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의 죽음

모두 전문가 행세를 한다. 전문가는 필요 없고, 모든 의견이 똑같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분위기다. 정말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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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전문 지식의 죽음>을 펴낸 톰 니콜스 교수는 “전문가들이 위협받는다”고 말한다. 그는 인터넷의 팽창으로 정보를 쉽게 얻어 ‘나도 너만큼 똑똑하다’는 나르시시즘이 확산됐다고 토로한다. “또 민주주의에 대한 오해로 대중은 모든 의견이 똑같이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죠. 평등한 권리를 가졌다는 것이 평등한 재능, 평등한 지식을 가졌다는 게 아닌데 말입니다.” 이전에 그는 러시아 외교정책에 대해 기고하고 수백 건의 이메일과 트윗을 받았다. “구글 검색에서 얻은 지식으로 쓴, 140자도 안 되는 글이었죠.” 그는 “컬럼비아 학위, 구소련 시절부터 현지를 오가며 습득한 지식, 토론과 연구 조사, 정부 기관에서 일한 시간과 돈을 모두 돌려받고 싶을 정도”로 모욕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컴퓨터만 켜도 국내에 비슷한 예는 천지다. 정말 전문가는 죽었는가? 왜 우리는 전문가를 언짢아하는가? 이런 현상의 첫 번째 이유로 모두 인터넷의 발달을 얘기한다. 이제 세상에 문지기는 없다. 원하는 정보를 얻고(피상적일지라도), 원할 때 말할 수 있다. 미디어의 허락이나 까다로운 데스크의 편집도 없다. 그들에게 뒷받침할 자료나 증거를 요구하지도 않는다. 또 상업성을 중시하는 대중문화의 등장, 여러 가치 기준의 혼란 등도 한몫한다. 화가 난 톰 니콜스는 “대학, 정치계의 무식함, 더닝 크루거 효과(멍청할수록 자기 목소리를 키우기 위해 전문가를 내쫓는), 고급 학위에 대한 적개심”까지 이유로 든다.

그렇다면 전문가의 잘못은 없나? 우리에게 전문가는 자칫 권위, 독재, 엘리트주의와 동의어처럼 느껴진다.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융복합대학 기초학부 임태훈 교수는 “전문가에게 원죄가 있다”고 얘기한다. “밀양 송전탑 투쟁에서 과학자들은 그것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입을 다물었어요. 4대강도 마찬가지죠. 아무 문제 없다고 말한 기술자, 정치 문화계 인사들은 지금 뭘 하고 있나요? 그간 전문 지식은 가치 중립적으로 전달되지 않고 권력의 눈치를 봤습니다.”

사실 전문 지식의 죽음이란 화두는 굉장히 트렌드화된 분야 안에서만 움직인다. 정치, 영화, 미식 등. 임태훈 교수는 “한국이 탄핵 국면을 거치면서 ‘정치 과잉’의 사회잖아요. 모든 이슈를 정치가 블랙홀처럼 빨아들여 다른 이슈의 존재감을 흐리고 있죠. 이른바 ‘깨시민들’이 자기 얘기를 들어줄 송수신의 관계가 얄팍해지면(정치가 트렌드가 아닐 때) 그 열정을 이어갈지 지켜볼 필요가 있죠. 비아냥이 아니라, 전문 지식의 죽음이라는 문제 제기 자체가 굉장히 소수 영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얘기입니다”라고 말한다.

김형석 영화 평론가는 “한국 사람은 누구나 직업이 세 개”라고 농담한다. “먹고살기 위한 생업, 정치 논객, 영화 평론가.” 9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는 정성일의 라디오 평론을 받아 적고, 한겨레 영화평을 복음처럼 읽었다. “오프라인 시대의 담론이 온라인(카페, 블로그, SNS, 유튜브 순)으로 옮겨갔죠. 확실히 평론가의 권위는 떨어졌습니다.” 이동진, 정성일 등이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이유는 “90년대부터 지명도를 쌓았기에 가능하다”는 것. 하지만 그는 대중의 ‘내가 전문가’ 유행이 한국 영화 구조나 작품 수준에 비해서 산업을 폭발적으로 키웠다고 얘기한다. 그리고 이제 전문가는 변해야 한다. “한때 평론가가 영화에 공신력을 주던 시절이 있었어요. 경쟁적으로 특정 영화를 추천하던 시절이죠. 홍상수, 김기덕이 등장하던 시절에는 그 전략이 유효했어요. 이제 달라져야 합니다. 관객들이 미처 느끼지 못하는 현상을 분석해야죠.”

앞서 얘기한 한국 사람의 직업 중에 하나를 더 추가한다면 ‘미식가’일 것이다. 이 분야만큼 전문가와 담론이 부재인 곳도 없다. “영어권조차 70년대 말에나 권위지에 미식 비평이 실렸죠. 한국은 더욱 역사가 짧고요. 사실 음식에 대해 고민해본 적이 없죠. 이른바 전문가들은 맛집 사냥, 특정 브랜드의 판촉과 같은 탐식(미식이 아닌)의 영역에서 활동했습니다. 저널리즘은 전문성이 부재한 기사를 양산해왔죠(몇 대 천왕이나 인기 셰프 기사 같은). 대중 역시 숙련 노동의 세계를 이해하려 하지 않고, 존중하지 않습니다.” 고영 음식문헌학자는 이렇게 말하며 앞으로 전문성을 어떻게 가져갈지가 관건이라 했다.

전문가와 대중이 공존할 방법은 없는 걸까? 전문가의 원죄와 대중의 환멸이 악순환이 되면 전문 지식인으로 학습해나가는 사람들이 위축되고, 살아남은 이들은 더 한심하게 변한다. 그렇다면 미래는… 임태훈 교수는 “사회적 책임 의식이 강화돼야 한다”고 말한다. “전문가에 대한 무시는 ‘내가 너보다 많이 안다’보다는 ‘너보다 정의로울 수 있다’에서 옵니다. 알고있음에도 말하지 않는 너보다, 말할 수 있는 내가 낫다는 거죠. 그래서 더욱 전문가는 사회적 책임과 지식이 올바르게 쓰여야 한다는 소명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대중 역시 생산적인 갈망을 키워야 한다. 다들 정치 얘기, 영화 얘기 하니까 휩쓸려 하나 얹어보려는 건 아닌지… 자기 삶에서 무엇이 부족하고, 무엇을 충족하고 싶은가에 대한 진중한 학습(구글링이 아니라), 어떻게 해야 삶이 나아질까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이것에 이르렀을 때 그는 전문 지식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강한 동기부여를 받고, 사회적인 책임감도 갖게 됩니다. 이렇듯 전문가와 대중의 올바른 태도가 맞물리면서 ‘선한 지식의 순환’이 이루어지는 문화가 만들어져야죠.”