간의 문명을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인간은 바다에 휘둘리는 존재가 더 이상 아니다. 인간은 제 두 손으로 바다로 나아가 바다를 지휘하는 존재다.

전시에서 가장 인상적인 김아영의 또 다른 영상 ‘이 배가 우리를 지켜주리라’는 인간이 바다로 진출하면서 어느새 바다도 육지로 들어왔음을, 인간이 쌓아 올린 문명의 한 극단, 즉 예술 작품을 통해 보여준다. 파리의 국립 오페라 극장은 육지 한가운데 있으면서도 바다에 떠 있는 배와 유사한 공간이다. 전시장에서 이뤄진 짧은 인터뷰에서 작가는 이 유서 깊은 극장이 실제 “배처럼 물 위에 둥둥 떠 있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극장 지하에서 대량의 지하수가 터져 당시 선박에 쓰이던 역청을 이용해 건물의 침수를 막았다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영상에 찍힌 극장 내부 설비도 배를 연상시킨다. 리플릿에 따르면 실제로 극장을 지을 때 “선박 내부의 설비를 응용하고 실제로 배를 주조하는 건축술을” 이용했다고 한다. 극장의 설비를 가리키는 용어에는 아직도 “선박 용어가 남아 있”다. 영상에는 무대막을 끌어 올리는 도르래가 잠깐 비치는데, 영화에서 봤던 돛대를 끌어 올리는 장치와 비슷하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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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적으로 다뤄온 역청이라는 재료를 통해 자본, 종교, 복잡한 문명사에 얽힌 새로운 상상력을 자극하는 김아영.

‘이 배가 우리를 지켜주리라’는 언뜻 커다란 나무배의 내부를 연상시키는 호박색 실내에서, 남녀 무용수들이 무용을 하고 그 사이사이를 검은 옷을 걸친 가수들이 돌아다니며 노래를 부르는 장면으로 이뤄졌다. 흥미로운 것은 노래 가사다. 그들은 파리 복판에 있으면서도 “배를 타세요!” 하고 슬픈 어조로 읊조린다. 이는 낯선 세계를 탐험하는 데 쓰이는 배가, 어느덧 문화의 중심에서 상징적인 메타포로 쓰이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바다가 문명화되었음을 보여준다.

바다 같은 대자연은 인간의 손을 거부하는 숭고한 어떤 것이었다. 인간의 정신을 압도하고, 인간을 어쩔줄 모르게 하며, 인간을 하찮은 존재로 만들어버리는 어떤 것이었다. 그것은 인간의 범위를 넘어서기 때문에 완전히 파악하는 것도 불가능한 대상이었다. 하지만 인간은 스스로 생명을 버려가며 에베레스트산을 정복했고, 몇 세기나 온 바다를 헤집으며 탐험해 남김 없이 지도로 표현했다. 그 결과가 바다에 그어진 격자무늬인 것이다. 인간은 바다를 위도와 경도로 정확히 구획 지음으로써 바다에게서, 바다가 가진 인간을 위협하는 힘, 즉 고유의 숭고함을 내쫓아버렸다. 이제 바다는 인간을 두려움에 떨게 하는 존재가 아니라, 안전한 육지의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대상으로 축소되어버렸다. 숭고함은 이제 바다에 없다. 있다면 정교미이고, 그래픽적인 아름다움이다.

그 차이를 찰스 림 이 용의 ‘Sea State 8: The Grid’가 간단히 보여준다. 싱가포르는 섬 면적을 간척 사업을 통해 넓히는 대규모 사업을 진행 중인데, 두 장의 지도로 표현된 섬과 바다는 단순한 그래픽적인 요소로 축소되어 나타난다. 이는 인간이 바다를 바라보는 시각이 대자연을 대하는 시각이 아님을 보여준다. 그것은 지도라는 문명의 도구를 통해, 이미 문명의 일부가 된 자연, 관리가 가능해진 바다를 보여준다. 이러한 관리자의 시각은 대자연이 마침내 인간의 오랜 손길에 의해 문명화 과정을 거쳐 문명의 일부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와이어리스 세계의 기반이 되는 매설 케이블을 조각의 형태로 만들어 비가시적, 비물질적 세계를 은유하는 니나 카넬.

와이어리스 세계의 기반이 되는 매설 케이블을 조각의 형태로 만들어 비가시적, 비물질적 세계를 은유하는 니나 카넬.

물론 그렇다고 바다가 완전히 인간의 손에 떨어진 것은 아니다. 인간은 바다를 정복해 격자 안에 가둬두었다고 주장할 테지만, 자연은 언제고 인간의 오만함을 일깨울 준비가 되어 있다. 인간은 바다를, 자연을 정복했다기보다는 활용 가능한 일부만 활용하고 있을 뿐이다. 바다를 훼손하고 있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이다. 루노 라고마르시노의 비디오 작품 ‘바다 문법(Sea Grammar)’은 인간이 바다를 활용하는 법을 고발하는 작품이다. 문법이 재료인 언어를 다루듯이, 바다 문법은 바다를 다룬다. 문법은 세계를 운용하는 하나의 법칙이고, 문명화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인간은 외부 세계에 법칙을 부여함으로써, 문명에 알맞게 재구성하고 재창조한다. ‘바다 문법’은 슬라이드가 한 장씩 넘어가면서, 처음엔 배가 한 척 지나갈 뿐인 바다 풍경에 인위적으로 만든 구멍이 하나둘씩 뚫리는 과정을 보여준다. 나중엔 구멍으로 가득 차, 처음의 바다는 인간이 뚫어놓은 구멍 사이로 알아볼수 없게 망가져 사라진다.

<격자에 갇힌 바다>전은 바다 안팎에 그어진 실질적인 격자, 상징적인 격자를 다룬다. 해저 케이블에서부터 간척 사업용 해도에 그어진 구획선까지. 파리의 한복판에 들어온 배부터 인간이 나가보지도 못한 원해에 그어진 상상의 위도, 경도선까지. 이러한 인간의 작업은 애초에 인간의 것이 아닌 대자연을 인간의 관리 아래 두려는, 문명화 과정의 작업이다. 인간은 바다에 가상의 격자를 그리면서 바다를 관리 가능한 대상으로 만든다. 인간은 자연을 모눈종이에 가둬둠으로써 문명의 일부로 만들었다. 인간은 자연을 정복할 수는 없지만 관리할 수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